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쓰레기 봉투로 몸을 감싼 사진에 '늙으면 버려지는 것도 삶의 일부'라거나 벚꽃 만개한 나무를 보는 사진에 '내년에도 벚꽃을 볼 수 있을까'라는 농담 섞인 설명을 붙이면서 '늙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사진에 담아내며 '셀카 할머니'로 불린 일본의 사진작가 니시모토 키미코가 97세 일기로 별세했다. 1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독특하고 유쾌한 셀카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며 화제를 모은 니시모토가 지난 9일 담관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1928년 브라질에서 태어난 니시모토는 8살 때 일본으로 이주해 젊은 시절 미용사로 일하고 자전거 선수로도 활동했다. 27세에 결혼해 세 자녀를 키울 때도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SCMP는 니시모토가 72세라는 늦은 나이에 아트 디렉터인 아들에게 사진을 배우면서 ‘셀카’의 매력에 빠진 뒤 사진 편집을 독학했고 이후 자신의 사진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능력을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쓰레기 봉투에 담겨 있거나 전기 휠체어를 타고 자동차를 쫓는 모습 등 '나이듦'에 대해 익살스럽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사진이 알려지면서 2011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2016년 첫 사진집도 출간했다. 2018년부터 SNS에 사진을 올리면서 '셀카 할머니'라는 애칭과 함께 40만명이 넘는 팔로워도 확보했다. 그는 지난 5월 SNS에 나뭇잎을 입에 문 장난스러운 사진을 올리고 당분간 병원에 머물 예정이라고 전했고 지난 5일 벚꽃 사진과 함께 “내년에도 다시 벚꽃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글을 남겼다. 이 사진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나흘 뒤 그녀의 큰아들은 니시모토의 인스타에 그녀가 암으로 사망했다고 알렸다. 그는 "어머니는 72세에 예술 여정을 시작하셨고 많은 분들의 지지를 받으며 인생의 마지막 장까지 풍요롭고 보람차게 이어갔다"고 적었다. 전 세계 팬들은 그의 인스타를 찾아 애도의 메시지를 올렸다. "당신의 작품은 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하늘나라에도 벚꽃이 만발하길 바란다", "할머니의 유산은 우리가 나이 드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우아하고 유머러스하며 즐겁게 살아가도록 계속해서 영감을 줄 것이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늦은 건 없다고 말해주셔서 감사하다”, “늘 긍정적인 자세와 멋진 미소에 힘을 얻었다” 등 애도의 글을 남겼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2025-06-15 11:30:41[파이낸셜뉴스] 지난 27일 대선 후보들의 마지막 TV 토론회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욕설을 언급해 정계 안팎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비뚤어진 성의식을 마주했을 때 국민 앞에서 책임 있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재차 날을 세웠다. 이준석 "인터넷상에 누군가 했던 말" 이재명 아들 직격 이 후보는 28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저는 어제 TV토론에서 평소 성차별이나 혐오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혀오신 두 후보(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인터넷상에서 누군가가 했던 믿기 어려운 수준의 발언에 대해 입장을 구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공공의 방송인 점을 감안해 원래의 표현을 최대한 정제해 언급했음에도, 두 후보는 해당 사안에 대한 평가를 피하거나 답변을 유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범죄에 해당하는 비뚤어진 성의식을 마주했을 때 지위고하나 멀고 가까운 관계를 떠나 지도자가 읍참마속의 자세로 단호한 평가를 내릴 수 있어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다”면서 “이 장면을 통해 저는 다시금, 혐오나 갈라치기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면서도 정작 본인의 진영 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민주진보진영의 위선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왜곡된 성의식에 대해서 추상같은 판단을 하지 못하는 후보들은 자격이 없다고 확신한다”면서 지난 19대 대선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언급한 ‘돼지발정제’ 발언에 대해 공식 사과한 사실을 예로 들었다. 이어 “지도자의 자세란 그와 같이 불편하더라도 국민 앞에서 책임 있는 입장을 밝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토론을 빙자한 끔찍한 언어폭력" 이 후보는 전날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3차 TV 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의 아들이 온라인에서 한 욕설’이라고 주장하는 발언을 언급했다. 이 후보는 권영국 민노당 후보에게 이같은 발언을 전하며 “민노당 기준으로 어떤 사람이 이런 발언을 하면 여성 혐오에 해당하나”라고 질문했다. 이에 권 후보가 답변을 거부하자 이 후보는 “민노당은 성폭력적인 발언에 대한 기준이 없느냐”고 되물었다. 또 이재명 후보에게도 “동의하시냐”고 물었고, 이재명 후보는 “시간과 규칙을 지키면서 질문하시라”고 맞받았다. 방송 직후 권 후보는 입장문을 내고 “처음 들어보는,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 이런 자리에서 나올 줄 몰랐다”면서 이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신민기 민주노동당 부대변인도 논평에서 “정치 통합을 이야기하는 토론회에서 가장 저열한 형태의 혐오정치를 일삼은 이 후보는 대통령 선거에 임할 자격이 없다”고 맹비난했고,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이 후보의 발언을 “입에 담을 수 없는 폭력적 표현”으로 규정하고 “토론을 빙자한 끔찍한 언어 폭력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2025-05-28 07:56:28[파이낸셜뉴스] 필자는 ‘열린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똑똑하고 법리에 밝은 법조인이라도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막은 채 선입견이나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면 판사든 검사든 변호사든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 생각은 판사로 근무할 때나 변호사로 활동하는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다음은 균형감각이라고 생각한다. 균형감각은 사안을 입체적으로 보면서 어느 한쪽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인데 이러한 능력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일, 가정생활과 휴식을 조화롭게 설계할 때도 필요하다. 실무로 많은 사건을 접하면서 가장 쉽게 빠지게 되는 유혹이 바로 선입견의 유혹이다. 세상의 모든 사건에는 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그러나 법조인으로 오래 생활하다 보면 비슷한 사건을 많이 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편하고 익숙한 선입견, 즉 ‘이런 사건은 내가 많이 해봤는데 이런 거야’라는 식의 유혹에 빠질 때가 많다. 특히 법관의 경우에는 선입견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법관은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올바르지 못한 판단을 했을 때 그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법관은 소송당사자나 변호사보다 사실관계 파악에 있어 부족하거나 더딜 수밖에 없다. 판사와 변호사 모두 해본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판사가 변호사보다 핸들링하는 사건 수가 훨씬 많기 때문에 특정 사건의 구체적 사실관계와 전후 맥락을 변호사나 소송당사자 보다 자세히 파악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법관으로 많은 수의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그 사건이 그 사건 같아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결론을 쉽게 도출하는 경향성이 생기고 그 경향성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만의 기준이 생긴다. 이 기준은 좋게 말하면 노련함으로 포장될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선입견일 수 있다. 따라서 판사는 어떤 사안을 맞닥뜨리더라도 항상 그 사안을 백지 상태에서 보고 그 사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선입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어야 한다. 필자 역시 가정법원에 오래 근무하면서 결론 내리기 정말 어려운 사건들을 많이 처리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나의 선입견 내지 나만의 기준을 섣불리 적용한 적은 없었는가 반성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가정법원에서 처리하는 사건 중 재산분할 사건이 복잡하고 어렵지 않냐고 묻는다. 그러나 재산분할보다는 양육권에 관하여 치열한 다툼이 있는 사건들이 훨씬 어렵다. 