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상공회의소는 22일 오전 부산롯데호텔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국제정세와 관련해 '한·미·일, 북·중·러 패권전쟁과 한국 기업의 생존 전략'이라는 주제로 제262차 부산경제포럼을 했다고 밝혔다. 동아시아 외교전문가로 활동 중인 우수근 한국동아시아연구소장이 강연을 한 이날 포럼에는 부산상의 정현민 상근부회장과 한국은행 김기원 부산본부장, 한국해양대학교 류동근 총장 등 주요 기관장과 지역기업인 17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우 소장은 미중 패권 전쟁의 현황을 살펴보고 글로벌 시장, 중국 진출전략 등 미중 패권 대립 속에서 지역기업과 경영자를 위한 실천 가능한 대처방안 등을 설명했다. 우 소장은 강연에서 "복잡한 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치밀한 준비는 지역기업들이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사항"이라며 "특히 대한민국의 달라진 위상을 잘 활용한 해외시장 진출 전략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경제포럼은 급변하는 경영환경 변화 속에서 지역 기업인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부산상의가 1996년 5월 창립한 이후 28년간 기업인들과 함께 성장해온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조찬포럼이다. bsk730@fnnews.com 권병석 기자
2024-05-22 18:24:04[파이낸셜뉴스] 부산상공회의소는 22일 오전 부산롯데호텔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국제정세와 관련해 ‘한·미·일, 북·중·러 패권전쟁과 한국 기업의 생존 전략’이라는 주제로 제262차 부산경제포럼을 했다고 밝혔다. 동아시아 외교전문가로 활동 중인 우수근 한국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이 강연을 한 이날 포럼에는 부산상의 정현민 상근부회장과 한국은행 김기원 부산본부장, 한국해양대학교 류동근 총장 등 주요 기관장과 지역기업인 17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우 소장은 미중 패권 전쟁의 현황을 살펴보고 글로벌 시장, 중국 진출전략 등 미중 패권 대립 속에서 지역기업과 경영자를 위한 실천 가능한 대처방안 등을 설명했다. 우 소장은 강연에서 "복잡한 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치밀한 준비는 지역기업들이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사항"이라며 "특히 대한민국의 달라진 위상을 잘 활용한 해외시장 진출 전략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부산경제포럼은 급변하는 경영환경 변화 속에서 지역 기업인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부산상의가 1996년 5월 창립한 이후 28년간 기업인들과 함께 성장해온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조찬포럼이다. bsk730@fnnews.com 권병석 기자 bsk730@fnnews.com 권병석 기자
2024-05-22 13:37:10"우리는 목표 달성을 위해 특정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현지시간) 리시 수낵 영국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공급망 확보를 강조했다. 2021년 취임부터 미국산 애용을 주장했던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겪으며 필요한 자원을 미국의 통제에 두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시작했다. 다른 선진국 역시 이에 동참했고, 자원으로 세계를 좌우하던 중국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격에 나섰다. ■美, 공급망 안정에 사활바이든 대통령은 수낵 총리와의 회동에서 팬데믹에 따른 공급망 마비로 산업이 멈추는 것을 보며 경제성장에 필요한 것을 어느 한 곳에 의지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그는 취임 당시 전기차, 재생에너지 등을 중심으로 첨단 친환경 경제 건설을 선언했다. 이에 필요한 배터리나 태양광 패널 등을 만들기 위해서는 리튬, 니켈, 코발트 같은 특정 광물을 확보해야 한다. 자연계에 매우 드물게 존재하는 17종의 금속 원소(희토류)도 마찬가지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지난해 2월 탄소중립 및 첨단산업에 필요한 50개의 광물을 '핵심광물'로 지정했다. 이러한 핵심광물의 국제적 수요는 2050년이면 2020년 대비 6배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F-35 전투기 1대에 들어가는 희토류 재료만 417㎏에 달한다. 미국은 1980년대만 하더라도 희토류 강국이었지만 1990년대 이후 중국 기업들이 제련기술을 확보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희토류를 생산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게다가 희토류 생산 과정의 막대한 환경오염을 감당할 수 없었다. 미국의 희토류 기업들은 대부분 파산하거나 중국에 팔렸고, 미국 기업들은 중국산 희토류를 수입했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과 갈등, 팬데믹 등으로 자원공급이 불안해지자 다시 자체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향후 5년 동안 3억2000만달러(약 4131억원)를 투입해 미국 내 광물지도를 만들기로 했다. 지난해 2월에는 국방부를 통해 미국 희토류 가공처리 업체인 MP머티리얼즈의 희토류 광산 개발에 3500만달러를 투자한다고 알렸다. 또 같은 해 통과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는 북미 및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생산한 희토류를 사용한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는 내용이 들어갔다. ■세계 곳곳에서 자원전쟁문제는 미국이 원하는 핵심광물이 미국 밖에 많다는 점이다. 전 세계 리튬은 주로 호주와 칠레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미국산 리튬 비율은 2021년에 세계 생산량 대비 1% 아래로 떨어졌다. 백금과 코발트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콩고민주공화국이 각각 70%를 생산하고 있다. 희토류는 2022년 기준으로 매장량 1억3000만t 가운데 4400만t(34%)이 중국에 묻혀 있다. 핵심광물은 광산 탐사부터 생산까지 평균 16.5년이 걸려 생산을 급히 늘릴 수 없다. 게다가 일부 국가는 핵심광물의 가치를 알아보고 실력 행사에 나섰다. 지난해 말 아프리카의 짐바브웨는 자국에서 캐낸 리튬을 자국에서만 제련하도록 제한했다. 멕시코는 지난 2월 리튬 광산을 국유화하는 법령을 통과시켰고, 칠레도 4월 발표에서 국영 리튬기업을 세운다고 예고했다. 동시에 칠레는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와 함께 리튬 시세를 통제하는 연합체를 구상 중이다. 치열한 자원경쟁을 감지한 미국은 지난해 6월에 유럽연합(EU)을 포함해 다른 10개국을 모아 '광물안보파트너십(MSP)'을 결성하고 핵심광물의 생산과 가공 과정에서 협력하자고 제안했다. 바이든은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도 중국 및 러시아에 맞서 핵심광물과 전략물자 공급망을 강화하자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EU는 지난 3월 핵심원자재법(CRMA) 초안을 발표해 미국처럼 핵심광물의 자체 조달 비율을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유럽 최대 리튬 생산국인 포르투갈은 지난달 31일에 대규모 리튬 광산 개발을 일부 허가하며 자체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패권방어 나선 中이미 희토류 시장을 쥐고 있는 중국은 다른 핵심광물까지 선점해 자원을 무기로 휘두를 생각이다. 