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옛날 한 각로(閣老)에게 부인이 있었다. 각로는 조정에서 내각대신이나 대학사를 지낸 고위 관료를 말한다. 각로의 부인은 원래 급하고 화를 잘 내는 성격이었다. 게다가 고관대작의 부인이라는 지위까지 있어서 기고만장했으며 자존심이 강했다. 어느 날 부인은 마당에서 하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늙은 여종과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부인은 아직 젊었기에 경험이 많은 여종 앞에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부인은 기절하듯이 쓰려졌고 팔다리에 경련이 일어나는 듯했다. 그날 밤 부인은 억울함을 참다못해 각로에게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이르듯이 들려주었다. 그러나 각로는 늙은 여종의 편을 들면서 부인을 나무라듯이 꾸짖었다. 그날 밤부터 부인은 가슴과 옆구리가 그득하고 아팠고, 팔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증상이 생겼다. 식은땀을 물처럼 흘리고, 소변을 가리지 못하며, 대변도 설사기가 있었다. 계속해서 입이 굳어지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꺼풀이 떨리는 등의 증상이 이어졌다. 그러나 다행히 먹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부인의 증상은 이러한 상태가 이미 열흘이 넘었다. 각로의 부인에게 병이 났다는 소문이 나자, 주위의 여러 의원들이 나섰다. 일부는 출세의 발판으로 삼을까 하여 줄을 대서 끼어들기도 했다. 대다수 의원들은 “중풍(中風)입니다.” 혹은 “풍(風)이 오장을 침범한 것입니다.”라 하며 중풍 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심지어 일부 의원들은 이미 다른 의원들이 치료하지 못한 것을 보고는 “아주 위중한 병증이니 치료가 어렵습니다.”라고 포기하기도 했다. 각로는 걱정이 많았다. 각로는 수소문 끝에 한 명의에게 진료를 부탁했다. 명의가 진찰해 보더니 말했다. “부인은 중풍이 아닙니다. 만일 풍(風)에 의해 증세가 나타난 것이라면, 그 화(禍)는 손바닥 안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순식간일 터이니, 중풍의 양상과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명의는 부인의 안색을 살펴보니, 부인의 얼굴은 붉고 눈빛은 충혈되어 있었다. 얼굴은 때때로 푸른 기운이 돌기도 했다. 맥을 좌측 촌관척(寸關尺) 삼부맥이 모두 흥분되고 빨랐으며, 특히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간맥(肝脈)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는 심한 열증이나 화병을 의심할 수 있는 맥상이었다. 명의는 각로에게 물었다. “혹시 최근에 대감께서 부인에게 심하게 화를 내셨거나, 부인에게 이루지 못한 억울함이 있었습니까?” 각로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얼마 전, 나이든 여종이 부인에게 대들어서 내가 부인을 나무란 적이 있었소.” 명의가 다시 물었다. “혹시 여종이 부인에게 대드는 광경을 누가 봤습니까?” 각로는 불쾌한 듯 답했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가? 당시 많은 하인들이 늙은 여종이 대드는 것을 보았소.” 명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습니다. 바로 그 점이 핵심입니다. 남들이 보고 있었기 때문에 부인의 분함이 더 심했고, 대감께서 여종의 편을 들어서 그 억울한 감정이 더욱 극심해진 것입니다. 부인의 증상은 중풍이 아니라, 간의 기운이 막혀서 나타나는 기울병(氣鬱病)입니다. 간의 기운은 풀려야 하는데, 울분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근육 경련, 상열감, 식은땀, 대소변 실금 등의 증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은 간기울결(肝氣鬱結)로 인한 기역증(氣逆症)입니다. 지금은 식사를 잘 하시는 것 같지만, 더 심해지면 간기(肝氣)가 비토(脾土)를 치게 되어 식사도 제대도 드시지 못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명의는 곧바로 서각산(犀角散) 4첩을 써서 복용하게 했다. 서각산은 서각, 생지황, 작약 등으로 구성된 처방으로, 간열(肝熱)에 기인한 출혈이나 경련, 식은땀, 정신 혼미 등을 다스린다. 부인이 서각산을 복용하자 경련이나 마비 증상이 사라졌다. 그러나 가슴이 답답하고 옆구리가 결리면서 열이 오르는 증상은 여전했다. 명의는 이어서 가미소요산(加味逍遙散)을 처방했다. 가미소요산은 당귀, 작약, 복령, 백출, 시호, 목단피, 치자 등으로 구성된 처방으로, 울화, 흉협창통, 월경불순, 안면홍조, 불면, 신경불안 등에 쓰이는 명방이다. 가미소요산을 복용하자 부인의 증상은 모두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또다시 늙은 여종이 자신을 무시하는 일이 생겨, 울화와 분노를 겪은 뒤 비슷한 증상이 또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발열과 구토가 더해지고, 음식을 먹으려는 생각이 줄어들었으며, 자궁 출혈이 생겼고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각로는 명의를 다시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명의는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간목(肝木)이 성하여 비토(脾土)를 극함으로써, 비가 혈을 통제하지 못한 결과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각로는 다급히 처방을 요청했다. 그런데 명의는 처방을 하지 않고서 “지금은 약으로만은 어렵습니다. 대감께서 부인과 하인들이 보는 앞에서 여종을 붙잡아 크게 혼내 주셔야 합니다. 부인에게도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일부러라도 부인의 편을 들어 여종을 꾸짖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부인의 억울함을 약이 아닌 마음으로써 풀어주고자 한 것이다. 각로는 명의의 말대로 여종을 붙잡아 와서 부인이 보는 앞에서 크게 혼내 주었다. 이후 명의는 가미귀비탕(加味歸脾湯)을 처방했다. 가미귀비탕은 비기허(脾氣虛)로 인해 출혈이 멈추지 않고, 심혈허(心血虛)로 불면, 건망, 피로가 함께 있을 때 기혈을 보하고 지혈하는 데 쓰는 처방이다. 그리고 다시 가미소요산을 보조로 처방했다. 그러자 부인의 증상은 모두 사라졌다. 부인은 이후에도 종들에게 매번 분노한 뒤나, 혹은 잠자는 중 손발이 경련을 일으킬 때가 종종 있었지만, 이때마다 가미귀비탕과 가미소요산을 복용하여 곧바로 회복되었다. 부인의 병은 중풍이 아니라 기병증(氣病症)이었다. 기병증은 요즘으로 치면 화병이나 신체형 장애에 속한다. 신체형 장애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신체화되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또한 히스테리성 반응인 전환장애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전환장애는 신체적 증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신경학적 손상이 발견되지 않을 때 진단된다. 쉽게 말해, 심리적 갈등이나 스트레스가 신체 증상으로 ‘전환’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로 환자는 실제 고통스러움을 느끼는데, 기절하거나 경련을 일으키는 증상은 관심받기나 책임회피 등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득을 얻고자 하는 심리상태를 반영한다. 부인의 증상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는 수치심과 남편마저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억울함이 겹쳐 더욱 심해졌다. 이런 마음의 병은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먼저 마음을 풀어주지 않으면 낫기 어렵다. 욕치기신(欲治其身)하려면 선치기심(先治其心)하라. 몸을 치료하려면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 부인의 치료에 적합했던 것 같다. * 제목의 ○○○은 ‘기병증(氣病症)’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교주부인양방> 靳閣老夫人, 先胸脇脹痛, 後四肢不收, 自汗如水, 小便自遺, 大便不實, 口緊目瞤, 飮食頗進, 十餘日矣. 或以爲中臟, 公甚憂. 余曰非也. 若風旣脫, 惡症旣見, 禍在反掌, 焉能延之? 乃候其色, 面目俱赤, 而面或靑, 診其脈, 左三部洪數, 惟肝尤甚. 余曰, 胸乳脹痛, 肝經血虛, 肝氣否塞也. 四肢不收, 肝經血虛, 不能養筋也. 自汗不止, 肝經風熱, 津液妄泄也. 小便自遺, 肝經熱甚, 陰挺失藏也. 大便不實, 肝木熾盛, 克脾土也. 遂用犀角散四劑, 諸症頓愈. 又用加味逍遙散, 調理而安. 後因鬱怒, 前症復作, 兼發熱嘔吐, 飮食少思, 月經不止, 此木盛克土, 而脾不能攝血也. 用加味歸脾湯爲主, 佐以加味逍遙散, 調補肝脾之氣, 淸和肝脾之血而愈. 後每遇怒, 或睡中手足抽搐, 服用前藥卽愈. (진씨 각로의 부인은 처음에는 가슴과 옆구리가 그득하고 아팠고, 나중에는 사지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으며, 식은땀을 물처럼 흘리고, 소변을 가리지 못하며, 대변도 무르기만 하고, 입이 굳어지고 눈꺼풀이 떨리는 등의 증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은 제법 잘 먹었으며, 이러한 상태가 이미 열흘이 넘었다. 어떤 이들은 중풍이 장에 침범한 것이라 하여 위중한 병으로 여겼고, 각로께서도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이에 내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풍의 병이 이미 빠져나갔고, 악성의 증세가 드러난 것이라면, 그 화는 손바닥 안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순식간일 터이니, 어찌 이처럼 오래 지속되었겠습니까?” 곧바로 환자의 안색을 살펴보니, 얼굴과 눈빛이 모두 붉었고, 때로는 얼굴에 푸른 기운이 돌기도 하였다. 맥을 진찰해 보니, 좌측 삼부맥이 모두 홍삭하며, 특히 간맥이 더욱 강하였다. 이에 내가 말하였다. “가슴과 유방이 불러 오르고 아픈 것은 간경의 혈이 허하고, 간기의 소통이 막힌 탓입니다. 