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가야 내륙지역 정치체의 성립부터 소멸까지 전 과정 볼 수 있는 고분군인 ‘합천 삼가 고분군’이 사적으로 지정됐다. ‘합천 삼가 고분군’은 소가야, 대가야, 아라가야와 신라지역의 토기가 다양하게 출토되고, 제가야와 신라 토기 특성이 융합된 토기들의 생산 양상, 삼가식 고분의 축조방식 등을 통해 가야권역 내륙지역 정치체의 변천이 잘 드러나는 유적이다. 문화재청은 경남 합천군에 자리한 ‘합천 삼가 고분군(陜川 三嘉 古墳群)’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했다. ‘합천 삼가 고분군’은 330여기의 고총고분으로 구성된 가야 내륙지역의 중심 고분군이다. 1~7세기 사이 널무덤(목관묘) → 덧널무덤(목곽묘) →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 →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에 이르는 가야 고분의 구조, 규모의 변천 과정과 함께 외형과 부장품 품목 구성의 변화를 통해 가야권역 내륙지역에서 가야 소국으로의 정치체 성립과 성장, 발전, 소멸의 전 과정을 드러내는 학술·역사 가치가 뛰어난 유적이다. ‘합천 삼가 고분군’은 고분의 입지, 매장주체시설의 수, 봉분 규모, 부장품 품목 구성 등에서 고분군을 형성한 집단의 사회 위계를 짐작할 수 있으며,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에 걸쳐 형성된 다수의 매장시설이 중첩 확장된 구조인 ‘삼가식 고분’의 분포 범위를 통해 가야 내륙지역 정치체의 규모와 존재 양상 등을 추정할 수 있다. 토기 양식의 변화를 보면 소가야 양식 토기와 대가야 양식 토기가 병존하다가 6세기 전반부터는 대가야 양식 토기가 부장되어 있다. 1~7세기에 걸쳐 고식 와질토기 → 신식 와질토기 → 고식 도질토기 → 소가야 양식 토기 → 대가야 양식 토기로의 점진적인 변화상이 뚜렷하여 가야의 문화 변천과 특정 가야로의 문화적 귀속을 보여준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1-11-24 09:05:45[파이낸셜뉴스] 가야 내륙지역 정치체의 성립·성장·발전·소멸과정을 보여주는 고분군인 ‘합천 삼가 고분군’이 사적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경남 합천군에 자리한 ‘합천 삼가 고분군’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30일간의 예고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합천 삼가 고분군은 330여기의 고총고분이 조영된 가야 내륙지역의 중심 고분군이다. 1~7세기 사이 ‘널무덤(목관묘)→덧널무덤(목곽묘)→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에 이르는 가야 고분의 구조, 규모의 변천 과정과 더불어, 외형과 부장품 품목 구성의 변화를 통해 가야 내륙지역에서 가야 소국으로의 정치체 성립과 성장, 발전, 소멸의 전 과정을 드러내는 역사ㆍ학술 가치가 뛰어난 유적이다. 합천 삼가 고분군은 고분의 입지, 봉분 규모, 매장주체시설의 수, 부장품 품목 구성 등에서 고분군을 형성한 집단의 사회 위계를 짐작할 수 있으며,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에 다수의 매장시설이 중첩 확장된 구조인 ‘삼가식 고분’의 분포 범위를 통해, 가야 내륙지역 정치체의 규모와 존재 양상 등을 추정할 수 있다. 토기 양식의 변화를 보면 소가야 양식 토기와 대가야 양식 토기가 병존하다가 6세기 전반부터는 대가야 양식 토기가 부장되어 있다. 1~7세기에 걸쳐 ‘고식 와질토기→신식 와질토기→고식도질토기→소가야 양식 토기→대가야 양식 토기’로의 점진적인 변화상이 뚜렷하여 가야의 문화 변천과 특정 가야로의 문화적 귀속을 보여준다. 이처럼 합천 삼가 고분군은 대가야, 소가야, 아라가야와 신라지역의 토기가 다양하게 출토되고, 제가야와 삼가식 고분의 축조방식, 신라 토기 특성이 융합된 토기들의 생산 양상 등을 통해 가야권역 내륙지역 정치체의 변천이 잘 드러나는 유적이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1-10-05 09:05:47【함안=오성택 기자】사적 제515호로 지정된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1600년 전 가야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보물급 유물들이 출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경남도와 함안군은 오는 29일 발굴현장과 함안박물관에서 이번 발굴성과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28일 밝혔다. 도는 함안군과 함께 지난 2월부터 말이산 고분군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북쪽지역 미정비구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발굴조사는 말이산 고분군의 북쪽에 분포한 가야시대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 등 7기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이 중 45호분은 1986년 처음 발굴을 시도했으나, 당시 무덤의 흔적을 찾지 못해 그동안 가야고분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왔다. 