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3년 전 고인이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 운동가인 김복동 할머니 페이스북에 “윤미향 제명 반대” 공동성명 참여 요청 글이 올라온 뒤 논란이 되자 삭제됐다. 고(故)김복동 할머니의 페이스북 계정에 윤미향 의원(무소속) 제명 반대 서명 운동 게시물을 업로드 했다가 30일 사라졌다. 이날 김복동 페이스북 계정은 공지를 통해 “‘김복동’ 계정은 ‘김복동의 희망’에서 만든 계정”이라며 “‘김복동의 희망’은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할머니 뜻을 받들어 할머니 뜻을 더 널리 펴고 이어가고자 만든 단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김복동’ 계정이 고인으로 비칠 우려가 있어 향후에는 ‘김복동의 희망’ 페이지로 소통을 일원화 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복동 할머니 페이스북에는 “윤미향 의원의 제명 반대 공동성명에 동참해달라”는 내용이 올라왔다. ‘김복동의 희망’이라는 단체가 올린 글인데, 이 단체는 과거 윤 의원이 대표로 있던 곳이다. 지난 29일에 올라온 이글은 “김복동 할머니의 정신을 이어받은 ‘김복동의 희망’은 지난 1월5일과 25일 윤미향 의원 제명 반대 입장을 밝혔다”며 “이에 호응에 미국, 일본, 호주 등 세계 시민사회단체들이 윤 의원 제명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복동의 희망’은 여기에 그치지 않겠다”며 “국내외 시민의 이름으로 국회에 윤미향 국회의원 제명 반대 외침을 들려줄 것”이라며 “오는 2월 4일 국내외 시민들의 이름으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김복동의 희망’은 2019년 1월 서울시에 비영리 민간단체로 신규 등록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정의연 사태가 벌어지기 전 지난 2019년 1월28일 고인이 됐다. 따라서 고인 입장은 존재할 수 없다. 김복동 할머니 페이스북에도 비난 댓글이 달렸다. “할머니께서 백골이 되어서도 당신의 기득권 유지에 이용 당해야 하나” “2019년에 돌아가신 분 계정으로 뭐하는 짓인가” “할머니 이름 팔아먹지 말라” “당신들이 뭔 일을 하든 상관없다 적어도 고인 성함은 넣지 말라” 등이 올라와 있다. 964425@fnnews.com 김도우 기자
2022-01-30 21:42:53[파이낸셜뉴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직접 해명에 나서며 의원 임기 시작 이후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자신의 딸 학비를 김복동 할머니 장학금으로 냈다는 보도에 윤 의원은 3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단언하면서 반박에 나섰다. 윤 의원은 지난 2012년 2월 초 SNS에 작성했던 '김복동 할머니의 장학금을 받아든 나..'라는 표현에 대해 "제 자녀를 '김복동 할머니 장학생'이라고 표현한 내용은 '김복동장학금'과 무관하다"며 "해당 표현은 김복동 할머니가 제 자녀에게 준 용돈이란 의미에 무게를 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래 내용은 당시 윤 의원이 SNS에 작성했던 주요 내용. "쉼터에 계시는 김복동 할머니께서 넌지시 당신 방으로 부르신다. 그리고 봉투를 내미신다. 돈이다. 많은 돈. 내 눈이 둥그래지고, '이게 뭐에요'하고 묻는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돈'이기에 이걸 왜 내가 받느냐고 강하게 거부하니 (김 할머니가) 긴 이야기를 꺼내신다. (김 할머니가) "내가 OO(윤 의원 딸)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알지? 저게 아빠 감옥에 간 뒤에 아빠도 없이 태어나서 외롭게 자라서 늘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우리 일 하다가 너희 부부가 만나 결혼하고 OO를 낳았는데 내 가슴이 우째 안아프겠노? 내가 등록금을 다 해주고 싶지만 사정이 넉넉치 못해 이것밖에 준비 못했다. 이거 안 받으면 상처받는다." 긴 친묵. 김복동 할머니의 장학금을 받아든 나..오늘 밤 앨범을 뒤적거리니 정말 우리 하나 어릴 때 사진에 아빠가 없다. 엄마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김 할머니의 마음이 이것이었나 싶다. 할머니 감사하다." 아울러 자신의 딸이 나비기금에 기부한 것을 홍보한 것과 관련, 윤 의원은 "2012년 3월13일 제가 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제 자녀가 '김복동장학금'을 받은 것이 아니다"라며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68만2785원을 '나비기금' 조성금으로 기탁했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김복동장학금'은 2016년 5월에 제정됐고, 해당 글은 2012년에 작성돼 시점상으로도 자신의 딸이 김복동장학금을 받을 수 없음을 강조한 윤 의원은 해당 보도에 적극 반박했다. 2012년 3월부터 시작된 전시성폭력피해자 지원을 위한 '나비기금'의 임의계좌가 윤 의원 개인계좌로 신설돼 모금이 이뤄졌지만, 윤 의원은 "해당 계좌에 모인 후원금은 전액 콩고 내전 피해 여성과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여성 등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쓰였다"고 밝혔다. 이어 "나비기금의 목적사업에 맞게 쓰인 뒤 남은 잔액은 2016년 1월 전부 정대협(나비기금) 계좌로 입금했다"며 "지금도 정대협의 전시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나비기금'은 활동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국회의원 임기 시작 전날인 29일, 윤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시절 후원금 부실 관리 의혹, 위안부 피해자 쉼터 고가매입 의혹, 아파트 구입 자금 출처 의혹, 딸 유학자금 출처 의혹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
