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서 진술하기 위해 인공지능(AI) 기술로 재현한 크리스토퍼 펠키의 모습 /사진=Stacey Wales 유튜브 캡처,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미국에서 사망한 한 피해자의 모습을 인공지능(AI) 기술로 영상 재현, 재판 진술에서 사용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최근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열린 한 형사 재판에서 AI를 이용해 재현한 피해자의 영상이 진술에 사용됐다. 이는 AI기술로 영상을 재현해 재판 진술에 사용한 최초의 사례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21년 11일 애리조나주의 한 도로에서 발생했다.
당시 도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던 크리스토퍼 펠키 차량 뒤에 가브리엘 호르카시타스의 차가 멈춰 섰다. 호르카시타스가 계속해서 경적을 울리자 펠키는 차량에서 내려 항의하는 몸짓을 취했고, 호르카시타스는 펠키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가슴에 총상을 입은 펠키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유족들은 펠키를 대신해 법정에 섰다.
펠키의 여동생 제니퍼 웨일즈는 2년간 피해자 진술서를 준비하다 "오빠가 법정에서 직접 발언한다면 뭐라고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AI 기술을 활용해 펠키의 모습을 재현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웨일즈는 AI로 고인의 영상을 제작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와 남편의 도움을 받아 이를 진행했으며, 펠키의 음성은 그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 후 연설하는 장면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에서, 얼굴과 몸은 장례식 포스터를 참고해 AI 영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웨일즈는 "AI가 악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누군가는 불편해할 수도 있다"면서도 "이것은 펠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대본은 웨일즈가 직접 작성했으며, AI로 재현한 펠키 영상은 애리조나주 마리코파 카운티 법정의 TV 화면에 등장했다.
영상은 AI로 제작된 것임을 밝히는 자막과 함께 시작됐다.
영상 속 펠키는 "그날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 마주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다른 삶이었다면 우리는 아마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나는 용서와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항상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고 진술했다.
마리코파 카운티 고등법원의 토드 랭 판사는 "영상이 정말 인상 깊고 마음에 들었다"면서 "펠키를 잃은 것에 대한 가족의 분노가 컸겠지만, 나는 영상 속 펠키에게서 용서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피고인 호르카시타스의 변호인 측은 "일반적으로 선고 절차에서 피해자 측의 발언은 폭넓게 허용되기 때문에 영상 상영을 막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면서도 "이번 사례는 지나치게 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I 영상이 선고에 영향을 줬다면 항소심에서는 이를 재판 절차상의 오류로 간주할 여지도 있다"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한편 해당 영상을 두고 법정 밖에서도 논쟁이 이어졌다.
브루클린 로스쿨 교수 신시아 갓소는 "선고 과정에서의 AI 허용 여부를 두고 골머리를 썩고 있다"며 "AI 영상은 사진보다 감정을 더 자극할 것이 분명하기에 법원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미국 연방 법원의 규칙 제정 위원회는 재판 당사자 간 동의가 있을 경우 AI로 제작한 자료에 대한 증거 기준을 확립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