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필의 인공지능 거버넌스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박성필 카이스트 문술대학원 원장
지난해 12월 27일, 뉴욕타임스(NYT)는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뉴욕타임스의 수백만 건 기사가 NYT의 '경쟁자'로 떠오른 AI 챗봇을 훈련하는데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NYT가 제출한 약 70쪽에 달하는 소장의 첫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독립적인 저널리즘은 우리의 민주주의에 필수적이다(Independent journalism is vital to our democracy)."
NYT는 소장에서 소속 기자들이 170년 넘게 독립적인 저널리즘을 수호하고자 기울인 노력을 상기시킨다. 그들은 긴급보도를 위해 큰 위험과 비용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달려가 분쟁과 재난상황을 취재했다. 권력의 사용에 대해 책임감을 부여했고 다른 방법으로는 볼 수 없었던 진실을 조명했다. 그렇게 작성한 수백만 건의 기사, 심층조사, 오피니언, 리뷰 등을 오픈AI와 MS가 허락 없이 대형언어모델(LLM) 훈련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NYT는 저작권 직접침해, 간접침해(사용자책임과 기여침해), 저작권보호장치(DRM) 제거, 부정경쟁행위, 상표권 희석을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손해배상, 법정손해배상, 원상회복, 부당이득반환, 영구적 금지처분, 불법저작물이 사용된 GPT, LLM, 트레이닝 셋의 폐기, 소송비용을 포함한 모든 비용의 배상을 청구했다. NYT는 손해배상 청구액을 기재하지 않았지만 손해배상과 법정손해배상만 수십억 달러, 우리 돈 수조 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와 오픈AI 로고. 로이터 뉴스1
NYT가 소장에서 밝혔듯이, 이 소송은 작년 4월부터 진행된 피고 측과의 협상이 결렬된 데서 촉발됐다. 따라서 언제든 양측이 합의하여 소송을 종결할 가능성도 크다. 다만 최초 협상에서 양측이 제시한 조건들 사이에 격차가 컸다. MS는 올해 3월 4일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에 제출한 서면에서 LLM은 뉴스 시장을 대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서면 내용 중 흥미로운 것은, MS가 1984년 연방대법원의 소니(Sony Corp. of America) 대 유니버설(Universal City Studios) 사건을 근거로 들었다는 점이다.
소니 사건은 1975년 소니가 출시한 베타맥스 방식의 VCR 기술에 대한 것이었다. 소니가 VCR을 출시하자 소비자들은 스포츠 경기를 녹화해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었고, 드라마 시리즈 전체를 녹화해 반복해서 감상할 수도 있었다. 이를 시간이동이라 칭했다. 다만 방송사의 광고주들은 불만이었다. 실시간 방송과 달리 녹화 영상은 VCR 리모컨 조작으로 광고를 건너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광고주들의 압박으로 유니버설과 디즈니가 소니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VCR이 저작물의 불법복제에 활용되므로, 소니가 VCR 판매로 불법복제물 제작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여기서 기념비적인 판례를 남겼다. 특허법의 '상업상 주요물품 원칙(Staple Article of Commerce Doctrine)'을 유추적용해 5대 4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VCR이 불법복제에 활용될 수는 있지만 합법적인 용도 또한 다수이므로 기여침해 판단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상업상 주요물품 원칙은 이후의 P2P 저작권 침해 사건 등 디지털 저작권 관련 사건에서 자주 원용되는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뉴욕타임스 본사. AP뉴시스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 연합뉴스
저작권법의 목적은 문화와 관련 산업의 발전이다.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창작자의 권리 보호가 필요하지만, 저작물의 공정이용 보장도 중요하다. 공정이용은 이용목적 및 성격이 비상업적일수록, 원저작물의 창작성이 낮을수록, 원저작물 중에서 적은 양을 이용할수록, 원저작물의 시장수요를 대체하는 효과가 적을수록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흔히 공정이용을 변형적 이용이라고 한다. 원작을 활용하여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만든다는 뜻이다. 비판, 비평, 보도, 강의, 학문, 연구, 패러디 등에서 공정이용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상업적 목적과 성격이 강하면 공정이용 인정은 어렵다. 작년 5월 18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판결한 '앤디워홀 재단 대 골드스미스(Andy Warhol Foundation v. Goldsmith)'사건에서는 워홀이 제작한 가수 프린스의 초상화 '오렌지 프린스'가 논란의 중심이었다. 이 작품은 1981년 골드스미스가 찍은 프린스의 흑백사진을 워홀이 실크스크린과 연필 일러스트레이션 기법으로 변형한 이른바 차용미술(appropriation art)이었다. 앤디워홀 재단은 패션잡지 배너티 페어 특별호 표지에 이 작품을 이용하도록 허락하고 일만 달러를 받았다. 다만 원작자 골드스미스의 성명표시나 그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대법관 7인의 다수의견은 오렌지 프린스의 이용은 상업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 판단했다. 대법관 2인은 다수의견이 창의성을 억압하고 창의성은 기존 작품에서 차용하는 것이라는 점을 무시했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1710년 앤여왕법(Statute of Anne) 시행으로 출발한 저작권 제도는 녹음기, 카메라, 복사기, 컴퓨터, 인터넷 등 기술과 매체의 지속적 혁신으로 도전을 받았다. 때로는 법원의 새로운 해석으로, 때로는 입법적 변경으로 인류는 이들 도전에 대응해 왔다. 현재 인류 앞에 놓인 도전은 생성형AI의 등장으로 야기된 것이다. 만일 쟁점이 NYT가 소장에서 입증하려 노력했던 것처럼 AI의 산출물이 NYT의 저작물을 그대로 혹은 실질적으로 유사하게 복제해 내는 경우라면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다. 소니 원칙에 따라 공정이용을 주장할 수 있다. 상업적 목적으로 생성형AI를 통해 원작을 약간 변형한 정도라면 저작권 침해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생성형AI는 인간의 창작물을 그대로 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창작활동을 모방해 예측할 수 없는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현재 확립된 저작권 침해판단 기준에 따를 때 원작과 실질적 유사성이 없는 결과물은 저작권 침해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핵심은 인간의 창작물인 원작을 데이터 스크레이핑을 거쳐 생성형AI 모델에 학습시킨 행위에 대한 판단이다. 현재 미국 여러 법원에서는 NYT 외에도 작가, 미술가, 이미지 사업자들이 생성형AI 업체에 대한 여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어느 법원도 데이터 스크레이핑에 따른 생성형AI 학습과 관련한 저작권침해 판단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미국 법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들 분쟁 상황을 우리 창작자들과 업계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작권 침해판단 기준, 공정이용 법리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박성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