계속된 논란 끝에 지난해 실시한 시굴조사에서 가야고분임이 최종 확인된데 이어, 올해 발굴조사에서 덧널(木槨)을 내부구조로 하는 봉토분임을 추가로 밝혀졌다. 봉분의 규모는 지름 20m 높이 1.8m로, 중심능선에 위치한 암반대(巖盤臺)를 원형으로 비스듬히 깎아 봉분의 가장자리를 조성하고 가운데를 파내 덧널을 배치했다. 덧널의 규모는 길이 6.7m 너비 2.7m로, 기존 발굴된 아라가야 덧널무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또 덧널 내부에서 보물급 유물들이 쏟아졌다. 무덤 주인공의 머리 위쪽 유물 부장공간에서 다수의 토기들과 함께 집모양토기·배모양토기·등잔모양토기·동물장식뿔잔 등 다양한 형태의 상형토기(象形土器) 4점이 한꺼번에 출토됐다. 지금까지 한 고분에서 이처럼 다양한 상형토기가 한꺼번에 출토된 것은 처음이다. 이 중 높이 19.6㎝의 집모양토기는 9개의 기둥 위에 건물을 올려놓은 고상(高床)가옥을 본떠 만들었다. 맞배지붕과 대들보·도리·서까래·빗장을 걸어 놓은 대문 등 한국 전통건축의 주요 부분을 자세하게 표현해 놓았으며, 지붕과 가옥 뒷면에 주둥이를 붙여 주전자(注子)로 사용했다. 배모양토기는 길이 23.6㎝로 가야시대 준구조선을 형상화해 유선형의 선체에 파도를 막는 판재를 앞뒤로 대었으며, 양 측판의 윗면에는 각 5개씩의 노걸이가 배치돼 있다. 배의 뒷부분인 고물부가 뚫려 있어 잔(盞)으로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무덤 주인공 주변에서는 투구와 큰 칼, 말 갑옷, 금동제 말갖춤(馬具) 등이 함께 출토됐다. 이주헌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장은 “말이산 45호분에서 출토된 상형토기는 기존 알려진 집모양, 배모양, 등잔모양토기 등의 출토 맥락을 확인해주는 중요한 고고자료”라며 문화재 지정을 권고했다. 하승철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조사연구실장은 “가야문화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학술자료로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조사된 말이산 45호분은 고분의 입지와 규모 및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4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된 아라가야 최고지배층의 무덤이자 최초의 고총고분으로, 가야고분의 점진적인 발전과정과 가야의 건축 및 조선 기술을 복원하는 데 더없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ost@fnnews.com 오성택 기자
2019-05-28 12:21:06【창녕=오성택 기자】 경남 창녕군의 가야유적인 ‘창녕 계성 고분군’(昌寧 桂城 古墳群)이 국가사적 제547호로 승격 지정됐다. 경남도는 창녕 비화가야 성립과 가야에서 신라로 이행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창녕 계성 고분군의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사적으로 승격 지정됐다고 25일 밝혔다. 창녕 계성 고분군은 5~7세기에 걸쳐 장기간 고분이 축조됐으며, 5세기에 집중적으로 대형 고총고분이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창녕 계성 고분군의 국가사적 지정은 도가 추진 중인 가야유적 국가사적 승격 지원의 첫 결과물로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도는 설명했다. 창녕 계성 고분군은 영축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사면부에 형성된 대규모 고총 고분군으로 총 261기의 봉분이 분포하고 잇으며, 1974년 경남도 기념물 제3호로 처음 지정됐다. 지난 1967년 문화재관리국이 주관한 5호분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영남대 박물관이 1968년부터 1969년까지 2차례에 걸쳐 1호분과 4호분을 조사했다. 또 경남발전연구원 소속 역사문화센터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2호분과 3호분, 2017년 156호분, 2018년 2-3호분 등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였다. 수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계성 고분군 축조집단은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을 조성한 세력 이전 시기의 비화가야 초기 중심세력이었음이 확인됐다. 