사지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간경의 혈허로 인하여 근육과 힘줄이 제대로 자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며, 식은땀이 멈추지 않는 것은 간경의 풍열이 진액을 흩뜨려 무절제하게 빠져나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은 간경의 열이 극심하여, 음부의 장기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간직하는 기능이 무너진 것입니다. 대변이 무른 것은 간목이 왕성하여 비토를 억제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곧바로 서각산 4첩 써서 복용하게 하니, 여러 증상이 모두 곧바로 나아졌다. 이어서 가미소요산을 사용하여 몸을 조리하자 안정되었다. 그러나 이후 울화와 분노를 겪은 뒤, 앞서의 증상이 다시 나타났고, 동시에 발열과 구토가 더해지고, 음식을 먹으려는 생각이 줄어들었으며, 월경도 그치지 않았다. 이는 곧 간목이 성하여 비토를 극제함으로써 비가 혈을 통제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에 가미귀비탕을 주된 처방으로 삼고, 가미소요산을 보조로 써서 간비의 기를 조화롭게 보익하고, 간비의 혈을 청화하게 하니 병이 나았다. 이후에도 매번 분노한 뒤나, 혹은 잠자는 중 손발이 경련을 일으킬 때마다, 앞서 썼던 약을 복용하면 곧바로 회복되었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6-03 12:45:17[파이낸셜뉴스] “지난 60년간 저를 무대에 서게 해주신 건 바로 여러분입니다.” 손숙의 60주년 연극 ‘토카타’가 지난 10일 LG아트센터에서 약 3주간의 여정을 끝내고 폐막했다. 이날 공연에는 배우 박정자가 공원 벤치에 앉아있는 노인 역할로 특별 출연했다. 커큰콜 후 박정자는 “손숙이 20살부터 무려 60년간 무대에 섰다”며 손숙의 60년 연극 인생을 축하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손숙은 “시상식에서 누구누구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을 싫어했다”며 “오늘은 꼭 한마디 해야할 것 같다”며 이번 작품을 함께한 제작진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다. 손진책 연출, 배삼식 작가, 무대디자이너 이태섭, 김창기 조명감독, 지승준 음향감독, 피아노 작곡을 맡아준 최우정 교수, 제작사인 신시컴퍼니의 박명성 대표 그리고 의상을 만들어준 진태옥 선생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러면서 관객을 향해 “표를 사서 시간을 내서 이렇게 극장에 와주시는 게 쉽지 않은데 극장에 와서 공연을 보고 박수를 쳐주시고 또 다음 공연에 와주시고 이렇게 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나를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해 박수를 이끌어냈다. ‘토카타’는 손숙이 갑작스런 건강 문제로 한차례 공연을 연기한 후에 올린 작품이라 더욱 각별하다. 그는 “오늘 마지막 공연이라 그런지 공연 내내 집중이 잘 안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고도 했다. 또 장수시대임을 언급하며 “70주년 공연을 하게 되면 끔찍할 것 같다”는 말도 보탰다. 지난해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된 손숙은 이날 오래된 것들에 둘러싸여 혼자서 눈뜨고 자는 외로운 여인의 일상을 묘사하다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토카타’는 손숙 연극 인생 60주년 기념 연극이다. 작품 의뢰를 받은 배삼식 작가가 인간 간 접촉이 터부시됐던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느낀 인간의 삶과 촉각이라는 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냈다. 앞서 손진책 연출은 “코로나로 인해 2여 년 간 서로 단절된 시간이 있었다. 이 작품은 거기로부터 나왔다”며 “심리적인 접촉과 물리적 접촉에 관한 연극”이라고 설명했다. 등장 인물도 단출했다.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홀로 된 여인(손숙 분)과 바이러스에 감염된 극한 상황에서 한때 화려했던 접촉을 생각하는 중년 남성(김수현 분) 그리고 존재론적 고독을 몸으로 표현하는 춤추는 사람(정영두 분) 그리고 무대 밖 피아노 연주자가 전부였다. 손숙과 김수현 배우가 각자 따로 내뱉거나, 대사처럼 주고받는 독백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했고, 지난 인생 강렬했던 순간과 촉각과 함께 기억되는 희로애락은 90분의 시간동안 파도치듯 밀려왔다가기를 반복했다. 결국 죽음과 사투를 벌이던 남자는 병을 이겨내고, 지독하게 외로웠던 여성도 내 몸을 맡기는 안마기에게서 살아갈 희망을 찾고 다시 산책에 나선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아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처럼.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3-09-11 11:31:16[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옛날 어느 날 밤, 한 선비가 부랴부랴 의원을 찾았다. 자신의 조카가 사경을 헤맨다는 것이다. 선비는 자신의 형수가 과부가 된지 벌써 1년이 되었고 형수에게는 한 살배기 아이가 있다고 말하였다. 허겁지겁 말하기를 “제 조카가 감기에 걸린 것 같더니 벌써 한달동안 계속해서 낫지 않고 있습니다. 간혹 경기를 하고 또한 가래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숨을 가쁘게 쉬니 좀 살려 주십시오. 형수도 불쌍한데, 어린 조카까지 아프니 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청컨대 진맥이라도 좀 해 주십시오.”라며 울먹이는 것이다. 의원은 늦었지만 마지못해 진맥을 해 보기로 하고 선비의 집으로 함께 나섰다. 의원은 아이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온몸이 바싹 말라서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얼굴을 보니 창백하고 입술은 푸석거리며 점막이 들떠 있었고 며칠 동안 물도 전혀 못 마신 것처럼 건조함이 극에 달한 듯했다. 그러면서도 빰은 불그스레했다. 이는 혈허(血虛)가 심해져서 음허증(陰虛症)도 함께 동반된 증이다. 가래 소리를 들어보니 그르렁거리면서 가래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간혹 기침을 하면서 울컥하고 올라온 가래를 보니 패서(敗絮, 오래돼서 섞은 솜뭉치)처럼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이는 폐장까지 조증(燥症)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맥을 해 보니 맥은 미약(微弱)하면서 세삭(細數)하고 불규칙했다. 미약함은 원기(元氣) 부족이고, 가늘고 빠른 맥은 혈허(血虛)나 음허(陰虛)에서 보이는 맥으로 만성적으로 병을 앓으면서 진액이 부족해지거나 극심한 탈수 혹은 과다출혈 후에도 나타나는 맥이다. 진맥을 마친 의원은 잠시 눈을 감고 고민에 빠졌다. ‘인삼을 넣어 보(補)하는 약을 쓰려니 조열(燥熱)이 걱정되고, 성질이 차가운 약을 쓰려니 원기(元氣)가 이미 미약해져서 실로 손을 쓰기 어렵구나.’라며 깊이 고민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부인이 의원의 팔을 붙들고 비통하게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이를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것이었다. “의원님, 의원님. 제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살려주십시오. 저는 이미 지아비도 없는 과부가 되어 원통한데, 이 핏덩이마저 저 세상으로 간다면 이 세상을 어찌 살라 말입니까? 흑흑~” 의원은 부인의 애절한 말에 차마 가망이 없다는 대꾸를 하지 못하고 바깥사랑채로 나갔다. 의원을 따라 선비가 나오자 의원은 한숨을 쉬며 선비에게 “이런 극심한 조병(燥病)에는 사람의 피만한 것이 없습니다. 의서에서도 인혈(人血)은 피육(皮肉)이 마르는 병에 효과가 있다고 했습니다.” 의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선비는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인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인혈을 어디서 구하랴. 사실 의원은 ‘인혈을 쓰지 못해서 안타깝다’가 아니나 ‘그만큼 치료법을 찾기 힘들어 난감하다’는 것을 에둘러서 표현하고자 의서의 구석진 곳에 적혀 있는 인혈(人血) 이야기를 꺼냈을 뿐이다. 의원 자신도 지금까지 인혈을 써보려고 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당황스러워하는 선비의 얼굴을 얼핏 본 의원은 “그러나 인혈을 처방하는 것은 불인(不仁)의 소치일 뿐입니다. 어찌 사람에게 사람의 피를 먹일 수 있겠습니까? 인혈 대신 저는 그저 생맥산(生脈散)과 사물탕(四物湯)을 합해 써볼 뿐이니 이 처방 또한 인혈을 대신할 만한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밤이 늦었지만 서둘러 조제해서 가져오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생맥산은 맥문동, 인삼, 오미자로 구성된 처방으로 이름 그대로 맥(脈)을 생(生)하는 처방이다. 끊어져 가는 맥기(脈氣)를 다시 일으켜 맥을 살려서 잊게 한다는 의미로 심폐기능을 회복시키고 만성적으로 진액이 부족에 의한 일체의 증상을 다스린다. 그리고 사물탕은 숙지황, 당귀, 천궁, 작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혈(補血)하는 대표적인 처방이다. 먼저 기혈(氣血)을 보충해서 원기(元氣)를 끌어 올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으니라. 생맥산과 사물탕은 몇가지 안되는 약초로 구성된 처방이면서도 별다른 부작용이 없고 부작용이 적으니 어린 아이에게도 무난했다. 무엇보다 효능을 따져보면 실로 인혈을 대신할 만했다. 