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등 불교계가 문재인 정부의 종교편향을 주장하며 대규모 승려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공직자들이 종교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더 이상 불교폄훼를 좌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계종은 21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종교편향 불교왜굑 근절과 한국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를 열었다. 이날 조계사 대웅전 앞에는 3000여개의 플라스틱 의자들이 설치됐다. 전국에서 모여든 승려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대웅전을 마주보고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았으나 '거리두기'는 잘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조계사 측은 이날 대회에 전국 주요 사찰 주지 스님들을 비롯해 약 5000명의 승려가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덕문 스님은 이날 대회에서 "정부는 지난 2007년 국립공원입장료를 일방적으로 폐지하고 문화재관람료를 남겨둠으로써 마찰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며 "국립공원 입장료를 없앤 공과를 가져갔고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는 사찰을 국민적 비난거리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는 여당의 국회의원이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사찰과 스님을 조롱하는 사태에 이르렀다"며 "'통행세'를 받는 산적 취급을 하고 '봉이 김선달'에 비유해 사기꾼 집단으로 몰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사추종장 도각 스님도 "그릇된 신앙으로 무장한 공직자들이 종교갈등, 종교전쟁을 부추기고 있는데 이대로 지켜봐야만 하겠나"라며 "우리사회에 공공연히 자행되는 종교차별, 종교편향 사례로 상처받는 불자와 국민이 더 이상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도각 스님은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취임 축복 미사를 드리고 우리 민족의 평화를 교황에 부탁하는 등 특정 종교에 치우친 행보를 해왔다"며 "대통령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 공공의 영역에 투영되어 정부와 공공기관의 사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징수를 '통행세', '봉이 김선달'에 비유한 발언으로 촉발됐다. 불교계는 정 의원에 공개 사과를 요구했으나 정 의원은 거부했다. 이후 정 의원을 비롯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송영길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사과했으나 조계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계종은 △종교편향·불교왜곡 방지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 △정 의원의 탈당이나 제명 △종교편향에 대한 대통령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다. 조계종은 이날 대회에서도 "지금 우리 사회의 공공영역에서 벌어지는 종교차별과 불교폄훼가 좌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이 땅에 종교로 인한 갈등과 대립 사라지고 종교간 화합을 정착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행 방역지침상 종교행사는 최대 299명까지만 참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조계종이 정부방역지침을 사실상 무시한 채로 대회를 강행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와 경찰은 현장에 인력을 파견해 방역지침 위반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구청 관계자들은 현장에 입회한 뒤 방역수칙 위반 여부를 내부적으로 검토해 어떤 행정처분을 내릴지를 논의할 방침이다. 정부 방역지침상 종교시설 행사는 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수용인원의 30%, 접종완료자만 참석할 시 수용인원의 70%까지 가능하다. 이번 대회를 두고 불교 내부에서도 비판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10여개 불교계 사회단체들은 지난 17일 연대 성명를 통해 "그동안 방역에 성실하게 협조해온 불교가 대규모 집합 행사를 기획하는 것은 정부 방역방침에도 어긋나며, 그간 고통을 감내해온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고 비판했다. 불교계 사회단체인 정의평화불교연대가 지난 19~20일 온라인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중간 집계를 보면 승려 918명 중 588명(64.7%)이 승려대회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찬성한다'는 응답은 294명(32.3%), 기권은 35명(4%)이었다. 한편, 정 의원은 이날 조계사를 찾아 직접 사과하려 했으나 행사장에 들어서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정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교계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참회와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노유정 기자
