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KBS TV에 이어 1964년 TBC TV, 1969년 MBC TV가 개국함으로써 TV 3국 시대가 시작됐다. 금성사가 1966년 흑백TV 수상기를 최초로 개발했지만 TV는 한 동네에 한 대밖에 없을 정도로 귀했다. 프로권투 경기를 중계할 때면 다방이나 동네 전파사, 만화방으로 사람들은 몰려들었다. 옛날 TV는 뒷부분이 튀어나온 '브라운관'을 사용했다. 브라운관은 발명자인 독일의 물리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자바라 방식으로 문을 좌우로 열고 닫을 수 있는 궤짝에 넣은 제품도 있었다. 국산화 후에도 TV는 여전히 값비싼 물건이었다. 부품은 외국산에 의존했고, 높은 '물품세'가 부과돼 사치품으로 인식됐다. 1969년 출시된 금성사의 최신형 모델 VC-195는 8만1000원대, VS-196은 8만9000원대였다. 당시 기사를 보면 5년차 공무원의 월급이 1만560원, 서울 시내 가구당 한달 생계비가 2만7270원으로 나와 있다. TV 한 대 값이 공무원 월급의 8배, 생계비의 3배였던 셈이다. 할부 판매가 보통이었고 은행에 가서 계약서를 쓰고 선착순으로 TV를 인수했다. 더뎠지만 TV는 점차 늘어났다. 1973년 100만대를 넘어섰고 1976년엔 260여만대로 증가해 2.4가구에 한 대꼴로 보급됐다. TV를 생산하는 기업도 여럿 생겼다. RCA, 내셔널, 도시바 등 외국산 TV들도 쏟아져 들어왔다. 가전과 TV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대한전선이다. 대한전선은 창업주 설경동(1901~1974)이 1955년 세운 기업이다. 평북 철산 출신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와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제강점기에 운송업과 해산물 판매업을 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어선 70척을 소유하고 비행기로 물고기를 탐지할 정도의 재벌급 기업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광복 후 악덕 지주로 몰려 재산을 다 잃고 월남했다. 남한에서 설 창업주는 무역업과 부동산업, 성냥 제조업으로 곧 재기했다. '인천의 성냥공장'이라는 노래도 있지만 그의 수원 성냥공장이 시장 점유율 1위였다. 전쟁으로 또 한번 시련을 겪었으나 대한방직에 이어 적산기업 조선전선을 불하받아 대한전선을 설립했다. 케이블 제조업에서 더 나아가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 생산에 뛰어들었다(동아일보 1978년 10월 11일자·사진). 한때 가전업계 2위로 올라설 만큼 성공을 거뒀고 대한전선그룹은 재계 서열 5위권에 랭크되기도 했다. 1978년에는 경북 구미에 국내 최대 규모의 텔레비전 공장을 준공하고 즉석사진기인 폴라로이드 카메라 판권을 인수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금성과 삼성에 밀려 1983년 가전 부문을 대우그룹에 넘겨주기에 이른다. 현 위니아전자의 뿌리가 대한전선이다. 대한전선은 공중분해된 국제그룹과 연관이 있다. 창업 2세인 설원량 회장의 부인이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의 동생 양귀애씨다. 그후 전선업에 몰두하며 사업을 키워갔지만 금융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설씨 가문도 경영권을 내놓는 기구한 운명을 맞았다. 지금은 호반그룹이 인수해 매출 3조원을 바라보는 계열사로 키워가고 있다. 1980년대에 컬러 방송이 시작돼 본격적인 '안방극장'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일본과 가까운 남쪽 해안지역에서는 그전부터 일본 TV 방송을 컬러로 볼 수 있었다. 부산이나 울산 등지에서는 위성안테나를 설치하고 일본 방송을 단속을 피해가며 시청했다. 더욱이 일본은 밤에만 방송을 하던 우리와는 달리 종일 방송을 했다. 외국산 컬러TV가 밀수로 들어왔고 1970년대 중반 부산지역에 컬러TV가 2만여대나 보급돼 있었다고 한다(조선일보 1975년 1월 23일자). 해운대나 송도 등 바닷가에서는 일본 방송이 더 선명하게 나왔다. 극동호텔 등 유명 호텔에는 고객들의 요구로 컬러TV를 비치해 두고 있었다. 한국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스포츠 경기 등이 중계될 때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호텔을 점거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2024-07-04 18:43:58"인~천의 성냥 공장, 성냥 공장 아가씨~" 이런 가사로 시작하는 군가풍의 구전가요가 있다. 1940년대 일본 해군 군가가 해방 후 가사만 바뀌어 군대 내에서 불려졌다는 설이 있지만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노래 가사를 통해 과거 인천 지역에 성냥 공장이 많았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최초의 성냥 공장은 1917년 일본인들이 인천 제물포(지금의 금곡동)에 세운 