이 상황에 생맥산합사물탕을 떠올린 의원의 의술이 특출함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의원은 생맥산과 사물탕의 처방 내용과 효능을 설명해 준 뒤에 약방에 가서 지체없이 조제해 오겠다고 하면서 선비의 집을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집안의 여종이 쫓아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의원님, 마님이 잠시 처방을 보류했으면 하십니다. 그리고 의원님이 먼 길을 오셨으니 오늘 밤은 사랑채에서 쉬었다 가셨으면 하십니다. 들어가 계시면 제가 서둘러 다과를 좀 올려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의원은 기분이 언짢았다. 아이의 위독함과 함께 처방에 대해서도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을 했건만 자신의 처방을 못 미더워하는 것 같아 괘씸한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 진료가 내치지 않았는데, ‘먼 곳까지 와서 괜히 진맥을 했구나.’하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의원은 기분이 상했지만 어찌하겠는가. 환자 보호자가 처방을 거부하니 말이다. 의원은 밤도 깊어 어쩔 수 없겠다 싶었는지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묵기로 하고 사랑채에서 베개에 기대어 설핏 잠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여종이 의원을 깨웠다. 아이를 다시 진찰해 달라는 것이다. 의원은 ‘혹시 아이의 상태가 악화되었나?’하고 걱정하면서 서둘러서 아이가 있는 방으로 건너가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아이는 호흡이 편안해지고 가래 소리는 줄었으며 화색이 돌았다. 진맥을 해 보니 맥은 여전히 세삭(細數)했지만 완만하면서도 간간이 유력함이 느껴졌다. 의원은 ‘괴이한 일이로다. 괴이한 일이로다.’하면서 의아해했다. ‘잠시 잠들어 있던 시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의원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고개를 떨구던 순간, 등잔불 아래에 있던 사발에 뭔가가 검게 말라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의원이 옆에서 지켜보던 부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자 부인은 별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떨궜다. 의원은 밖으로 나와 여종에게 그 사발에 묻은 것이 무언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여종은 “마님은 의원님께서 아이의 증상에 사람의 피가 가장 좋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작은 서방님으로부터 전해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의원님의 처방을 보류시켜 놓고 의원님이 잠시 주무시는 틈을 타서 자신의 왼손 어제를 칼로 찢어 피를 사발에 받아서 아이에게 먹인 것입니다. 그래서 차도가 있는지를 확인하시고자 다시 진맥을 청하신 것입니다. 차도가 없다 하시면 다시 오른쪽 어제를 찔러 피를 더 먹이시고자 하십니다.” 어제(魚際) 부위란 손바닥의 엄지손가락 쪽 두툼한 살집 부위를 말한다. 여종의 말을 듣고서는 부랴부랴 방에 들어가 부인의 왼손을 보니 천으로 감싸져 있었고, 뒤이어 얼굴을 쳐다보니 핏기가 없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의원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의원은 경솔했던 자신의 말에 대해 뉘우쳤다. ‘아뿔싸~’ 하지만 아이가 살아났으니 다행이다. ‘의원의 의술이 아닌 어미의 지극정성 때문에 아이가 살아났구나. 의서에 인혈(人血)을 사용함은 불인(不仁)이라고 했건만, 어미가 자신의 몸을 해하여 자식을 살린 것을 보니 모정(母情)은 인(仁)을 넘어서는구나.’ 의원은 이 일을 통해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을 더욱 깨달을 수 있었다. 의원은 마음이 울리는 바가 심대(深大)하여 아이의 약방문과 함께 부인의 출혈 과다 후 도움이 될 만한 보약까지 약대(藥代) 없이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아이와 부인은 의원의 정성스러운 치료로 모두 건강을 회복했고,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 제목의 ○○는 바로 ‘인혈(人血)’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상한경험방> 一士人夜言 “兄嫂早寡, 只有一歲幼兒, 症似外感, 彌月留, 時有驚氣, 痰蓄甚促, 請諧往診之.” 其脈細數, 無倫次, 欲用蔘補, 則潮熱可畏, 欲用涼劑, 則元氣已微, 實難下手. 深思之際, 婦人悲辭乞活, 哀不忍聞, 出外廊, 與其士私語曰 “如此之病, 多用人血, 則庶有回生之望, 而無奈何. 只用生脈, 合四物湯, 欲送劑藥肆矣.” 內婢出來, 姑停製藥, 暫時挽留醫臨云. 余倚枕假寐, 而已又請見病兒, 入見則呼吸平緩, 痰蓄稍低, 按脈則細數亦緩. 余曰 “怪哉怪哉! 此兒得生路, 是何事也?” 仍回見燈下砂碟上有血色. 心驚怪異, 出外問于婢, 則內家聽人血好之言, 裂左手魚際, 取血灌之兒口, 而有效. 余晦言輕, 而兒生, 觀此益覺父母愛子至意.(어떤 선비가 밤에 찾아와서 “형수께서 일찍 과부가 되어 한 살배기 아기만 있습니다. 그 아이의 증세가 가기 같더니만 한 달 동안 계속되었고, 때때로 경기를 하며, 담이 쌓여 숨이 가쁘니, 청컨대 함께 가서 진맥해 주십시오.” 하였다. 그 맥이 세삭하고 불규칙했는데, 인삼을 넣어 보하는 약을 쓰려니 조열이 걱정되고, 성질이 차가운 약을 쓰려니 원기가 이미 미약해져서 실로 손을 쓰기 어려웠다. 깊이 고민하고 있던 차에 부인이 비통한 말로 살려달라고 애걸하여 슬퍼서 차마 듣지 못하고 바깥사랑채로 나가 그 선비와 몰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이런 병에는 사람 피를 많이 쓰면 회생할 수 있는 가망이 있겠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겠습니다. 그저 생맥산과 사물탕을 합해 써볼 뿐이니 약방에 보내 지어오라 하겠습니다.” 하였다. 집안의 여종이 나와 일단 약 짓기를 멈추고 잠시 의원의 진료를 만류하라 했다고 전하였다. 베개에 기대어 설핏 잠이 들었다가 잠시 지나 다시 병든 아이를 봐달라는 청에 들어가서 살펴보았더니, 호흡이 평안해지고 쌓였던 담이 낮아져 있었다. 맥을 짚어보니 세삭하였지만 완만해졌다. 내가 “괴이하도다, 괴이해! 이 아이가 살길을 얻었으니 이 어찌된 일인고?”하고 등잔 아래의 사기접시를 돌아보았더니 그릇에 붉은 핏빛이 있었다. 속으로 깜짝 놀라고 괴이하여 밖으로 나가 여종에게 물었더니 안주인이 사람 피가 좋다는 말을 듣고는 왼손 어제 부위를 찢어 피를 받아다가 아이 입속에 부어 넣었더니 효험이 있었다고 하였다. 나는 경솔했던 나의 말에 대해 뉘우쳤지만 아이가 살아났으니, 이 일을 통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을 더욱 깨달을 수 있었다.) < 본초강목> 人血, 醎, 平, 有毒. 肉乾麩起, 燥病也, 不可卒潤也. 飮人血以潤之, 人之血可勝刺乎? 夫潤燥, 治狂犬之藥亦夥矣, 奚俟於此耶? 始作方者, 不仁甚矣, 其無後乎?(사람의 피. 맛은 짜고 성질은 평하고 독이 있다. 몸이 말라 밀기울 같은 것이 일어나는 증상은 조병이므로 갑자기 자윤할 수 없다. 사람의 피를 마셔 자윤한다지만 어찌 사람을 칼로 찔러서 피를 낼 수 있겠는가. 마른 것을 윤택하게 하거나 미친개에 물린 것을 치료하는 약도 많은데 어찌하여 이것을 기다리겠는가. 처음 이 처방을 만든 자의 불인함이 심하니 그 후환이 없겠는가.)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2-12-12 11:32:45[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먼 옛날, 젊은 부인이 있었다. 부인은 결혼을 한 지 3년이 되었는데, 아직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 그 때문에 시어머니와 남편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고 하루 이틀 살아가는 것이 마치 하루살이와 같았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부터 한숨이 많아지고 식탐이 생기더니 먹고 먹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살이 찌기 시작했고 몸도 무거워졌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초봄의 어느 날 밤, 부인은 남편과 저녁밥상 앞에서 심한 말다툼을 하다가 갑자기 명치가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양의 밥을 먹은 상태에서 남편의 ‘아이를 낳지 못할 바에 차라리 나가 죽어라’는 말을 듣고 심하게 체한 것이다. 부인은 얼굴이 화끈거리고 분하고 열불이 나서 대청마루에 나가 앉았다. 밤이 깊었음에도 자존심이 상해서 방에는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씩씩거리면서 대청마루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끼더니 옆으로 푹하고 쓰러졌다. 부인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으나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바로 옆에 있던 다듬잇돌을 베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대청마루에 나온 남편은 깜짝 놀랐다. 인기척을 냈음에도 부인이 꼼짝을 안 하는 것이다. 흔들어도 깨어나지 못한 것을 보면 인사불성이 된 듯 했다. 날이 쌀쌀했음에도 온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똑바로 눕혀서 얼굴을 보니 입과 눈이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고, 팔다리를 들었다 놓아도 힘이 없이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언뜻 지린내가 나는 것을 보니 소변도 지린 듯했다. 남편은 부랴부랴 마을에 있는 의원을 불러 진찰을 맡겼다. “의원님 제 부인이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의원은 중풍으로 쓰려졌다는 말에 진맥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청심원(淸心元)과 소합향원(蘇合香元) 2~3개씩을 계속해서 먹였다. 사실 의식이 없어서 환약을 으깨서 입안에만 넣어 준 것으로 삼킬 수 없으니 입안에 반죽 된 환약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의원이 억지로 먹이려고 해 봤으나 사례에 걸리자 더이상 먹이는 것을 포기했다. 