양육권에 관하여 다툼이 있는 사건은 일반적으로 부부 양쪽이 서로 양육권을 가지겠다고 다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드물게는 서로 아이를 양육하지 않겠다는 경우도 있다. 보통 양육권에 대하여 다툼 있는 대부분의 사건에서 이혼 당사자 양쪽은 아이의 양육을 원하면서 재판부에 자신이 양육자로 적합하다는 것을 피력하기 위해 엄청난 자료를 제출한다. 양육자를 정할 때는, 미성년인 자녀의 성별과 연령, 그에 대한 부모의 애정과 양육 의사의 유무는 물론,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능력의 유무, 부와 모가 제공하려는 양육 방식의 내용과 합리성⋅적합성 및 상호 간의 조화 가능성, 부 또는 모와 미성년인 자녀 사이의 친밀도, 미성년인 자녀의 의사 등의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미성년인 자녀의 성장과 복지에 가장 도움이 되고 적합한 방향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요소를 고려했을 때도 부모 양쪽이 대등한 양육적합성을 가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약 이혼 이후에도 양쪽이 자녀 양육을 위해 협조할 수 있다면 공동 양육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혼 이후 부부가 자녀를 공동 양육하기 위해 동거하거나 전 배우자 근처에 살면서 양육을 보조하는 상황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자녀가 둘 이상인 경우 ‘분리양육’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분리양육은 이혼 후 부부 일방이 자녀 중 일부를 양육하고 다른 일방이 다른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아들 1명, 딸 1명을 두고 있는 부부가 이혼하면서 부가 아들을, 모가 딸을 양육하는 방식이다. 분리양육은 이혼 후 부부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까지도 정서적으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가정법원에서 배제하고 있는 양육방식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치명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해당 가정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분리양육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자녀가 비양육자가 될 부 또는 모 내지 그 부모(아이 입장에서는 조부모)와 매우 특별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때, 자녀 중 일부가 특수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데 부모 중 일방이 그러한 치료를 보조하기 좋은 상황일 때, 자녀들이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할 만큼 극도의 대립 관계에 놓여 있는데 부모 일방이 아이들을 모두 양육하면서 이를 조율하기 어려운 경우 등 단독양육으로 인한 불이익이 분리양육으로 인한 불이익이 보다 현저히 큰 경우에는 분리양육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자녀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인 경우 각자의 학교 생활 내지 학원 스케쥴로 인하여 평일에 형제자매끼리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분리양육을 하면서 자녀들이 한주는 아빠 집, 한주는 엄마 집에서 다 같이 모인다면 결국 자녀들은 매주말마다 만날 수 있게 되어 분리양육으로 인해 야기되는 자녀들 사이의 정서적 유대감 약화는 생각보다 덜 할 수도 있다. 단독양육의 경우에도 자녀들은 비양육자를 면접교섭하기 위해 주거지에서 2주에 한번씩 외출하여야 하는데 분리양육되는 자녀들 역시 2주에 한번씩만 이동하면 되므로 물리적인 이동의 불편도 생각보다 크지 않다. 필자는 17년간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민사재판 4년, 형사재판 4년, 미국 로스쿨 연수 1년을 제외한 나머지 8년 동안 가사 사건을 전담했었다. 당시 이혼, 상속, 소년심판, 가정폭력, 아동폭력, 후견사건 뿐만 아니라 유언검인, 한정승인, 부재자재산관리, 친권제한, 개명 등 가정법원에서 다루는 모든 사건들을 처리한 경험이 있는데,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으니 필자 역시 가정법원에서 다루는 사건에 대해 나름 ‘풍월을 읊는 것’ 이상의 전문성은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가정법원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면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소년 사건에 연루되거나, 양육자 또는 계부·계모로부터 학대당하는 사건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혼 후 아이들이 어떤 진통을 거치는지 그리고 그들의 양육 환경이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비교적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분리양육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데이터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어떤 자리에서 가사 사건에 대해 그다지 경험이 많지 않은 다른 법조인으로부터 “양육권을 정함에 있어 분리양육은 절대(never ever)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많아졌다. 분리양육이 원칙적인 양육방식으로서는 지양되어야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불가능한, 존재해서는 안되는 양육 방식은 아닐 터인데 어떤 사유에서인지 자신만의 확고한 원칙을 세운 후 이를 관철하려는 태도를 보여 서두에서 언급한 법조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필자가 언급한 ‘법조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2가지’ 중 균형감각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역량이지만 열린 마음을 유지하는 자세는 노력만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쉽게 견지할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도 다시 한번 자신이 어떤 선입견에 사로잡혀 사안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기를 바라며(물론 필자도 매일매일 되돌아볼 것이다) 이 글을 마친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2025-05-01 14:39:54[파이낸셜뉴스] 생후 5개월 딸이 네발 기기를 하기 전 단계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모습을 보고 남편이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쓴 A씨는 이혼한 남편과의 충격적 일화를 공유했다. A씨는 "아이가 생후 5~6개월쯤 기고 앉기 위해서 허리 힘을 키우려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자세를 자주 취했다"고 말했다. A씨의 딸이 취한 자세는 이른바 '동생 보는 자세'로 알려져 있으며, 푸쉬업을 하는 자세와 비슷하다. 양손과 발을 땅에 붙이고 허리를 들고 있는 자세다. 아기가 이 같은 자세를 할 때 즈음에는 엄마 몸이 많이 회복이 되어서 다시 임신이 가능한 시기라고 알려지며 옛날부터 속설로 전해지고 있는 말이다. A씨는 "남편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우리 ○○이 나중에 XX 잘하겠네'라고 했다"며 그는 "순간 남편이 미쳤나 싶어 '말 가려서 해라. 겨우 몇 개월 된 애한테 무슨 소리냐, 제정신이냐?'고 다그쳤다"고 전했다. 그러자 당시 남편은 "어차피 애가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뭐 어때"라고 받아쳤다며 분노했다. A씨는 현재 남편과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리꾼들은 "이혼해서 다행이다", "자기 딸 보고 저런 소리가 나오나?", "나였으면 바로 경찰에 신고한다", "인간도 아니다. 짐승만도 못하네", "법원에 접근 금지하고 면접권 박탈해라", "아이 대상으로 저런 말을 한 것만으로도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못 알아들어도 애 앞에서는 욕도 안 하게 되던데 아빠란 인간이 참"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과거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돌')에 출연한 배우 이필모의 아들 도호가 '동생 보는 자세'를 취해 모두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이날 도호는 엉덩이를 올리고 다리 사이로 쳐다보는 자세를 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도호가 흔히 '동생 보는 자세'라고 알려진 자세를 취한 것. 스튜디오에서 이를 지켜보던 소유진은 "셋째 보는 거냐"라고 깜짝 놀랐고, 이에 서수연은 "그냥 개인기로 봐달라"라며 웃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2-07 17:36:33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첫번째 입국 거절사태에 하마터면 못 올뻔한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부다페스트 외곽에 있는 저렴한 공유숙소였다. 한국이라면 절대 실내에서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강렬한 빨강, 초록의 페인트 벽에 소품하나하나에 주인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 멋진 집이었다. 