중국은 2010년 당시 일본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영토분쟁을 벌이면서 희토류 수출을 막아 일본을 압박했다. 중국이 핵심광물 분야에서 앞서는 2가지 동력은 제련기술과 자금이다. 중국은 느슨한 환경규제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직접 캐거나 수입한 핵심광물을 매우 경제적으로 제련하고 있다. 지난달 뉴욕타임스(NYT)는 영국 원자재 컨설팅업체 CRU그룹 통계를 인용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망간 유통량의 95%, 코발트 73%, 흑연 70%, 리튬 67%, 니켈 63%가 중국에서 제련되었다고 전했다. USGS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70%가 중국산이었으며 2021년 기준 세계 희토류 제련의 85%가 중국에서 진행됐다. 아울러 중국은 제련을 넘어 핵심광물의 원천까지 통제할 계획이다. 중국은 2000년대 초부터 국영기업들을 앞세워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핵심광물 채굴에 집중 투자해 지분을 확보했다. NYT는 이미 중국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흑연의 78%, 코발트 41%, 리튬 28%, 니켈 6%, 망간 5%의 채굴을 장악했다고 전했다. 지난 5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기업들이 최근 2년간 약 20개 리튬 광산 지분을 확보하는 데 45억달러(약 5조8095억원)를 썼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중국의 해외 광산 개발이 순항한다면 2025년까지 전 세계 리튬 채굴량의 3분의 1이 중국의 영향력에 들어간다고 예상했다. 짐바브웨는 지난해 리튬 수출통제를 발표하면서도 미리 투자했던 일부 중국 기업을 규제에서 제외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광물·석유부는 지난 4월 중국 기업 고친이 아프간 리튬 개발에 100억달러(약 12조9100억원) 투자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3-06-26 18:05:02"중국 반도체 기업이 일반적으로 (미국에 비해) 뒤처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이 접근권을 가지게 된다면 충분히 따라올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이 최첨단 칩을 만들지 못하도록 계속 방해할 것이고 반도체가 국가정책, 무역전쟁, 분쟁 등 이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23 FIND·서울국제금융포럼'에서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는 "중국이 더 많은 진보를 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한 가지는 미국이 제한을 많이 걸어뒀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밀러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역사학 학사, 예일대에서 박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터프츠대에서 교수를 맡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저서 '칩 워'를 통해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반도체를 둘러싼 기술패권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했다. 기술과 국제정책 그리고 경제변화까지 종합해 엮어낸 이 책은 파이낸셜타임스의 '2022 올해의 경영서적'으로도 선정됐다. 먼저 밀러 교수는 "오늘날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종 제조기술, 시설, 소프트웨어 툴 등을 전 세계 공급망에서 가져와야 한다"며 현재 지정학적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배경을 짚었다. 30년 전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시스템을 바탕으로 헤게모니를 만들었듯 최근에는 반도체를 둘러싸고 이 같은 패권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버튼을 누르면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히는 미사일과 현대의 반도체는 연산력과 컴퓨팅 파워가 성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밀러 교수는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실제적인 위협으로 보고 있다"며 "그래서 이러한 경제·정치 의제 때문에 중국이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고 접근성을 가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현재 반도체 공급망이 대만해협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 세계적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세계 최첨단 시스템 반도체의 92%가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에서 생산된다. 밀러 교수는 "그래서 반도체 산업이 지정학적인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며 "특히 무기 경쟁과 연관이 있다"고 부연했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제재도 이의 연장선이다. 미국은 최근 인공지능(AI)용 GPU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대중국 제재를 강화해 가고 있다. 이에 대해 밀러 교수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것(반도체)이 있긴 하지만 최신형은 아니다"라며 "만약 공급망에서 단절된다면 방법을 찾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또 "공급망 문제뿐 아니라 글로벌 산업에서 중국의 역할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다만 이러한 미·중 갈등 상황에서 미국이 우위를 쥐고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 밀러 교수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놨다. 그뿐만 아니라 이 같은 견제로 타격을 입는 것은 비단 중국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제재로 인한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밀러 교수는 "현재 거의 모든 반도체 기업들이 이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미국의 GPU 설계회사 엔비디아도 대중 반도체 제재 발표 당일 판매량이 8% 줄었다"며 "이 비용을 어느 정도 나눠 가질 필요가 있고, 그 보상도 충분히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박소연 박신영 서혜진 김나경 이승연 김동찬 김예지 김찬미 최아영 정원일 성석우 기자