조선인촌회사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회사에서 만든 쌍원표(雙猿票·성냥곽에 원숭이 두 마리가 그려져 있다) 성냥은 한때 국내 성냥 소비량의 3분의 1을 점유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인천에 성냥 공장이 밀집해 있던 이유는 주로 수입에 의존했던 인(燐)과 목재의 수송이 용이하고, 무엇보다 경성(서울)이라는 거대시장을 배후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주로 여공들이 성냥 제조에 동원됐기 때문에 '인천 성냥공장 아가씨'라는 노랫말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이전 최고의 성냥 브랜드가 조선인촌회사의 쌍원표였다면 해방 후엔 대한성냥과 유엔성냥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특히 유엔성냥은 당시 네모 반듯했던 사각형 성냥곽의 틀을 깨고 외형을 팔각형으로 바꿔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그밖에도 아리랑(조일산업), 향로(성광성냥), 기린표(경남산업), 비호표(대림성냥), 비사표(남성성냥), 비마표(조양성냥) 같은 제품이 시중에 유통됐다. 그 시절 팔각형 유엔성냥은 양초 세트와 함께 집들이·개업식 선물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당신의 앞날이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길 기원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유엔성냥의 전성기는 길게 잡아봐야 1980년대 초반까지다. 80년대 이후 일회용 가스라이터 '불티나'가 시중에 나오면서 (좀 과장하자면) 성냥은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생산 물량을 줄여가면서 근근이 버티던 성냥 공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고, 지난 2017년 기린표 성냥을 생산하던 경남산업이 마지막으로 폐업하면서 국내 성냥 생산은 완전 중단됐다. 지금 인터넷에서 살 수 있는, 유엔성냥을 포함한 모든 성냥은 100% 중국산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3-03-24 23:42:26인천 동구는 15일 동인천역 인근인 금곡동 배다리마을에 성냥마을박물관을 개관했다고 밝혔다. 성냥마을박물관은 1917년에 문을 열어 국내 근대 성냥산업을 이끈 조선인촌㈜가 있던 옛 동인천우체국 자리에 지상 2층, 213㎡ 규모로 건립됐다. 성냥마을박물관은 개관기념 첫번째 기획전시로 ‘신 도깨비불! 인천성냥공장’을 주제로 성냥공장과 성냥으로 인한 사람들의 생활 변화상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총 3부로 역사, 공장, 생활사를 주제로 나뉘어졌으며 1부에서는 구한말 신문물로 성냥이 수입된 후 근대화된 성냥 공장인 조선인촌㈜이 인천 금곡동에 설립되면서 해방기까지 국내 성냥산업을 이끌었던 역사를 소개한다. 2부‘성냥 공장’에서는 원목집하부터 축목 작업, 두약 제작 및 포장까지 일련의 성냥의 제조 과정을 자세히 안내한다. 또 배다리마을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성냥공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던 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3부 성냥의 생활사에서는 선물용과 홍보용으로 많이 쓰였던 성냥부터 휴대용 성냥까지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는 성냥을 전시해 일상상활에 필수품이었던 성냥의 다양한 쓰임을 알아볼 수 있다. 또 박물관 한편에는 배다리 근처에서 실제 운영됐던 '금곡다방'을 그대로 재현해 관람객들에게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성냥을 활용한 각종 체험을 할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한편 인천에는 대한성냥과 인천성냥, 한양성냔 등 한 때 10여개의 성냥공장이 위치하고 있었다. 허인환 동구청장은 “배다리는 인천최초의 공립학교인 창영초등학교와 서구식 신식교육이 처음 실시된 영화학당, 막걸리를 제조하던 인천 양조장과 현재는 헌책방 골목이 있는 곳으로 100여년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19-03-15 12:50:31인천문화재단은 다음 달 12~14일 3일간 인천아트플랫폼과 신포동 일대에서 인천개항장예술축제를 개최한다고 18일 밝혔다. 인천개항장예술축제는 올해 처음 개최되는 축제로 지역의 다양한 예술단체를 중심으로 개최된다. 클래식, 재즈, 포크, 락, 합창 등 다양한 음악장르와 무용, 뮤지컬, 퍼포먼스, 전통 등의 공연예술프로그램이 진행된다. 12일은 ‘타악 퍼포먼스 아작’의 공연을 시작으로 ‘인천콘서트챔버’, 뮤지컬 ‘성냥공장 아가씨’ 등이 선보인다. 13일은 야외무대에서 신진재즈그룹 ‘헬로재즈’, 힙합과 마술을 접목하고 있는 ‘딜라이트피플’, ‘인천재즈오케스트라’, 락밴드 ‘스트릿건스’와 흥겨운 스윙댄싱팀의 공연, 3인조 보컬트리오로 구성된 뉴욕출신의 빈티지재즈팀 ‘뉴욕나이팅게일스’의 무대가 펼쳐진다. 