마트에서 장봐온 식재료로 고기볶음밥도 해먹고 국경에서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편히 쉴 수 있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는 서른살 즈음에 한번 여행온 이후 처음인데 도나우강가의 풍경이 그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넓은 강을 따라 멋있는 유럽풍의 건물들과 다리를 볼 수 있어 아파트만 즐비하게 보이는 한강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도나우강가에 눈에 띄는 국회의사당 건물은 갈색 돔 지붕과 첨탑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매우 유니크한 랜드마크이다. 밤에는 아름다운 조명으로 더욱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매일 유럽풍의 건물들을 보는 헝가리 사람의 경우 우리나라 서울에 온다면 높이 솟은 아파트들을 보며 이국적이라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사람들은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부다페스트에서 구글지도에서 찾은 장소 몇군데를 방문하려 했는데 역시 도시에서는 주차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시내에 오니 사람구경도 하고 좋았다. 부다페스트는 많이 붐비지도 않고 적당히 사람들이 다니는 모습이 활기차 보였다. 거리의 건물에 장식이 참 예쁘다. 창문이며 문입구에 아름다운 조각을 흔히 볼 수 있다. 유럽은 유럽이네. 스탄국가와는 너무도 다른 풍경들이 차창을 스치고 지나간다. 부다페스트를 떠나기전 마지막 식사로 "Sinamon"이란 식당을 찾았다. 헝가리식 아침식사가 맛있다며 한국 유튜버가 추천한 곳이라 매우 기대가 크다. 내부는 테이블 대여섯개의 작은 식당인데 라탄그네의자가 매우 탐이났지만 이미 다른 손님들이 차지하고 있어 우리는 그냥 일반 테이블에 앉았다. 영어메뉴가 있어 다행이다. 우리가 아는 메뉴들이 여럿 보인다. 오믈렛도 있고 에그베네딕트도 있고 메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나는 벼르던 헝가리안 아침식사를 주문했다. 납작하게 자른 큰 빵위에 베이컨과 사우어크림 등이 올려져있고 각종 신선한 야채들이 곁들여 나와 매우 맛있고 건강한 한끼식사가 되었다. 탄이는 잉글리쉬 브랙퍼스트를 시켰는데 계란후라이에, 베이컨, 소세지, 구운 토마토, 버섯등 야채와 통조림 콩이 있었다. 나는 새로운 메뉴를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탄이는 식당에서 주문할때만큼은 안전하게 아는 것을 선택하는 편인것 같다. 음식은 둘다 매우 맛있어 역시 부다페스트 맛집임을 인정하고 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폴란드 바르샤바이다. 바르샤바에 사는 안야(Ania)의 초대를 받고 가는 길이다. 안야는 2017년 우리가 이탈리아 여행을 할때 시칠리아의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만난 친구이다. 주인인 엔리코의 여자친구로 놀러왔다고 했는데 그녀의 아들이 한국과 북한에 흥미가 많다고 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었다. 한글로 아들이름을 써달라고해서 써주니 사진을 찍어 아들에게 보여주겠다고 하며 좋아했었는데 그때의 인연이 페이스북을 통해 계속 이어지다가 이번 여행에 우리가 폴란드를 지나간다고 하니 감사하게도 집으로 초대해주었다. 부다페스트에서 바르샤바까지 차로 10시간 거리, 북쪽으로 길을 떠난다. 하늘에 구름이 장관이었는데 어느새 눈발이 날린다. 눈발은 점점 굵어져 앞이 잘 안보일 정도의 폭설이 되었다. 차에서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가는 것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인 듯 하다. 다행히 까브리에는 윈터타이어가 장착되어 문제 없다. 그래도 안전하게 조심조심 운전을 한다. 한참을 가다보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이 그치고 파란 하늘이 나오며 맑아진다. 장거리 운전을 하면 하루에도 극적인 날씨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조금 전까지 눈보라 속을 다닌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맑아진 도로를 달린다. 헝가리를 벗어나기 전 맛있다고 들은 랑고스(Langos)를 먹고 가야한다고 작은 도시에 왔다. 커다란 Tesco 대형마트 옆의 부스에서 팔고 있었다. 부스에 메뉴가 길게 붙어있다. 종류가 많은 모양이다. 우리는 치즈&사우어크림 랑고스를 시켰다. 접시만한 반죽을 튀겨서 간을 하고 마늘 다진것을 바르고 사우어크림을 듬뿍 올린 후 간 치즈를 듬뿍 올려준다. 사실 양이 적은 우리는 하나만 시켜서 나눠먹고 싶었는데 의사소통에 실패해서 2개를 받아들었다. 인심좋은 헝가리 아주머니가 치즈를 푸짐하게 올려준 랑고스를 한입 베어무니 갓 튀긴 바삭한 도우에 고소한 치즈가 맛있다. 꽈배기가 생각나는 도우인데 설탕은 안 들어가 단맛은 없다. 이것이 랑고스구나 하고 맛있게 먹고 슬로바키아로 넘어간다. 유럽연합이라 검문소 같은 건 없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다른 나라라는 것이 신기하다. 민트색 작은 다리를 건너 슬로바키아로 입국했다. 경찰이 서있지만 잡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때문인지 경찰차만 보면 웬지 자세가 다소곳해진다. 다른 나라로 넘어왔다고는 하나 거리의 풍경이 별다르지 않아 느낌이 없다. 그대로 달려 3시간 후 체코로 넘어왔다. 폴란드를 가려면 두 나라를 거쳐야 한다.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이곳저곳 구경을 하며 갔을텐데 이미 가본적있는 곳들이었고 만나야할 사람이 없으니 이 나라들에 별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저 빨리 안야씨를 만나고 싶어 그대로 통과했다. 심지어 체코는 도로위에서 입국을 해버려서 언제 들어왔는지도 몰랐다. 탄이 이야기해주지 않았으면 나라가 바뀌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하늘에는 다시 눈이 내리고 집들의 지붕에도 들판에도 눈이 소복소복 쌓여있는 겨울나라로 다시 들어온 기분이다. 하루에 헝가리-슬로바키아-체코-폴란드를 4개의 나라를 밟을 수 있다는게 희안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네 나라는 비세그라드 그룹이라는 경제, 정치, 안보 공동체라고 한다. 2004년 EU가입 후 그룹을 만들어 더 끈끈한 관계로 맺어진 공동체라고 한다. 30분간 짧게 체코땅을 밟은 후 어두워진 저녁시간 폴란드에 입국했다. 바르샤바까지는 많이 남았고 깜깜한 길에 눈길과 빙판이 위험해 작은 도시의 주택가에서 차박을 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팅팅 부은 얼굴로 눈을 떴다. 서로 살아있는지 확인을 하고 정신을 차려본다. 몇일전 길가의 가로수에 핀 꽃들을 보고 이제 봄이 온줄 알았는데 북쪽으로 올라오니 다시 겨울이 된것 같다. 밤새 너무너무 추웠다. 우즈벡의 누쿠스에서 차 고장 났을 때 이후로 최고로 추운 차박이었다. 아무리 무시동 히터가 있어도 영하 5도이하의 날씨에 차박은 쉽지 않다. 찌뿌둥한 몸을 삐걱대며 일으켜 다시 길을 떠난다. 춥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용한 주택가에서 잘 잘 수 있음을 감사했다. 바르샤바를 향해 계속 이동한다. 우리는 네비에 유료도로 회피옵션을 켜서 작은 마을들을 이어주는 길로 다니고 있었다. 탄이는 돈을 아낄 수 있어 좋지만 계속 갈림길들이 나오기때문에 길이 어렵다고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네비를 계속 보고 다니지 않으면 길을 잘못들기 십상이다. 사람도 다니니 조심해야 하고 제설작업이 제대로 안된 길도 있어 좀 위험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기에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고속도로라면 절대 볼수 없는 사람 사는 모습들을 보며 주행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수많은 정보들을 접하게 되기에 이렇게 국도로 다니는 것이 여행지에 대해서 아는데 도움이 된다는 큰 장점이 있다. 한참을 달려 오후 늦게 안야씨 집에 닿았다. 2층짜리 낮은 빌라들이 모여있는 깨끗하고 안전해보이는 동네였다. 까브리를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안야씨는 아직 퇴근 전이라 한국에 흥미 있어했던 아들 크리쉬가 우리를 맞아주었는데 그때 사진으로 잠깐 본 꼬맹이가 큰 청년이 되어 있었다. 유럽사람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다. 실내인테리어며 가구며 조명들이 북유럽스타일 쇼룸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진짜 유럽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싶다. 집에 들어가니 크리쉬가 우리를 위해 만들어놓은 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만난적도 없는 처음 보는 우리에게 정성껏 음식을 차려주고 따뜻한 미소로 환영해주는 크리쉬에게 너무너무 감사했다. 긴 이동끝에 따뜻한 집에서 홈메이드 케틀릿과 매쉬포테이토를 먹으니 이게 웬 호강인가 싶다. 식사를 하며 크리쉬와 즐겁게 대화를 했다. 이 가족이 아니었으면 슬로바키아나 체코처럼 그냥 지나쳐갈 수도 있었는데 이들 덕분에 폴란드와 바르샤바에 아름다운 추억이 생기겠다는 기대가 된다. 저녁늦게 회사에서 돌아온 안야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고 안야의 침대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그녀는 아들방에서 자고 크리쉬는 소파에서 잔다고 한다. 너무 미안하고 황송해서 우리가 쇼파에서 자겠다고 해봤지만 손님이니 그렇게 하시라고 강권하는 터에 감사히 몇일 그렇게 신세를 지기로 했다. 다음날 오후 우리를 위해 일찍 퇴근하고 온 안야와 함께 시내중심가에 왔다. 전쟁기념 조각상도 보고 시내의 구석구석에 이야기들을 듣는다. 역시 현지사람과 함께이니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할 것도 없고 숨겨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참 좋다. 크리쉬는 옛 폴란드역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는데 한번은 다른나라 사람이 폴란드의 왕이 된 적이 있다며 매우 어이없어 했다. 아니 이 나라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왕을 외국에서 수입해왔을까? 