2023-04-19 18:26:191944년 7월,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국제통화체제인 브레튼우즈 시스템이 탄생했다. 미국 달러화 중심의 금환본위제인 브레튼우즈 1.0 체제다. 1971년 금본위제가 폐지된 후에도 전 세계는 50년간 미국의 신용을 기반으로 한,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인 '브레튼우즈 2.0 시대'를 살았다. 미국은 세계 규범과 질서를 세웠고, 첨단기술의 표준을 만들었다. 중국은 이 안에서 G2의 지위까지 올랐다. 이제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목도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금융 지정학(Financial Geopolitics)'을 주제로 오는 4월 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2023 FIND·서울국제금융포럼&서울국제A&D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이에 앞서 지정학적 변화에 대한 세계 석학의 견해와 분석, 지정학 리스크를 반영한 우리나라 5대 금융지주의 인식과 전략을 4회에 걸쳐 '금융지정학 시리즈'로 싣는다.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길핀은 다른 국가들 위에 군림하는 국가를 헤게몬, 즉 패권국이라 불렀다. 근대에서 패권은 군사력만이 아니라 생산력과 기술 진보를 포함한 정치경제학적 의미를 지닌다. 최근 100여 년간은 사실상 미국을 지칭했다. 미·중 무역 분쟁, 양국 반도체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표되는 현재 지정학 구도는 한 마디로 미·중 패권 싸움이다. 러-우 전쟁 1년이 지나고 중국은 러시아를, 일본은 우크라이나를 각각 방문하며 두 나라 간, 양쪽 진영 간 '분절'은 더욱 선명해졌다. ■반도체 잡아야 패권 잡는다 과거 미·소 간, 미·중 간 패권 전쟁이 이념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경제 안보다. 대표적인 게 반도체다. 반도체 기술의 역사와 미·중 반도체 전쟁을 담은 '칩 워(Chip War)'의 저자 크리스 밀러 미 터프츠대 교수는 22일 파이낸셜뉴스에 "반도체는 오늘날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기술"이라며 "컴퓨터와 각종 기기, 이 기기들을 연결하는 통신 네트워크까지, 모든 영역에 반도체가 쓰인다"고 설명했다. 경제사학자인 그가 반도체를 핵심으로 거론하는 이유는 군비 때문이다. 밀러 교수는 "현재 아시아에서는 위험한 군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지난 20년간 중국은 군비 지출을 급속히 확대해 왔고, 일본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했다"고 짚었다. 미국, 호주는 전쟁을 가정한 신규 방위 능력 확보에 투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반도체 전쟁의 승자가 국방과 경제 패권, 즉 경제 안보를 잡는다는 주장이다. 밀러 교수는 4월 19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2023 FIND·서울국제금융포럼&서울국제A&D컨퍼런스'에서 특별대담을 통해 참석자와 독자들에게 반도체 패권과 관련한 인사이트를 전달할 예정이다. ■지정학과 금융 국력이 강한 국가는 화폐의 힘도 강하다. 통화 패권국은 막대한 권력을 누린다. 국제통화체제의 규칙과 제도를 만들고, 국제통화를 발행한다. 국제통화는 국제무역에 수반되는 '결제 수단'이다. 결제는 '화폐'로 한다. 어떤 돈으로 어떻게 물건을 결제할지, 돈의 값은 서로 어떻게 설정할지 질서를 세운다. 이 과정에서 어느 나라가 더 많은 국제수지를 가져갈지가 결정된다. 국제통화에 대한 지배권은 세계 경제와 정치, 군사 분야의 패권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이다. 국제수지적자를 자국 화폐의 발행으로 메울 수 있어서다. 세금을 올리거나 구조조정 같은 고통스러운 국내 조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화폐 발행으로 생기는 인플레이션은 다른 국가로 수출된다. ■브레튼우즈 1.0과 2.0 미국은 통화 패권국이었고, 미 달러화는 오랫동안 기축통화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든 브레튼우즈 1.0 시대가 탄생한다. 기본은 금환본위제다. 미국만이 브레튼우즈 합의상 금 준비 보유액을 충족했기 때문에 회원국은 자국의 통화가치를 금이나 미 달러로 밝혀야 했다. 이때부터 미 달러는 국가 간 통화를 연결하는 기축통화,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개입에 사용하는 개입통화, 각국 정부 대외준비자산(외환보유고) 준비통화가 됐다. 달러 발행 남발로 1960년대 중반 미국의 국제수지적자와 달러 위기가 심각해졌고, 세계 각국이 변동환율제를 택하며 브레튼우즈 체제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달러는 석유를 통해 가치를 회복했다. 브레튼우즈 2.0 시대다. 석유 수출국들의 원유 가격 인상으로 오일쇼크가 발생했고, 미국은 산유국들이 원유 결제 대금을 달러로 사용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금의 자리를 석유가 메꾼 것이다. ■브레튼우즈 3.0 올까 2022년, 세계는 러-우 전쟁이라는 초유의 '분절화' 사태를 목도한다. 이는 국제 금융질서 변화의 서막이다. 대러 경제제재로 달러의 쓰임새가 제한되면, 새 통화질서가 출현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있다. 분절화로 인해 미 달러의 지배력이 반으로 약화하면, 신용 기반의 기존 통화질서가 무너지고 세계 금융은 파편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중국 위안화의 지위 변화가 주목된다. 러시아 쪽에 붙은 중국이 미 국채를 매각하거나 위안화를 찍어내 자체 양적완화에 나선다는 시나리오다. 중·러가 가스나 원자재 시장을 선점하면, 미국 등 상대 진영의 인플레이션 심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위안화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2023-03-22 18:13:19[파이낸셜뉴스] 오는 24일 개전 1년을 맞는 러˙우 전쟁이 표면적으로는 지정학적 패권을 둔 유럽 국가 간의 전쟁이었지만 그 여파는 세계 경제 둔화에 코로나 못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에너지 수급 불안정은 EU를 시작으로 전세계의 에너지 위기를 초래했고, 우리나라에도 '난방비 폭탄'이라는 결과로 일상까지 성큼 다가와서다. 여전히 전쟁의 확산과 장기화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전쟁 지난 1년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전망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왔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16일 서울 중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1년 평가와 전망'을 주제로 '2023 북방 세미나'를 열고 전쟁 경과와 세계 및 한국 경제의 대응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러˙우 전쟁 세계 경제에 하방 압력 김석환 한국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는 세미나 발표를 통해 이번 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친 첫 번째 영향으로 하방 리스크를 확대한 점을 꼽았다. 에너지 가격과 농산물 가격에 대량의 인플레이션이 초래됐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와 금융 제재는 코로나로 발생한 중국 봉쇄와 겹쳐 전 세계적인 공급망 불안정을 불러왔다. 이어 김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단기간 내 휴전 상태로 진입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특히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 탈피 문제 뿐 아니라 새로운 대안 공급의 중심인 중동을 둘러싼 공급 및 가격 안정성 문제가 2023년에 대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영욱 KIEP 유럽팀장의 의견도 같았다.