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얼마나 자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자느냐도 중요하다. 가장 먼저, 몇 시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가장 좋을까.
영국 연구진은 2021년 영국바이오뱅크 참가자 10만여명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잠자리에 드는 시간과 심혈관질환과의 관련성을 조사했다. 이 연구는 2006년 시작된 영국바이오뱅크사의 대규모 장기 연구 프로젝트로 유전요인과 환경요인이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것이다.
그 결과 밤 10~11시 사이에 잠드는 사람이 심혈관질환 발생률이 가장 낮았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밤 10~11시 사이가 가장 이상적인 취침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수면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보통 서캐디언 리듬에 맞춰 밤 10시에 잠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유전적 요인이 다르고 일상 스케줄에 따라 꼭 일어나야 하는 기상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각자 최상의 수면시간을 찾아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상적인 취침 시간보다는 7시간 이상 충분히 잘 수 있는 취침 시간, 날마다 규칙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취침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성인의 경우 7시간 이상을 자는 것이 가장 좋으므로 만약 스케줄상 아침 6시에 꼭 일어나야 하는 사람이라면 밤 11시 전에 자는 것이 가장 좋다. 아침 8시에 일어나도 괜찮은 사람이면 밤 12시~새벽 1시 사이에 잠자리에 들어도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다.
너무 늦은 취침이 수면의 질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수면은 90~120분 동안 빠른 안구운동이 나타나는 렘수면에서 빠른 안구운동이 없는 비렘수면으로 바뀐다. 이 90~120분 사이클이 수면 시간 내내 계속 반복된다. 문제는 90~120분 사이클은 계속 유지되지만 렘수면과 비렘수면의 비율이 계속 바뀐다는 것이다.
즉, 한밤중까지는 90~120분 중 비렘수면이 우세하지만 새벽이 되고 아침이 가까워져 올수록 렘수면 시간이 더 길어진다. 비렘수면은 꿈꾸지 않는 깊은 잠이고 렘수면은 꿈꾸는 얕은 잠이기 때문에 늦게 잘수록 깊은 잠을 자는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비렘수면을 '깊은 수면' 혹은 '서파수면'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만큼 뇌파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주파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심박수, 호흡수, 혈압, 대사 등이 모두 낮아지고 근육도 편하게 이완된다. 그만큼 훨씬 깊게 잠을 자서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하고 피로, 스트레스가 낮아지고 낮 동안 졸림 증상도 사라지게 된다.
다만 비렘수면이 멜라토닌 분비와 관련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멜라토닌 분비는 저녁 8시경부터 서서히 증가해서 새벽 2~4시 사이에 피크를 이루었다가 급격히 떨어지는 포물선을 그린다. 반면 렘수면과 비렘수면 사이클은 90~120분 주기로 하룻밤 동안 4~5차례 반복되기 때문에 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멜라토닌 포물선을 높게 올리고 비렘수면 시간도 늘리기 위해서는 되도록 밤 10~12시 사이에 취침하여 7시간 이상의 수면 시간을 확보하고,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유아부터 청소년 시기는 잠을 자는 동안 멜라토닌 이외에도 성장호르몬이 쑥쑥 나오기 때문에 나이에 맞는 권장 수면 시간을 채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인 역시 하루 중 성장호르몬이 가장 왕성하게 분비되는 시간은 서파수면이 이루어지는 비렘수면 시간이다.
결국 건강과 젊음, 안티에이징의 비법은 잠으로 귀결된다. 잠을 충분히 깊게 잘 자야 멜라토닌도 성장호르몬도 충분히 분비되고 피로, 스트레스를 잘 회복하고 하루를 활기 있게 보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잠이 보약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서양에는 "잠이 최고의 약이다(Sleep is the best medicine)"라는 말이 있다. 아일랜드 속담 중에는 "웃음과 긴 잠은 의학서에 적혀 있는 최고의 치료제"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에덴의 동쪽'으로 유명한 소설가 존 스타인벡은 이런 말을 남겼다.
"밤에 풀기 어려웠던 문제도 잠이라는 해결사가 손을 대고 나면 아침에 풀려 있다(A problem difficult at night is resolved in the morning after the committee of sleep has worked on it)."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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