실내무대에는 인천신포니에타, 인천국악관현악단, 밀레니엄금관5중주, 인천시티발레단의 공연이 진행된다. 14일은 인천의 젊은 무용인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대중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단체 ‘시나브로 가슴에’, ‘프로젝트 반’, ‘알펑키스트’, ‘댄스컴퍼니 명’ 등 인천의 젊은 무용인들의 작품이 한 무대에서 펼쳐진다. 실내악 단체 I-신포니에타와 반도네온의 공연도 펼쳐진다. 야외무대는 인천의 젊은 퓨전국악팀인 ‘더율’의 공연을 시작으로 뮤지컬단체 ‘와컴퍼니’, ‘부평올스타빅밴드’, 인천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극단 아토’의 ‘뮤지컬 조병창’, 관록 있는 무용수로 구성된 ‘코리아액션댄스컴퍼니’의 무대가 야외에서 진행된다. 이 밖에 신포등 문화공간 등에서 다양한 공연과 전시회, 체험 프로그램, 동호회 공연 등이 펼쳐진다. 인천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번 축제에서 취향에 맞고, 가장 큰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골라 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18-09-18 11:38:28【인천=한갑수 기자】올 가을 전통시장, 개항장, 문학산 정상 등 인천 곳곳에서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인천시는 문학산 정상 음악회·개항장 밤마실, 인천생활문화축제, 낭만시장 축제 등 주민 중심의 골목축제를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문학산 음악회’는 올해 3회째로 해발 217m의 문학산 정상에서 8일 오후 7시부터 100분간 열린다. 낮에만 개방하는 문학산 정상을 행사 당일 야간 개방해 인천의 아름다운 야경을 배경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이번 공연에는 테너 정의근, 소프라노 강혜정, 뮤지컬 배우 손준호·김소현, 가수 정동하·박기영, 기타리스트 양태환 등이 출연한다. 또 문학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에서는 숲속 버스킹 등 길거리 공연이 펼쳐진다. 중구 개항장 문화지구에서 열리는 ‘개항장 문화재 야행(컬쳐 나잇)’은 8~9일 1차 밤마실이, 10월 6~7일 2차 밤마실이 진행된다. 개항장 문화지구는 차이나타운과 신포시장 사이에 위치하고 1883년 개항했던 인천항의 근대역사가 깃든 곳이다. 행사장 곳곳에서 인천 최초 백화점 ‘항도백화점’, 최초의 스팀동력 정미소인 ‘담손이 방앗간’, 국내 최초의 성냥공장 등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문화재와 카페 등을 야간에 관람할 수 있고, 한국 최초 근대식 호텔인 대불호텔에서 진행되는 클래식 공연·근대의상체험·근대 음식점을 재현한 저잣거리·공방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또 문화해설사와 함께 개항장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스토리텔링 도보탐방’도 사전 예약을 통해 진행된다. 15일에는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인천의 생활문화동아리 100여팀 1000여명이 직접 만드는 생활문화동아리 축제인 ‘인천생활문화축제 생동감’이 열린다. 올해 2회를 맞은 인천생활문화축제는 인천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동아리 회원들이 주인공이 되어 무대, 공연, 운영 등 행사 전과정에 직접 참여해 준비하고 행사를 운영하는 주민 참여형 축제다. 이 축제는 아트플랫폼 중앙광장, 한중문화관, 칠통마당의 이음마당과 H동 2층, 중구청, 팟알 등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동아리들의 다양한 공연과 전시, 체험 행사가 진행된다. ‘낭만시장 축제’는 10월 6~7일 열리고 1970~80년대 인천 최대 전통시장 중 한 곳이었던 동인천역 중앙시장 상권을 다시 살려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동인천 북광장과 중앙시장, 송현시장 일대를 묶어 낭만시장이라 명명했으며, 인천 지역 대학생들과 시장 상인들이 참여하는 한복 패션쇼·송현시장 상인회가 주축이 된 송현 야시장 먹거리 축제 등이 펼쳐진다. 이 밖에 오는 14~16일 문학경기장에서 EDM(전자음악댄스) 축제인 ‘월드클럽돔 코리아’가 열리고, 중구 개항장의 아트플랫폼에는 연중 문화예술 공연과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시 관계자는 “올 가을 열리는 골목축제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원도심 곳곳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축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2018-09-05 10:27:28"인천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알리려고 합니다. 