특히 무덤의 구조는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을 채용했으며, 돌덧널(石槨)상부는 나무로 덮개를 만든 것으로 덧널무덤(木槨墓) 단계에서 돌덧널무덤(石槨墓)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유물로는 창녕양식 뚜껑 있는 굽다리접시와 긴목항아리, 통모양그릇받침 등의 토기류를 비롯한 금동관편 및 금제 귀걸이와 은제 허리띠장식 등의 장신구류, 말띠드리개(행엽) 및 발걸이(등자), 말안장 꾸미개(안교) 등의 마구류와 무기류 등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류명현 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계성 고분군의 국가사적 승격을 시작으로 함안 남문외 고분군, 합천 삼가 고분군 등 도내 주요 가야유적의 국가사적 승격 추진을 통해 그 동안 저평가되었던 가야유적에 대한 위상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도는 문화재청·창녕군과 협의를 통해 국가사적으로 승격 지정된 창녕 계성 고분군의 체계적 보존관리를 위한 종합정비계획 수립 등 보존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ost@fnnews.com 오성택 기자
2019-02-25 16:55:39【김해=오성택 기자】 가야사 복원사업을 추진 중인 경남 김해시가 최근 원지리고분군에서 100여점의 가야유물을 발굴했다. 김해시는 4일 주촌면 원지리 산2-2번지 원지리고분군 발굴현장에서 발굴성과 보고회를 열고 금관가야 유일의 고총고분군인 ‘김해 원지리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 성과를 발표했다. 현 정부 국정과제인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조사는 김해시 자체 가야유적 발굴조사비와 경남도 가야유적 사적승격 지원사업비 지원으로 추진됐다. 지난해 9월 발굴조사에 착수한 가야문물연구원은 3·4호분과 3·4호분 사이에 조성된 3-1·2호분, 3호분의 남동쪽 소형의 고분 2기 등 총 6기를 조사했다. 3호분은 남동쪽에 입구가 조성된 6세기의 횡구식석실(橫口式石室)분으로, 봉토는 타원형이며 규모는 직경 1.2~12.8m, 높이 3.3~4.5m 규모다. 또 4호분은 가야권역 최초로 발굴된 높은 봉분을 가진 토광묘로, 자라모양의 토기와 단경호, 고배, 단각고배, 안장, 등자 등 약 100여점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유물의 부장 양상 특성상 김해지역 특유의 주부곽식 무덤의 부곽으로 추정된다고 발굴조사단은 설명했다. 특히 출토유물 중 자라모양 토기는 고대 가야와 왜(일본)의 교류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의 성과는 원지리고분군이 금관가야 유일의 고총고분이라는 것과 금관가야의 마지막 단계인 6세기 전반의 역사 및 문화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확보했다는 점”이라며 “4호분이 부곽으로 확인됨에 따라 앞으로 주곽인 5호분의 조사 성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원지리고분군은 지난 2017년 긴급발굴조사에서 금관가야의 최대급 봉분을 갖춘 횡구식석실로 확인됐으며, 가야 후기 고분의 학술적 중요자료로 인정받아 도문화재인 기념물 제290호로 지정됐다. 이번 발굴조사를 맡은 가야문물연구원은 이달 말까지 원지리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를 완료할 계획이다. ost@fnnews.com 오성택 기자
2019-01-04 12:21:05【창녕=오성택 기자】 경남 창녕군의 ‘창녕 계성고분군’(昌寧 桂城古墳群)이 국가사적으로 승격 지정예고 됐다. 10일 경남도에 따르면 비화가야 성립과 전개 과정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초기 중심 유적인 ‘창녕 계성고분군’이 사적으로 지정 예고됨에 따라 가야문화권 조사연구사업에 한층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창녕 계성고분군은 5~7세기에 걸쳐 장기간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5세기에 집중적으로 대형 고총고분이 축조돼 창녕 비화가야의 성립에서부터 신라로 이행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창녕 계성고분군은 영축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사면부에 형성된 대규모 고총 고분군으로, 1974년 경남도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됐다. 고분군의 서북쪽으로는 계성천이 흐르고 있으며, 주변의 낮은 구릉에 261기의 봉분이 분포하고 있다. 창녕 계성고분군은 지난 1917년 일제의 조선총독부에 의해 처음 고분분포도가 작성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1967년 문화재관리국이 주관한 5호분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영남대박물관이 1968년과 1969년 2차에 걸쳐 1호분과 4호분을 조사했다. 