2022-01-21 15:33:38[파이낸셜뉴스] 대한불교조계종이 전국승려대회를 강행한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봉이 김선달’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가운데 정청래 의원을 비롯해 여당 인사들이 참여할 것으로 전해졌다. 조계종은 2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종교편향·불교왜곡 근절과 한국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를 봉행할 예정이다. 조계종에 따르면 정부의 종교편향 정책을 바로잡는 목적으로 전국승려대회에 5000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방역 지침 위반’이라는 논란과 불교계 내부에서도 승려대회 중단을 촉구하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나와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조계종은 “내부적으로 법률적 검토를 했다”며 “전국승려대회는 정규 종교활동으로, 코로나19 종교시설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여스님과 필수 진행인력은 모두 백신 접종완료자로만 구성됐다”며 “발열 체크, 마스크 상시 착용, 거리두기 등을 준수하고 청와대 등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거리 행진은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편 불교계와의 갈등 봉합을 위해 송 대표와 김영배 의원, 정청래 의원이 승려대회에 참석해 재차 사과의 뜻을 전할 예정이다. theknight@fnnews.com 정경수 기자
2022-01-21 08:48:00무더위와 장맛비가 반복되는 여름의 한복판이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는 이런 날들을 어떻게 보냈을까 싶을 정도로 여름의 위세가 대단하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여름 더위를 피하는 법에 관한 시를 몇 수 남겼다.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제목의 칠언율시 여덟 수다. 다산은 여기서 월야탁족(月夜濯足·달밤에 물에 발 담그기), 우일석운(雨日射韻·비오는 날에 시짓기), 동림청선(東林聽蟬·숲에서 매미 소리 듣기) 같은 것들을 제안했다. 다산이 여름날의 무더위를 피해 찾아낸 작은 행복들이다. 그런가 하면 '만다라'를 쓴 승려 출신 작가 김성동(1947~2022)은 '가만히 있기'를 주변에 적극 권유했다. "여름에는 동즉손(動卽損·움직이는 것이 손해)이니, 움직이지 않는 게 상책"이라면서다. 풍광 좋은 산이나 계곡으로 원족을 가는 것도 좋지만, 조용히 집에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김성동은 여름이면 하루 종일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을 읽곤 했다고 한다. 심리학자 서은국 연세대 교수에 따르면 쾌(快·행복)는 동(動)에서 비롯된다. 행복해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이런 날씨엔 잠깐 쉬어도 괜찮다. 무더위 속에서 2024 파리 올림픽이 개막했다. 더위를 잊고 즐겁게 여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으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며) 올림픽 보기'를 추천한다. 이번 올림픽은 지난 1924년에 이어 프랑스 파리에서 100년 만에 다시 열리는 대회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7일 새벽 열린 개막식은 파격과 다양성을 수용하는 이른바 '톨레랑스'를 유감없이 보여줬다는 평가다.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경기장이 아닌 야외에서 개막식을 개최하는 과감한 발상과 용기도 눈길을 끌었다. 센 강변의 노트르담대성당을 비롯해 루브르박물관, 콩코르드광장, 그랑팔레 등 유서 깊은 공간에서 펼쳐진 공연들도 볼거리가 넘쳤다. 하지만 파리에서 날아올 기분 좋은 소식은 이런 것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더위와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건 V, I, C, T, O, R, Y, 즉 승리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이 '올림픽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경기는 이겨야 제맛이다. 인간에게 중요한 건 '승리보다 노력'이 아니라 '노력해서 얻어낸 승리'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도 의미 있지만 이왕이면 잘 싸워서 이기는 게 더 낫다는 얘기다. 그것이 더 값지고 기분 좋다. 여자 핸드볼 예선 1차전에서 최약체 대한민국이 강호 독일을 23대 22로 따돌리고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의 그 짜릿함을 떠올려보라. 