트로트 가수 최우진이 티에스엠 엔터테인먼트와 특별한 동행을 시작한다. 티에스엠 엔터테인먼트는 28일 “구성진 목소리의 시원시원한 꺾기 창법과 꽃미남 같은 외모의 최우진이 티에스엠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하며, 설하윤, 은가은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고 전했다. 최우진은 2014년 KBS1 ‘전국노래자랑’ 경상북도 봉화군 편 최우수상을 수상한 실력자다. 2016년 ‘누나야/직진’ 앨범을 내고 정식으로 데뷔했다. 2019년 KBS1 ‘아침마당 - 도전 꿈의 무대’에 출연하여 5승을 거두며 대중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특히 이듬 해 방송된 SBS ‘트롯신이 떴다2 - 라스트 찬스’ 에서는 TOP6에 선정되며 다시 한번 그 실력을 입증했다. 올 초에는 TV CHOSUN ‘미스터트롯2’에 출연해 현철의 ‘아미새’를 선곡, 무대를 디너쇼로 만들었다. 최우진은 2021년에는 ‘봉화군 홍보대사 위촉’, ’월드스타 연예대상 가수부문 남자신인상 수상’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해가 거듭될수록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있다. 티에스엠 엔터테인먼트 강인석 대표는 “최우진은 구성진 목소리와 뛰어난 실력으로 많은 대중들에게 가슴 떨림을 선사할 정통 트로트의 맥을 이어가는 아티스트다. 이번 계약을 계기로 그 매력이 대중에게 더 많이 어필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영입 소감을 밝혔다. 한편 최우진은 8월 5일 서울 구름아래 소극장에서 첫 콘서트 ‘최우진, 직진 그리고 전진’을 개최한다. slee_star@fnnews.com 이설 기자 사진=티에스엠 엔터테인먼트
2023-07-28 12:52:56[파이낸셜뉴스] 단 2회만을 남겨둔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은 사교육 1번지를 무대로 일타 강사 최치열(정경호 분)과 고2 딸(조카)을 둔 국가대표 출신 반찬가게 사장 남행선(전도연 분)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입시경쟁에 내몰린 학생들과 부모들의 이야기도 풀어내며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지난 2월 26일 방송된 ‘일타 스캔들’(연출 유제원, 극본 양희승, 제작 스튜디오드래곤)에서는 여고생 해이(노윤서)가 사라지면서 그의 이모인 행선(전도연)네 가족에게 최악의 위기가 찾아왔다. 이와 함께 치열을 보필해온 동희(신재하)의 진짜 정체를 향한 치열(정경호)의 의심이 커지면서 ‘일타 스캔들’의 결말을 향한 관심 또한 증폭됐다. 지난 14회 시청률은 수도권 기준 평균 17%, 최고 18.9%, 전국 기준 평균 14.3%, 최고 15.8%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2049 시청률 역시 전국 기준으로 평균 6.9%, 최고 7.8%로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사회면 장식한 그 사건 떠오르네 ‘일타 스캔들’은 일타 강사 최치열 캐릭터의 주변 인물을 통해 입시경쟁에 내몰린 학부모와 학생들의 비극적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먼저 두 아들을 둔 장서진 변호사를 연기한 장영남 캐릭터는 2018년 발발한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시험 유출 사건’과 겹쳐진다. 부친이 교사(교무부장)로 재직하면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을 위해 시험 문제와 정답을 빼돌린 사건으로, 성적평가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2020년 3월 징역 3년형이 확정됐다. 극중 장영남은 아들 학교 교무부장의 자식 문제를 도와준 대가로 시험지 유출을 청탁한다. 일종의 상부상조를 한 셈. 아들 선재는 유출된 시험지인줄 모르고, 친구 해이에게 공유하고, 의도치 않게 범죄(?)에 가담하게 된다. 이는 쇠구슬 사건의 범인인 동희를 연기한 신재하 캐릭터와도 연결된다. 동희의 엄마 역시 장서진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극성 엄마였다. 그는 큰 딸을 위해 시험지를 유출하고, 큰 딸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살하고 만다. 누나를 잃은 재하는 엄마의 과도한 성적 집착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재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쇠구슬을 쏘며 공부 스트레스를 푼 것으로 보인다. 이후 홀로 된 재하는 누나가 유일하게 어른이라고 칭찬했던 치열을 자기 인생의 의미로 삼고, 치열에게 해가 되는 사람을 공격한다. 