2020-05-30 16:05:13[가평=강근주 기자] 가평군 소년소녀합창단이 6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한 1373차 정기 수요집회에 참가해 고(故) 김복동 할머니 넋을 기리고 일본의 공식사과를 촉구했다. 서울 종로구 구)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이날 수요집회는 정의기억연대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주최했으며, 가평군 소년소녀합창단, 안양여자고등학교 학생 등 500여명이 이날 집회에 참가해 김복동 할머니 유지를 받들어 일본 정부에 사죄를 요구해 나가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이날 집회에서 "설날이면 길원옥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께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며 "오늘 수요집회에는 김복동 할머니가 영정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데 우리의 세배를 받고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억원 넘는 모금액 중 1억원이 넘는 금액은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에 쓰였고 나머지는 기부할 것"이라며 "할머니의 사후 첫 생신인 오는 4월17일 수요일에는 한국사회 변화를 위해 전국 곳곳에서 노력해온 활동가의 자녀 중 '김복동 장학생'을 뽑아 장학금 200만원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평군 소년소녀합창단은 이날 집회에서 “2016년 광주시 퇴촌면 소재 위안부 나눔의집을 방문했을 당시‘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꼭 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하던 김복동 할머니 말씀이 되새겨 진다”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선생님 말씀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가평군 소년소녀합창단은 수요집회에 참가하기 전 부암동 소재 윤동주문학관을 찾아 작가의 삶을 담은 영상물을 시청하고, 일제 만행에 굽히지 않고 독립된 나라를 희구하던 민족정신을 반추했다. kkjoo0912@fnnews.com 강근주 기자
2019-02-07 21:47:16영국 공영방송 BBC가 지난달 28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일대기를 조명했다. BBC는 지난 3일(현지시간) '김복동, 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의 부고 기사를 통해 만 14세 때부터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됐던 김 할머니의 삶에 대해 보도했다. 매체는 1940년 김 할머니가 공장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된 이후 중국, 싱가포르 등에 끌려다니며 '성노예(sex slave)'로 피해를 봤으며 죽기 직전에도 "일본에 대한 분노"를 언급했다고 전했다. BBC는 김 할머니의 인권운동가로서의 삶에도 주목했다. 김 할머니는 한국에 돌아온 후 40년 넘게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다가 1991년 위안부 피해자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여성 인권 운동의 길을 걸었다. BBC는 "민주 콩고와 우간다 내전의 성폭행 생존자들은 김복동 할머니를 '우리의 영웅', '우리의 엄마', '우리의 희망'이라고 부른다"는 정의기억연대 대변인의 말을 인용했다. 한편,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달 28일 향년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BBC #김복동할머니 #위안부 #인권운동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2019-02-06 15:29:5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 인권운동에 힘썼던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유족 및 운구 행렬은 1일 오전 6시 30분께 서울시 마포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할머니가 생전에 머물던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을 거쳐 시청광장에 도착했다. 운구차 앞에는 자주색과 흰색 나비 장식이 붙었다. 정의기억연대와 추모객 1000여 명(주최 측 추산)은 서울광장에 모여 김 할머니를 추모하는 행진을 시작했다. 영정사진을 든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가 앞장서고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만장 94개를 든 대학생, 청소년, 관련 단체가 뒤따랐다. 만장을 들지 않은 시민들은 노란색 나비모양 종이 막대를 들었다. ‘김복동 우리의 영웅, 희망, 마마’, ‘일본은 조선학교 처벌 마라’ 등이 적힌 만장 94개는 할머니의 나이와 같았다. 현수막에는 ‘김복동 님 나비 되어 훨훨 날으소서’라고 적혀있었다. 유족과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위안부 피해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외쳤다. 방송차에서 “우리가 위로금 받으려고 이리 싸웠나. 1000억을 준다 해도 받을 수 없다”라며 사죄를 요구하는 할머니의 생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울시청 외벽 스크린에도 김복동 할머니의 주장이 담긴 영상이 재생됐다. 광화문광장을 지난 행렬은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멈췄다. 마이크를 쥔 정의연 관계자는 “할머니의 못다 이룬 꿈, 반드시 저희가 이루겠습니다”라고 말했고, 참가자들은 함성을 질렀다. 일부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행진의 마지막은 수요집회가 열리는 소녀상 앞이었다. 김 할머니와 함께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힘썼던 이용수 할머니는 소녀상 옆 의자에 앉아 “우리는 열다섯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가 성노예가 됐다”며 한 많은 세월을 회상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건강을 보살펴온 봉사자,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극단 대표 등이 추모사를 낭독하고, 살풀이 공연 및 헌화 등이 이어져 할머니의 넋을 위로했다. 김 할머니의 유해는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 후 위안부 피해 할머니 51명이 잠들어 있는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치된다. son@fnnews.com 손성호 황민철 기자
2019-02-01 17:35:22[제주=좌승훈 기자]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30일 오전 제주시청 앞 어울림마당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시민분향소를 찾아 분향하고 영면을 기원했다. 원 지사는 이날 방명록에 “식민지 딸로서 당한 억울한 한을 다 풀고 가시지 못한 것에 아픈 마음”이라며 “다시는 이런 희생이 없는 나라 만들기를 다짐합니다”라고 적었다. 원 지사는 지난 29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일본의 사죄와 배상, 명예회복을 위해 헌신하신 할머니의 삶을 우리가 이어 가겠다”며 “할머니의 강한 의지가 잊혀 지지 않도록 남은 우리가 온 힘을 다하겠다”고 추모 글을 남기기도 했다. jpen21@fnnews.com 좌승훈 기자