보통 청심원은 중풍이나 심장병과 같은 심뇌혈관 질환의 급성기에 많이 처방하고, 소합향원은 중풍이 아닌 기절이나 상기, 기울 등 일체의 기병(氣病)에 많이 사용하는 처방이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처방했다는 것은 제대로 진단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인사불성으로 삼킬 수가 없으니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설령 있을 법한 효과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부인의 증상은 점점 심해지는 듯했다. 남편은 수소문해서 침과 약을 잘 쓴다는 의원에게 왕진을 부탁했다. 의원이 남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된 것이요?” 남편은 아이가 없어서 생긴 불화와 최근 부인의 한숨과 식탐 등이 있었다는 것과 함께 어젯밤 말다툼했던 일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의원은 진찰을 마치자 “부인에게 3불치증(三不治症)이 보이니 내가 어떻게 무얼 할 수 있겠소?” 그러나 남편은 “의원님, 가망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삼불치(三不治)이란 게 대체 뭡니까?”하고 다급히 물었다. 의원은 “손발이 축 늘어진 것은 비기(脾氣)가 막히고 끊어진 것이니 이것이 첫 번째 불치(不治)이고, 대변이 막히고 자기도 모르게 오줌이 나오는 것은 신기(腎氣)가 막히고 끊어진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불치이며, 눈을 뜨고 있지만 물고기 눈알처럼 눈빛이 흐린 것은 간기(肝氣)가 막히고 끊어진 것이니 이것이 세 번째 불치요.”라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이 사람은 본래 청맹(靑盲)이어서 눈을 뜨고도 볼 수 없게 된 지 지금까지 3년째입니다. 그렇다면 2가지 증세뿐인 것이니 혹시 살아날 가망이 없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러나 의원은 “세 가지 불치증 중에 두 가지만 있다 하더라고 옛날 사리에 통달한 명의들조차 감히 치료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나와 같은 의술이 미천하고 하찮은 후학에게 무엇을 기댈 바가 있겠소?”라는 답을 했다. 사실 의원은 아내의 증상이 중풍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치를 장담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아무리 가볍게 보이는 병이라도 치료를 해 봐야 하는 법이었다. 의원의 말이 끝나자 남편의 얼굴이 어둡게 변하면서 쓰러져 있는 아내의 손을 잡고 흐느꼈다. “부인~ 아이가 없으면 어떻소. 우리 둘만이라도 잘 살면 될 것을. 내가 부인에게 너무 모질게 굴었소. 미안하구려. 부인~ 흑흑~” 명의로 소문났다는 의원에게서조차 들은 말이 희망은커녕 자신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니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모습을 본 의원은 “무엇을 그리 슬퍼하는 것이요. 진짜 중풍이면 객담(喀痰)이 치성해야 하거늘 부인의 기도에 가래가 차 있지 않소. 중풍(中風)에는 중혈맥(中血脈), 중부(中腑), 중장(中臟)의 차이가 있소이다. 풍(風)이 혈맥에 맞으면 구안와사가 되고, 육부에 맞으면 사지와 관절을 쓰지 못하고, 오장에 맞으면 구규(九竅)가 막히며 생명이 위태롭소.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중장(中臟)은 아닌 듯하오.”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러자 남편은 “그럼 심각한 중풍은 아니란 말씀이시오? 살릴 가망이 있다는 말씀이시오?”라고 다급히 물었다. 의원은 잠시 말없이 진맥을 하고 난 이후 말을 이어갔다. “부인은 중풍(中風)이 아니라 기병(氣病)의 일종인 중기(中氣)요. 부인의 촌맥과 관맥이 지완(遲緩, 느리고 완만함)하면서 부(浮, 들떠 있음)한 것을 보니 이는 생사를 넘나드는 진중풍(眞中風)은 아니요. 아마도 부인은 간의 기운이 너무 약해서 비위의 기운을 견제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생각되오. 한마디로 위토(胃土)가 간목(肝木)을 두려워하지 않고 날뛰는 것으로 그래서 최근에 항상 한숨을 쉬면서 그렇게 허겁지겁 먹기만 하고 결국 살이 급하게 쪘던 것이요. 비위(脾胃)는 사지를 주관하는데, 비위의 기운이 막혀 팔다리로 기운이 소통되지 못하니 마치 중풍으로 마비된 것처럼 증상이 나타났던 것 뿐이요. 이것을 중풍과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고 해서 유중풍(類中風)이라고 하오.”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부인의 입과 눈이 돌아간 것도 중풍에 의한 것이 아니오. 지금 부인의 얼굴을 보면 입이 돌아가고 동시에 눈도 깜빡임이 없고 이마에 주름도 잡을 수 없는 것을 보면 중풍에 의한 것이 아니요. 입과 눈이 동시에 마비되는 것은 구안와사(口眼喎斜)라고 하는데, 아마도 다듬잇돌을 베고 잠이 들어 풍한사(風寒邪)가 원인으로 생각되오. 중풍에 의한 얼굴 마비는 입만 돌아간다오. 입만 돌아간 와사풍(喎斜風)이 보기에는 가벼워 보이지만 사실 뇌혈맥의 중풍에 의한 증상으로 눈과 입이 함께 마비된 증상보다 심각한 것이요. 어쨌든지 부인은 처음에 증상이 생기자마자 침을 놓아서 막힌 혈맥을 통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소. 그리고 행침 이후에 약을 썼더라면 증상이 이렇게까지 심해지지는 않았을 것이외다. 안타깝구려.”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다른 의원들의 치료는 이미 깨진 시루와 같으니 지나간 일은 말씀하시지 마시고, 제가 보기엔 제 부인은 지금 생사 간에 놓였으니 그래도 알고 계신 치료방법이 있다면 장차 죽어가는 이 사람이 저승에서 한을 품게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면서 재촉했다. 의원도 더이상 구차한 설명으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치료를 시작했다. 먼저 팔에 있는 심포경의 간사혈, 대장경의 삼리혈, 곡지혈과 손등에 있는 합곡혈, 새끼 손가락 끝에 있는 심경의 소택혈, 정수리에 있는 백회혈에 삼릉침으로 사혈(瀉血)을 시켰다. 이어서 청양탕(淸陽湯)에 삼화탕(三化湯)을 합방해서 투약했다. 청양탕은 구안와사와 함께 땀이 계속 나고 소변이 잦은 데 쓰는 처방이고, 삼화탕(三化湯)은 장부의 열을 내려서 대소변을 원활하게 하는 처방이다. 의원은 “밤이 되면 반드시 대변이 잘 나오고 흐르는 땀이 멈출 것이니, 이렇게 된다면 다행히 치료할 수 있는 가망이 있는 것이오”라고 했다. 다음날이 되자 정말 대변이 잘 나오고 땀이 멈추더니 의식이 돌아온 듯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행동이 처방을 복용하기 전과는 전혀 달랐다. 의원은 다시 풍증에 사용하는 비전순기산(秘傳順氣散)을 처방해서 하루 2첩을 다려서 복용하고 하고. 3일 동안 자오유주 침법으로 침을 놓자 손이 비로소 움직이고 말소리도 온전해 졌다. 이틀을 쉰 후 다시 화수미제 침법으로 침을 놓은 후 기혈(氣血)을 보하는 가미대보탕(加味大補湯)을 처방해서 하루 한 첩씩을 달여서 복용하게 하였다. 그랬더니 5첩을 넘기지 않아서 비뚤어졌던 입과 눈이 바르게 돌아오고 마비되었던 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자리에 앉고 일어나서 걷게 되었다. 마을에는 의원이 죽어가는 중풍환자를 살리고, 열흘여 만에 걷게 했다고 소문이 대단했다. 그러나 의원은 “중풍은 진짜와 가짜가 있으니 중풍과 기병(氣病)은 구별해야 합니다. 사실 부인의 병은 진중풍(眞中風)인 아닌 중풍과 유사한 유중풍(類中風)으로 기병의 일종입니다.”라고 겸손해했다. 기병(氣病)은 정서적인 문제가 신체적인 증상으로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신체형 장애를 말한다. 의원은 부인을 치료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과장할 수도 있었지만, 있는 그대로의 병증을 설명하고 실력대로 치료했을 뿐이었다. ■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우잠잡저> 醫案. 婦人中風. 丙申春二月, 二十一歲婦人卒倒, 不省人事, 口眼喎斜, 一醫用淸心元與蘇合丸二三箇式, 連服三日, 無效, 一醫用蓁芃升麻湯, 灌之不納. 無奈治療, 請余診視, 口眼歪喎, 四肢散着, 烝汗偏軆, 遺尿而大便不通, 所謂喎噼 竄視, 癱瘓, 瘖痱, 皆備也. 중략. 然以余愚料, 本非眞中入臟風. 應是陽明胃土之氣太過, 寡于畏, 而厥陰風木之氣, 委和所致也. 不然則上証, 那無上溢之痰喘? 중략. 因刺絡經金穴間使, 陽明經土穴三里, 大膓經土原曲池合谷, 小膓經金穴少澤, 督脈天穴百會等, 以踈血脈之滯澁, 與臟腑中沸烝之火熱, 投劑淸陽湯, 合三化湯. 小有知覺, 其聞聲應音之擧, 切非向日之瘖聾也. 於是, 更劑秘傳順氣散, 日二貼服之, 而子午流注, 逐日行針三日, 左右手始運用, 而語音完然. 乃以大接經, 小接經法, 而休兩日後, 施以火水未濟法針. 又劑加味大補湯, 日一貼用之, 以調養散失之氣血, 未過五貼, 喎斜之口眼反正, 而痱廢之兩脚, 起床步履.(의안. 부인의 중풍. 병신년-1836 봄 2월에 21세 된 아낙이 졸도하여 인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입과 눈이 돌아가서 비뚤어졌는데, 어떤 의원은 청심원과 소합환 2~3개씩을 3일 동안 계속해서 복용하게 했는데 효과가 없었고, 다른 의원은 진교승마탕을 입에 흘려 넣어주었으나 먹지 못하였다. 치료할 방법이 없어서 나에게 진료를 청하기에 살펴보았다. 입과 눈이 돌아가서 비뚤어지고 손발이 축 늘어지고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으며 자기도 모르게 오줌이 나오고 대변은 나오지 않았으니, 이른바 와벽, 찬시, 탄탄, 음비가 모두 나타났다. 중략.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본래 진짜 중장은 아닌 듯하다. 분명 양명위토의 기운이 너무 지나쳐서 두려움이 적어져 궐음풍목의 기운이 위화된 결과이다. 그렇지 않다면 위 증세에 어찌 위로 차오르는 담천이 없단 말인가? 중략. 이에 낙맥과 경맥의 금혈인 간사와 양명경의 토혈인 삼리와 대장경의 토혈과 원혈인 곡지와 합곡, 소장경의 금혈인 소택과 독맥의 천혈인 백회 등을 방혈하여 혈맥의 막히고 껄끄러운 곳과 장부 속의 끓어오르는 뜨거운 열을 소통시킨 뒤 청양탕에 삼화탕을 합하여 투약했다. 약간 의식이 돌아와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행동이 이전의 마치 귀 멀고 말 못하는 때와는 전혀 달랐다. 