재하의 과거사는 2011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고3 우등생 친모 살해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모친의 ‘공부’ 강요와 집착에 시달리던 아들은 급기야 성적을 위조하고 '성적이 떨어지거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거나 잠도 재우지 않고 야구방망이 등으로 폭행도 서슴지 않던'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잠을 자지도 못한 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그는 ‘학부모 총회’를 하루 앞두고 자신의 성적위조가 들통날까봐 ‘최악의 선택’을 하며 패륜아로 전락하고 말았다. 흔들리는 청소년, 누구를 위한 사랑과 집착인가? 자신보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데도 늘 당당한 해이에게 1등을 놓친 방수아(강나언 분)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됐다. 초반에는 밉상 캐릭터로 활약해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1등에 대한 집착과 입시에 대한 강박으로 환각과 환청을 겪고, 친구를 죽이는 싶은 자신의 마음에 화들짝 놀라는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엄마가 유출한 시험지 덕에 전교 1등을 하게 돼 남몰래 죄책감에 시달리는 선재와 함께 수아는 입시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의 가혹한 현실을 드러내며 인성교육이 결여된 과도한 학벌 지상주의의 폐해도 드러낸다. 특히 수아가 자신의 엄마를 ‘무수리’ 취급하는 모습은 부모의 자식 농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선재는 우리사회가 얼마나 학벌 지상주의인지 모른다고 강조하는 변호사 엄마에게 묻는다. “그래서 엄마는 행복해요?” 남편과 이혼 위기인 장서진은 결국 혼술을 하며 자조한다. “나도 내가 너무 무섭다. 어디까지 갈지. 얼마나 더 나빠질지” 1등은 한명 뿐이다. 그렇다면 2등부터 모두 루저가 된다. 1등 마저도 언제 2등이 될지 불안하다. 방수아가 그랬다. 경쟁에서 이겨 1등이 된다고 해도 행복할지는 미지수다. 일타강사 최치열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1조원의 남자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진정으로 물려줘야 하는 것은 삶에 대한 올바른 가치와 정의로운 사회일 것이다. 최근 학폭 가해자인데도 ‘아빠 찬스’로 명문대에 진학한 ‘정순신 사태’가 온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다. 권력이 정의가 된다면, 모두가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3-03-03 15:42:56이정현 조권 (사진=조권 트위터, DB) 조권이 이정현 쇼케이스 인증샷을 공개했다. 22일 오후 그룹 2AM 조권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정현 누나 쇼케이스 보다가 깜짝! 그래요 저 실시간으로 봤어요. 그래서 인증샷 나도 V”라는 글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 조권은 가수 이정현의 쇼케이스를 보면서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고 있다. 해당 사진은 이날 오후 마포구 서교동 V홀에서 열린 이정현의 신곡 ‘V’ 발표 기념 쇼케이스에서 이정현이 조권을 언급한 데 대한 화답이다. 앞서 이정현은 쇼케이스에서 “조권이 쇼케이스 보고 있다고 문자가 왔다”라며 “권아, 고마워”라고 언급해 시선을 모았다. 이를 접한 네티즌들은 “이정현 조권 의외의 친분이네”, “이정현 조권, 선후배 사이 보기 좋다”, “이정현 조권 서로 응원하는 사이구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이정현은 이날 쇼케이스에서 ‘파킹 찬스(PARKing CHANce)’ 박찬욱, 박찬경 형제가 연출한 ‘브이’의 뮤직비디오와 무대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ladydodo@starnnews.com도혜림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starnnews.com
2013-07-22 20:33:24미르 큰누나 (사진=해당 영상 캡처) 미르가 큰누나를 공개해 화제다. 11일 방송된 KBS 2TV '설특집 스타 패밀리쇼 맘마미아'(맘마미아, MC 박미선 김용만 광희)에 미르는 어머니와 함께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 화제가 된 인물은 미르의 큰누나. ‘소 한마리 노래방’ 코너에서 미르는 “누나 찬스를 쓰겠다”라며 자신의 큰누나인 방효선 씨를 불러냈다. 이에 방효선 씨는 "저는 5살 짜리 아기 엄마다"고 자신을 소개했고 출연진들은 “예쁘다”를 연발하며 관심을 보였다. 특히 미르의 큰누나인 방효선씨는 유부녀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청순하고 단아한 외모를 뽐내 눈길을 끌었다. 한편 이날 방송에는 홍록기 부부, 김원효 심진화 부부, 김영희, 가애란, 씨스타 효린, 엠블랙 미르, 쥬얼리 예원, 허경환 등이 출연했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gnstmf@starnnews.com이슬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starnnews.com