한국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하며 생각해보니 유럽은 하도 왕족간의 정략결혼도 많고 영토분쟁이며 나라가 세워지고 합쳐지고 하는 일이 많아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역시나 외국인이 타국의 왕을 했을때 이 나라를 위하지 않고 제대로 안해서 문제가 많았던 모양이다. 내 나라 통치를 하는 경우에도 자기 욕심만 챙기는 사람이 많은데 더우기 남의 나라라면 과연 그 나라를 사랑하고 그나라 백성들을 위한 통치가 가능했을까 싶다. 저녁을 먹으러 폴란드식 족발-골롱카(Golonka)를 잘하는 식당에 왔다. 우리가 골롱카를 먹고싶다고 하자 안야와 크리쉬는 매우 고심하며 식당을 골랐다. 인터넷으로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물어보는데 미안할 정도여서 그렇게까지 안해도 된다고 그냥 저렴한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결국 우리가 온 식당은 예약없이는 식사하기 어려운 매우 인기많은 전통 레스토랑이라고 한다. 조금 이른시간이어서 다행히 예약없이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며 식당내 분위기도 매우 아늑하고 이국적이고 좋았다. 안야와 크리쉬가 주문을 해주니 너무 편하고 좋다. 우리에게 메뉴에 대해 물어보아주었지만 알아서 폴란드 음식으로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신선한 샐러드와 높은 다리가 있는 접시에 고기가 가득 담겨진 요리들이 상다리가 부러지게 나온다. 특히 폴란드에 전통음식중 우리나라 순대와 같은 카샨카(Kaszanka)라는 것이 있다고 해서 먹어보고 싶었는데 실물을 접하게 되었다. 마치 검은색 통통한 소세지같다. 카샨카와 함께 여러가지 고기요리와 감자, 야채등 한상 가득 차려진 전통음식들을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다. 현지 음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친구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먹을 수 있어 더욱 행복했다. 나중에 폴란드에 또 오게된다면 꼭 다시 방문하고 싶은 식당. 가게 이름은 가게의 주소와 같은 'Podwale 25'이다. 완전 강추. 식사후 소화도 시킬겸 시내를 좀 더 걸었다. 유럽의 특징 중 하나인 넓은 광장에 천막과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겨울에는 이곳에 아이스링크를 만든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지금도 겨울 같은데 벌써 철수를 했다. 광장 중앙에는 인어동상이 있었는데 크리쉬는 그 앞에서 바르샤바의 이름 유래를 이야기해주었다. 바르라는 어부가 샤바라는 인어와 사랑을 나눈 이야기에서 수도이름이 바르+샤바가 되었다는 낭만적인 이야기였다. 비스와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지나 한참을 친구와 함께 걸으니 낯선 도시가 마냥 아름답고 마음이 편했다. 시내에 올때는 시내 주차가 힘들다고 해서 까브리를 두고 버스를 타고 왔는데 집에 돌아갈 때는 지하철을 탔다. 폴란드 지하철 역사는 강렬한 그래픽과 조명이 매우 특이했다. 친구와 함께 타니 헤멜 것도 없고 그저 새로운 경험이 즐겁고 좋았다. 다음날 안야는 또 일찍 회사에 갔고 크리쉬가 자기의 취미가 베이킹이라며 치즈케이크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나는 케이크 중 치즈케이크를 제일 좋아한다. 치즈케이크를 집에서 굽다니! 만드는 과정이 마냥 신기했다. 바닥에 부서진 과자 같은 것을 깔고 반죽을 붓고 오븐에 구우니 짠! 노릇노릇 맛있어보이는 치즈케이크가 완성되었다. 우와~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다. 치즈를 진짜진짜 많이 넣어서 진하고 맛있다. 커피와 함께 먹으니 혼자 한판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커피와 케이크를 즐기며 크리쉬가 가져온 보드게임을 함께 했다. 세계지도위에 색이 다른 말들을 놓으며 서로의 땅을 정복하는 게임이었는데 룰이 어렵지않아 금방 적응하고 즐겁게 놀았다. 안야에 의하면 크리쉬가 수줍음이 많고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이라 사람들과 잘 안어울린다고 했는데 우리와는 금방 친해지고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신기하다고 한다.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탄이의 능력 덕분도 있지만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준 크리쉬에게 참 고마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크리쉬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시내에 나왔다. 지하에서 이대역이 생각나는 엄청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코페르니쿠스 과학센터에 도착했다. 흐린 날 따로 어디를 가기보다 실내에 볼거리가 있는 이 곳이 좋을 거라며 크리쉬가 추천해주어 함께 온 것인데 어릴때 과학자가 꿈이었던 나는 여러 과학적 설치물을 다양하게 시연할 수 있고 매우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많은 이곳이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시간을 알려주는 거대한 진자운동 장치며 상승기류를 타고 펄럭이는 아름다운 천들의 댄스를 구경하기도 하고 미세플라스틱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코너는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금 가지게 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성인도 충분히 즐길만한 볼거리, 즐길거리들이 많이 있었다. 과학센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크리쉬에게 한식을 대접하고싶어 한식당을 찾아갔는데 테이블이 모두 꽉 찬데다가 대기하는 사람들까지 이미 여럿이어서 대 인기였다. 식당에서의 식사는 포기하고 안야에게도 맛보게 할 겸 포장을 해왔다. 제육덮밥과 해물파전, 잡채, 불고기등 제대로된 한식이어서 매우 만족스러웠고 크리쉬도 역시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스스럼없이 다 잘 먹었다. 살짝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리가 너무 아파서 택시를 탔는데 그만 택시에 휴대폰을 두고 온것이다. 다행히 크리쉬가 우버기사와 통화를 하고 다시 찾을 수 있었다. 한국처럼 돈을 내야했지만 휴대폰이 없어지면 생길 갖가지 끔찍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고 찾을 수 있는 것만도 너무너무 감사했다. 크리쉬의 전공을 물어보았더니 커다란 화이트보드 가득 숫자를 쓰며 수학책을 풀어내는 과정을 설명해준다. 열심히 끄덕거리며 듣긴 했지만 솔직히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암튼 무지 대단해보였다. 크리쉬가 우리 드론에 관심을 보여 조종간을 맡기어 직접 촬영해보게 했더니 하늘에서 보는 자기 동네 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즐거워했다. 처음인데도 제법 조종을 잘한다. 크리쉬의 첫 드론촬영 영상에 음악을 넣어 편집해서 선물해주었다. 안야와 크리쉬와 함께보낸 시간이 너무도 따뜻하고 편안하고 즐거웠지만 계속 더 머물다 가라는 고마운 크리쉬와 안야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손님과 생선은 사흘이상 지나면 악취가 난다는 말에따라 또 다음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해요~ 안녕 안야, 안녕 크리쉬!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 https://youtu.be/PM9MRu40hW8?si=t9LEMJgsVlHKLyVc>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1-02 09:32:01<33> 이집트 '카이로'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마흐멧 가족은 늦은 밤 도착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마흐멧의 가족은 아파트의 3층에 살고 있었고, 우리에게는 6층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선 우리는 3층 마흐멧의 집으로 가서 거실에서 차를 대접받고 소개를 하며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태어난지 6개월 되었다는 누나의 아들인 아기 모하메드가 너무 귀여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잘 안기고 무척 순한 아기였다. 눈이 신기할 정도로 크고 까매서 정말 인형같았다. 물고기 니모인형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친구와 길게 이야기도 못하고 곧 6층으로 가서 잠자리를 안내받았다. 사람이 사용한지 좀 되보이는 공간인 듯해서 치우고 정리한 후 대충 이부자리를 깔아 잠자리를 만들었다. 내일 아침 일찍 나가야해서 바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새벽 조심조심 집을 나섰다. 카우치서핑에서 함께 피라미드를 보자고 제안한 미국친구들과의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 6시반에 출발했는데 동네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어젯밤 무서워하며 찾아온 동네가 밝을 때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혀 정비라고는 안되있는 맨 흙바닥에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낡은 아파트 건물들이 황량하게 서있는 모습에 이곳이 우범지역은 아닐까 싶어 어젯밤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멘붕상태였다. 그래도 친구가 생겼고 하룻밤 잘 수 있는 곳이 있음에 감사하며 피라미드를 향해 갔다. 친구의 집은 카이로 북쪽이고 남쪽의 피라미드를 가기 위해서는 카이로를 관통해서 2시간 반 가량 가야한다. 카이로에 가까이 가자 집이나 사람들이 잘 안보일 정도로 뿌옇게 보이는 것이 안개라기보다는 스모그가 아닐까 싶었다. 운전도 쉽지 않았던 것이 왕복 8차로의 도로 갓길에 사람들이 태연하게 걸어다니고, 차선이 없는 길도 많았으며 차선이 있어도 다들 별로 신경을 안쓰고 자기 가고싶은 대로 차선을 무시해 달리고 있었다. 카이로의 건물들은 누런 흙색으로 거의 다 비슷비슷하게 보였는데 매우 낡아서 지은지 30~40년은 되보였다. 