이제 우리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금메달은 펜싱과 양궁에서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밖에도 수영, 사격, 배드민턴, 태권도 등에서 깜짝 메달을 기대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대한체육회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금메달 목표치를 5개로 내려 잡았다. 그러면서 "종합순위 15위를 예상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20위권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선수단이 지난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역대 최소 규모로 꾸려지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이는 너무 소극적인 자세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해외에서 우리보다 더 높은 전망치를 내놓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 데이터 분석업체인 그레이스노트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금메달 9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3개로 종합순위 10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그중에서도 양궁은 남녀 단체전과 혼성 단체전을 모두 휩쓸어 금메달 3개를 수확하는 등 메달밭 노릇을 톡톡히 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 밖에 펜싱 남자 사브르와 여자 에페 단체전에서 금맥이 터지고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도 중국세를 꺾고 금메달을 딸 걸로 봤다. 또 태권도의 서건우와 스포츠클라이밍의 이도현, 역도의 박혜정도 깜짝 금메달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이들 말고도 승전보를 알릴 선수가 더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스포츠의 의외성이다. 2024년 여름을 책임질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07-28 18:09:25"일본에서 꽃피우고 있는 다도문화가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평리에 차실을 꾸리고 다완 제작을 위한 가마까지 두고 있는 다도가 최덕중씨(사진)가 울산에서 일본에 '초암다도'를 전파했다고 알려진 '설잠선사'에 관한 책자를 펴내 주목받고 있다. '천지에 다도를 전파한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선각자, 설잠선사'라는 제목으로 집필된 이 책자에는 저자가 60여년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설잠선사가 머물고 손수 심은놓은 야생 차나무 군락지 등도 소개하고 있다. 최 다도가는 30일 "설잠선사가 조선 성종 9년(1478년) 지금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자리인 염포 왜관 불일암에 있었던 일본 승려 도시모 지우카이 선사의 요청으로 초암다옥을 지어주고 초암식 다도작법을 전수했다"면서 "도시모 지우카이 선사가 일본 본국으로 돌아가 고옥다옥을 짓고 설잠선사에게 전해 받은 초암다도를 본국으로 전파해 지금의 일본 다도문화의 기초가 됐다"고 주장했다. 최 다도가는 "초암다도가 전파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차를 마시는 문화만 있을 뿐 차를 마시기 위해 숯을 피우고 차실을 꾸리는 방법 등 다도와 관련한 법도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다"면서 "설잠선사가 일본 다도의 기초를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는 설잠선사의 전파 이전까지 형식주의 서원식 다도에 그쳤다면, 이후 초암식 다도로 변화하며 소박함과 순수함을 바탕으로 응집된 정신세계 속에서 아름다움과 만족을 추구하는 정신주의 다도문화로 변화해갔다는 것이다. 경주 최부자집 집안 계보를 이어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다도를 접하게 됐다는 저자는 수십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다도와 금오다실' '다당' '다완' '찻상과 다탁' '점다' '선수행과 차생활' 등 12개 부분으로 나눠 설잠선사가 일본에 초암다도를 전파하게 된 사연과 초암다도 실체 등을 기록했다. 최 다도가는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부모와 같은 존재"라면서 "이 같은 문화유산을 찾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에 한없는 기쁨을 느낀다"는 서문도 남겼다. 최 다도가는 초암다도 발상지 울산을 널리 소개하기 위해 준비위원회를 꾸리고 오는 10월 초암다도의 발상지인 울산에서 '초암다도 작법 시연대회'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주섭 기자