이에 다시 비전순기산을 지어서 하루에 2첩을 복용하게 하였고, 자오유주침법으로 매일 3일 동안 침을 놓았더니 좌우의 손이 비로소 움직이고 말소리가 완전해졌다. 이에 대접경과 소접경 침법을 사용하고 2일을 쉰 뒤에 화수미제 침법을 시행하였다. 다시 가미대보탕을 지어서 하루에 1첩을 써서 흩어져버린 기혈을 조섭하게 하였더니, 5첩을 넘기지 않아 비뚤어졌던 입과 눈이 바르게 돌아오고 마비되어 쓸 수 없었던 두 다리로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다.) < 의종손익> 非風一症, 卽時人所謂中風症也. 此症多見卒倒, 卒倒多由昏憒, 本皆內傷積損頹敗而然, 原非外感風寒所致, 而古今相傳, 咸以中風名之, 其誤甚矣. 故余欲易去中風二字, 而擬名類風, 又欲擬名屬風. 중략. 竟以非風名之, 庶乎使人易曉, 而知其本非風症矣.(비풍증이라는 증상이 바로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중풍증이다. 이 증상은 대체로 졸도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졸도는 대부분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생기는 것으로, 근본 원인이 내상으로 몹시 상하여 그런 것이지 원래 외부의 풍한에 감촉하여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예로부터 지금까지 전해 오기로는 이 증상을 모두 중풍이라고 명명했으니 그 오류가 너무 심하다. 그래서 나는 중풍 두 글자를 바꾸어서 ‘유풍’이라고 명명하려고 하며 또 ‘속풍’이라고 칭하려고 한다. 중략. 그래서 마침내 ‘비풍’이라고 명명한 것이니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여 그 병증의 근본 원인이 풍증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2-11-11 16:09:45[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것을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먼 옛날 고관대작의 부인이 병에 걸렸다. 부인은 불안하고 초조해하면서 밥도 잘 먹지 못했다. 심장은 시도 때도 없이 벌렁거리면서 간간이 가슴에 통증도 느꼈다. 입안에 음식이 들어가면 마치 모래를 씹는 듯했고, 심지어 입안과 혀까지 화끈거리는 증상도 생겼다. 벌써 이러한 증상은 반년이나 되었다. 당시 많은 의원들이 진찰에 나섰고 다양한 처방을 했지만, 치료는커녕 부작용에 시달렸고 병세는 점점 악화되었다. 치료를 실패한 의원들은 하나같이 “한 명의 부인을 치료하는 것은 열 명의 사내를 치료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요.”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당시 명의로 소문난 허의원이 있었다. 허의원은 환자들때문에 약방을 비울 수 없다는 이유로 왕진에 응하지 않았기에 부인은 아직까지 허의원의 진료는 받지 못한 터였다. 그래서 고관대작의 부인은 어쩔 수 없이 가마를 타고 허의원의 약방에 도착했다. 그런데 부인은 가마에 여전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허의원은 함께 온 여종에게 “마님을 가마에서 내리게 해서 약방으로 모셔 오게나”하고 일렀다. 그러자 여종은 지금까지 왕진을 왔던 모든 의원들은 대청마루에 앉아 비단장막을 사이게 두고 진찰을 했다고 하면서 가마의 문을 열어 줄 테니 직접 가서 진찰을 하도록 청했다. 허의원은 여종과 실랑이를 버릴 시간이 없기에 어떻게든지 병세를 알아내 보고자 가마에 다가섰다. 가마 입구에는 구슬로 엮어진 휘장이 쳐져 있었고, 안쪽에는 비단천이 드리워져 있어서 부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부인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일단 첫 번째 진료법인 망진(望診)이 불가능했다. 망진은 환자의 얼굴 형태와 혈색을 보고서 병세를 알아내는 방법이다. 허의원은 망진은 포기하고 문진(問診)을 했다. 문진(問診)이란 환자에게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 지를 물어 보는 진료 방법이었다. 허의원은 차분하게 몇 가지를 물어보기 시작했고, 부인은 자신의 병세를 말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짜증을 냈다. “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은가? 그냥 진맥을 해서 내 병세를 알아내도록 하게나. 자네가 명의라면 진맥만을 통해서도 알아 맞힐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것이었다. 이러니 문진(聞診)도 되지 않았다. 문진(聞診)이란 환자로부터 아픈 부위나 아픈 증상을 들어서 아는 진료방법이다. 또한 가래소리, 기침소리 뿐만 아니라 땀냄새나 소변이나 구취 등 냄새를 맡아서 진료하는 방법이다. 문(聞) 자에는 ‘소리를 듣다’는 의미와 함께 ‘냄새를 맡는다’는 의미도 있었다. 허의원은 어쩔 수 없이 진맥만이라도 해 보고자 했다. “마님, 그럼 손목을 내밀어 보시지요”라고 청했다. 그런데 부인의 내민 손에는 비단이 감싸져 있었다. 심지어 비단은 손목까지 감싸져 있었다. 허의원은 비단천을 거두워 줄 것을 요청했으나 부인은 이마저 거절했다. 허의원은 깊은 한 숨을 쉬며 부인에게 고했다. “내 마님의 진료를 포기해야 하겠소. 지금 하인들을 데리고 당장 내 의원(醫院)에서 떠나시오.”라고 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서릿발같은 냉정함이 서려 있었다. 부인은 화들짝 놀랐다. “아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갑자기 왜 그러시는 것인가? 지금까지 나를 진찰하러 온 의원들은 얼굴을 보이지 않고 묻는 말에 입을 다물고 있어도 비단천 위에서 진맥도 잘만 하더구만, 자네는 그럴 만한 의술이 부족한 것인가?”라면서 되물었다. 허의원은 이어서 “모름지기 진찰에는 망문문절(望聞問切)이 있사옵니다. 이것을 사진(四診)이라고 하온데, 망진(望診), 듣는 문진(聞診), 묻는 문진(問診)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맥을 통한 절진(切診)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병세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마님은 이 4가지 진찰법 중 그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제아무리 신의(神醫)라 할지라도 마님의 병세를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진맥도 제대로 할 수 없거니와 항간에 궁궐에서는 어의들이 후궁을 진찰할 때 손목에 명주실을 묶어 진맥을 한다는 소문도 있지만 이 역시 더더욱 불가한 진찰방법입니다. 저는 더이상 마님을 변증(辨證)할 수 없으니 약방문(藥方文) 또한 낼 수 없습니다. 그만 되돌아가시지요.” 허의원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부인이 휘장 안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비쳤다. 허의원에게 진찰을 받지 못하면 자기만 손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인이 생각해도 허의원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그럼 내 휘장을 거두겠네.”라고 하면서 가마 문에 걸린 휘장을 걷어 올렸다. 그런데 부인의 얼굴에는 분칠이 가득해서 안색을 살필 수 없었다. 허의원은 “만약 제대로 진찰을 받고자 하시면 가마에서 나와서 얼굴의 분을 모두 지우시고 맨 얼굴로 진찰에 임해 주셔야 합니다. 요즘 보면 마님처럼 많은 양반가 부인들이 얼굴에 분칠을 짙게 하고 입술은 붉은 홍화로 물들이고 심지어 손톱에도 봉숭아 물을 들여놓아 정확한 진찰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진맥 또한 손목을 감싼 비단천을 거두어야 합니다.” 부인은 하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서 화장과 입술도 모두 지우고 진찰에 임했다. 사실 당시로써는 양반가 귀부인이 평민인 의원에게 화장을 지운 맨 얼굴을 내 보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허의원은 진찰을 시작했다. “마님의 안색과 입술이 창백하고 간간이 관골에 홍조를 띠고 동시에 혀까지 메마른 것을 보면 혈허(血虛) 증상에 허열(虛熱)이 동반되고 진액 또한 고갈되는 것입니다.” 허의원은 부인에게 “평소 불편해하는 증상은 어떠하십니까?” 부인은 “억울한 감정이 느껴지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잘 놀라고 누가 잡으러 오는 듯한 불안감이 있고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네. 또한 입안은 소태같네.”라고 답했다. “언제부터 나타난 증상이신지요?”라는 질문에 부인은 “6개월 전쯤에 내 처소에 도둑이 들어 내가 아끼는 패물이 사라진 것을 알았는데, 그때부터 증상들이 시작된 것 같네. 도둑이 든 사실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네.”라고 답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허의원은 “그런 일이 있었군요. 패물은 다시 장만하시면 될 것이고, 이 사실은 사실대로 대감께도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님의 말씀과 증상들을 들어보니 심담(心膽)의 허겁증(虛怯症)입니다. 또한 촌구맥은 가늘면서 떠 있고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은 간화(肝火)입니다. 망문문절 사진을 종합해 보면 마님은 기울(氣鬱)로 인한 화병(火病)이 있는 듯합니다. 이에 온담탕(溫膽湯)에 향부자, 원육, 당귀, 시호를 가하여 처방하오니 잘 복용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허의원의 처방으로 인해 부인의 병세는 차도가 나기 시작했고 단 한제만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부인의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소문이 나자 치료에 실패했던 의원들이 허의원을 찾아 가르침을 청했다. 허의원은 이들에게 “의서에 보면 망진(望診)으로 병을 아는 의사를 신의(神醫)라고 하고, 문진(聞診)으로 병을 아는 의사를 성의(聖醫)라고 하고, 문진(問診)으로 병을 아는 의사를 공의(工醫)라고 하고, 진맥으로 병을 아는 의사를 교의(巧醫)라고 한다고 했소이다. 모름지기 의원이라면 신성공교(神聖工巧) 중 그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해서 진료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요.” 