이와중에 탄이는 "지은지 3천년된 아파트는 아니겠지 뭐."라며 농담을 한다. 한참을 달려 드디어 저 멀리 피라미드의 실루엣이 동트는 여명 속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입구에 도착하니 차를 가져온 경우에는 일단 표를 먼저 구입하고 동승자는 내려서 도보로 입장하고 운전자는 따로 주차권과 함께 본인표를 가지고 주차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아무래도 피라미드를 처음 보는 탄은 많이 신난 모습이다. 사실 나는 28년 전에 이미 와본적이 있어 크게 오고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탄이 꼭 가보고싶다고 해서 오기로 했다. 당시 카이로 시내의 호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피라미드에 간다며 출발했는데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얼마 안가 피라미드에 금방 도착한 것이 무척 이상했었는데 이제 카이로시가 점점 커져서 아예 피라미드는 시내 번화가 안에 있게 되었다. 탄은 이런저런 포즈를 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른다. 주차장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는데 스모그에 덮여 뿌옇기는 했지만 지대가 높아 카이로가 잘 보였다. 우리는 약속시간인 9시를 맞추기 위해 6시에 일어나 2시간반 전에 출발했는데 미국부부인 타냐와 존은 약속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조금 늦겠다고 왓앱으로 연락을 하더니 10시 30분이 지나서 나타났다. 와서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인사하는게 끝이었다. 뭐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 우리도 그냥 웃으며 지금부터의 시간이라도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했다. 근데 오자마자 사전에 이야기가 없던 이집트여성 가이드를 소개하며 20달러를 줘야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녀가 피라미드를 안내하며 유적에 대한 설명을 해줄거라고 했다. 우리랑 사귀고 함께 여행을 즐기려는 것 보다는 가이드비 나눠 낼 사람이 필요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많이 찜찜했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한시간 반만에 비로소 입구를 벗어나 피라미드 가까이 이동을 했는데 중간에 이 부부는 또 사라져버렸다. 늦게와서 입구며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을 느긋하게 찍고 한참 뒤에 합류했다. 가이드분이 우리에게 이 사람들 어디갔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겨우 다 모여서 드디어 가이드분이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상한 영어 발음을 탄이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고 나는 웬만한 이집트에 대한 것은 다큐멘터리며 책 등을 통해 많이 알고 있어서 그녀의 이야기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우리 시간만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가 잠시 끊겼을 때 사정을 이야기하고 당신께 사례를 하고 우리는 따로 다니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타냐가 말한 20달러를 줘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양심적인 가이드는 자기가 한 것이 없다며 받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약간의 사례를 하고 헤어질 수 있었다. 오전에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그런 일로 오늘 전체의 기분을 망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평생 다시오기 힘든 이집트 피라미드인데, 저 사람들 따라다니며 계속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결단을 내리기 잘했다고 생각하며 우리끼리 기분좋게 피라미드를 구경하며 즐기기로 했다. 제일 큰 푸쿠왕의 피라미드에는 돈을 추가로 더 내면 안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 들어가본적이 있는 나는 탄에게 "들어가봤자 안에 유물이라곤 다 가져가서 볼거 하나도 없고 무지 낮은 통로를 생고생하며 들어가야해."라고 얘기해주었더니 미련없이 포기한다. 두번째 피라미드로 가는 길에 있는 낮은 건물유적이며 길가에 쌓여있는 돌 하나하나가 평범하지 않게 보인다. 피라미드 공원에는 큰 피라미드가 3개, 스핑크스가 하나 있는데 조금 힘들긴 하지만 걸어서 찾아가보기로 했다. 도보가 어려운 사람들은 낙타나 마차를 타기도 했다. 날씨가 매우 맑고 겨울이라 낮에도 햇빛아래에서 걸을 만 한 기온이라 피라미드 사이를 산책하는 것은 매우 기분 좋고 특별한 경험으로 느껴졌다. 한참 걷다가 언덕위에 뭔가 현대적인 건물과 광장같은 것이 있어 궁금해서 가보았다. 피라미드와 잘 어울리는 멋진 석조건물에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었다. 많이 걸어서 피곤하던 차에 커피한잔 하며 쉬기 좋겠다 싶어 들어갔다.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인테리어가 너무 예쁘고 메뉴를 보자 가격이 예상보다 그리 비싸지 않아 우리는 아예 점심식사를 이곳에서 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안내된 자리는 피라미드 3개가 한눈에 보이는 야외테라스였다. 날씨도 좋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의자에 앉아 편안히 피라미드를 보며 이집트 음식을 먹다니 이거야말로 기대하지도 않았던 최고의 호사가 아닐 수 없었다. 주문한 이집트 정식은 빵을 주식으로 하고 콩과 감자, 계란등으로 간단하게 요리한 것들이었는데 아주 맛있지는 않았지만 분위기에 취해 먹을만 했다. 손님도 많지 않아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종업원들도 모두 매우 친절해서 오전에 상했던 기분이 모두 날아가버리는 듯 했다. 이곳에서의 식사와 피라미드를 앉아서 편히 구경한 기억은 평생 남을 것 같다. 식사 후에는 공원이 생각보다 많이 넓어 계속 걸어다닐 엄두가 안나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오기로 했다. 도로도 있고 군데군데 주차할 곳도 있어 차를 가져온 사람들은 공원 내부를 차로 타고 다니는 것을 파악했다. 피라미드를 실컷 구경했으니 이제 스핑크스를 찾아볼 차례. 조금 헤메다가 드디어 어떤 언덕을 내려가는 중 스핑크스 뒤통수를 발견했다. 스핑크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마무리를 했다. 다음 목적지는 어젯밤 마흐멧이 반드시 가보라고 추천해준 2017년 개관한 이집트국립문명박물관이다. 이곳은 나도 한번도 안가본 곳이어서 매우 기대가 되었다. 지하 주차장이 잘 되어있다. 이집트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현대적인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검색대를 통과해서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오자 조형물이며 조경이 너무너무 이집트스럽고 멋지게 잘 되어있는 박물관 광장이 나왔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기프트샵 앞의 파라오 상이 나를 유혹했지만 나올때 가기로하고 일단 전시를 구경하러 들어갔다. 내국인과 외국인 표값이 많이 차이가 난다. 외국인은 약 1만원 정도 했고 이집트사람들은 4분의 1가격이었다. 주차비도 함께 계산했다. 터널같은 복도를 지나 드디어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박물관에 들어가면 촬영을 못하게 하겠지 싶었는데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 "이야, 개꿀!"하며 마음껏 촬영을 했다. 매우 깨끗하고 훌륭한 전시장에는 내가 정신못차릴 정도로 아름답고 역사적인 고대 이집트 유물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무덤에서 나온 각종 인형, 장신구, 토기 등 하루종일 보라고 해도 질리지 않을 흥미진진한 물건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로 열심히 구경했다. BC1000년경의 어떤 공주의 천 발다킨(제단이나 왕좌 위에 덮어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데 사용되는 독립형 캐노피)은 그 색과 질감이 크게 삭지 않고 남아있어 당시의 화려함에 감탄이 나왔고, 나무관, 석상, 부장품등에 섬세하게 조각되고 채색된 그림과 상형문자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문명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지하의 미이라관이었다. 인기 장소답게 줄을 서서 천천히 들어갔는데 어두운 전시실에 유리관에 누워있는 실제 파라오와 왕비들의 미이라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책으로 영상으로 들어온 유명한 몇천년전 이집트왕들의 미이라를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니 놀랍고 신기한 한편, 영원한 생명을 꿈꾸며 최고의 기술로 미이라로 만들어져 오랜 세월을 지나왔는데 결국은 전세계 사람들의 구경거리밖에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착잡했다. 카이로 관광을 마치고 다시 마흐멧네로 돌아왔다. 저녁에 친구와 함께 외출을 했다. 마흐멧의 핸드폰을 우리 렌트카에 블루투스로 연결해 그가 좋아하는 이집트 음악을 함께 들었다. 내가 영화에서 본 이집트 옷을 사고싶다고 말하자 마흐멧은 우리를 옷가게 있는 곳으로 데려가주었다. 몇군데를 가보았지만 내가 보았던 옷위에 걸칠만한 샤방샤방 얇은 천으로 된 아랍식 드레스는 찾을 수 없고 매우 두껍고 무거워보이는 긴 원피스만 보였다. 마흐멧에게 이야기하니 보통 아랍여자들은 절대 그런 샤방한 옷을 안입는단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판타지같은거라며 그런 것을 일반적으로 사기는 힘들거라고 했다. 옷구입은 포기하고 식사를 하러 갔다. 마흐멧은 어디서 배웠는지 "환.