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탓에, 대러 제재와 러시아의 에너지 보복은 유럽 경제에 직격탄이었다. 주요기관의 최근 경제전망보고서는 유럽의 2023년 경제성장률이 ‘0’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했고, 에너지 비용 급증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특히 KIEP는 유로존(3.0%→0.0%)을 포함한 독일(1.4%→-0.8%), 영국(4.0%→-0.2%), 프랑스(2.5%→0.3%) 등 주요국의 경제 전망을 전년대비 올해 크게 하향 조정했다. 러˙우전쟁 이전인 2021년 9월부터 에너지 가격이 급증하자 EU 회원국은 다양한 대응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11월까지 약 6004억유로의 정부 보조금을 지출했다. 독일이 가장 많이 3000억유로 수준을,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도 500억~1000억유로의 지출을 이미 단행했다. 장영욱 팀장은 "팬데믹으로 유럽 주요국의 재정적자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위기에 대한 대응책이 또 다른 재정부담의 가중으로 이어지면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전세계적인 긴축 기조와 충돌하며 불안정성을 키우는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피할 수 없는 '공공요금 폭탄'...대응책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3%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역대 최고 수출 실적을(6839억달러) 기록했지만 무역수지는 적자였다.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에너지 수입액만 동기간 784억달러가 늘어났다. 지난해 총 수입(7312억달러) 가운데 에너지 수입 비중은 28%로 평균 23% 대비 월등히 높은 수치였다. 이상열 KIEP 연구위원은 러시아의 대유럽 천연가스 공급이 전면 중단될 경우 최대 1억t의 유럽수요가 국제 LNG 시장으로 전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연구위원은 "세계 LNG 생산설비 이용률은 이미 88%에 달해 단기적 증산은 제한적"이라고 상황을 설명하며, "유럽의 높은 가격 프리미엄으로 국제 LNG 물량의 유럽 집중으로 전통적인 아시아 LNG 수입국가의 수급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했다. 천연가스 수급 불안정은 이미 대체 수요가 석탄으로 옮겨가며 전세계적인 석탄 가격 상향을 부추기고 있다. 석유자원의 경우에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OPEC 등 주요 산유국에 증산을 요청하는 한편 IEA 회원국의 전략비축유 방출을 주도하고 있으나, 러시아산 원유의 가격상한제 등 대러제재에 반대로 중국˙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늘어나는 등 기존 석유 수급 시장이 재편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석환 교수는 "전 세계에서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2개국 뿐이다"고 강조하며 특히 미국의 경우 "장기적으로 산유국이자 가스생산국으로서 에너지패권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첨단 기술 등의 투자도 IRA법 등의 영향으로 미국에 몰릴 것"이라고 전했다. 수급 불안전성이 확대됨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에너지 패권 경쟁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독일, 일본 등의 기존 선진국들은 경제적 위상과 경쟁력에 변화를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KIEP도 결국 에너지 저소비 교효율 시대로의 전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공요금을 올리지 않는 원가 반영 억제 정책은 고유가가 6개월 이내의 단기간에 그칠 경우 물가 안정을 위한 일시적 조치일 뿐 현재와 같은 장기적 시장개편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프랑스와 같이 석유 수요에 있어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위한 소득공제 등의 인센티브 제도 마련을, 가스와 전력에도 수요절감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 병행을 제안했다. 유럽의 사례와 같이, 수급 다변화를 꾀할 경우에도 일정 기간은 설비 증설에 따른 생산비용 증가가 반영될 것으로 내다봤다. 단 에너지요금 상승은 저소득층 , 영세사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소득 보전 중심의 지원 대책 마련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 기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는 10일 편집인협회 월례포럼을 통해 "취약계층 지원은 당연히 이뤄져야 하지만 이미 상승한 난방 요금을 추경으로 지원하는 것은 조삼모사다"고 일축한 바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6일 대정부질문에서 "화석에너지 수요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결국 신재생, 원자력과 같은 고급 에너지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lkbms@fnnews.com 임광복 이창훈 기자
2023-02-16 10:51:39[파이낸셜뉴스] 프랑스 보르도 와인에는 라벨에 멋진 범선이 그려진 와인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프랑스 보르도 생 줄리앙 지역의 그랑크뤼 클라세 와인 '샤또 베이슈빌(Chateau Beychevelle)'과 그라브 뻬삭-레오냥 지역의 그랑크뤼 클라세 와인 '샤또 말라르틱 라그라비에르(Chateau Malartic Lagraviere)'입니다. 베이슈빌은 1600년대 초 프랑스의 유명한 해군 제독이자 공작 지위를 가진 에페르논(Epernon)이 소유했던 와이너리의 와인으로 당시 배들은 그의 영지 옆을 지날때 배의 돛을 절반 정도 내려 존경과 충성심을 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어로 '돛을 내리다'라는 뜻의 '바수 부아(Baisse Voile)'에서 와인의 이름 베이슈빌이 왔습니다. 말라르틱 라그라비에르 라벨에도 노란색 바탕에 멋진 범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1700년대 영국 해군을 상대로 연승을 했던 마우레스 드 말라르틱 백작의 범선입니다. 말라르틱 백작은 캐나다와 모리셔스 제도의 식민 총독을 지낸 프랑스의 저명인사였습니다. 당시 식민도시였던 캐나다의 말라틱(Malartic)시는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도시입니다. 베이슈빌과 말라르틱 라그라베이르는 제국주의 시대 프랑스의 국력을 상징하던 귀족들이 소유했던 유명 와이너리였지만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일반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비운의 와이너리이기도 합니다. 사실 프랑스 시민혁명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프랑스 시민혁명, 근대 세계사를 바꾸다 근대 이후 바다의 주인을 떠올리면 누구나 영국의 '로열 네이비(Royal Navy)'를 먼저 꼽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시민혁명 이전에는 프랑스 해군이 영국 해군 못지 않게 강했습니다. 