허의원은 이어서 “요즘의 많은 의원들은 환자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눈빛도 마주치지 않으며 또한 환자의 호소나 신음소리는 커녕 어떻게 불편하냐고 질문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소. 자신이 큰 약방에 머물고 명성이 있다고 여긴다면 이러한 폐단은 더욱 심해지지요. 환자들이 손목만을 내밀면서 자신의 병증을 맞춰 보라고 시험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 또한 진맥만으로도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다고 떠들어 대는 의원들에게 책임이 더 클 것이요. 망문문절을 소홀히 하고서 어찌 병자의 오장육부를 알 수 있겠소. 설령 우물 속을 보듯이 몸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계가 있다 할지라도 망문문절은 절대 버리면 안 될 것이요.”라고 당부했다. 허의원의 말에는 당시 의원들의 진료행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허의원의 말을 듣고 있던 의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후 양반가 부인들도 일부는 여전히 고집을 피우다가 병을 키우기도 했지만, 분칠을 지우고 적극적으로 진찰에 임한 부인들은 보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다. 병이 낫고 안 낫고는 의원이나 환자들 하기 나름이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경악전서> 諺云, 寧治十男子, 莫治一婦人, 此謂婦人之病不易治也. 何也. 不知婦人之病, 本與男子同, 而婦人之情, 則與男子異. 중략. 今富貴之家, 居奧室之中, 處帷幔之內, 復有以綿帕蒙其手者, 旣不能行望色之神, 又不能盡切脈之巧. 使脈有弗合, 未免多問, 問之覺繁, 必謂'醫學不精', 往往幷藥不信, 不知問亦非易. 其有善問者, 正非醫之善者不能也. 望,聞,問,切, 欲於四者去其三, 吾恐神醫不神矣. 世之通患, 若此最多, 此婦人之所以不易也, 故凡醫家病家, 皆當以此爲意.(세속에는 ‘남성 10명을 치료하는 것보다 여성 1명을 치료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여 여성의 병은 치료가 쉽지 않음을 말한다. 왜 그럴까. 여성의 병은 본래 남성과 같지만 여성의 정이 남성과 다름을 모르기 때문이다. 중략. 지금 부귀한 집안의 여성은 은밀한 방 속에 휘장을 치고 거처하고 손마저도 비단으로 감싸니 색의 신기를 관찰할 수 없고 맥의 제대로 짚을 수도 없다. 색을 맥과 합할 수가 없으니 문진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데, 지나치게 많이 묻는다고 느끼면 반드시 ‘의술이 정밀하지 못하다’고 하면서 약마저 믿지 않는데, 문진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른다. 잘 묻는 것도 의술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망문문절 4가지 중 3가지를 버린다면 신의라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세상의 보편적인 폐단 중 이런 경우가 가장 많기 때문에 여성의 병이 쉽지 않으니 의사와 환자 모두 이를 유념해야 한다.) < 만병회춘> 一 常見今時之人, 每求醫治, 令患者臥於暗室帷帳之中, 并不告以所患, 止令切脈, 至於婦人多不之見, 豈能察其聲色? 更以錦帕之類護其手, 而醫者又不便褻於問, 縱使問之亦不說, 此非欲求愈病, 將以難醫. 殊不知古之神醫, 尚且以望聞問切, 四者缺一不可. 況今之醫未必如古之神, 安得以一切脈而洞知臟腑也耶?(요즘 사람들을 보면, 의사에게 치료를 청할 때마다 환자는 어두운 방의 휘장 속에 누워있게 하고 앓는 바를 전혀 알려주지 않으면서 단지 맥만 짚게 하며, 부인의 경우에는 대개 보지도 못하니, 어찌 그 음성과 안색을 살필 수 있겠는가? 또 비단 종류로 그 손을 감싸고 의사 또한 스스럼없이 묻지 못하며 설령 묻는다 해도 역시 말해주지 않으니 이는 병 고치기를 청하려는 것이 아니라 의사를 곤란하게 하려는 것이다. 옛날의 신의들조차 망문문절 네 가지에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지금의 의사가 반드시 옛날처럼 신묘하지는 못한데, 어떻게 한 번 맥을 짚어 장부를 훤히 알겠는가?)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2-08-12 10:12:29설 명절이 지난 이맘 때쯤에는 40대 이상 중년 여성 중 혀 통증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다. 이들은 혀 표면이 갈라지고 화끈거리듯 아프다고 호소한다. 또 매운 음식이나 뜨거운 국물을 먹을 때면 더욱 통증을 느꼈고 입이 마른 느낌도 자주 들고 신맛이 느껴진다고 했다. 근처 병원을 찾아 종합검진을 해도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고, 치과에서 항진균제 및 항진경제를 이용해 치료하기도 했지만 큰 차도는 없었다. 경희대 한방병원 한방3내과 김진성 교수는 27일 "구강작열감증후군은 혀나 구강 점막에 지속적인 통증이 느껴지는 만성 질환"이라며 "폐경기에 접어들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40~60세의 여자 환자에서 발병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통증은 주로 혀 부위에 나타나지만 잇몸, 입술, 뺨 안쪽 및 입천장에도 나타난다. 화끈, 따끔, 얼얼한 느낌이 지속되고 오전보다 오후에 통증이 심해지기도 한다. 금속이 접촉되었을 때처럼 신맛이 강하게 느껴지고, 입마름이 자주 느껴지기도 한다. 형태적으로 혀 표면이 갈라지거나, 혀 표면이 지도처럼 군데군데 무늬가 생기지만 이러한 변화가 통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심한 경우 통증으로 잠이 들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고 불안이나 우울 등의 심리적인 불안정 상태가 이어진다. 구강작열감증후군의 원인은 현재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대체적으로 신경병증성 통증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혀의 말초신경의 변화, 내분비 호르몬대사의 변화 및 만성적인 심리적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구강작열감증후군 환자 중 스트레스와 관련이 높은 기울증을 진단 받은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며 "특히 양쪽 가슴사이의 전중혈 부위를 가볍게 눌렀을 때 통증이 민감하게 발생하는 경우가 60명 중 50명으로(83%)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한의학에서는 감정의 억울이나 과도한 스트레스 등에 의한 변화가 인체 내 기의 순행을 방해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통증의 치료를 위해서는 정체된 순행을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치료는 혀를 비롯한 구강 내 미세 순환을 촉진해주기 위한 구강 침요법과 전신적으로 부족해진 음액을 보충하는 한약 치료가 효과적이다. 정체된 기운을 풀어주기 위해 대영, 협거, 예풍 등의 혈자리를 주로 활용하고, 또한 심신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귀비탕, 청심연자탕 등의 한약을 복용한다. 치료기간은 6주간 12회의 침치료 및 한약 복용을 기본으로 병의 경과를 살펴 예후를 판단하게 된다. 구강작열감증후군 예방을 위해서는 생활 속 적절한 스트레스 관리가 필수다. 더불어 녹황색 채소나 과일의 섭취량을 늘리고 입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자주 마시며 구기자차와 같이 몸의 음액을 보충해주는 차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15-02-27 13:41:22<사례 1> 지난 1960년대 인도의 식물학자인 싱 후 박사는 인도의 종교음악을 수초에 2주간 들려주는 실험을 했다. 그랬더니 표피가 두터워졌고 잎사귀의 공기구멍 숫자가 50%나 늘어났으며 세포도 커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논에 확성기를 설치해 음악을 튼 결과 벼 수확량이 25∼60% 늘어나기도 했다. 싱 후 박사는 이런 실험들을 토대로 “화음의 음파는 식물의 생육, 개화, 결실 및 종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사례2> 지난 2003년 경희대 한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현 경희동서신의학병원 한방음악치료센터장은 6개의 실험세트에 누에를 넣고 서로 다른 음악을 들려주는 실험을 했다. 5개 세트에는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오행으로 나눈 음악을 틀어주고 나머지 1개 세트에는 아무런 음악도 들려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세트별로 서로 다른 형질 변화를 보였는데, 특히 목에 해당하는 음악을 들려준 세트의 누에가 가장 먼저 알을 깨고 부화했다. 위의 두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음악은 식물과 동물의 생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사실은 인간에게도 유효하다. 흔히 음악치료라고 불리는 뮤직 테라피(Music Therapy)는 이런 논거를 바탕으로 생성된 신흥 학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에 좋은 음악은 따로 있을까. 어떤 음악이 우리 몸에 좋고 어떤 음악이 나쁠까. 그리고 음악이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일까. 음악평론가 장일범씨(39)와 음악치료사 한정아씨(37)가 지난 6일 서울 자양동 나루아트센터에서 만나 ‘우리 몸에 좋은 음악’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눴다. 