짠물, 성냥공장 등 단편적이고 부정적인 모습보다는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모습, 미래의 발전상까지 보여주겠습니다."인천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는 김미영씨(50.사진)는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역사.문화유산이 다양하고 역동적인 도시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2009년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면서부터 비로소 인천의 진면목을 알게 됐단다.김씨는 시티투어 차량을 타고 관광객에게 역사와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시립박물관, 선사박물관, 인천상륙작전박물관 등에서 붙박이 해설사로 일하기도 한다.김씨는 "인천을 칙칙한 회색 톤 공장이 즐비한 서울의 변방 도시쯤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천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인천은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외세에 맞서 싸운 항전의 도시이고 개항기에는 외국 신문물이 국내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여기에 청동기시대부터 고려, 조선, 개항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역사.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라는 설명이다.그는 수년 전 60대 중반의 ROTC(학생군사교육단) 출신 단체 관광객의 해설을 맡은 적이 있다. 자유공원 맥아더장군 동상 앞에서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한창 설명을 하고 있는데 관광객 중 한 명이 장난삼아 '성냥공장 아가씨' 노래를 흥얼거렸다. 인천에 오니까 이 노래가 생각났단다. 1970~1980년대 군 복무 시절 행군할 때라든가 힘들면 성냥공장 아가씨 노래를 불렀단다.김씨는 일제강점기 우리의 누나와 어머니들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본인이 운영하는 성냥공장에서 힘들게 일했는데 이를 빗댄 노래라는 설명을 해줬다. 그 관광객은 노래에 그런 사연이 있는지 몰랐다며 다시는 이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김씨는 관광객 앞에 서면 인천을 알리는 전도사라는 자부심과 함께 강한 사명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송도국제도시.인천신항 등 시시각각 변모하는 인천의 역동성과 잠재력, 미래의 발전상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의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는 관광객 눈높이에 맞춰 해설을 한다. 무조건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해당 연령대의 표현이나 단어를 사용해 설명하기 때문에 인기 해설사로 통한다. 초등학생에게는 개그 소재를 섞거나 사극에 등장하는 배우처럼 연기해 아이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청소년.청년에게는 '도깨비' 등의 인기 드라마를 인용하고 뭔가 하나라도 얻어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 중장년층에게는 자유공원의 벚꽃놀이, 월미도 뱃놀이 등 인천에 대한 옛 추억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한다. 김씨는 "관광객들이 인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을 바로잡고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해설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17-04-25 21:23:32“인천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알리려고 합니다. 짠물, 성냥공장 등 단편적이고 부정적인 모습보다는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모습, 미래의 발전상까지 보여주겠습니다” 인천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는 김미영씨(50·사진)는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역사·문화유산이 다양하고 역동적인 도시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2009년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면서 비로소 인천의 진면목을 알게 됐단다. 김씨는 시티투어 차량을 타고 관광객에게 역사와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시립박물관, 선사박물관, 인천상륙작전박물관 등에서 붙박이 해설사로 일하기도 한다. 