프랑스 해군은 1690년 영국 앞바다 비치헤드(Beachy Head)에서 영국 해군에게 궤멸적인 패배를 안겼으며, 1700년대 후반에는 미국 독립전쟁을 도와 체서피크(Chesapeake) 해전에서 영국 해군을 대파합니다. 영국은 이 패전으로 미국을 놓아주게 됩니다. 그러나 프랑스 해군은 나폴레옹 황제 시대인 1805년 트라팔가(Trafalgar) 해전에서 영국의 명장 넬슨이 이끄는 영국 해군에게 전멸을 당하게 됩니다. 거의 '학살을 당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의 뼈저린 패전이었습니다. 이 단 한번의 패전으로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나폴레옹 시대가 기울기 시작합니다. 영국 해군을 쉽게 물리쳤던 프랑스 해군에게 불과 십여 년 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1789년 프랑스는 시민혁명이 일어나 왕정이 무너지고 시민정부가 들어섭니다. 이들 혁명세력은 귀족을 악마처럼 여겨 닥치는대로 단두대에 올렸습니다. 어느 나라나 왕정시대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과 장교들은 귀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조리 처형당하거나 지위를 잃게 되자 프랑스 해군의 전투력이 급락했던 것이었습니다. 트라팔가 해전은 프랑스 해군과 영국 해군이 맞붙은 게 아니라 프랑스 해군이 전투를 피해 요리조리 도망다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그냥 학살당한 전투였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양으로 나오며 시작된 '대항해 시대'에 바다를 지배한다는 것은 바로 '세계의 주인'을 의미했습니다. 1492년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삼고 바다를 지배했던 시기에는 '아르마다(Armada)'가 있었습니다. 펠리페 2세가 편성한 무적의 해군 아르마다는 이름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1588년 자만에 넘친 모습으로 영국을 침범한 아르마다는 영국의 화공과 갑작스런 태풍에 생각지도 못한 참패를 당하고 주요 식민지이던 네덜란드마저 독립을 허용하게 되면서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스페인이 사라진 이후 1600년대 초 대양 해권을 쥔 나라는 네덜란드였습니다. 인도양과 대서양을 오가는 향신료 무역과 해양 물류를 휩쓸며 바다를 경제적으로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항해조례'를 만들어 네덜란드에 전쟁을 걸고 결국 1600년대 후반 네덜란드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립니다. 네덜란드가 운영하던 북아메리카 대륙 등 모든 식민지와 대양의 헤게모니를 차지한 영국은 이 때부터 제국주의 틀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유럽대륙에는 프랑스가 있었습니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강력한 영국의 경쟁자로 등장해 제국주의 패권을 놓고 1688년부터 100년 넘게 전쟁을 벌이지만 프랑스는 갑작스런 시민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주저앉고 맙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죠. ■유럽 이전엔 명나라가 바다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유럽이 대항해시대를 열며 바다를 지배한 것 같지만 앞서 바다를 호령한 '바다의 왕자'는 명나라 였습니다. 명나라는 3대 황제 영락제가 1405년부터 1433년까지 28년 동안 '정화 함대'를 띄워 인도양과 남아프리카 지역까지 샅샅이 훑고 다닙니다. 8000톤급 초대형 선박 60여 척과 소선 100여 척을 거느린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함대의 중심이 되는 기함은 '서양보선', '서양취보선' 등으로 불렸는데 그 크기가 길이 150m, 넓이 60m에 달했습니다. 1492년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할 당시 탔던 배의 길이가 30m 정도였고, 1800년대 세계 최강이던 영국 해군의 배가 2000톤급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큰 배였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항공모함 수십 척과 구축함 등이 인도양 앞바다를 휩쓸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 충격일겁니다. 가히 명나라 제국은 진정한 바다의 주인이었습니다. 당시 인도양은 세상의 모든 부와 물산과 기술이 집약돼 있던 중국과 인도가 있는 말 그대로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유럽이 1400년대 말 대양으로 나온 것도 바로 명나라가 지배하는 인도양으로 향하는 뱃길을 찾아 나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도양을 호령하던 압도적인 제국 명나라는 돌연 1433년 이런 헤게모니를 다 버리고 내륙으로 들어가 다시는 바다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 때를 기점으로 헤게모니가 서양으로 넘어가며 세계사의 흐름이 바뀌게 됩니다. 대양을 나와 아시아에 도착한 유럽 세력들은 주인없는 인도양 바다를 서서히 유린하며 제국주의의 꽃을 피웁니다. ■바다의 무법자 해적선, 그 안에는 민주주의 꽃이.. 근대 바다를 얘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습니다. 해적입니다. 바다에서 다른 선박을 공격해 재물을 탈취하는 무법자들이지만 해적은 18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나라가 돈 받고 면허를 내주며 관리하던 합법적인 군사조직이었습니다. 해양 경쟁이 시작되던 당시 어느 나라도 영토는 통제했지만 영해까지는 국가 권력이 닿을 수 없었습니다. 민간조직인 해적이 다른 나라 선박을 공격해 약탈을 해오니 정부는 수익금의 일부를 챙길 수 있는데다 상대국의 군사적, 경제적 힘을 약화시킬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해적들도 사익을 추구하면서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명분이 있어 모두가 만족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즉, 국가가 직접 권력을 휘두르면 해군이 되고, 사적인 집단이 폭력을 휘두르면 해적이었던 것입니다. 앞서 1588년 당시 스페인 아르마다를 패퇴시킨 영국 해군 지휘관이 그 유명한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였습니다. 드레이크는 당시 세계 최강의 해상국가이던 에스파냐 선박과 항구를 공격해 이름을 날린 해적입니다. 1579년에는 아메리카에서 금은보화를 싣고 오던 에스파냐 상선을 약탈하고 선장에게 약탈명세서까지 써줬을 정도로 대담한 인물입니다. 당시 영국은 백년전쟁에서 패한 후 변방의 작은 섬나라로 살던 시기입니다. 훗날 영국 엘리자베스 1세는 드레이크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고 스페인이 영국을 쳐들어오자 그를 해군 사령관으로 임명해 스페인 아르마다 함대를 막아냅니다. 영국을 '신사의 나라'가 아니라 '해적의 나라'라 비아냥 대는 말이 여기서 나온듯 합니다. 해적들은 바다에서는 정말 무서운 무법자였지만 그 내부에서는 어느 집단보다 민주주의를 중시하고 잘 지키는 조직이었습니다. 배 안에서 어떤 현안이 발생하면 늘 모든 승무원이 표결을 통해 처리했습니다. 또 약탈을 통해 재물이 생기면 n분의 1로 나눴습니다. 다만 선장과 조타수만 2배로 가져갔습니다. 또 전투 중 부상을 당하면 절대 버리지 않고 끝까지 치료를 해주고 배당도 똑같이 했습니다. 만약 죽게되면 그 부인에게 배당을 했습니다. 