이화여대 음대와 동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지난 2002년부터 음악치료사로 활동해온 한씨는 오는 13일부터 6월26일까지 총 8회에 걸쳐 나루아트센터 소공연장에서 ‘음악이 가르쳐준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뮤직 테라피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음악평론가 장일범·음악치료사 한정아,뮤직테라피를 말하다 ▲장일범(이하 장)='음악치료'라는 개념이 아직은 좀 낯설다. ▲한정아(이하 한)=치료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이겠지만 음악치료가 꼭 환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심리적인 불안감이나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음악치료는 효과적인 과정이 될 수 있다. 가령 빈번한 두통으로 의사를 찾아갔다고 가정해보자. 의사가 "아스피린을 먹지 말고 모차르트 음악을 들어라"고 처방을 내린다면 처음엔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음악치료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음악치료라는 새로운 음악 체험을 통해 음악은 편안한 친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혜로운 조언자가, 때로는 포근한 안락의자가 되어주기도 한다. ▲장=오는 13일부터 펼치는 '음악이 가르쳐준 비밀'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한=오전 11시에 시작하는 브런치 공연으로 기획된 이번 프로그램은 주부들을 위한 것이다. 늘 분주하고 힘에 부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주부들의 마음을 치유해 드리는 시간이다. 음악치료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음악을 통해 나의 모습을 찾아보고, 다양한 악기를 직접 연주해보고, 음악극의 주인공도 되어 보면서 자신의 내면과 주변 관계 등을 되돌아 보게 된다. ▲장=음악치료 프로그램을 접하기 전과 후의 뚜렷한 변화가 있나. ▲한=사실 음악치료가 실효를 거두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생활이 바뀔 정도로 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지속적인 치료를 요한다. 일회성으로 끝나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음악치료는 4∼5명의 소그룹으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번 프로그램은 40∼50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진행되다 보니 개개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평소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시간마저도 없었던 사람들이 이번 공연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본다. 공연장을 찾았다가 엉엉 울며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장=모차르트의 어떤 음악은 우울증에, 베토벤의 어떤 음악은 두통에 효과가 있다며 선전하는 음반들이 시중에서 팔리고 있다. 음악치료의 관점에서 이런 음반들이 정말 효과가 있나. ▲한=하하하. 음악치료사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이런 것이다. 우울할 때, 머리가 아플 때, 또 배가 아플 때 들으면 좋은 음악을 골라달라는 주문을 자주 받는다.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이런 음반들이 전혀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거다. 예를 들면 클래식 음악과 거리가 먼 노인들에게 이런 음반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음악은 과학이 아니다. ▲장=또 하나 우문을 던지겠다. 음악치료에 사용되는 음악은 클래식 뿐인가, 아니면 그밖의 모든 음악인가. ▲한=음악치료는 클래식 음악으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 역시 음악치료에 대한 중대한 오해 중 하나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에 좋은 음악이라는 것은 개개인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전에 한 노인병원에서 음악치료를 할 때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젖는 뱃사공…"하며 시작하는 옛 노래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 때 그곳에 모였던 모든 분들이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짠해진 적이 있다. 또 음악치료는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음악치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의 하나다. 음악 감상이 음악치료의 한 방법이긴 하지만 감상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장=해설음악회 같은 걸 하다 보면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참 어렵던데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한=한국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수줍음이라는 DNA를 몸 속에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엔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것,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꺼리는 경향이 있다. 직접 연주를 하게 하는 악기들도 대개는 핸드벨, 마라카스(딸랑이의 일종) 같은 다루기 쉬운 악기나 타악기 위주로 구성한다. 악보를 보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으로 또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되니까. 처음이 어렵지 한번 터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술술 풀린다. 끝끝내 참여를 안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 분들에게도 효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한마디 말도 안했지만 수다를 떠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장=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스트레스 지수도 높고 자살율도 꽤 높은 편이다. 음악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긴데. ▲한=음악치료는 그동안 특수기관이나 병원 등에서 지체아동과 노인들을 대상으로 주로 운영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음악치료가 특별한 사람들, 즉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어린이들,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주부들, 이런저런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는 직장인들에게 음악치료가 더욱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의 병을 갖고 있고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심리적 약점을 하나둘씩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장=대학과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다가 음악치료로 전공을 바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한=장애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의 경험이 나를 음악치료사의 길로 인도했다. 음악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것을 평생의 직업으로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좋은 음악을 소개하고 관객을 대상으로 음악을 해설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음악평론가인 나도 넓은 의미의 음악치료사 아닐까.(웃음) ▲한=그렇다고 대답하면 음악치료사들이 들고 일어날텐데…(웃음). 음악치료사는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양성되는 것이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리고 아버지가 한 가정의 음악치료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깊숙이 들어가면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마음을 치유할 수 있고 치유받을 수 있다. 병원에 갈 수 없을 때 우리의 어머니들이 "엄마 손은 약손"하면서 구음(口音)과 함께 아이들의 배를 문지르면 복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던 것처럼 음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음악의 생활화, 이것이 '즐거운 나의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사진=김범석기자