2023-05-30 18:32:41[파이낸셜뉴스] "일본에서 꽃 피우고 있는 다도문화가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평리에 차실을 꾸리고 다완 제작을 위한 가마까지 두고 있는 다도가 최덕중씨(사진)가 울산에서 일본에 '초암다도'를 전파했다고 알려진 '설잠선사'에 관한 책자를 펴내 주목받고 있다. '천지에 다도를 전파한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선각자, 설잠선사'라는 제목으로 집필된 이 책자에는 저자가 60여년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설잠선사가 머물고 손수 심은놓은 야생 차나무 군락지 등도 소개하고 있다. 최 다도가는 30일 "설잠선사가 조선 성종 9년(1478년) 지금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자리인 염포 왜관 불일암에 있었던 일본 승려 도시모 지우카이 선사의 요청으로 초암다옥을 지어주고 초암식 다도작법을 전수했다"면서 "도시모 지우카이 선사가 일본 본국으로 돌아가 고옥다옥을 짓고 설잠선사에게 전해 받은 초암다도를 본국으로 전파해 지금의 일본 다도문화의 기초가 됐다"고 주장했다. 최 다도가는 "초암다도가 전파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차를 마시는 문화만 있을 뿐 차를 마시기 위해 숯을 피우고 차실을 꾸리는 방법 등 다도와 관련한 법도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다"면서 "설잠선사가 일본 다도의 기초를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는 설잠선사의 전파 이전까지 형식주의 서원식 다도에 그쳤다면, 이후 초암식 다도로 변화하며 소박함과 순수함을 바탕으로 응집된 정신세계 속에서 아름다움과 만족을 추구하는 정신주의 다도문화로 변화해갔다는 것이다. 경주 최부자집 집안 계보를 이어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다도를 접하게 됐다는 저자는 수십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다도와 금오다실' '다당' '다완' '찻상과 다탁' '점다' '선수행과 차생활' 등 12개 부분으로 나눠 설잠선사가 일본에 초암다도를 전파하게 된 사연과 초암다도 실체 등을 기록했다. 최 다도가는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부모와 같은 존재"라면서 "이같은 문화유산을 찾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에 한없는 기쁨을 느낀다"는 서문도 남겼다. 최 다도가는 초암다도 발상지 울산을 널리 소개하기 위해 준비위원회를 꾸리고 오는 10월 초암다도의 발상지인 울산에서 '초암다도 작법 시연대회'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2023-05-30 11:21:28[파이낸셜뉴스]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한 참가자가 쓰레기를 재활용해 만든 드레스를 입고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20일 비즈니스인사이더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제71회 미스 유니버스 예선 대회에 태국 대표로 참가한 안나 수에앙감이암(24)이 입고 나온 '재활용 드레스'가 이목을 끌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안나는 태국 패션브랜드 마니랏이 디자인한 '은색의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이 드레스는 알루미늄 캔 꼭지 수백개와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을 연결해 만든 것이다. 안나가 태국 패션 브랜드 마니랏에 직접 의뢰해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나는 이 드레스에 대해 "어린 시절 익숙한 환경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내 삶은 쓰레기와 재활용품 더미 사이에 있었다"고 말했다. 안나는 방콕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자랐고 주로 승려들이 먹고 남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곤 했다. 그는 "학교 등록금을 내기 위해 매 학기 헌혈을 하고 플라스틱병을 모으며 공중화장실 청소를 했다"며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쓰레기의 여왕'이라는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고유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며 "의도적으로 '음료 캔 꼭지'를 이용해 드레스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안나는 이번 대회 결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임팩트 웨이브 리더십상'을 수상했다. 사람들에게 긍정적 인식과 영감을 주는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독창성과 창의성 및 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주어진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3-01-20 07:53:19[파이낸셜뉴스] "부처님이 실언을 한 자는 몇 번을 사과해야 용서받을 수 있다고 했는지 승려들은 말해보라." 이재명측 인사로 분류되는 맛칼럼리스트 황교익씨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불교조계종이 지난 21일 대규모 승려대회를 열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제명을 요구하는데 대해 이같이 비난하며 "한국 승려들은 자비없는 부처님을 모시는가 싶어 무섭다"고 적었다. 