김씨는 “인천을 칙칙한 회색 톤 공장이 즐비한 서울의 변방도시쯤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천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인천은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외세에 맞서 싸운 항전의 도시이고 개항기에는 외국 신문물이 국내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여기에 청동기시대부터 고려, 조선, 개항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역사·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라는 설명이다. 그는 수년 전 60대 중반의 ROTC(학생군사교육단) 출신 단체 관광객의 해설을 맡은 적이 있었다. 자유공원 맥아더장군 동상 앞에서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한창 설명을 하고 있는데 관광객 중 한명이 장난삼아 ‘성냥공장 아가씨’ 노래를 흥얼거렸다. 인천에 오니까 이 노래가 생각났단다. 1970~1980년대 군 복무 시절 행군할 때라든가 힘들면 성냥공장 아가씨 노래를 불렀단다. 김씨는 일제강점기 우리들의 누나와 어머니들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본인이 운영하는 성냥공장에서 힘들게 일했는데 이를 빗댄 노래라는 설명을 해줬다. 그 관광객은 노래에 그런 사연이 있는지 몰랐다며 다시는 이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김씨는 관광객 앞에 서면 인천을 알리는 전도사라는 자부심과 함께 강한 사명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송도국제도시·인천신항 등 시시각각 변모하는 인천의 역동성과 잠재력, 미래의 발전상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의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는 관광객 눈높이에 맞춰 해설을 한다. 무조건 정보를 전달하는게 아니라 해당 연령대의 표현이나 단어를 사용해 설명하기 때문에 인기 해설사로 통한다. 초등학생에게는 개그 소재를 섞거나 사극에 등장하는 배우처럼 연기해 아이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청소년·청년에게는 ‘도깨비’ 등의 인기 드라마를 인용하고 뭔가 하나라도 얻어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 중장년층에게는 자유공원의 벚꽃놀이, 월미도 뱃놀이 등 인천에 대한 옛 추억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한다. 또 역사·문화유적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를 발굴해 관광객에게 알려준다. 김씨는 “관광객들이 인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을 바로잡고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해설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17-04-20 09:50:17【 인천=한갑수 기자】 인천시는 2015 세계 책의 수도 인천을 기념하고 정보 및 문화로부터 소외된 계층을 위해 녹음도서 및 점자도서를 제작·배포키로 하고 '책 읽어주는 목소리 기부사업' 기증식을 가졌다고 2일 밝혔다. 이번 녹음도서와 점자도서 제작은 노인, 시각장애인, 다문화가정 등 독서 소외자들에게 책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을 개선해 문화향유권을 다소나마 증진시키기 위해 기획됐다. 특히 2015 세계 책의 수도 인천을 알릴 수 있도록 인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선정, 고동희 부평아트센터 관장이 본인의 저작권을 기부한 '박달나무 정원', '성냥공장 아가씨' 등 2편으로 꾸며졌다. 이번에 제작된 2편의 녹음도서 및 점자도서는 인천지역 시각장애인 500명, 다문화가정 300가구, 전국 복지관 600개소, 전국 도서관 1600개소 등에 우편으로 배포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앞으로 유네스코 지정 2015 세계 책의 수도 인천을 통해 '책으로 하나 되는 세상(Books for all)'을 구현함으로써 시민 누구나가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책을 읽는 문화 선진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2015-04-02 08:30:1560년대 산업화 시절 성냥공장을 배경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창작 뮤지컬 '성냥공장 아가씨'가 관객들을 찾는다. '성냥공장 아가씨"는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의 노래가 유행가처럼 청년들 사이에서 급속히 번져나갔던 60~70년대에 성냥공장이 우리나라 산업화의 기초로 경제발전을 이끌어왔다는 데 의미를 둔 작품이다. 