또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2호분과 3호분에 이어, 지난해 156호분, 올해 2-3호분 등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됐다. 발굴조사 결과, 계성고분군 축조집단은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을 조성한 세력 이전 시기의 비화가야 초기 중심세력이었음이 확인됐다. 무덤의 구조는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을 채용했는데 돌덧널 상부는 나무로 덮개를 만든 것으로 나타나 덧널무덤 단계에서 돌덧널무덤으로 변화해가는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유물로는 창녕양식 뚜껑 있는 굽다리접시와 긴목항아리, 통모양 그릇받침 등의 토기류와 금동관편, 금제 귀걸이와 은제 허리띠장식 등의 장신구류, 말띠드리개(행엽) 및 발걸이(등자), 말안장 꾸미개(안교) 등의 마구류 및 무기류 등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도 관계자는 “이번 창녕 계성고분군의 사적 지정은 도가 국정과제인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가야유적 국가사적 승격 사업에 따른 첫 결과물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한편 창녕 계성고분군은 30일간의 예고를 통해 사적 지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적 지정 최종여부가 결정된다. ost@fnnews.com 오성택 기자
2018-12-10 10:27:57【함안=오성택 기자】 경남 함안에서 1500년 전 아라가야(阿羅加耶) 왕성의 실체가 처음으로 발견돼 학계가 술렁이고 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7일 경남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89번지 일원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대규모 토성과 목책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아라가야 왕궁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인 1587년 편찬된 함안지리지인 함주지(咸州誌) 등 각종 고문헌에 가야국의 옛 도읍터로 기록돼 있을뿐 최근까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전혀 실체를 알 수 없었다. 이번 발굴조사는 함안군청이 지난 4월 11일 왕궁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경지정리 작업 중 드러난 성토 흔적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경남도와 함안군,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현지조사와 전문가 자문을 통해 긴급발굴조사를 벌이기로 결정하고 문화재청의 허가를 얻어 지난달 11일부터 발굴조사에 착수했다. 발굴조사는 성토 흔적이 드러난 곳을 중심으로 약 1300㎡에 대해 실시했으며, 이곳에서 토성과 목책, 건물터 등 아라가야 왕성과 관련된 시설이 대거 확인됐다. 이 중 토성은 전체 높이 8.5m, 상부 너비 20~40m 규모로 동시대 가야권역에서는 유례없는 대규모 성곽으로 확인됐다. 또 성토 과정에서 성벽이 밀리지 않도록 공정마다 나무기둥을 설치하거나, 널판을 대고 내부에 흙을 쌓아 올린 판축(板築)을 통해 점토와 모래를 켜켜이 다져 올리는 등 정교한 토목공사 흔적을 확인했다. 토성 상부에서 2열의 나무기둥으로 이루어진 목책이 확인됐으며, 내부에서는 건물터와 구덩이 등이 발견됐다. 토성의 축조 및 사용 시기는 유적에서 출토된 각종 토기 조각들을 통해 5세기 중반~6세기 중반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아라가야는 말이산고분군에 대형 고총고분을 조성하고 대내외적으로 활발한 교섭을 벌이던 전성기라는 점에서 왕성의 용도와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현장을 답사한 전문가들은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 유적은 토성 등 방어시설과 건물지를 갖춘 아라가야 최고지배층(왕)의 거주공간으로서 이번에 발견된 토성은 왕성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추가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토성의 정확한 범위와 왕궁지의 흔적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아라가야 왕성의 발견을 통해 문헌기록과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아라가야 왕성의 실증적 증거가 확인된 셈이다. 특히 당대 최고 수준의 토목기술로 축조한 토성을 통해 가야 왕성 축조에 대한 기초자료 확보는 물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에서 향후 가야 왕성 연구의 핵심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한편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기초조사와 추가 발굴조사를 통해 오는 11일 주민을 대상으로 발굴성과에 대한 공개설명회를 가질 계획이다. ost@fnnews.com 오성택 기자