2013-02-11 20:44:58정일우가 공효진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절친 인증샷을 공개했다. 28일 정일우는 자신의 자신의 미투데이를 통해 “효진 누나 고마워요 양은비 없었으면 나 누나한테 '예쁘네~' 날렸을지도? 오늘 꽃라면 기대돼”라는 글과 함께 공효진과 다정한 포즈의 사진을 게재했다. 이는 이날 방송된 ‘꽃미남 라면가게’ 9화에서는 특별 출연한 공효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으로 평소 정일우와 친분이 있던 공효진은 특별 출연 제의에 흔쾌히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 이후 5개월여만에 브라운관 깜짝 등장한 공효진의 모습에 공효진 팬들 뿐만 아니라 정일우의 팬들 역시 반가워하며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두분 완전 잘 어울려요”, “계속 공효진씨가 ‘꽃라면’ 나왔으면 좋겠어요”, “공효진과 정일우 로코의 제왕들이 만났네요!”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soarhi@starnnews.com강혜인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starnnews.com 관련기사 ▶ 유덕화, 주리첸 임신사실 전해...남우주연상에 이은 ‘겹경사’ ▶ 김새론, 키 20cm 폭풍성장에 인형비율 “미래가 기대되네” ▶ 김병만 여자친구 고백, "자녀 위해 혼인신고 끝 마쳐" ▶ 이효리-이상순 열애, "4개월째 교제 중...결혼계획은 아직" ▶ 비 전화 찬스, “상벌점제도 혼자 15점 채워 전화찬스 획득”
2011-11-29 12:31:36이효리가 의미심장한 글을 남겨 화제가 됐다. 28일 이효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아 놔~ 몰래 찍지 맙시다”라는 의미심장한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게재했다. 게재된 사진은 이효리가 강아지를 몰래 찍고 있는 느낌을 주는 사진으로 파파라치를 당하고 있는 개의 표정이 심기가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효리의 사진과 문구를 본 네티즌들은 이상순과의 열애 사실이 밝혀지면서 데이트 사진 등을 몰래 찍는 파파라치에게 간접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 사진과 글을 접한 네티즌들은 “강아지 표정 대박”, “예쁘게 오래 사귀세요”, “몰래 찍지마세요!!”, “몰래 찍히는 건 누구나 기분 나쁨”, “효리누나 축하해요”, “오래오래 이쁜 사랑하세요”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이효리는 싱어송라이터 이상순과 4개월 전부터 교제를 시작해 예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u3ulove@starnnews.com손진아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starnnews.com 관련기사 ▶ 유덕화, 주리첸 임신사실 전해...남우주연상에 이은 ‘겹경사’ ▶ 김새론, 키 20cm 폭풍성장에 인형비율 “미래가 기대되네” ▶ 김병만 여자친구 고백, "자녀 위해 혼인신고 끝 마쳐" ▶ 이효리-이상순 열애, "4개월째 교제 중...결혼계획은 아직" ▶ 비 전화 찬스, “상벌점제도 혼자 15점 채워 전화찬스 획득”
2011-11-28 19:58:49가수 김범수가 동료 가수 이소라를 짝사랑했던 사연을 공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근 진행된 KBS JOY '이소라의 두 번째 프로포즈‘ 녹화에 출연한 김범수는 "고등학생 시절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이소라 누나를 보며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혼자서 결혼도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이날 녹화에서 김범수는 "소라 누나를 만나기 위해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소라 누나와 함께 무대에서 듀엣곡을 부르는 게 소원이었다"고 애틋한 마음을 전하기도. 이에 이소라는 김범수와 즉석에서 함께 듀엣으로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을 부르며 환상의 무대로 화답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이날 ‘이소라의 두 번째 프로포즈’ 녹화장에는 김범수 이외에 ‘원모어찬스’, ‘세렝게티’, 요조 등이 참석했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victory@starnnews.com김지이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starnnews.com 관련기사 ▶ ‘미스 리플리’ 최명길, 이다해 친모? 충격 전개 기대감↑ ▶ 유이, ‘오작교 형제들’ 첫 촬영 돌입..‘슬픈 눈빛’ 연기 ▶ 장나라, 최다니엘에 눈물 고백 “다시는 못나게 굴지 않을게” ▶ '무사 백동수',첫방 시청률 10.1% ..여유있는 출발