황씨는 "정청래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그럼에도 조계종의 일부 승려는 계속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정청래는 승려가 다 모이는 자리에 나가 또 사과를 하겠다고 갔다. 승려들은 정청래를 내쫒았다"며 "일반인끼리는 실언에 대해 이 정도 사과를 하면 다 받아준다. 불교계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라고 했다. 앞서 정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해인사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로 지칭하며 '봉이 김선달'로 비유해 불교계에서 거센 반발을 샀다. 이로인해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정 의원은 지난 21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종교편향 불교왜곡 근절과 한국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를 찾아 사과를 하려 했지만 불교계 측 인사들의 거센 반발로 정 의원은 입구에서 발길을 돌렸으며 송 대표도 행사 연단에 오르지 못했다. ck7024@fnnews.com 홍창기 기자
2022-01-23 14:45:05[파이낸셜뉴스] "...(중략)...이에 승선 이세통, 내시 이당주, 어사 잡단 김기신, 사천감 김자기, 태사령 허자단 등 모든 호종(扈從)한 문관(文官) 및 대소신료(大小臣僚) 환시(宦寺)가 모두 해(害)를 만나매, 쌓인 시체가 산(山)과 같았다. 처음에 정중부, 이의방 등이 약속하기를 우리들은 오른 소매를 빼고 복두(頭)를 벗을 것이니 그렇지 않은 자는 다 죽여라라고 하였으므로 무인(武人)으로서 복두를 벗지 않은 자 또한 많이 피살(被殺)되었다. 왕이 크게 두려워하여 그 뜻을 위로하고자 제장(諸將)에게 칼을 하사하니, 무신(武臣)들이 더욱 교만해져서 횡포하였다 " -고려사절요 中 10세기 이후 '문치주의'(文治主義)를 근간으로 하는 고려 사회를 뿌리채 뒤흔드는 정변이 발생했다. 당시 정3품 상장군(上將軍)인 정중부와 견룡행수(牽龍行首) 이의방, 이고 등을 중심으로 한 무신들이 조정의 문무(文武) 요직을 장악하고 경제력마저 독점하고 있던 문신들을 왕 앞에서 대거 척살(刺殺)했다. 그동안 중앙정치 무대에서 소외되고 문신들의 등쌀에 온갖 수모를 당했던 무신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정변을 단행한 것이다. 무신정변 이후 고려 사회는 100년에 이르는 엄혹한 '무신집권기'에 들어갔다. 정제되지 못하고 거칠었던 무신 세력들은 힘으로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 했고 왕권을 유린(蹂躪)했으며 상호 간 치열한 권력 투쟁을 벌이기 일쑤였다. 이에 따라 무신집권기 동안 왕은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최고 권력자는 계속 바뀌면서 고려 사회는 좀처럼 혼란의 도가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문신들의 씨를 말리며 고려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었던 '무신정변' 전말을 되돌아봤다. ■고려 사회의 문치주의 태조 왕건(王建)이 고려를 건국 할 때 그 주변에는 건국에 일조한 수많은 무신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른바 '공신'(功臣) 세력을 형성해 갓 태어난 고려 왕조의 중심에 위치했다. 심지어 2대 왕 혜종(惠宗)과 3대 왕 정종(定宗) 교체기에 무신들이 대거 동원돼 정치적 변화를 주도하며 그 영향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러나 4대 왕인 광종(光宗) 대에 이르러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광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비대해진 무신들의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해, 중앙정치 무대에서 무신들을 배제하고 문신들을 대거 등용하거나 요직에 앉혔다. 문신들의 대표적인 정계진출 통로인 '과거제'(科擧制)도 이 때 처음 시행됐다. 이로써 '문치주의'(文治主義)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후 조정에서 문신들은 비단 자신들 본연의 영역에만 있는 것이 아닌 무신들의 영역도 잠식(蠶食)했다. 고려 시대 군사를 맡아보던 관청인 병부(兵符)의 고위직도 문신들이 차지했다. 기실 외침이나 내란을 평정하면서 유명해진 강감찬, 윤관, 서희 등도 모두 무신이 아닌 문신들이었다. 문무의 양권을 손에 쥔 문신들은 경제력도 독점해나갔다. 문신들은 대외 무역 등을 통해 부를 계속 축적했고, 심지어 백성들의 토지를 마음대로 갈취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토지를 빼앗겨 '유리걸식'(流離乞食)하는 백성들이 급격히 증가했다. ■무신들의 수모와 거사 모의 문신들의 전성기는 무신들에게는 '재앙'(災殃)과도 같았다. 우선 문무를 넘나들며 요직을 꿰찼던 문신들과 달리 무신들은 정2품 이상의 관직은 감히 넘볼 수도 없었다. 정3품 상장군이 무신들이 올라갈 수 있었던 관직의 최대치였다. 더욱이 과거제인 문과(文科)를 통해 정식으로 등용되는 문신들과 달리 무신들은 이와 비슷한 무과(武科)도 없어 태생적인 한계를 노정(露呈)할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왕이 궁궐 밖으로 나가 문신들과 연회를 할 때, 무신들은 여기에 결코 참여하지 못했고 그저 호위병의 역할만 수행해야 했다. 그나마 최고 관직이었던 상장군도 이 역할에 그쳤다. 특히, 당시 고려의 18대 왕이었던 의종(毅宗)은 주색(酒色)을 밝혀 시도 때도 없이 연회를 열며 무신들을 호위병으로 부렸다. 