일반 배의 선원들은 해적선에 약탈을 당하게 되면 너도나도 해적이 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해적선은 인원이 많아 노동 강도가 훨씬 덜했고 민주주의와 평등주의가 지켜지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식회사, 보험의 시작도 배였다 대항해 시대 길이 30m의 작은 배에 의지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누빈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모험이었습니다. 대양의 거친 파도에 맞서 막막한 두려움을 안고 거친 바다로 전진한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을 겁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배 안에 있었습니다. 선원들은 테니스 코트 크기보다도 작은 좁은 공간에 수 개월 동안 갇혀있다 보니 괴혈병과 사투를 벌였습니다. 괴혈병은 신선한 음식을 먹지 못해 비타민C가 부족하면 생기는 병입니다. 배가 출발할 때는 깨끗한 식수와 여러 식자재를 가지고 나가지만 불과 몇 주가 지나면 모두 동나고 선원들은 그 이후엔 염장고기, 말린 생선을 먹었습니다. 신선한 야채를 먹지 못하니 대개 4주 정도가 지나면 입천장이 헐고 붓기 시작해 피가 나고 이가 빠지기 시작합니다. 이후 혈변을 보며 고열과 심한 갈증에 시달리다 갑자기 죽게 됩니다. 나중에 영국의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실어 선원에게 주기적으로 먹이면서 괴혈병의 공포에서 벗어났지만 그 이전까지 선원들에게 괴혈병은 수시로 마주하는 폭풍우와 거센 파도보다도 무서웠습니다. 먼 바다로 나가는 선원들이 온갖 위험에 시달렸지만 이를 뒤에서 후원하는 투자자들도 매우 큰 위험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유럽에서 출발한 배는 대서양으로 나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가 있는 인도양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너무도 길고 위험한 항로여서 배가 한 번 출항해 돌아오려면 적어도 2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물론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면 수익률이 적어도 400%가 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서양으로 떠난 배 중 절반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큰 돈을 들여 무역 선단을 꾸려 바다로 보냈는데 풍랑을 만나 배가 좌초되거나, 돌아오는 길에 해적에 약탈을 당하게 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고스란히 투자금을 다 날리게 되는 일 이었습니다. 이런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등장한 것이 주식회사입니다. 출항에 앞서 투자자를 모집하고 예치금 증서를 나눠준 후 나중에 배당을 하는 방식을 도입하게 됩니다. 이게 최초의 주식회사 동인도 회사입니다. 이어 해상무역의 손실 위험을 다수에게 분산시키는 보험이 등장합니다. 이렇듯 거친 대양을 떠 다니던 범선 속에는 대항해 시대 패권 전쟁과 온갖 경제사가 다 담겨 있습니다. ■와인에서도 대항해 시대의 강단이 느껴져 와인셀러에서 크리스토퍼 콜롬부스(Christopher Columbus),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와 함께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주인공의 얼굴이 새겨진 라벨의 와인을 꺼내듭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와인 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끼안티 클라시코(Castello di Verrazzano Chianti Classico)'입니다. 갑옷을 입고 있는 근엄한 얼굴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베라짜노 성의 주인이자 위대한 탐험가인 '지오반니 다 베라짜노(Giovanni da Verrazzano)'로 지금의 뉴욕과 북미대륙 동해안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낮선 이름이지만 미국 뉴욕에서는 평가가 완전히 다릅니다. 1964년 뉴욕 브루클린과 스테이튼 섬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가 만들어졌는데 시민들은 그의 업적을 기려 '베라짜노 대교'로 이름 지을 정도로 베라짜노에 대해 각별히 생각합니다. 매년 개최되는 뉴욕마라톤이 여기서 출발합니다. 산지오베제(Sangiovese) 95%, 까나이올로(Canaiolo) 5%를 섞어 만드는 베라짜노는 잔에 따라보면 산지오베제 와인의 전형적인 루비빛을 띠며, 감칠맛 나는 붉은 계열의 과실향이 아주 좋습니다. 입에 넣어보면 산미가 아주 좋으며 타닌이 적절하게 무게를 잡아줍니다.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등 국제품종을 블렌딩하는 보들보들한 와인과는 확실히 결이 다릅니다. 와인을 열자마자 입안에 조금 머금어도, 오랜 시간 디캔팅을 거쳐 마셔도 누그러지지 않는 독특한 심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구부러지지만 무너지지 않는 등산모자 속 얇은 철사같은 그런 강단이랄까요. 혹시 주변에 새로운 도전에 맞서 새 출발을 하는 지인이 있나요. 대항해 시대의 숨결이 담긴 와인을 선물해 응원하면 어떨지요.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2023-02-05 13:03:22[파이낸셜뉴스] 미중 패권 경쟁 격화로 시장의 가격결정 기능이 훼손되면 각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올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이어 대만 등 아시아 역내 위험 고조, 이란, 북한 등 기타 변수까지 갈등이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28일 삼성증권 지정학 분석팀은 2023년 7대 지정학 위험 보고서에서 이같이 진단했다. 유승민 팀장은 보고서에서 "냉전체제 붕괴 이후 존중받던 자유주의적 시장 질서가 훼손되면서 시장의 가격결정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이 약화하면 자산 가격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상승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시장 간, 지역 간 그리고 기업 간 차별화 심화로 이어진다고 그는 봤다. 유 팀장은 "이런 변수들은 각국의 인플레 압력을 구조적으로 지속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新규범 수립·진영화 갈등 본격화 유 팀장은 올해 미-중 패권 경쟁을 중심으로 다음 7대 지정학 위험이 나타날 걸로 전망했다. 우선 국제질서 측면에서는 미·중 패권전쟁에 따른 신(新)규범 수립과 진영화가 본격화될 것으로 봤다. 미국이 UN, 국제통화기금(IMF) 등 수십 년간 지속되던 기존 규범이 경쟁국인 중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를 견제할 새로운 규범을 수립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 예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들었다. IPEF는 일반적인 FTA와 달리 '경제 안보 플랫폼'의 성격을 지향하고 있다. 