2011-07-05 13:31:11‘30년만의 재회’ 프란츠 아이머의 고향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다. 1945년 소련의 붉은군대에 의해 독일로부터 해방될 당시 프란츠는10세였다. 구두를 짓는 일을 가업으로 하는 부모와 15세 되는 형 리게, 13세 된 누나 엘리자베스 그리고 7세된 남동생 마티아와 부다가 가족이다. 페스트가 합쳐지기 전 부다시의 옛시청 가까운 작은 상점가에 부친이 경영하는 작은 구두방이 딸린 오래된 구식 건물에 살고 있었다. 옛시청 모퉁이에 있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는 이 도시의 수호성인이다. 이 여신 방패엔 헝가리 문장이 새겨져 있으며 왼손에 창을 들고 있었다. 어린 프란츠는 이 여신상이 참 좋았으며 자랑스럽게 여겼다. 무뚝뚝하지만 성실한 아버지 그리고 병약했던 프란츠에게 특별히 자상했던 어머니…. 그런 프란츠를 시기하여 몰래 쥐어박기 일수였던 형 리게는 프란츠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어머니를 도와 가사를 돕곤하던 누나 엘리자베스가 청소를 하거나 어머니의 빨래를 도울 때 프란츠는 동생 마티아와 우람한 돌산이 올려다보이는 다뉴브 강변의 여러 갈래 산책로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강을 거슬러오르는 작은 배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여러 세기 동안 와인을 재배 했었으나 19세기에 포도나무 뿌리 진딧물이 만연한 이후로 더 이상 포도를 재배하지 않고 있는 포도밭도 프란츠와 마티아의 놀아터가 되곤 했다. 세계 제2차대전 중인 44년에서 45년으로 가는 겨울은 독일과 프랑스의 처참한 전쟁터가 되었고 옛부다시의 오래된 건물은 거의 파괴되어 폐허가 되어버렸으며 프란츠의 가족은 작은 구두방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18세가 되면서 성실한 아버지 덕에 프란츠는 가난하나마 대학진학에 할 수 있었고 장래에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에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 56년 프란츠는 부다페스트 외트베시 로란드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하였다 . 45년 독일의 지배를 받던 조국 헝가리는 이번에는 소련 밑에서 공산주의 시대를 이어갔다. 대학내에는 소련에 대하여 비판적인 분위기가 만연하였으며 프란츠 역시 두말할나위도 없이 소련을 증오했다. 56년 10월23일 헝가리 학생 민중 봉기가 일어났으며 30만 명의 시민 학생이 거리로 뛰어나와 시위를 하였다. 그날 프란츠는 법학입문 강의는 빼먹은채 공대 학생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는 옛재무성 건물 앞에서 있을 반소모임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소에 의기투합하던 선배 그리고 동급생 몇명과 행동을 같이 했다. 이 재무성 건물 앞에서 발단된 시위는 10월23일 혁명의 주요 시발점이 되었다. 소련군은 전차 2000대를 헝가리에 투입하여 무자비하게 시위를 진압했다. 이로 인해 노벨상을 받은 사람을 비롯하여 헝가리의 많은 지식인들이 서방으로 망명을 하는 사태가 발생되었다. 프란츠는 우연히 대학의 경제학 교수와 함께 소련군에게 쫓기는 몸이 되었는데 그는 그 교수와 함께 배를 타고 대서양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소련군에게 쫓기어 같은 배를 탄 사람은 모두 스물 여덟명. 선장의 도움을 얻어 서방의 여러나라를 향하여 망명을 요청하는 무선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미국정부로부터 망명자를 받아들이겠다는 답신을 받고 뉴욕항을 향하여 배를 몰았으나 프란츠는 아직 만 18세가 채 되지 않은 미성년으로서 미국 본토에서 그를 보호해 주고 후견인이 되어 줄 양부모를 찾지 않으면 미국 영토에 발을 디딜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프란츠는 배 위에서 미국내의 헝가리 의거 지원 단체가 양부모를 찾아 줄 때까지 기다렸다. 1주일을 기다린 어느날 드디어 양부모를 자청한 미국인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미국에 망명을 하게 되었다. 영어를 할 줄 몰랐던 프란츠는 1년여 양부모 아래서 영어를 익히며 미국생활에 적응하는 법을 터득했다. 고향의 부모 그리고 형제들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하려고 여러가지로 방법을 찾았으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었다. 19세가 된 프란츠는 양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군대에 지원 입대를 하기로 했다. 