영.하.다."라는 한국말을 우리에게 자꾸 한다. 스마트 폰 번역기를 활용한 듯 하다. 이집트 시골동네에서도 한국말을 한마디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우리는 타진(작은 도기그릇에 고기, 야채, 소스등을 넣고 오븐에 구운 음식)과 마흐멧의 추천음식 몇가지를 시켰다. 현지친구가 있으면 식당에서 헤메지 않아 너무 좋다. 끈적끈적한 초록색 스프가 나왔는데 공중에서 길게 늘이며 섞는다. 이렇게 하면 더 맛있어진다고 한다. 뭔가 메생이같기도 하고 좀 생소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꽤 입맛에 맞았다. 탄은 비둘기요리에 도전했다. 통째로 들고 망설임없이 중간을 '앙' 뜯어먹는 모습이 산적같다. 한입 뜯으니 속이 노란 밥알로 채워져있는 것이 보였다. 맛있게 잘 먹고 근처 카페로 이동해서 차와 흘러내리는 듯한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먹었다. 너무 달지않을까 걱정했지만 따뜻하고 찬 온도차와 크게 달지 않은 맛이 조화롭게 느껴져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희안한 담배같은 것을 피우는 것을 보고 우리가 궁금해하자 마흐멧은 주문을 했다. 바로 물담배였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물담배가 좀 두렵기도 했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랴 싶어 한모금 훅 들이켰는데 뭔가 희안한 향과 거부감이 들어 두번은 사양했다. 탄이도 별로 안맞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마흐멧 덕분에 현지체험을 제대로 잘한 즐거운 저녁이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AcZAm4-qGqI?si=tWg9xvjqo3vg2O9K>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0-03 16:44:22[파이낸셜뉴스] 가수 장윤정이 남편 도경완을 향해 앉아서 소변을 봤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지난 1일 방송된 E채널 '마법의 성'에서는 남자들의 소변 보는 자세를 놓고 설전이 오갔다. 방송에서 장윤정은 "우리 경완씨에게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에 도경완은 "나 서서 볼래! 나는 왜 앉고 아들은 서서 싸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성교육 강사 이시훈은 "남자 아이들에게 앉아서 소변 보는 게 편하냐고 물어보면 불편하다고 답한다. 남자의 요도가 길고 꺾여 있는데, 앉아서 소변을 보면 꺾인 요도가 한 번 더 꺾인다. 그래서 잔뇨 증상이 생길 수 있다. 청소년기에는 서서 소변을 보는 걸 권장한다”고 설명했다. 위생상 좋지만 건강상으로는 큰 차이 없어 여성은 변기에 앉아서, 남편은 서서 소변을 보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위생상 좋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며 앉아서 소변을 보는 남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남성이 서서 소변을 보면 변기 주변으로 소변이 많이 튀는 건 사실이다. 일본 라이온사 실험에 따르면 남성이 하루 동안 서서 소변을 볼 때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이 약 2300방울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변이 튀는 범위도 넓었다. 일본 기타사토환경과학센터 연구에 의하면 바닥 반경 40cm, 벽은 30cm 높이까지 소변이 튀었다. 한편, 앉아서 소변을 보는 습관이 남성 건강에 좋은지에 대한 여부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다. 남성의 요도가 휘어져 있어서 잔뇨감이 생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남성의 요도는 여성보다 길이가 길며 ‘S’자 모양을 하고 있다. 때문에 남성이 앉아서 소변을 보면 요도의 S자 모양이 더 구부러져 소변이 나오기 어려워 잔뇨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위생을 지키는 대신 건강은 놓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만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이 건강에 좋은 남성도 있다. 전립선비대증, 요도협착증, 방광염 등 배뇨 장애로 인해 방광 수축 능력이 약해진 남성이라면 앉은 상태에서 소변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서서 소변볼 때와 달리 앉는 자세는 골반과 척추 근육을 완전히 이완시켜 소변 배출이 더 쉽다. 네덜란드 라이덴대 메디컬센터 연구진은 "앉아서 힘을 주면 복압이 올라가 경직된 골반 근육이 잘 이완된다"고 설명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8-04 11:31:37[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중국 송나라 고종(高宗) 때 파양(鄱陽, 지금의 강서성 지역)에는 홍매(洪邁)라는 사람이 있었다. 홍매는 사대부 집안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들 3형제는 아버지 홍호(洪皓)의 뒤를 이어 모두 학문적으로 상당한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홍매와 두 형인 홍괄(洪适)과 홍준(洪遵)을 함께 일컬어 삼홍(三洪)이라 부를 정도였다. 홍매는 자연스럽게 관직에 들게 되었다. 홍매는 20대에는 지방관을 두루 지내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나이가 들어서는 궁에서 사관(史官) 등의 관직생활을 했다. 그런데 홍매가 궁에서 일을 하는 도중 어느 날 담병(痰病)에 걸렸다. 열은 없었지만 기침가래가 심했다. 아마도 얼마 전 찬 바닥에서 글을 쓰느라 한사(寒邪)에 폐가 상했을 것이다. 홍매는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밤새도록 기침을 하다가 새벽녘에 잠이 들어 늦잠을 자게 되었다. 그날따라 왕이 홍매를 찾았다. “홍매를 들라 하라.” 그러자 신하들이 “홍매는 지금 며칠째 심한 기침가래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직까지 입궐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증세가 사뭇 심해진 듯하옵니다.”라고 고했다. 홍매는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왕은 당대 명의들에게 급히 수소문을 했다. 홍매를 위해 쉽게 구할 수 있고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기침약을 구해오라는 것이다. 하루 새 많은 처방들이 도착했다. 그 중에 한 처방이 눈에 띄었다. 왕은 사신을 통해서 처방의 약재를 구해서 서찰과 함께 홍매에게 급히 보냈다. 홍매는 왕이 보낸 약재 꾸러미를 보고서는 왕의 신하를 아끼는 마음에 감복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서 꾸러미를 풀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냥 호두와 생강뿐이었다. 금은보화가 들어있을 것처럼 기대를 했기에 실망이 컸다. 홍매는 실망하는 기색으로 왕의 서찰을 읽었다. “이것은 명의가 말하길 기침의 명방(名方)이라고 한다. 호두와 생강을 보내니 잠들기 전에 호두 3개와 생강 3쪽씩을 씹어 먹고 나서 미음을 두세 모금 마시도록 하라. 이 방법대로 몇 차례 복용하고서는 곧바로 조용히 잠들면 반드시 나을 것이라고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명의의 처방이라니 그런가 보다 했고, 무엇보다 왕이 친히 내린 하사품이니 무시할 수 없었다. 홍매는 그날 입궐을 하지 못해서 일이 밀려 있었다. 그래서 연신 기침을 해대면서도 왕의 하사품 꾸러미를 들고 궁의 옥당(玉堂)에 도착했다. 옥당은 경서나 사적을 관리하고 왕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그런데 옥당에는 일을 보는 관직들은 밤늦도록 문서를 정리할 일이 많아서 침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느지막하게 옥당에 도착한 홍매는 왕의 말대로 호도육과 생강을 천천히 씹어먹었다. 호두는 고소하고 맛있었다. 생강은 맛이 매웠지만 호두 때문에 견딜 만 했다. 그러고나서 미음을 한두번 마셨다. 이렇게 몇 차례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벌써 저녁이 되었다. 중간중간 미음을 먹었더니 저녁을 안 먹어도 배고픔이 없어 취침할 시간이 되어 자리에 누웠다. 홍매의 기침은 원래 밤이 되면 심했다. 그런데 호도육과 생강을 먹고 난 그날은 저녁부터 기침이 점차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가래는 간혹 올라왔지만 한두번 만에 올라오니 뱉어내기도 수월했다. 기침 때문에 잠을 설쳤는데, 그날은 잠을 깰 정도의 기침이 없었다. 다음 날 해가 뜨자 가래가 사그라지고 기침은 멎어 있었다. 홍매는 단지 호두와 생강만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던 기침이 하루 만에 진정됨에 놀랐다. 사실 당시까지의 의서에 호두가 기침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홍매가 하는 일은 사관으로서 기록이 전문이기에 이런 내용을 책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혹시 호두로 기침을 치료했던 사례들이 있는지 수소문했다. 역시 비슷한 치험례가 바로 들려왔다. 인근 지역의 율양(溧陽, 지금의 강소성 지역)에 사는 홍집(洪輯)에게는 3세 된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담천(痰喘)에 의해서 가래가 그르렁거리고 숨이 찬 증상이 연일 계속되었다. 담천(痰喘)이란 기관지에 가래가 심하고 뱉어내지 못해서 숨이 찬 것을 말한다. 일종의 급성기관지염이다. 어린 아들의 목에서 나는 그르렁거리는 가래소리는 집 밖까지 들릴 정도였고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더 심해지고 숨참이 올라왔다. 증상은 5일 밤낮으로 나타났고 심지어 젖도 빨지 못했다. 치료를 맡았던 의원들이 가래를 제거하는 도담(導痰)하는 약들을 처방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심지어 아이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위독하고 가망이 없다고까지 했다. 