2018-06-07 15:41:20【김해=오성택 기자】 경남 김해시가 27일 김해 원지리고분 긴급발굴조사 관련 중간결과를 공개했다. 원지리고분군은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산2-2번지 일대에 조영된 봉분을 가진 무덤군으로, 조성 시기는 5∼6세기 후기 가야시대이며 총 7여기의 봉토분과 기타 고분군이 분포하고 면적은 5만6000㎡에 달한다. 시는 가야유적의 불법 유물채집 및 경작 등으로 인한 훼손을 방지하고 문화재로 지정·보호하기 위해 문화재청 복권기금 진행사업인 긴급발굴조사를 신청, 국비 1억원을 확보했다. 시는 (재)경상문화재연구원을 발굴조사기관으로 선정하고 고분군 중 가장 규모가 큰 3호분을 발굴대상으로 정해 지난 1일 조사에 들어가 다음달 8일 조사를 마칠 예정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중간 결과에 따르면 3호분은 봉분 직경이 20m, 높이 3m로 지금까지 김해 및 주변지역에서 확인된 무덤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밝혀졌다. 봉분 안에 조영된 석실은 한쪽 단벽에 출입시설을 마련한 ‘횡구식석실’구조로 석실의 규모는 길이 7.3m, 너비 1.45m, 높이 1.57m이며 세장(細長)한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유물은 도굴의 피해로 단각고배(다리가 짧은 토기)와 철기, 유리구슬 등이 소량 출토되었으며, 현재 석실바닥 조사가 진행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해에 봉분이 있는 가야시대 고분은 수로왕과 왕비릉, 구산동고분군이 있지만 고총고분(高塚古墳)이 밀집돼 분포하는 것은 원지리고분군이 유일하다. 이는 서기 400년 고구려 남정이후 금관가야의 쇠퇴 원인을 밝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 관계자는 “자문위원회 및 시민들을 위한 설명회를 열고 원지리고분군 문화재지정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한편, 발굴조사 결과를 통해 체계적인 보존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ost@fnnews.com 오성택 기자
2017-11-27 17:21:20▲출토된 편자와 엑스레이 사진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재)전주문화유산연구원이 발굴조사 중인 ‘장수 동촌리 고분군’에서 말발굽에 박은 편자(蹄鐵)가 출토됐다. 편자란 말발굽을 보호하기 위해 말발굽에 대어 붙이는 ‘U’ 자 모양의 쇳조각을 말한다. 장수 동촌리 고분군은 백두대간의 서쪽에 자리한 가야계 고총고분군(봉분 높이가 높은 고분군)으로 고분 80여 기가 자리하고 있다. 이번에 조사된 1호분은 봉분의 규모가 남북 16.7m, 동서 7.4m, 잔존높이 2.1m 내외이며 평면의 형태는 타원형이다. 봉분 내에는 무덤주인이 묻힌 돌널무덤 양식의 주석곽 1기와 껴묻거리 등을 묻는 순장곽 2기가 배치돼 있다. 주석곽은 당시의 지표면과 생토면을 고른 후 1m 내외의 높이로 흙을 쌓고 다시 되파기해 축조했다. 주석곽에서는 편자를 비롯해 목짧은 항아리(단경호), 그릇받침(기대), 바리(발), 뚜껑(개) 등의 토기류가 출토됐다. 이중, 편자는 징(釘)이 박힌 상태로 말뼈와 함께 확인됐다. 이처럼 말뼈와 함께 편자가 출토된 경우는 국내에서 그 사례가 드물며, 당시의 장례 제도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로 고구려 태왕릉과 몽촌토성 85-2호 주거지, 발해 유적, 산청 평촌리 유적 등에서는 말뼈 없이 편자만 발견된 바 있다. 장수 동촌리 고분군 1호분은 축조방법과 출토유물 등으로 미루어 볼 때 6세기 전반경의 고분으로 추정된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고분의 구조와 성격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여 장수지역의 가야 묘제 연구에 있어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또한, 이번 조사를 계기로 고분의 훼손을 방지하고 보존․관리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실마리가 마련됐다. 이번 발굴조사 성과는 오는 3일 오후 2시 발굴현장에서 관련 전공자와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중요 비지정 매장문화재 조사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유적의 체계적인 보존․관리에 힘써 나갈 계획이다.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15-07-02 08:5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