입대는 아직 언어가 자유롭지 않은 프란츠에게 있어서 미국 시민으로서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의 하나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10년이 되지 않은 세계는 미국과 소련으로 2분화되고 있었다. 60년대 소련은 스탈린의 시대에서 후르시초프의 시대로 돌입하고 있었으며 미국은 젊은 대통령 케네디의 등장으로 들떠 있었다. 그후 쿠바 문제의 대립으로 두나라의 신경전은 극에 달했으며 우주 개발 전쟁으로까지 번졌다. 59년 입대하여 신병훈련을 마친 프란츠는 당시 최전방인 한국으로 파병되었던 것이다. 한국에 발령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국내에는 군사 쿠테타가 있었는데 61년 5월16일이었다.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은 후루시초프와 수뇌회담을 하였는데 이는 한반도의 긴장을 가속시키는 재료료 작용하였으며 약 2년 후 군사분계선(MDL) 근방에서 케네디 암살소식에 소식에 접했을 때 그 긴장은 극에 달했다. 군대는 초비상이 걸려 있었고 프란츠는 비상대기조에 편성되었다. MDL은 53년 7월27일에 성립한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정전협정)’에 규정된 휴전의 경계선을 말하며, 이것이 이른바 휴전선이다. 그 길이는 모두 155마일(약 250km)로, 서쪽으로 예성강과 한강 어귀의 교동도에서부터 개성 남방의 판문점을 지나 중부의 철원·금화를 거쳐 동해안 고성의 명호리까지 이른다. 당시 휴전시에 군사분계선을 설정함에 있어서 양군의 주장이 대립되었는데, 양군의 현실적인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결정함으로써 휴전협정이 성립되었다. 그리고 양군은 군사분계선 후방으로 남북 양쪽 2km에 비무장지대(DMZ)를 설치하고 있었다. 군사분계선은 200m 간격으로 설치된 황색 표지판으로 구성돼 있는데 표지판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한 것은 한글과 영어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한 것은 한글과 한자로 각각 표기돼 있다. 총 1292개에 달하며 이중 유엔사가 696개 있는데 프란츠 역시 그중 한 곳에 있었다. 어느날 우연히 소련군측의 감시단중에 헝가리 출신의 병사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프란츠는 헝가리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찬스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소련군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소련군 통치시절의 헝가리에서 배운 러시아어는 프란츠의 그런 생각을 더욱 부추겼다. 판문점 감시병으로 차출되던 어느날 친한 동료와 의기투합하여 한글, 헝가리어, 러시아어로 만든 메모를 북쪽에 슬쩍 건네주었다. ‘나는 헝가리 출신으로 헝가리의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고싶음, 소련군 감시단중에 헝가리 출신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니 누군가 그에게 전해 주기를 바람. 내일 같은 시간에 이곳을 지나칠 것이니 이 글에 대한 회답을 기대 함.’ 젊은 북한 병사가 놀란 표정으로 굳어져 있었고 프란츠 또한 커다란 모험이었다. 긴장되어 뻣뻣해진 표정으로 판문점을 시찰하던 프란츠에게 젊은 북한 병사가 스쳐가며 떨어뜨린 메모지에는 헝가리어로 회답이 써 있었다. ‘가족이 사는 곳은 어디입니까? 무엇이라 전하면 됩니까?’ 프란츠는 떨리는 가슴으로 다음날을 기다려 다시 같은 병사에게 깨알같이 적은 부모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와 주소를 적은 메모를 보냈다. 그러나 두번 다시 그 병사를 만나는 일은 없었다. 만 4년을 한국에서 근무하던 중 서울 용산 8군 본부로의 이동이 있었고 그곳 매점에서 근무하는 한국여성에게 호의를 가지게 되었다. 가족을 잃고 오랫동안 외톨박이이던 프란츠는 그에게 점점 빠져들어갔으며 처음에는 주저하던 그에게서 데이트약속을 얻어내었다. 아버지가 한국동란 중에 돌아가고 홀어머니 밑에서 3남매가 어렵게 살고 있는 그를 진심으로 도와야겠다고 생각했고 그의 정성에 감동한 그 여자도 마음을 허락 했다. 63년말 본국 귀대명령을 받고 한국인 피앙세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64년 소련은 후르시초프가 해임되고 브레즈네프의 시대가 막을 올렸고 미국은 존슨이 대통령이 되었다. 귀국 후 보스턴 근교에서 근무를 하던 프란츠는 이번에는 독일로 발령을 받는다. 독일과 헝가리 사이에는 오스트리아가 있었다. 휴일이면 독일에서 오스트리아까지 달려가서 헝가리 국경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국경은 서방으로의 탈출을 막기 위함인지 감시가 철저하여 접근할 수조차 없었다. 