홍집의 처는 날이면 날마다 부처에게 아들을 낫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꿈속에서 관음이 나타나서 “아들에게 인삼호도탕(人蔘胡桃湯)을 복용시키도록 하거라.”라고 하는 것이다. 깜짝 놀란 부인은 꿈 이야기를 곧바로 홍집에게 전했다. 홍집은 어렵게 구한 신라인삼 1촌(寸) 마디와 호도육 1알을 함께 물에 달였다. 급한 마음에 호두의 속껍질은 제거할 겨를도 없이 그냥 넣었다. 이렇게 다린 것을 조개껍질 양만큼을 아이에게 먹이자 기침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홍집은 다음 날 다시 한번 먹이고자 인삼과 호도육을 다시 물에 넣고 달였다. 이때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 호도육의 속껍질은 깨끗하게 제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침이 다시 발작했다. 홍집은 ‘호도육의 잔껍질이 특효한 것인가?’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다음에는 껍질째로 달여서 먹었다. 그랬더니 확실하게 기침이 잦아들었다. 이렇게 이틀 밤을 먹이자 기침과 가래는 모두 사라졌다. 홍매는 홍집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는 당시 출간되어 있었던 <외대비요>나 <태평성혜방>, <태평혜민화제국방> 등의 의서를 뒤져보았다. 그러나 어느 의서에도 인삼호도탕은 나와 있지 않았고, 기침에 호두의 잔껍질을 꼭 써야 한다는 내용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호두를 기침에 쓴다는 내용도 없었다. 홍집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아낼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홍매는 홍집의 이야기도 기록에 남기고자 했다. 홍매는 자신의 경험과 함께 홍집의 치험례까지 <이견지(夷堅志)>에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인삼호도탕(人蔘胡桃湯)은 이후 의서에도 등장하면서 줄여서 삼도탕(蔘桃湯)이라고도 하고, 꿈속에서 관음보살이 알려줬다고 해서 관음인삼호도탕(觀音人蔘胡桃湯)이라고 불리고 있다. 대체로 인삼은 기를 보충해서 숨참을 멎게 하고 속껍질이 있는 호두는 폐를 수렴하는 효과가 있다. 호두가 양쪽으로 나뉘어 쭈그러진 모양은 폐장을 닮았다. 그래서 그런지 호도육은 기관지 점막을 촉촉하게 해서 가래배출에 좋고 속껍질은 기침을 잡는다. 특히 호두의 속껍질은 삽미(澁味)가 있는데, 삽미는 타닌 성분으로 수렴작용이 강하다. 그래서 만약 호두의 속껍질을 제거하고 사용하면 기침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노인성 만성기침에 좋다는 오과다(五果茶)에도 호두가 들어가는데, 이때도 반드시 속껍질 채 사용해야 한다. 오과다는 호도(胡桃, 속껍질을 벗기지 않은 것) 10개, 은행 15개, 붉은 대추 7개, 생률(生栗, 생밤 속껍질을 벗기지 않은 것) 7개, 생강 1덩이를 잘게 썰어서 달여 먹는 처방이다. 흥미롭게도 생밤의 속껍질에도 타닌 성분이 많아 호두의 속껍질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밤을 기침에 사용할 때에도 속껍질을 제거하지 않는다. 음식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잘 낫지 않는 기침에 호두를 속껍질째 즐겨볼 만하다. * 제목의 〇〇〇은 ‘속껍질’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본초강목(本草綱目)> 洪氏夷堅志, 只言胡桃治痰嗽能斂肺, 蓋不知其爲命門三焦之藥也. 油胡桃有毒, 傷人咽肺, 而瘡科取之, 用其毒也. 胡桃制銅, 此又物理之不可曉者. 洪邁云, 邁有痰疾, 因晩對, 上遣使諭令以胡桃肉三顆, 生薑三片, 臥時嚼服, 卽飮湯兩三呷, 又再嚼桃, 薑如前數, 卽靜臥, 必愈. 邁還玉堂, 如旨服之, 及旦而痰消嗽止. 又溧陽洪輯幼子, 病痰喘, 凡五晝夜不乳食. 醫以危告. 其妻夜夢觀音授方, 令服人參胡桃湯. 輯急取新羅人參寸許, 胡桃肉一枚, 煎湯一蜆殼許, 灌之, 喘卽定. 明日以湯剝去胡桃皮用之, 喘復作. 仍連皮用, 信宿而瘳. 此方不載書冊, 蓋人參定喘, 胡桃連皮能斂肺故也.(홍씨는 이견지에서는 ‘호도는 담으로 인한 기침을 치료하여 폐를 수렴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는데, 대체로 호도가 명문과 삼초의 약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유호도는 독이 있어 사람의 목구멍과 폐를 상하게 하지만, 창양 같은 증상을 치료할 때는 그 독을 이용하는 것이다. 호도가 구리를 제어한다는 것은 이 또한 사물의 이해할 수 없는 이치이다. 홍매가 말하기를 ‘내가 담병에 걸려 늦게 입대하자, 임금께서 사신을 보내 전유하기를 호도육 3개, 생강 3쪽을 잠잘 적에 씹어 먹고 미음을 두세 모금 마신 다음 다시 호도와 생강을 앞에서와 같이 몇 차례 먹고 즉시 조용히 자면 반드시 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옥당으로 돌아와 임금의 말씀대로 복용하였는데, 다음 날 해가 뜨자 담이 사그라지고 기침이 멎었다. 또 율양에 사는 홍집의 어린 자식이 담으로 기침하는 병을 앓아서 5일 낮밤으로 젖을 먹지 못하자 의원이 위독하다고 말하였다. 그의 처가 꿈에서 관음보살의 처방을 받았는데, 인삼호도탕을 복용하도록 하였다. 홍집이 급히 신라 인삼 1치 정도를 가지고 호도육 1알과 함께 물에 달여서 조개껍질만큼만 아이에게 먹이자 기침이 즉시 진정되었다. 다음 날 탕약에 호도껍질을 제거하고 쓰자 기침이 다시 발작하였다. 이에 껍질 채로 사용하자 이틀 밤이 지나 낫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이 처방은 책에 실려 있지 않지만 대체로 인삼은 기침을 멎게 하고 껍질이 있는 호도는 폐를 수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약집성방> 百一選方. 觀音人參胡桃湯, 治痰喘. 人參 一寸許, 胡桃肉 一箇 去殼不剝皮. 右煎湯服, 盖人參, 定喘, 帶皮胡桃, 斂肺故也. (백일선방. 관음인삼호도탕은 담으로 인한 천식을 치료한다. 인삼 1촌 쯤, 호도육 1개. 딱딱한 껍질은 버리되 속껍질은 벗기지 않음. 이상을 달여 복용하니 대개 인삼은 천식을 그치게 하고 속껍질이 있는 호도는 폐기를 수렴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 〇 人參胡桃湯, 參桃湯. 治氣虛喘, 人參 一寸, 胡桃 二箇(去殼不去皮). 右剉, 入薑五, 水煎服. 名人參胡桃湯. 一名參桃湯. 盖人參定喘, 帶皮胡桃斂肺也. (인삼호도탕, 삼도탕. 기가 허하여 숨이 찬 것을 치료한다. 인삼 1촌, 호두 2개. 단단한 껍질은 벗기되, 속껍질은 벗기지 않는다. 이 약들을 썰어서 생강 5쪽을 넣어 물에 달여 먹는다. 이것을 인삼호도탕이라 하는데, 삼도탕이라고도 한다. 대개 인삼은 숨이 찬 것을 멈추게 하고, 속껍질이 있는 호두는 폐를 수렴한다.) 〇 胡桃. 性平一云熱, 味甘, 無毒. 胡桃瓤縮, 資其形以斂肺, 故能治肺氣喘促. 治痰喘, 能斂肺. 取胡桃 三箇(去殼不去皮), 與生薑 三片, 臨臥細嚼, 以溫湯呷下. (호도. 성질이 평하거나 뜨겁다고도 한다. 맛은 달며 독이 없다. 호두 속살은 쭈그러든 모양이 그러하듯 폐를 수렴하는데, 폐기로 숨이 가쁜 것을 치료할 수 있다. 늘 복용한다. 담천을 치료하고 폐를 수렴한다. 겉껍질만 벗기고 속껍질은 남겨 둔 호두 3개와 생강 3쪽을 잠들기 전에 꼭꼭 씹어 따뜻한 물로 먹는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3-09-13 14:47:54[파이낸셜뉴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를 하면서 손을 덜덜 떠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속에서 열불이 나 부르르 떤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의원은 지난 30일 밤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나와 27일 국회 법사위에서 한 장관을 상대로 '정순신 변호사 아들 학폭 문제' 질의 도중 있었던 일에 대해 질문했다. 당시 김 의원은 '한동훈 장관이 정순신 국사수사본부장 내정자 아들의 학폭을 알고 있었음에도 모른 척 넘어가려다 들켰다'라고 한 장관을 몰아세웠다. 이에 한 장관은 "(정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을) 제가 알았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답변을 이어갔다. 그러자 김 의원이 말을 끊으려 "알겠습니다. 자"라며 오른손을 앞으로 내미는 순간, 손이 덜덜 떨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후 김 의원은 뭔가 불편한 듯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던 연필을 내려놓았다. 이러한 김 의원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하자 네티즌들은 "건강이 이상한 것 아닌가", "한 장관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우리 방 식구들이 정순신 아들 학폭 문제를 보도한 KBS와 통화해 당시 자초지종 정황 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시 (정 변호사와 함께 검찰에서) 근무했던 한동훈 장관 등 이 정부의 실세들이 정순신 문제를 모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라며 "그래서 제가 그걸 물어봤는데 여전히 몰랐다고 (한 장관이) 발뺌을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뉘우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임감을 느끼는 자세를 보여야 되는데 오히려 뻔뻔하게 저를 공격, 제가 팩트 체크를 제대로 못 해서 잘못 물어보는 것처럼 역공을 해 제가 속에서 열불이 (나) 부르르 떤 것"이라고 했다. '손을 벌벌 떨었다'라는 한 언론사의 보도가 억울하지 않냐는 진행자의 질문에는 "요즘 하도 만성이 돼서 그냥 그러려니 한다"라며 담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2023-03-31 09:01:05[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옛날 한 마을에 키가 7척(尺)에 덩치가 크고 호탕하며 기개가 있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여름이면 생과일과 다른 계절이면 과일을 말린 과자(果子)를 즐겨 먹었고, 이와 함께 술 마시기를 좋아했다. 그러면서 날마다 물을 몇 말씩이나 마시고 밥을 먹는 양도 다른 사람들의 곱절을 먹으며 소변도 아주 많은 양을 자주 봤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어느 때부터 이 사내가 소갈병(消渴病)에 걸렸다고 수군거렸다. 