상황이 이렇자 당시 무신들과 그들의 중심 인물이었던 상장군 정중부, 견룡행수(牽龍行首) 이의방, 이고 등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결국 이들은 거사를 모의하기에 이른다. 1170년 4월, 의종이 화평재(和平齋)로 행차했을 때 경치 좋은 곳에 다다르자 문신들과 또 다시 연회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 때도 무신들은 상장군부터 일개 병사 할 것 없이 호위병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정중부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이의방과 이고는 뒤쫓아가 정중부에게 거사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피력했다. 문신들은 밤새 마시고 배불리 먹고 있는데, 무신들은 굶주리고 피곤한 세월이 계속되고 있으니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중부도 이 주장에 적지 않게 공감했다. 정중부 본인도 이전에 문신인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으로부터 수염이 촛불로 태워지는 수모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중부는 일단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숙고(熟考)하자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무신정변 화평재 행차 이후에도 의종의 사치스러운 연회는 자주 열렸고, 문신들의 오만함과 무신들의 수모는 계속됐다. 이전과 비교해 상황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의종의 총애에 기대 함부로 나대는 환관 한뢰와 임종식 등의 '안하무인'(眼下無人)적인 행태는 더욱 심화됐다. 결국, 1170년 8월에 정중부는 이의방, 이고 등을 불러 거사를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거사 당일 의종은 개경의 덕적산 남쪽에 있는 흥왕사(興王寺)로 행차했다. 정중부와 이의방 등은 의종이 흥왕사에서 궁궐로 바로 환궁한다면 일단 거사를 미루겠지만, 만약 보현원(普賢院)으로 이동한다면 그 곳에서 거사를 단행하기로 합의했다. 고려의 운명의 여신은 후자를 택했다. 의종은 보현원으로 이동하기로 했고, 오문(五門) 앞에 이르러 갑자기 무신들로 하여금 '오병수박희'(五兵手搏戱)를 하라고 명했다. 오병수박희는 무신들 간에 무예를 겨루는 대회였다. 물론 문신들은 의종과 함께 술을 마시며 이를 즐겁게 관전할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해야 할까. 바로 이 자리에서 사실상 무신정변의 직접적인 도화선(導火線)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대장군이었던 이소응이 오병수박희에 참가했는데, 이소응이 대회 도중 힘에 부쳐 뒤돌아섰을 때 환관인 한뢰가 그 앞에 나와 패기가 없다며 노장군의 뺨을 후려쳤다. 물리적인 충격으로 이소응은 섬돌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자 의종과 문신들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임계점(臨界點)을 넘어선 무신들은 당장이라도 칼을 뽑으려고 했지만, 정중부는 일단 눈짓으로 말리고 한뢰 앞으로 가서 "정3품 벼슬인 이소응에게 너 같은 사람이 모욕을 주느냐"며 크게 꾸짖었다. 이에 놀란 의종이 직접 정중부를 진정시키며 오병수박희에서의 상황은 종료됐다. 하지만, 이제 주사위는 던져 진 셈이었다. 저녁 무렵 의종이 보현원에 이르자 마침내 이의방과 이고는 행동에 들어갔다. 그들은 우선 왕명이라고 기만하며 순검군(巡檢軍)을 집합시켰다. 의종이 보현원 내부로 들어간 후 나머지 신료들이 각자의 처소로 물러나려 할 때, 순검군을 동원한 이의방과 이고는 그 자리에서 임종식과 이복기 등 신료들을 대거 척살했다. 이를 본 한뢰는 곧바로 보현원 내부의 의종에게 달려가 왕의 침상 아래로 숨었다. 의종이 보현원 내부로 진입한 무신들을 막으려 했지만, 무신들은 한뢰를 내놓을 것을 의종에게 요구했다. 의종의 용포(龍袍)를 잡고 버티던 한뢰는 이고가 휘두른 칼에 즉사했다. 이에 의종 곁에 있던 문신들이 감히 왕 앞에서 무력을 행사한다며 책망하자, 더욱 격분한 무신들은 "문신의 관(冠)을 쓴 자는 비록 서리(胥吏)일지라도 씨를 남기지 말라"고 외치며 의종 곁에 있던 문신들을 모조리 척살했다. 보현원에서의 거사가 성공하자 이의방, 이고 등은 곧바로 개경으로 쳐들어갔다. 무신들은 죄인 등을 다스리는 관청인 가구소(街衢所)에 있던 별감(別監) 김수장을 죽였고, 궁궐에 있던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양순정, 판이부사(判吏部事) 허홍재를 비롯해 수많은 관료들을 척살했다. 뒤이어 의종과 태자를 폐위했고 의종의 둘째 동생인 익양공(翼陽公) 호(晧)를 즉위시켰는데, 이가 바로 고려의 제19대 왕인 명종(明宗)이다. 이로써 정중부와 이의방, 이고 등이 중심이 된 무신정변은 성공했고, 약 100년에 이르는 엄혹한 무신집권기가 시작됐다. ■100년 무신집권기 무신들이 권력을 잡은 후 왕정(王政)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반(反) 무신 항쟁이 일어났다. 1173년에 동북면병마사 김보당과 그 이듬해에 서경유수 조위총이 일으킨 항쟁이 그것이다. 또한 사찰 승려들이 무신정권에 대항해 항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항쟁들은 이의방의 부하인 이의민 등의 활약으로 진압됐다. 100년에 이르는 무신집권기의 특징은 왕권의 '유명무실'(有名無實)과 집권한 무신이 중방(최고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도방(경대승이 설치한 사병집단이자 숙위기관), 교정도감(최충헌이 설치한 최고 권력 기구), 정방(최우가 설치한 인사담당 기관) 등과 같은 기구를 통해 모든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최고 권력자들이 자주 교체됐다. 