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수’(감독 류승완)은 1970년대에 있었던 실화를 소재로 가상의 도시 군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의 조화, 음악 등이 예상할 수 있는 평범한 내용 전개에 편안함과 즐거움을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작품 속에서, 장도리(박정민 분)가 밀수한 보석들을 독차지하려고 해녀들에게 총으로 겨누면서 협박하다가 바다에 빠집니다. 이때 춘자(김혜수 분), 진숙(염정아 분) 등의 해녀들은 장도리를 구하지 않습니다. 장도리를 구하지 않은 행위는 살인죄나 유기치사죄가 성립하지 않을까요?해녀들이 장도리를 바다에 빠뜨린 것이 아니라 장도리가 해녀들을 협박하다가 자신의 실수로 바다에 빠졌습니다. 해녀들이 장도리를 구하지 않아서 장도리가 상어에게 물려 사망한다고 하더라도 해녀들에게 살인죄는 성립하지 않을 것입니다.
유기죄는 노유, 질병 기타 사정으로 인해 부조를 요하는 자를 보호할 법률상, 계약상 의무있는 사람이 유기하는 때에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유기죄는 유기되는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 규정된 것입니다.‘노유, 질병 기타 사정으로 인해 부조를 요하는 자’(요부조자)의 의미는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자기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노약자, 부상자, 분만 중의 부녀 등처럼 타인의 도움없이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사람이 요부조자입니다.요부조자를 보호할 법률상, 계약상 의무있는 자(보호의무자)에게 보호의무는 요부조자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을 보호해야 할 의무입니다. 경제적 곤궁을 원인으로 하는 민법상 부양의무와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을 원인으로 하는 유기죄의 보호의무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보호의무의 발생 근거는 법률과 계약에 한정될 뿐 사무관리, 관습, 조리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강간치상의 범행으로 피해자가 실신 상태에 있더라도 가해자가 피해자를 구조하지 않고 방치하였더라도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보호할 법률상, 계약상 의무가 없기 때문에 강간치상죄는 성립하지만 유기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영하의 날씨에 우연히 같이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이 개울에 빠졌음에도 가까운 민가에 알리거나 구조요청도 하지 않았더라도 우연히 동행한 사람에게는 법률상, 계약상 보호의무가 없으므로 유기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유기라는 것은 요부조자를 보호 없는 상태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수혈이 필요한 미성년자 딸을 둔 부모가 종교상의 이유로 수혈을 막아 사망하게 한 경우, 식사도 거르면서 며칠간 술만 마셔 만취한 손님을 주점에 방치하여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게 한 경우에는 유기치사죄가 성립합니다.장도리가 상어가 출몰하는 바다에 빠져서 요부조자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해녀들은 장도리를 보호할 법률상, 계약상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해녀들이 바다에 빠진 장도리를 구하지 않는 것은 유기죄가 성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도리가 사망하더라도 유기치사죄가 성립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바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노력없는 일확천금의 기회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히, 노력을 수반하지 않은 일확천금의 기회는 위법한 것이 대부분이고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 이조로 zorrokhan@naver.com 사진=‘밀수’ 포스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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