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집중호우로 인해 방벙창이 뜯긴 한 반지하 가정집. /뉴스1
[파이낸셜뉴스] "평생 임대주택에 살면서 애 낳으라고요?" 한 2030 직장인이 내뱉은 한탄이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2·4분기 역대 최저(0.75명)로 떨어지자 정부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출산율을 높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2030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힘겨운 입시·취업 경쟁, 높은 집값 등 우리나라가 구조적으로 아이 낳고 알콩달콩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기 어려운 환경이됐다는 지적이다. 청년이 직장 구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집값이 급등해 갈수록 결혼·출산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혼인 건수도 2016년 30만 건 붕괴 후 2021년 19만2500건으로 급감했다. 이에 따라 요즘 청년들은 결혼·출산 지연, 육아불안 등에 시달리고 있다. 또 뒤늦게 출산해도 은퇴 이후 닥칠 자식들 대학학비, 결혼비용 지원 등을 생각하면 미래가 막막하고 노후준비도 어렵다는 것이다.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재난불평등추모행동 관계자들이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예산 대폭 삭감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혼 늦은 부모 출산 감소…육아부담 커져
5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통계청 '2021년 출생 통계'에 드러난 요즘 청년층 세태를 보면 늦게 결혼하고, 결혼 2~3년만에 첫애를 출산하고 있다. 출산하는 산모(母)의 평균 출산연령은 33.4세, 부(父)의 평균 연령은 35.9세로 해가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부모의 나이가 많아질 수록 출산은 감소할 수밖에 없고, 육아도 어려워진다.
첫째아 출산연령도 32.6세로 이전 부모세대가 20대 출산이 다수였던 것에 비하면 크게 후퇴했다. 20대 여성은 갈수록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 20대 후반 모(母)의 출생아 수는 전년대비 5000명 줄었고 30대 초반 모(母)의 출생아 수도 4000명 감소했다. 부(父)의 연령별 비중도 30대 후반이 38.4%로 압도적이었다. 부(父)의 평균 연령은 35.9세로 10년 전보다 1.7세 상승했다.
만혼과 늦은 출산으로 난임부부가 늘어 인공수정, 시험관 시술에 따른 다태아도 늘었다. 총 출생아 중 다태아 비중은 5.4%로 전년보다 0.5%p 증가했다.
40대에 출산한 한 직장인은 "최근 승진하면서 직장 일이 늘었는데, 낮에는 일하고 퇴근후와 주말에는 아이와 씨름하느라 체력적으로 부친다"며 "아이가 대학교에 들어갈 때쯤이면 이미 환갑을 지나 은퇴한 나이인데, 앞으로 학원비뿐 아니라 대학교 등록금, 결혼준비 등 막막하기만 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자료:통계청
집값상승에 고물가 강타…"월급만 제자리" 한숨
살인적인 집값과 고물가 속 월급은 제자리걸음이어서 삶의 질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5년간 집값이 2배 올라 2030 취업생들은 자력으로 서울에서 내집마련이 불가능해져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소박한 꿈도 사치처럼 느껴진다.
2030이 취업하고 서울에서 내집마련을 하려면 월급을 한 푼도 안쓰고 17.6년을 몽땅 모아야 한다. KB국민은행 리브온의 소득 분위별 PIR(Price to Income Ratio) 통계를 보면 6월 3분위 소득 대비 3분위 집값 비율은 17.6이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금리인상과 경기하강 등으로 집값이 하락세지만 대출 이자가 오르면서 여전히 서울에서 내집마련은 '하늘의 별따기'다.
문 정부 때 서울 재건축 재개발이 막혀 중산층이 구입 가능한 서울 아파트 재고량은 올해 2·4분기 기준 3만8649가구로 직전 분기대비 1793가구 증가에 그쳤다. 이는 2년 전(21만311가구)보다 17만가구 이상 줄어든 것이다. 금리가 단기간 급등하면서 주택 대출 이자부담이 커져 중산층 구매 여력을 악화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2·4분기 은행 평균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3.95%로 2013년 1분기(4.07%) 이후 9년 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와 주택가 모습. /뉴스1화상
'집값 상승하면 출산율 떨어져' 수치로 확인
이에 따라 일부 청년들은 정부가 선심쓰듯 찔끔 주는 복지혜택을 믿고 최소 20년 이상 뒷바라지 해야되는 아이를 낳기는 어렵다고 했다. 또 임대주택을 권하는 정치인들은 위선적이라고 반발했다.
한 취준생은 "자신들은 강남아파트 살면서 우리는 임대주택 들어가서 살라고 부추기는 정치인들을 보면 위선의 끝이 어디인가라는 생각밖에 안든다"면서 "정부의 얄팍한 복지를 믿고 낳은 자식도 결국 나처럼 될 가능성이 높은데, 자식에 죄를 짓는 기분이 들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실상 젊어서 임대주택에 들어가면 향후에도 임대주택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평생 일할 수 있는 나이를 30~55세 정도 잡으면 25년 가량이다. 서울에서 내집마련 하려면 월급을 한 푼도 안쓰고 17.6년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생활비, 아이들 교육비 등에 쓰고 남은 돈으로 집을 마련한다는 것이 어렵다. 현재 2030은 부모보다 가난해지는 첫세대인 것이다.
2030 "'찔끔 복지' 믿고 출산은 어려워"
실제로 집값이 상승하면 결혼, 출산율도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특히 무주택자일수록 출산이 더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주택가격이 100% 상승할 때 8년간 출산 인원이 0.1∼0.3명 감소했다"며 "2021년 기준으로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 2013∼2019년 사이 주택 가격이 100% 상승할 경우 혼인했을 확률은 4.0∼5.7%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주택 매매, 전셋가격이 장기 누적된 효과는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현재 2030은 부모의 주택이나 재산을 물려받지 않고 내집마련의 꿈을 이루기는 어렵다. 자가 주택을 구하지 못하면 부모의 집에서 독립하지 못하는 캥거루족이 되거나 민간임대(전·월세), 공공임대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이 밀어붙인 부동산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으로 민간임대도 만만치 않다. 집주인이 계약갱신청구권으로 4년전 시세였던 전월세를 크게 올리면 세입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빌라나 월세로 내몰릴 수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직장인 대부분이 씀씀이를 줄여도 내집 마련하는데 평생을 소모할 수 밖에 없고, 국민연금도 불안해 노후준비가 덜 되면 은퇴후가 막막할 수 밖에 없다"며 "내집이나 자산을 모으기 어려운 2030은 혹시 아프거나 사고로 일을 할 수 없으면 더 답이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lkbms@fnnews.com 임광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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