무신집권기 초반의 최고 권력자는 정변 당시 견룡행수였던 이의방이다. (참고로 이의방의 동생인 이린은 조선의 건국자인 태조 이성계의 6대 조였다.) 이의방은 정변 동지였던 이고 등을 죽이고 정중부를 밀어낸 후 권력을 장악했다. 이의방은 자신의 딸을 명종에게 시집 보내는 등 국정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하지만 정중부의 아들인 정균의 계략에 걸려들어 피살됐고, 이후 정중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이의방 시대와 다를 바 없이 정중부 시대에도 정중부 자신과 그 아들들의 국정 농단 등이 횡행했다. 이에 청년 장군이었던 경대승이 등장해 정중부와 정균 등을 기습해 척살한 후 권력을 잡았다. 다만, 경대승의 경우는 이의방, 정중부와 달랐다. 경대승의 거사 이유는 왕권을 유린한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을 제거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권력을 잡은 후 경대승은 왕권을 어느 정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의종을 죽인 이의민을 끝까지 찾아내 척결하려는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경대승 역시 신변의 위협을 느꼈고, 끝내 젊은 나이에 요절(夭折)했다. 경대승이 죽자 이번에는 변방에서 숨죽이고 있던 이의민이 나타나 권력을 장악했다. 이의민 역시 자신의 상관이었던 이의방처럼 '전횡'(專橫)을 일삼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의민과 그 아들들의 전횡을 참지 못한 최충헌, 최충수가 거사를 일으켰고, 이의민 등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최충헌은 이전 권력자들과 달리 무려 4대(최충헌-최우-최항-최의) 62년(1196년~1258년)에 걸쳐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른바 '최씨 무신정권'의 시대를 연 것이다. 최충헌은 비단 무신 뿐만 아니라 문신들도 고루 등용해 자신의 세력 기반을 공고히 했다. 또한 명종과 희종(熙宗) 등 왕을 마음대로 '폐립'(廢立)하기도 했다. 최충헌의 뒤를 이은 아들 최우 등은 강화도에서 대몽(對蒙) 항쟁을 주도했다. 최씨 무신정권은 최의 대에 이르러 종말을 고했고, 이후 김준과 임연, 임유무 부자가 잇따라 권력을 잡았다. 임유무는 대몽 항쟁 당시 친몽파인 원종(元宗)이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다 원종에 의해 제거됐다. 임유무를 끝으로 비로소 길고 엄혹했던 무신집권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고, 1270년 드디어 왕정이 복고됐다. kschoi@fnnews.com 최경식 기자
2021-06-19 01:19:02【 천안(충남)=정대균 기자】 골프 선수라면 누구나 출전하고픈 대회가 있다. 세계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메이저 대회 중의 메이저 대회 디오픈이다. 관록의 황인춘(45)이 투어 데뷔 17년만에 마침내 그 꿈의 무대를 밟게 됐다. 황인춘은 23일 충남 천안시 우정힐스CC(파71·7328야드)에서 열린 코오롱 제62회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총상금 12억원)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보기 2개에 버디 3개를 잡아 1언더파 70타를 쳤다.최종합계 5언더파 279타를 기록한 황인춘은 1타가 모자라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쳤다. 우승은 재즈 제인와타나논(태국)이 차지했다. 태국 선수가 이 대회서 우승한 것은 2000년 통차이 자이디 이후 19년, 외국인 선수 우승은 2011년 리키 파울러(미국) 이후 11년만이다. 이번 대회 우승자와 준우승자에게는 디오픈 출전권이 주어진다. 우승자와 준우승자가 디오픈 출전권이 있는 경우는 차순위자가 출전 기회를 갖는다.전반 9홀을 마쳤을 때만 해도 대회는 제인와타나논의 우승으로 싱겁게 끝날 듯 했다. 2위권과의 타수차가 4타가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인와타나논이 11번홀(파4)에서 통한의 트리플보기를 범하면서 우승 향배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오리무중으로 빠졌다. 앞조에서 경기를 펼친 2위 황인춘과의 타수차가 1타차로 좁혀졌기 때문이다.황인춘으로서는 13번홀(파3)에서 1m 가량의 파퍼트를 놓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제인와타나논이 14번홀(파4)에서 1타를 더 잃었기 때문이다. 제인와타나논은 승부처인 '실코스' 첫번째홀인 16번홀(파3)에서 위기를 맞았다. 두 번째 어프로치샷이 홀을 3m 가량 지나친 것. 하지만 파퍼트를 성공시키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후 나머지 2개홀에서 파를 잡아 1타차 우승을 확정지었다. 황인춘은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버디 퍼트가 홀을 살짝 벗어나는 바람에 분루를 삼켰다. 아시안투어 최연소 나이(만14세 3개월)로 프로에 데뷔한 제인와타나논은 2016년 말에는 승려 생활을 한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름에 재즈가 붙은 것은 재즈를 좋아하는 아버지 때문이다. 