독일로 발령을 받았을 때는 고향과 같은 대륙에 발을 딛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찼다. 어쩌면 헝가리의 가족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를다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으나 그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으며 2년의 독일 근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군용기 속에서 헝가리의 가족에게 연락을 하고 싶다는 꿈을 버렸다. 그후 베트남 전쟁중 베트남 근무를 마치고 다시한번 한국에 발령을 받는 찬스를 얻었다. 이번에는 처음에는 용산본부에 있었으나 후에 부평의 부대로 옮겨졌다. 10여년만에 모국에 오게 된 그의 부인은 매우 기뻐하였는데 이번 한국근무 지원은 부인의 나라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MDL을 통하여 다시한번 소련측과 접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휴전선 근무의 기회는 더이상 프란츠에게는 오지 않았다. 2년 후 미국으로 돌아간 프란츠는 텍사스주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고 킬린이라는 곳에 집을 장만한다. 킬린은 주정부가 있는 오스틴에서 북으로 30분가량 가면 있는 곳인데, 미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육군 캠프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프란츠는 헝가리의 누이 엘리자베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어찌어찌하여 프란츠가 한국 휴전선에서 건네준 메모를 그녀가 받았던 것이었는데 그녀의 말에 의하면 결혼한 그녀는 남편과 부타페스트에 살고 있으나 가족들은 정부의 이주 계획으로 어디론가 보내져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정확한 표현은 없었으나 소련의 지배하의 사회주의 헝가리에서 프란츠의 가족들은 어려운 삶을 영위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77년 카터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세계는 화해 무드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미국과 중국의 국교가 정상화되었으며 세계의 관심은 중동문제에 집중되고 있었고 미국과 쿠바는 상호 양국에 대표부를 설치 할만큼 관계가 회복되고 있었다. 세계의 정세는 급변해 갔는데 프란츠는 다시한번 모국의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 프란츠는 국제적십자사에 탄원서를 제출하게 된다. 국제적십자사를 통하여 가족의 연락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거의 10년 후의 일이었다. 벨기에에 살고 있는 동생 마티아로부터의 편지를 적십자사를 통해 받았다. 가족은 헝가리를 벗어나 벨기에에 살고 있었던 것 이다. 프란츠는 이제까지 헝가리에 살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던 가족이 벨기에에 있었던 것이었다. 즉시 휴가를 내고 벨기에로 향했다.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시고 형은 행방불명이었으니 이미 80세가 넘은 아버지와 동생 마티아와 그의 새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마티아가 살고 있는 곳은 철과 석탄이 풍부하여 광산과 재철소가 많은 왈로니아였고 마티아는 그곳의 제철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실로 30년만의 재회였다. ▲에필로그 내가 지난해 9월 처음으로 미국땅을 밟은 것은 외할머니가 돌아간 후 20년 가까이 만나지 못한 이모와 이모부을 찾기 위해서였다. 먼 이국땅에서 환갑을 맞는 두 사람을 꼭 한번 만나고 와야겠다는 마음에서였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늦여름의 텍사스를 방문했을 때 이모와 이모부는 빛바랜 옛사진 속의 가족 사진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이모부가 가족 이야기를 하는 것을 나는 처음 들었다. 몹시 흥분된 표정으로 옛이야기를 들려주던 이모부, 나는 이모부가 그저 미국인인 줄만 알았었다. 아기가 없었던 두 사람은 나를 극진히 예뻐하셨고 한국에 발령을 받아 오면 나는 같이 살았다. 외할머니를 극진히 보살폈던 고마운 이모부는 이제 반백의 머리에 주름가 득 웃고 있었다. 얼굴은 백인이지만 작은 체구에 처가식구들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 이모부는 오랜 군 생활을 거쳐 이제는 정년퇴임하고 연금생활을 한다. 돌아오는 길에 어스틴 공항까지 바래다 준 고맙기만 한 두 사람의 평화로운 여생을 빌었다. /끝
2004-03-28 10:5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