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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의 언어

[기자수첩] 금융의 언어
"정부는 조달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이자로 15.9%를 받아야 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터뷰로 만났던 한 대표는 정부의 '소액생계비대출' 사전 접수를 앞두고 해당 사업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높은 신용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니까, 금융과 복지는 다르니까.' 곧바로 내놓으려던 반박을 이내 삼켰다. 그는 "담보 없이 저신용자들에게 돈을 빌려줬지만 90% 이상이 제때 갚았다"며 말을 이었다. 당장 3만원, 5만원이 필요해 절실하게 손을 벌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설명에 머리가 멍해졌다.

하루는 이런 분석도 접했다.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비교적 자금력이 받쳐주는 제1금융권에서부터 우량한 상품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제2금융권 등이 가져간다. 문제가 생겼을 때 외곽에서부터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은 애초 예상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다.

금융은 냉정하다. 경험에 기반한 '숫자'로 말하기 때문이다. 자금을 공급하려는 개체나 조달하려는 개체나 그들에 대한 위험도를 모두 '값'으로 치환하고, 취약한 이들에게 더 높은 책임을 지도록 한다. 물론 자체적 신용평가모델(CSS) 개발로 '신파일러'를 담으려는 노력이 수반되고 있지만 아직 기존 틀을 내려놓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중·저신용자 포용을 목표로 출발한 인터넷은행마저 평균 신용점수가 900점대에 이른다는 게 그 대표적인 예시다. 수치는 쉽고 안전한 근거가 돼 관행을 교정할 필요성을 낮춘다.

하지만 신용점수, 자본력 등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기준이 주 언어로 통한다면 악순환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신음하는 취약 차주, 금융사 등 동심원의 가장 바깥까지 포용하기 위해서 경기가 급반전해 활황을 되찾는 것 외 달리 방법이 없다.

금융권에서는 최근 각종 부실 우려가 피곤하리만치 쏟아진다.
2금융은 물론 1금융에서도 연체율이 나날이 오르고, 건전성 위기에 부딪힌 금융사는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문을 걸어 잠근다. 뾰족한 대안 없는 경고등이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어쩌면 정형화된 방정식을 깨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 그게 비단 금융의 형태는 아닐 수 있어도 말이다.

seung@fnnews.com 이승연 금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