현재 세계랭킹은 62위로 이번 대회에 출전한 선수 중에서 가장 높다. 이번 우승으로 아시안투어 최연소(23세6개월7일) 4승을 기록한 제인와타나논은 상금 순위 1위로 올라섰다.재미동포 김찬(29)이 단독 3위(최종합계 4언더파 280타)에 입상한 가운데 김민준(29)과 장동규(31)가 공동 4위(최종합계 3언더파 281타)에 입상했다. 김찬이 올 디오픈 출전권이 있어 세계랭킹 고순위에 따라 359위의 장동규가 출전 기회를 잡았다. 장동규는 18번홀서 3m 가량의 파퍼트를 성공시켜 생애 두 번째로 꿈의 무대에 출전하게 됐다. 장동규는 일본프로골프(JGTO)투어 미즈노오픈 우승자격으로 2014년 대회에 출전한 바 있다.황인춘은 "우승은 못했으나 준우승으로 디오픈에 출전하게 돼 기쁘다. 나이가 많은 프로들이 나를 보고 꿈을 가졌으면 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이어 "디오픈은 예선 통과가 목표다. 하지만 유럽이 처음이다. 시합도 시합이지만 분위기를 즐기고 놀다올 생각이다"고 말했다.장동규는 "2014년 대회에 출전했는데 그린, 바람, 코스 세팅 등 너무나 다른 골프였다"면서 "전에는 잘치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그래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 준비 잘해서 즐기다 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golf@fnnews.com
2019-06-23 20:34:07【 천안(충남)=정대균골프전문기자】골프 선수라면 누구나 출전하고픈 대회가 있다. 세계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메이저 대회 중의 메이저 대회 디오픈이다. 관록의 황인춘(45)이 투어 데뷔 17년만에 마침내 그 꿈의 무대를 밟게 됐다. 황인춘은 23일 충남 천안시 우정힐스CC(파71·7328야드)에서 열린 코오롱 제62회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총상금 12억원)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보기 2개에 버디 3개를 잡아 1언더파 70타를 쳤다. 최종합계 5언더파 279타를 기록한 황인춘은 1타가 모자라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쳤다. 우승은 재즈 제인와타나논(태국)이 차지했다. 태국 선수가 이 대회서 우승한 것은 2000년 통차이 자이디 이후 19년, 외국인 선수 우승은 2011년 리키 파울러(미국) 이후 11년만이다. 이번 대회 우승자와 준우승자에게는 디오픈 출전권이 주어진다. 우승자와 준우승자가 디오픈 출전권이 있는 경우는 차순위자가 출전 기회를 갖는다. 전반 9홀을 마쳤을 때만 해도 대회는 제인와타나논의 우승으로 싱겁게 끝날 듯 했다. 2위권과의 타수차가 4타가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인와타나논이 11번홀(파4)에서 통한의 트리플보기를 범하면서 우승 향배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오리무중으로 빠졌다. 앞조에서 경기를 펼친 2위 황인춘과의 타수차가 1타차로 좁혀졌기 때문이다. 황인춘으로서는 13번홀(파3)에서 1m 가량의 파퍼트를 놓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제인와타나논이 14번홀(파4)에서 1타를 더 잃었기 때문이다. 제인와타나논은 승부처인 '실코스' 첫번째홀인 16번홀(파3)에서 위기를 맞았다. 두 번째 어프로치샷이 홀을 3m 가량 지나친 것. 하지만 파퍼트를 성공시키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후 나머지 2개홀에서 파를 잡아 1타차 우승을 확정지었다. 황인춘은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버디 퍼트가 홀을 살짝 벗어나는 바람에 분루를 삼켰다. 아시안투어 최연소 나이(만14세 3개월)로 프로에 데뷔한 제인와타나논은 2016년 말에는 승려 생활을 한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름에 재즈가 붙은 것은 재즈를 좋아하는 아버지 때문이다. 현재 세계랭킹은 62위로 이번 대회에 출전한 선수 중에서 가장 높다. 이번 우승으로 아시안투어 최연소(23세6개월7일) 4승을 기록한 제인와타나논은 상금 순위 1위로 올라섰다. 재미동포 김찬(29)이 단독 3위(최종합계 4언더파 280타)에 입상한 가운데 김민준(29)과 장동규(31)가 공동 4위(최종합계 3언더파 281타)에 입상했다. 김찬이 올 디오픈 출전권이 있어 세계랭킹 고순위에 따라 359위의 장동규가 출전 기회를 잡았다. 장동규는 18번홀서 3m 가량의 파퍼트를 성공시켜 생애 두 번째로 꿈의 무대에 출전하게 됐다. 장동규는 일본프로골프(JGTO)투어 미즈노오픈 우승자격으로 2014년 대회에 출전한 바 있다. 황인춘은 "우승은 못했으나 준우승으로 디오픈에 출전하게 돼 기쁘다. 나이가 많은 프로들이 나를 보고 꿈을 가졌으면 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이어 "디오픈은 예선 통과가 목표다. 하지만 유럽이 처음이다. 시합도 시합이지만 분위기를 즐기고 놀다올 생각이다"고 말했다. 장동규는 "2014년 대회에 출전했는데 그린, 바람, 코스 세팅 등 너무나 다른 골프였다"면서 "전에는 잘치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그래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 준비 잘해서 즐기다 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2019-06-23 17: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