2007-03-08 18:40:09[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때는 조선시대.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밤, 경상도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의 이진동(李鎭東)은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녘까지 툇마루에 앉아있었다. 동쪽 하늘에는 그믐달이 떠 있었다. ‘여명(黎明) 직전의 그믐달이 처량하구나.’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밝은 별똥별이 그믐달 앞을 가로질러 떨어졌다. 이진동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진동은 날이 밝자마자 손가락을 이리저리 짚어 일진(日辰)을 점쳐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규괘(睽卦)가 나왔다. 규괘는 위는 리화(離火, 불)괘이고 아래는 태택(兌澤, 연못)괘로 서로 부딪히는 성향을 나타낸다. 이것은 마치 중녀(中女, 離卦)와 소녀(少女, 兌卦)가 한 집에 살면서 뜻이 달라 서로 질시하는 모순에 휩싸인 상황이다. 어디선가 서로 간에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당시 조정은 정조의 정책에 반대하는 노론 벽파(僻派)와 사도세자를 기리는 데 찬성하면서 정조의 정책에 우호적인 소론과 남인으로 주로 구성된 시파(時派)와의 파벌싸움이 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조는 종기로 인한 병환(病患) 중이었고 점차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진동은 노론 벽파에 의한 종기 치료를 가장한 시해(弑害)를 우려했다. 이진동은 조정에 큰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무슨 큰 변고가 생길 징조구나.’ 어서 한양에 가봐야겠다고 작정하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아버님 어디를 그리 급히 가시려는 겁니까?”하고 아들이 물었지만 대꾸할 시간도 없었다. 안동에서 한양까지의 거리는 630여리(里)나 된다. 1시간에 10리(4km)를 간다치면, 젊은이라도 한시도 쉬지 않고 자지 않고 걸어도 이틀하고 반나절 동안 걸어야 한다. 이진동은 젊어서는 축지법을 쓴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걸음이 빨랐지만 지금은 나이가 벌써 고희에 가까웠다. 일흔 나이에 쉬지 않거나 잠을 자지 않고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며칠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이진동은 벌써 반나절 동안 쉼 없이 걸어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에 도착했다. 그때 누군가 숨을 헐떡이며 다가와 “형님~”하고 불렀다. 김한동(金翰東)이었다. 김한동 또한 어찌 알고서는 아침 일찍 경북 봉화에서부터 길을 나선 것이다. “자네도 같은 생각인가?”라고 이진동이 묻자, 김한동은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이진동은 김한동보다 7세 형이다. 그리고 서로의 눈빛을 주고받더니 바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진동과 김한동은 젊었을 때 과거를 함께 본 인연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첫해 낙방을 했다. 이후 김한동은 다음 해에 재차 시험을 치러 합격해서 전라도 관찰사를 거쳐 승정원 승지까지 지냈다. 그러나 이진동은 다시 시험을 보지 않고서 안동의 도산서원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하면 학문을 닦고 있었을 뿐이다. 이 둘은 교류를 통해서 수시로 나랏일을 걱정하면서 서로 간의 신뢰와 의지함이 있었다. 따라서 지방에서조차 정조의 안위(安危)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진동과 김한동은 저녁 무렵까지 쉬지 않고 내달린 통에 벌써 소백산 자락의 죽령(竹嶺)까지 왔다. 젊은이라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속도다. 깊은 산속은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저녁이 되었지만 쉴 곳이 마땅치 않아 고갯마루에 앉아있는데, 멀리서 소쩍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 순간, 1800년 음력 6월 28일 저녁 유시(酉時, 17~19시). 정조는 종기를 앓은 지 18일 만에 승하했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더욱 처량하고 크게 들렸다. 불여귀(不如歸)라는 이름이 있는 소쩍새. 마치 ‘이미 늦었으니 돌아가니만 못하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진동과 김한동은 정조의 승하 사실을 모른 채 계속해서 길을 서둘렀다. 그날 늦은 밤, 이들은 죽령 봉오리를 넘어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시 길을 나셨다. 벌써 단양까지 왔다. 주먹밥도 걸으면서 먹었고 멋진 경치에 넋을 잃을까 봐 단양팔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땅만 보고 걸었다. 길을 묻는 와중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으니 사람들은 ‘이들이 혹시 미친겐가?’라면서 의아해했다. 단숨에 단양을 지나 금수산과 제천을 거쳐 힘겹게 천둥산 박달재까지 올랐다. 집을 나선 지 나흘째가 되었다. 이들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 차 있었고 거의 말이 없었다. 이진동의 입술은 바짝 말랐고 입안은 소태처럼 꺼끌거렸다. 근심과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고 간혹 건망증처럼 깜빡거리면서 과거 일들이 잘 생각나지 않아 당황했다. 심장은 벌렁거리고 식은땀을 흘렸다. 심지어 코피까지 났다. 바로 전형적인 사려상비(思慮傷脾)로 인해 근심, 걱정이 너무 심해서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코피까지 보였다는 것은 혈열망행(血熱妄行)이었다. 김한동은 마치 누가 잡으러 오는 듯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며칠 밤을 지나면서 눕거나 일어나도 오매불망 편치 않았다. 이것은 허번증(虛煩症)이다. 뭔가에 접촉이 되거나 마른 나뭇가지를 밟는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깜짝 놀랐다. 이것은 심담허겁증(心膽虛怯症)으로 근심과 걱정이 많아지고 잘 놀라면서 불안과 공포감이 나타나는 것이다. 심담허겁이 심해지면 불안신경증과 강박, 공황발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경기도에 도착했다. 여주와 이천을 지났고 장호원에 이르러서는 발바닥이 부르트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걸음걸이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드디어 한양에 다다랐다. 안동에서 출발한 지 단지 이레밖에 지나지 않았다. 젊은이라도 보름이상 걸릴 거리를 7일 만에 온 것이니 얼마나 조급했던 것일까. 그러나 ‘아뿔싸~!!!’ 한양에 들어서면서 정조가 이미 승하했다는 소식을 들게 되었다. 이들은 그 자리에서 삼각산을 향해 큰 절을 두 번 하더니 목 놓아 곡을 했다. 이진동과 김한동은 궁궐까지 다 와서는 궁궐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진동의 당시 나이는 68세였고, 김한동은 61세로 환갑의 나이였다. 때마침 정조의 상례(喪禮) 절차를 논하기 위해 궁을 오가는 정약용과 박지원이 이진동과 김한동을 발견했다. 정약용과 박지원은 이들이 이미 7일 전 아침에 출발하여 한양까지 걸어왔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깜짝 놀랐다. ‘어찌 알고서 승하하시기도 전에 집을 나섰단 말인가?’ 박지원은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의원의 진찰을 받도록 했다. 의원은 “이 어르신들은 노심초사로 인해 매사에 조급함이 심해서 나타나는 병증을 보이고 계십니다. 근심과 걱정, 울분과 속상함은 떨어 버리고 마음을 차분하게 하면서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귀비탕(歸脾湯)이나 온담탕(溫膽湯)을 복용하면 차도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의원은 이진동에게 귀비탕을 처방했다. 귀비탕은 과도한 고민으로 인한 불안초조, 건망, 심장 두근거림, 식욕부진과 함께 과로 시에 보이는 코피에도 좋은 처방이다. 김한동에게는 화들짝 잘 놀라면서 노심초사하고 불면증에 좋은 온담탕을 처방했다. 이들은 다행스럽게 의원의 처방을 복용하면서 점차 건강을 회복했다. 이진동과 김한동은 건강을 회복한 후 잠시 한양에 머물며 한양의 유생들과 학문교류도 하고 마지막 정조의 장례까지 잘 마무리했다. 이진동과 김한동. 경상도 지역의 옛말에 바쁘거나 몹시 서두르는 모양을 ‘진동한동한다’라고 하는데, 바로 이진동과 김한동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나 진동한동하면 조급병(躁急病)이 생긴다. 걱정한다고 해서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는 법이 아니며, 서두른다고 해서 넘어질 것을 매번 바로 잡을 수도 없다. 그래도 세상일은 그렇게 흘러간다. 모든 일은 다시 시작하면 될 일이다. * 제목의 〇〇은 조급(躁急)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목민심서> 案, 今唯安東府土大夫, 猶爲鄕所. 先朝末年, 院長李某, 擬座首首望, 金承旨翰東, 旣經全羅監司, 而擬於副望, 蓋古法也. 古者, 八路皆然, 而後漸陵夷, 唯安東尙守古法. (살피건대, 지금에는 오직 안동부 만이 사대부가 아직도 향소가 되고 있다. 정조 말년에 도산서원의 원장인 이진동이 안동좌수의 수망에 오르고 승지 김한동은 이미 전라 감사를 지냈는데도 부망에 올랐으니, 이것이 옛 법인 것이다. 옛날에는 팔도가 모두 그러했는데, 후에 점차로 무너지고 오직 안동만이 아직도 옛 법을 지키고 있다.) <광제비급> 健忘者, 徒能而忘其事也, 用歸脾湯, 治脾經, 失血, 小寐, 發熱, 盜汗, 或思慮傷脾, 不能攝血, 以致妄行, 或健忘, 怔忡, 驚悸等症. (건망증은 모든 일을 해 놓고는 잊어버리는 것이다. 귀비탕을 처방한다. 비경이 혈이 부족해서 잠을 잘 못자고 열이 나며 도한이 나거나 혹은 생각을 많이 하여 비를 상해 피를 통섭하지 못하여 망행하여 출혈이 되거나 혹은 건망, 정충, 경계 등의 증상을 치료한다.) <의학강목> 驚悸怔忡. 時作時止者痰因火動. 溫膽湯. 治心膽虛怯, 觸事易驚, 或夢寐不祥, 遂致心驚膽懾, 氣鬱生涎, 涎與氣搏, 變生諸症. 或短氣悸乏, 或復自汗. (깜짝 놀라면서 심장이 두근거림, 때로 발작하고 때로 그치는 자는 담으로 인해 화가 동한 것은 온담탕으로 치료한다. 심담이 허겁하여 누가 건드리기만 하거나 매사에 잘 놀라며 혹은 잠을 자려고 누워도 편안하지 않고 마음은 두렵고 무서움이 느껴지며 기가 막히고 끈적이는 침이 생기며 침과 기가 다투면서 여러가지 제반 증상이 생겨난다. 혹은 기가 짧아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핍박해진다. 혹은 저절로 식은땀이 생긴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3-08-16 11:3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