유 팀장은 "중국도 이에 맞서 반미(反美) 진영화를 추구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양 진영의 반발과 갈등이 점차 표면화되고, 반대진영에 대한 규제와 압박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기업 입장에선 시장 축소를 의미하며, 반대진영 소비자들의 보이콧, 자원민족주의 발흥에 따른 원자재 조달의 어려움 등의 위험에도 맞닥뜨릴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유 팀장은 "미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국가들과 연대를 통해 글로벌 규칙과 관행(rules and practices)을 수립하려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이 경우 금융시장에서는 경제 이외 변수의 영향력 확대로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北·이란, 지역 긴장 고조 변수 산업 부문에서는 패권 싸움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첨단기술의 통제와 공급망 재편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시아 역내에서는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우발적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우려됐다. 다섯 번째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변수로는 이란과 북한이 지역 긴장을 고조시킬 변수로 지목됏다. 유 팀장은 "이런 지정학 위험의 구조적 상승, 경제보다 안보를 중시하는 등의 지경학(Geo-economics) 환경은 둔화가 우려되는 내년 글로벌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삼성증권 지정학 분석팀에 따르면 금융시장은 경기 호황기보다 후퇴기에 지정학 위험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유 팀장은 "경제의 질서 변화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이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라며 "하반기 이후 기대되는 글로벌 경제의 회복 국면에서 금융자산의 기대수익률을 제한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2023-01-27 15:23:45[파이낸셜뉴스] 차기 집권여당 당대표 도전을 공식화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18일 정부의 칩4(미국 주도의 한국·미국·일본·대만 반도체 동맹) 참여 의사에 대해 "잘한 결정"이라며 기술 패권전쟁에서 초격차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로서는 칩4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할 도리가 없다. 전쟁 중에는 빠르고 정확한 판단과 결단이 승패를 결정한다. 기술패권전쟁도 마찬가지"라며 정부의 칩4 참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 16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 주도의 4개국 반도체 동맹인 '칩4'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데 대한 반응이다. 안 의원은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을 보면 설계 기술은 미국, 소재·부품 기술은 일본, 메모리 반도체 기술은 한국, 파운드리(수탁생산) 기술은 대만이 우위에 있는 연쇄적 분업 구조다. 장비 분야 기술도 미국, 일본, EU의 기술이 우리를 앞서 있다"라며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칩4 참여로 대(對)중국 수출이 감소해 매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칩4 불참은 아예 독점 상권에서 쫓겨나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것과 같다"며 칩4 참여로 인한 실보다 득이 더 많다고 짚었다. 안 의원은 과학기술 중심의 경제안보동맹이라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세워지고 있다며 리더의 정확한 판단, 빠른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 상황은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유리다리 건너기와 유사하다. 한 번만 선택을 잘못해서 강화유리가 아닌 일반유리를 밟으면 바로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이라며 "매 순간 정부·여당이 과학기술 국제질서에 대한 정확하고 빠른 판단을 내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안 의원은 당정이 앞으로도 중국의 정책 변화에 현명하게 대응하고, 칩4 내에서 우리나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초격차 기술 확보라는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저도 제가 가진 모든 능력을 쏟겠다"고 공언했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기자
2022-12-18 15:00:13양향자 의원의 첫인상은 묵직했다. 표정엔 초선답지 않은 여유로움이 묻어있었다. 인터뷰를 하다보니 여상 졸업후 삼성전자 입사, 삼성그룹 역사상 첫 여성출신 임원 등 '화려한' 꼬리표가 괜히 따라붙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드러운 외모에서 뿜어져나오는 내공은 견고하고 당당했다. 기자가 지난 25일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반도체 성공신화의 주역'이라고 첫 마디의 운을 떼자 엄지와 검지를 착 붙여보이며 "반도체 관련 30년 일하고 공부했는데 아직 요만큼 밖에 모른다"는 겸손함이 돌아와 좀 뻘쭘해졌다. 우선 반도체를 접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운명인 듯 싶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당시 성향조사를 했는데 자연계 99%이상이 판정됐다고 했다. ■꿈의 첫 직장 삼성전자 반도체회사 어릴적 꿈은 수학이나 물리를 가르치는 대학교수였지만 어려운 집안형편과 지병으로 앓아누워계신 아버님을 대신해 어떻게든 취업전선에 뛰어들려고 고민하다 광주여상으로 진학했다. 아버지는 급기야 고1때 돌아가시고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고3때 담임선생이 진로를 권유해주셨는데 여상 특성상 많이 가는 은행이나 기업이 아닌, 바로 이름도 생소한 삼성전자 반도체통신주식회사였다. 삼성전자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다. 1985년 11월 삼성전자 기흥연구소 반도체 메모리설계실 연구보조원으로 입사했다. 말이 직원이었지, 주산, 타자에 복사하고 커피타는 잡일이 주 업무였다. 호칭도 '미스 양'이었다. 당시 기업문화가 남성 위주에다 학력차별이 심했던 만큼 여상을 졸업한 젊은 양향자에게는 모든 게 낯설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훗날 반도체 전문가로 키운 게 바로 조직의 편견과 차별이었다. 이 때 연구원들이 "미스 양"에서 "양향자씨"로 호칭을 바꿔 부르게 된 일화가 있다. 당시 반도체는 한국에겐 미개척 분야로 생소한 개념이었다. 일본이 단연 글로벌 최고 수준이었다. 당연히 사내 회의자료는 일본어투성이였다. ■미스양에서 양향자씨로 호칭 변경 양 의원은 "회의 때마다 놓는 자료가 다 일본 페이퍼인데 연구원들이 관심이 없더라"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여고 시절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잠시 배웠지만 반도체 논문을 번역하기엔 턱도 없었다. 서투르지만 사전을 찾아 일일이 우리말로 번역한 자료를 놨더니 그때부터 "양향자씨"로 호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고졸사원 등 편견과 차별로 번번이 퇴짜를 맞는 우여곡절끝에 사내 강의를 신청, 3개월만에 일본어 3급 자격증을 가장 먼저 따는 열정도 보였다. 당시 메모리설계팀장이 바로 양 의원 멘토였던 임형규 책임연구원이다. 20대 초반 신입직원이 일본어 번역을 어느정도 하자 임 팀장이 팀회의 참석을 허용했다. 