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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프리미엄은 옛말" 16개월간 퇴사자만 120여명, 부산이전 논란에 '이직 러쉬'[출근길money]

임금피크 제외 작년부터 올 4월까지 퇴사자 128명
퇴사자 속출에 금융권서도 '산은 프리미엄' 옛말
3일 국토부 이전 공공기관 고시 후 직원 불만 고조
野 정무위 "산은법 개정이 먼저"라며 사실상 반대


"산은 프리미엄은 옛말" 16개월간 퇴사자만 120여명, 부산이전 논란에 '이직 러쉬'[출근길money]
산업은행 노동조합원들이 1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가 추진하는 산은 부산이전 계획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2023.3.10 산업은행 노동조합 제공.
[파이낸셜뉴스] #. 이전대상 공공기관으로 지정되고 나서 5급 중심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다 원서 쓰고 있고, 원서 안 써도 다들 불안해 한다.
#. 늦었지만 나가야겠다. 먼저 나간 동기들 보고 섣부른 판단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이직 준비한다.
#. 거래처, 고객 전부 서울에 있는데 왜 부산으로 가야 하는 건지...이전대상 기관 고시 보고 우울하다. 잠도 안 온다.
지난 3일 국토교통부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심의를 거쳐 산업은행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고시한 후 산업은행 직원들이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린 글이다. 지난달까지 16개월간 퇴사자가 128명에 달하는 가운데 이전 기관 고시로 이직 행렬이 이어질 전망이다.

'산은 프리미엄'이 있었던 사모펀드운용사(PE) 취업시장에서도 이제는 공급 급증으로 인한 '산은 디스카운트'가 벌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행정 절차가 속속 진행 중인 가운데 원내1당 더불어민주당과 산은 노동조합의 반대로 최종 관문인 산은법 개정까지는 여야 간, 노사 간 진통이 예상된다.

'산은 프리미엄'은 옛말 '산은 디스카운트'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임금피크 등을 제외하고 자발적으로 산업은행을 퇴직한 직원 수는 매년 늘고 있다.

지난 2021년 46명에서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본격 공론화된 2022년 97명으로 급증했고 올해 4월까지 퇴사자만 31명에 달한다. 지난 3일 공공기관 이전 고시 후에는 산업은행 블라인드에 퇴사를 결심했거나 고민 중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전에는 산업은행 경력자라고 하면 투자은행(IB), 벤처캐피털(VC)과 사모펀드 운용사(PE)에서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산은 퇴사자끼리도 경쟁하고 있다"라며 '산은 디스카운트'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산은 노조 관계자는 "급여나 복지 등 근로조건이 지금보다 좋지 않은데도 옮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라고 전했다.

문제는 이직 행렬로 인한 '핵심인력 유출'이다.

산은 노조는 지난달 27일 '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부당성' 자료를 통해 "부산 이전 공약 발표 이후부터 퇴사자가 급증해 산은 내부 인력 운용에 심각한 어려움이 발생하는 등 기관 역량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유사한 사례로 2016년 전북 전주로 이전한 국민연금의 사례를 들었다. 국민연금에서도 전주 이전으로 퇴사자와 입사 포기자 급증으로 고충을 겪는 점을 볼 때 산은 또한 핵심인력 유출이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노조와 민주당에서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으로 인한 비효율과 역할 약화 문제도 지적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시장형' 정책금융기관으로 기업대출과 벤처투자 등 기업금융 분야에서 민간 금융사와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하는데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비효율이 생긴다는 점이다.

국회 정무위 소속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현안 질의에서 "산은 거래 기업의 69%가 수도권에 있어서 본점 이전으로 산업적인 시너지 효과가 있을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벤처투자 플랫폼(NextRound) 등 산업은행의 각종 기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점을 고려할 때 지역균형발전 효과보다는 소통 비효율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수도권 금융 격차 해소vs 지방 기업 금융지원

정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금융 격차를 해소하고 특히 동남권 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는 부산 이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토부는 이전 고시를 통해 "금융 관련 기관이 집적화돼 있는 부산으로 이전해 유기적 연계·협업과 시너지 효과 창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각 격차 해소를 위해 지방은행 지원을 확대하고 지방 소재 기업에 대한 가산금리 인하 등 금융지원을 확대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맞서고 있다.

산은은 이달까지 '산은 정책금융 역량 강화 방안 마련을 위한 컨설팅'을 마무리하고 국회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부산 이전을 위한 계획을 금융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금융위가 이 계획을 국토부에 제출한 후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심의·의결, 국토부 승인을 받으면 산은 이전에 관한 행정절차가 마무리된다.

행정 절차가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최종 관문인 산은법 개정은 복병으로 남아 있다. 현행 산업은행법은 산은 본점 소재를 '서울특별시'로 규정하고 있어 법 개정이 필수적이다.
산은 부산 이전이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된 만큼 여당에서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야당에서는 노사 간 협의와 이전 효과와 절차를 따져봐야 한다며 사실상 부정적인 입장이다. 노조의 반발도 여전하다.

산은 노조 관계자는 "본점 거래처와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 등을 차질 없이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