우리 어머니들과 누이들의 희생과 사랑을 간직한 귀중한 역사의 현장이었던 장소를 배경으로 그들의 삶의 애환을 그려냈다. 지난 2012년 초연됐던 '성냥공장 아가씨'는 인천 부평아트센터 상주단체인 극단 십년후가 창단 20주년을 맞이해 인천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기획·제작했다. 제30회 인천항구연극제 최우수 작품상과 제30회 전국연극제 인천 대표 출품작으로 선정됐던 연극 '화'를 뮤지컬로 각색했다. 오는 9월 개막을 앞두고 창작 뮤지컬 <성냥공장 아가씨>(제작 극단 십년후, 연출/각색 송용일, 극본 고동희, 작곡 최경숙) 포스터가 공개되었다. '성냥공장 아가씨'는 오는 25일부터 10월 19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공연된다. 전석 4만원. (032)514-2050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2014-09-02 15:18:56일제강점기 압록강의 뗏목.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그의 저서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개항 이후 조선에서 가장 놀라운 행보를 보인 외국상품으로 등유 못지않게 성냥을 꼽았다. 1880년대 중반 이후 개항장인 부산.인천.원산항 등 3개항을 통해 성냥이 본격적으로 수입됐다. 절반 정도는 부산항을 통해 들어왔다. 1884년에 1만4874그로스(1그로스는 12다발)가 수입되기 시작해 10년 후인 1893년에는 680%나 늘어난 21만8910그로스에 달했다. 성냥 수입량 증가는 당시 우리 사회의 개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냥이 들어온 것은 개항 이후인 1879년께다. 통도사 승려 이동인(李東仁)은 일본에서 성냥을 가지고 와서 왕실과 세도가 앞에서 자랑스럽게 불을 켜 보이며 그들의 호기심을 돋우었다고 한다. 보통 10개 내지 20개의 성냥개비를 한 다발로 묶어 필요할 때 수시로 하나씩 집어 들고 벽이나 돌에 그어 불을 붙였다. 그 후 우리나라에는 중국상인과 일본상인들이 자국의 성냥을 수입해 경쟁을 벌였다. 중국성냥을 '되성냥', 일본성냥을 '왜성냥'으로 불렀다. 그리고 1886년 양화진에서 유럽인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성냥이 만들어졌다. 여기서 제조된 성냥 60그로스가 처음으로 수출이 되는 기염을 보이기도 했지만 워낙 일본산 성냥이 대량으로 들어옴에 따라 결국 양화진성냥공장은 중국 천진으로 이전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성냥제조는 일제강점기인 1917년 인천에 세운 조선인촌주식회사에서 출발한다. 성냥제조용 목재는 대부분이 압록강 인근에서 벌목된 나무들로서 뗏목으로 운반돼 신의주제재소에서 가공이 된 것을 배와 기차 편을 이용해 인천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인천은 목재확보가 편리하고 서울이란 거대한 소비처를 배후에 둔 까닭에 우리나라 성냥공장의 시발점이자 본거지가 될 수 있었다. 이후로 전국에는 우후죽순처럼 성냥공장이 생겨났고 1970년이 되어서는 약 300개에 달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후반 일회용 라이터와 가스레인지의 등장은 마치 디지털카메라의 출현으로 코닥필름이 사양길로 걸었던 것처럼 바로 성냥공장에 직격탄이 됐다. 여기에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생산된 저가 일회용 라이터의 수입으로 더욱 경영을 어렵게 했다. 아직도 우리나라엔 2~3개의 성냥공장이 판촉용 성냥을 만들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부산 인근 경남 김해에 있는 65년이란 긴 전통을 가진 '기린표 성냥'의 경남산업공사다. 몇 년 전에 이 회사는 일부 기계를 떼 내어 해외에 처분을 했지만 1970년대 호황기엔 중동과 아프리카에 수출도 한 기업이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회사가 대체 어디에 기업정신과 가치를 두고 시대에 걸맞게 적자 사양산업을 계속해서 이끌어가는 것일까. 지난 2011년 일본 대지진 직후에 인천국제공항을 통한 성냥, 양초, 라이터 등 생필품의 일본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8800%나 폭증했다. 이것은 비상시국 일본에 긴급 공수돼야 할 물품이다 보니 항공화물로서 반출됐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우리는 성냥과 같이 시대에 뒤처진 제품에 대해서는 존재가치마저 잊고 산다. 그러나 지진 등과 같이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암흑천지가 된 세상에 무슨 첨단제품이 필요하랴. 오히려 사양산업이 만들어낸 기초 생필품이 더욱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가치를 지녔기 때문일 게다. 부산세관박물관장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2013-03-31 17:5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