임 연구원은 이후 삼성전자 사장과 SKT 부회장을 역임했다. 고졸 새내기 직원인 양향자를 14년간 성장시켜 장래 임원으로 키운 주역이다. 양 의원은 "임형규 회장님이 저의 첫 보스였다"고 했다. 주경야독의 열정으로 일본어 자격증을 딴 22세의 양향자는 실력을 인정받아 1988년 일본의 반도체 권위자인 하마다 시게타카 박사 방한 때 무려 1주일이나 통역과 가이드를 맡기도 했다. ■정치인 양향자 화려한 입성 정치인 양향자는 지난 2016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인재 케이스로 발탁됐다. 당시 입당 소감을 보면 기업가 양향자의 담대한 도전적 인생이 고스란히 베어 있다. 양 의원은 "학벌의 유리천장, 여성의 유리천장, 출신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모든 걸 다 바쳐 노력했지만, 청년들에게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며 "오늘 열심히 살면 정당한 대가와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스펙은 결론이 아니라 자부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고비때마다 고졸, 여성이라는 한계와 높은 진입장벽에 굴하지 않고, 오로지 노력과 열정, 끈기로 버텨온 만큼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면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도 일에 파묻혀 지내다보니, 1991년 첫 딸을 낳기 전날까지 일을 계속했다고 한다. 출산 이후에도 제대로 산후조리를 못한 채 100일도 안된 아이를 안고 회사에 가기도 했다. 얼마나 일을 했던지 태교가 곧 컴퓨터 키보드 소리였다고 한다. 아이가 울고 보채더라도 키보드 소리가 나면 어느새 조용해졌다는 것이다. 기자는 순간 웃어야 할 지 다소 난감했지만, 양 의원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미래인재 육성과 K-칩스법 통과 주력 양 의원은 요즘 반도체 미래 인재 육성과 반도체특별법 국회 통과에 꽃혀 있다. 양 의원은 정치권의 낮은 관심을 아쉬워했다. 그는 "반도체만큼 정직한 게 없고, 웨이퍼만큼 정직한 게 없다"라며 "삼성이 글로벌 전쟁터에서 30년간 1등하고 있는 메모리 성공신화를 배우려는 정치인이 거의 없더라"로 꼬집었다. 양 의원은 반도체 미래 인재 육성을 위한 마스터플랜의 부재를 비판했다. 양 의원은 "미국의 마이크론이 삼성전자를 (기술력 등에서) 쫒고 있는데 굉장히 위험하다. 이유는 인재가 없어서다"고 힘주어 말했다. 무엇보다 교육부가 반도체 관련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종합청사진을 설계하고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을 조속히 세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양 의원은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의 TSMC가 저렇게 클 수 있었던 건 창업주인 모리스창 회장이 미국 기업에서 일하면서 비메모리반도체 시장이 더 커질 것이란 걸 미리 알았던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는 모순극복의 역사" 특히 미·중 반도체 패권 다툼이 가속화되는 지금이 대한민국에겐 위기이자 기회라고 봤다. 그는 "미국이 한국과 대만과 반도체 동맹을 맺어 전세계시장 장악에 나섰는데 대만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불안한데 이게 삼성전자에게 기회를 준다고 본다"라고 전망했다. 최근 미국 주도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의 한국 가입여부와 관련해선 "미국이 중국 제재할 때 한국은 기회가 될 수 있어. 그래서 칩4 당연히 할 수 밖에 없는 거고. 그래도 중국시장과 전략적으로 동반자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 의원은 반도체를 '모순 극복의 역사'로 규정한다. 집적도는 키워야 하는데 면적은 줄여야 하고, 속도는 빨라야 하는데 전력소모를 최소화해야 하고, 성능은 엄청 좋아야 하는데 가격은 싸야한다는 것이다. 이래야 '초격차'가 가능하다는 게 양 의원의 지론이다. '초격차'(超隔差)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을 함축하는 단어다. 기술 격차에 '초(超)'라는 접두어를 붙인 것으로 지난 2009년부터 삼성내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양 의원은 "격차는 기술자의 품격에서 나온다. 기술자의 품격은 기술자의 철학에서 비롯된다"며 "초격차는 익숙함과의 결별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삼성만의 높은 기술력이 수십년간 메모리분야 세계 1위를 굳건하게 유지시켜 주고 있지만, 기술·인재·투자를 소홀히 한다면 언제든지 따라 잡힐 수 있는 게 글로벌 반도체시장이라는 얘기다. ■여야 의원 30명 초당적 공동서명 발의 국민의힘 반도체특별위원장인 양 의원은 이달 초 미국과 유럽연합, 일본 등이 반도체 지원법에 대응하는 한국형 K-칩스법을 발의했다. 반도체 특위가 출범한 지 불과 두달만의 성과다. K-칩스법은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특별법 개정안'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으로 구성됐다. 법안에는 여야 의원 30명이 서명했다. 골자는 신속한 전략산업 특화단지 조성, 예비타당성 조사면제 범위 확대, 인·허가 처리기간 단축, 세액공제 상향 등 다양한 행·재정적 지원내용이 폭넓게 담겼다.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를 경제외교, 안보외교로 설정한 것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줬다. 그는 "7년전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반도체가 외교고 안보다'라고 외쳤는데 윤석열 대통령도 똑 같이 강조하더라"라고 했다. 내친김에 국회에 아예 '미래첨단산업육성을 위한 국회 상설 특위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양 의원은 "반도체특위 역할은 반도체사업 강화를 위한 국가 대개조산업"이라며 "교육의 판을 새로 쨔야하고, 기술강국을 향한 인재개발의 로드맵도 세우는 등 국가 시스템을 바꾸는 거다"라고 말했다. 양 의원은 인터뷰 내내 교육 개혁과 인재 육성, 국가대개조를 통한 반도체 기술력 제고 등을 강조했다. 간간이 도표를 곁들여 가며 지난 수십년간의 반도체 글로벌시장 판도 변화와 추이를 설명하면서 K반도체가 가야할 미래 좌표를 그려내기도 했다. 인터뷰 도중 휴대폰으로 연신 전화가 걸려오고, 모 단체장은 지역내 반도체 산업 육성과 관련한 민원을 들고 깜짝방문하기도 했다. 대학과 정부부처에서 특강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그에게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는 늘 반도체로 귀결됐다. 그는 끝으로 "제가 반도체 특위하면서 여론의 관심은 반도체가 아니라, 민주당 출신이 어떻게 국민의힘 특위를 맡았느냐 하는데 있었다"며 "반도체는 초월이다. 정파를 초월하고 지역을 초월하고 계층을 초월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 양향자 의원 주요 약력 △55세 △전남 화순 △광주여상 △한국디지털대 인문학 학사 △성균관대 대학원 전기전자컴퓨터공학 석사 △더불어민주당 미래전환 K-뉴딜위원회 부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반도체기술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제21대 국회의원(무소속/광주서구을) △제21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국민의힘 반도체산업특별위원회 위원장 ming@fnnews.com 전민경 기자
2022-08-28 18:5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