사내가 술만 마시러 가면 주위에서 수군덕대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 본인은 별로 불편한 증상이라고 할 것들이 없는데, 자신만 보면 “소갈병이네~” 혹은 “소갈병환자 왔네~”하기에 이제는 자신도 모르게 본인이 소갈병에 걸렸나 하고 걱정될 지경이었다. 소갈병은 요즘의 당뇨병과 비슷한 병증으로 다음(多飮), 다식(多食), 다뇨(多尿)의 삼다증(三多症)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소갈병(消渴病)에 걸리면 이름 그대로 기운은 소모(消耗)가 되고 살은 빠지면서 입에 번갈(煩渴)이 생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내는 걱정스러워 동네 의원에게 진찰을 받아봤는데, 동네 의원들도 이구동성으로 소갈병이라고 진단을 했다. 그래서 소갈병을 치료하는 처방을 거의 수년을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고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의원을 바꿔가면서 처방을 해 봤지만 마시고, 먹고, 소변 보는 양은 차도가 없었다. 사내는 마침내 ‘내가 소갈병에 걸려 죽게 생겼구나. 마시고 먹는 것을 줄일 수가 없고 소변도 멈출 수가 없구나.’하며 근심걱정이 많았다. 심지어 관(棺)과 수의(壽衣)까지 준비를 해 두고 자신의 아들을 믿을 만한 친구에게 부탁까지 해 두었다. 그래서 더더욱 술을 마시는 날도 늘었고 마시는 술의 양도 늘어서 항상 취해 있었다. 술에 취한 날이면 마을의 어귀에서 “아이고 내가 죽게 생겼네. 아이고~”라는 넋두리를 하면서 한숨이 많았다. 어느 날도 사내는 넋두리를 하고 있는데, 그 때 한 의원이 지나가다가 사내에서 물었다. “자네는 무엇 때문에 죽음이란 단어를 그렇게 함부로 내뱉는가?”라고 하자, 사내는 “제가 소갈병에 걸렸는데 치료를 해도 낫지 않으니 죽기밖에 더 하겠소.”라고 하소연을 했다. 의원은 자신도 의원이라고 소개를 하고는 한번 진찰을 해 보기를 청했다. 의원은 사내의 증상을 자세하게 듣고서는 진맥 후에 이리저리 살집을 만져보더니 껄껄껄 웃으면서 “자네는 지금까지 치료를 잘못해서 죽을 뻔했네 그려. 자네는 소갈병이 아니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갈병은 삼다증 이외도 상소(上消), 중소(中消), 하소(下消)로도 구분하게도 하는데, 상소(上消)란 심한 갈증으로 물을 찾고, 중소(中消)란 음식은 잘 먹으나 살이 빠지면서 여위고 소변은 잦은 것이고, 마지막으로 하소(下消)란 소변이 기름 같으며 다리와 무릎이 마르고 가늘어진다고 했는데, 그러나 자네는 마시고, 먹고, 소변 보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증상은 없지 않는가? 특히 자네처럼 기육(肌肉, 살집과 근육)이 튼실하고 단단한 소갈병 환자는 없네. 또한 소변에서는 단내가 나지 않고 끈적이지도 않고 깨끗하니 더더욱 소갈이 아니네.” 사실 그러고 보니 사내는 이상하게 남들과 비슷한 정도로 밭일과 논일을 하면서도 그다지 피곤해하지도 않았고 체중이 줄지도 않았으면서 오히려 팔다리를 놀리는 것은 힘이 장사처럼 여전했다. 다만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 숙취로 고생스러워 할 뿐이었다. 사내는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의원님은 제가 소갈병이 아니란 말씀이신가요? 그럼 어찌 저한테 삼다증이 생겼단 말이요?”라고 물었다. 의원은 “자네의 삼다증은 체질적인 것일 뿐일세. 자네는 체질적으로 비위(脾胃)가 튼실하고 간열(肝熱)이 있는데, 그래서 항상 속이 헛헛해져서 먹어도 먹어도 또 배가 고픈 것뿐이며, 물을 마시는 것은 상초(上焦)에 허열(虛熱)이 있어 평소 땀도 많이 나면서 더더욱 물이 당기는 것뿐이며, 소변양이 많은 것은 물은 당연히 마신만큼 빠져나가야 하는데, 나갈 곳은 소변길밖에 없고 마시는 물의 양이 많으니 어찌 소변양이 적을 수 있겠는가? 만약 마시는 물의 양은 많은데 소변양이 그보다 적다면 반드시 수종(水腫)이 생겼을 것이네.”하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시 정색을 하면서 “내 자세히 보니 자네의 문제는 특히나 단맛이 강한 과일과 술이 원인이네. 단맛이 강한 과일을 많이 먹으면 갈증이 심해지네. 그래서 갈증이 날 때 꿀물이나 조청물을 마시면 역시 갈증으로 물을 더 찾게 된다네. 또한 술을 마시면 소변양이 더 많아지네. 사람이 술을 마셨을 때 물만을 마셨을 때보다 술이 소변으로 더 빨리 빠져나오는 것은 술은 곡식이 발효되어 이미 익어서 소화가 다 된 액(液)이기 때문이네. 심지어 술이 나올 때 이미 마신 물까지 덩달아 빠져나오니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은 더 심해지는 것이네. 그러니 자네는 지금 소갈이 아니라 과일독과 주독(酒毒)에 시달리는 것일세.”라고 진단했다. 그러고서는 약방에 가서 사향(麝香)의 당문자(當門子)를 술에 적셔서 아주 작은 환약 10개를 만들어 지구자(枳枸子) 달인 물로 삼키게 했다. 사향 주머니를 쪼개 보면 속에 알맹이가 뭉친 것이 있는데 이것을 당문자(當門子)라고 한다. 사내가 처방을 묻자, 의원은 “이것은 사향으로 만든 환약이고 이 물은 헛개나무 열매인 지구자를 다린 물이네. 자네는 평소 단맛이 나는 과일을 너무 많이 먹고, 술을 지나치게 마셔서 적열(積熱)이 비장에 쌓여서 식사량도 많고 물도 많이 마신 것이네. 옛부터 사향이 옆에 있으면 꽃이 향을 잃고 과일이 영글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향이 과일독을 억제하기 때문이고, 지구자는 술독을 제거하는 것이네. 옛말에 집안에서 술을 담글 때 집 마당에 헛개나무인 지구목이 있으면 술을 빚어도 익지를 않고, 지붕을 받치는 서까래를 지구목으로 만들면 그 아래에서는 술을 빚을 수가 없다고 했다네. 게다가 집수리를 할 때 지구목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술이 다 익은 상태에서 지구목이 잘못 술독에 떨어지자 술이 모두 물로 변했다는 말도 있지. 그러니 사향과 지구자 두가지를 약으로 삼아 과일과 술의 독을 제거하는 것이네. 그리고 앞으로는 칡뿌리를 캐서 말려 두었다가 그것을 물에 다려서 자주 마시도록 하게. 말린 칡뿌리는 갈근(葛根)이라고 하는데, 간열(肝熱)을 내리고 주독(酒毒)을 풀면서 진액을 생성하기 때문에 갈증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네. 자네처럼 몸집이 크고 땀이 많고 얼굴이 붉은 체질에게는 갈근이 보약이 될 것이네.” 사내는 의원의 처방을 복용하자 번열감과 함께 갈증이 줄었고 음식을 먹는 양도 줄었다. 그리고 의원의 당부대로 평소 즐겨 먹던 과일과 술을 줄이고, 대신 칡즙을 조금씩 해서 자주 마셨다. 그랬더니 항상 위로 치받쳐 오르던 기운도 차분해지면서 특히나 평소에 뒷목이 뻐근하고 뭉치는 증상도 사라졌다. 열감과 갈증이 없으니 물을 마시는 양도 줄었고, 결과적으로 소변양도 적당했다. 사내는 삼다증이 없어지자 죽음을 재촉하는 것 같았던 마음의 병도 사라졌다. 다음(多飮), 다식(多食), 다뇨(多尿)는 소갈병의 주된 증상이지만 이 삼다증(三多症)이 있다고 해서 모두 소갈병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나 삼다증이 전혀 없는데도 소갈병인 경우도 많아 건강에 뜻이 있다면 삼가 주의해야 한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의부전록> 眉山有穎臣者, 長七尺, 健飲啖, 倜儻人也. 忽得消渴疾, 日飲水數斗, 食倍常, 而數溺. 服消渴藥而逾年疾日甚, 自度必死, 治棺衾, 囑其子於人. 蜀有良醫, 張立德之子, 不記其名. 爲診脈, 笑曰, 君幾誤死矣. 取麝香當門子以酒濡之, 作十許丸, 取枳枸子爲湯飲之, 遂愈. 問其故, 張生言, 消渴, 消中皆脾衰而腎敗, 土不能勝水, 腎液不上泝, 乃成此疾. 今診穎臣脈熱而腎且衰, 當由果酒食過度, 虛熱在脾, 故飲食兼人而多飲水, 水既多不得不多溺也, 非消渴也. 麝香能敗酒, 瓜果近輒不實. 而枳枸亦能勝酒, 屋外有此木, 屋中釀酒不熟;以其木爲屋, 其下亦不可釀酒. 故以此二物爲藥, 以去酒果之毒也.(동파잡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미산의 영신이라는 자는 키가 7척에 잘 먹고 잘 마셨으며 기개가 있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소갈병에 걸려 하루에 물을 몇 두나 마시고 평소보다 두 배나 먹으며 소변을 자주 보았다. 소갈약을 복용해도 해를 넘기도록 병은 날로 심해지기만 하니 반드시 죽겠구나 생각하고는 관과 이불을 장만해 두고 아들을 남에게 부탁하였다. 촉 지역에 훌륭한 의사가 있었는데, 장입덕의 아들이며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가 진맥을 하고는 웃으면서 “당신은 잘못해서 죽을 뻔했소.”라고 말했다. 사향 당문자를 술로 축여 환을 10개쯤 만들고, 지구자 끓인 물로 삼키도록 하니 마침내 나았다. 그 까닭을 묻자 장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소갈과 소중은 모두 비가 쇠약해지고 신이 망가진 것으로, 토가 수를 이기지 못하며 신액이 위로 올라가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오. 지금 영신의 맥을 진찰해보니 열이 있으며 신도 쇠약하니, 바로 과일과 술을 너무 많이 먹은 탓으로 비에 허열이 있기 때문에 음식을 남보다 많이 먹고 물을 많이 마시며, 많이 마셨으므로 소변이 많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 소갈이 아니었소. 사향은 술의 기운을 물리치며, 과일나무는 사향을 가까이하면 열매를 맺지 못하오. 그리고 지구자 역시 술의 기운을 이기니, 집 밖에 이 나무가 있으면 집 안에서 술을 빚어도 익지 않으며 그 나무로 지붕을 만들면 그 아래에서는 역시 술을 빚을 수 없소. 때문에 이 두 가지로 약을 만들어 술과 과일의 독을 제거한 것이오.”라고 했다.) < 식료본초> 枳椇. 昔有南人修舍用此, 誤有一片落在酒甕中, 其酒化爲水味.(지구목. 옛날 남방 사람들은 집수리를 할 때 지구목을 썼는데, 한 조각이 술 항아리에 잘못 떨어져 술이 물맛으로 변했다.) < 동의보감> 消渴有三. 上消者, 舌上赤裂, 大渴引飮, 膈消是也. 中消者, 善食而瘦, 自汗, 大便硬, 小便數. 所謂癉成爲消中者, 是也. 下消者, 煩燥引飮, 耳輪焦乾, 小便如膏, 腿膝枯細, 所謂焦煩水易虧者, 是也.(3가지의 소갈. 상소란 혀가 벌겋고 갈라지며 심한 갈증으로 물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격소(膈消)이다. 중소란 잘 먹으나 여위고 자한이 나며, 대변은 단단하고 소변은 잦은 것이다. 소위 단병이 소중이 된다는 것이 이것이다. 하소란 번조가 있고 물을 찾으며 귓바퀴가 마르고 소변이 기름 같으며 다리와 무릎이 마르고 가늘어지는 것이다. 소위 불이 타오르면 물이 쉽게 마른다는 것이 이것이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2-11-24 17:5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