2019-01-30 17:02:49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전날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조금만 더 사셨으면 3·1절 100주년도 보시고 북미정상회담이 열려서 평양도 다녀오실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침통한 표정으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방문, 고인을 추모했다. 김 할머니가 조금 더 사셨으면 평양에 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말에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김 할머니가) '김정은이 빨리 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할머니가 '김정은'이라고 새겨진 금도장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셨다. 통일 문서에 그 금도장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한 분 한 분 다 떠나시고 스물 세 분이 남으셨는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떠나보내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조문객 방명록에 '나비처럼 훨훨 날아 가십시오. 문재인'이란 글귀를 남겼다. 문 대통령은 앞서 이날 정오께 페이스북에 김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역사 바로 세우기를 잊지 않겠다"며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자 스물 세분을 위해 도리를 다하겠다"는 내용의 추모글을 게재했다. 김 할머니의 영면을 계기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일본 초계기 저고도 위협비행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으로 양국간 경색국면이 장기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문 대통령은 "1993년 할머니의 유엔 인권위 위안부 피해 공개 증언으로 감춰진 역사가 우리 곁으로 왔다"며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용기를 갖게 됐다"고 적었다. 또 "할머니께서는 피해자로 머물지 않았고 일제 만행에 대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며 역사 바로잡기에 앞장섰다"고 회상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병실에서 뵈었을 때, 여전히 의지가 꺾이지 않았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할머니, 편히 쉬십시오"라고 글을 마쳤다. 앞서 문 대통령은 작년 1월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김 할머니를 문병해 쾌유를 기원하고 한일 정부 간 '12·28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문제 해결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한 바 있다. 김 할머니는 지난 28일 밤 향년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중 생존자는 23명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2019-01-29 18:00:30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였던 고(故) 김복동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나를 대신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달라"고 당부했다. 29일 김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 특1호실에는 학생들부터 일반 시민, 정치권 인사까지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대표는 "28일 오전 내내 통증에 시달리며 의식이 없던 김 할머니가 갑자기 눈을 뜨고 사력을 다해 (일본 정부가)'이럴 수가 있나'라며 절규에 가까운 분노를 표하셨다"며 "암 투병 중에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위안부 해결을 위한 인권 운동을 하셨던 분"이라고 할머니를 설명했다. 정치권 인사들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날 김 할머니 장례의 상주를 맡았다. 이외에도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비롯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이 빈소를 찾았다. 오후 2시 34분께 휠체어를 타고 빈소를 찾은 길원옥 할머니는 부축을 받고 앉은 김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길 할머니는 곧 "이렇게 빨리 가시네"라며 짧게 입을 열었다. 이후 3시 50분께 이용수 할머니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 할머니는 "우리가 세계를 다니면서 운동했는데도 아직 해결을 못 해 서럽게 가시도록 하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하늘나라 가서도 할머니들이 투쟁하고 있을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10분께 빈소를 방문했다. 빈소 안에서 문 대통령은 "조금만 더 사셨으면 3.1절 100주년도 보시고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서 평양도 다녀오실 수 있었을 텐데"라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이)이제 23분 남으셨는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떠나보내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문객 방명록에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 가십시오. 문재인'이란 글귀를 남겼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비롯한 일반인 조문객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가족들과 함께 조문을 온 한 외국인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현 정의기억연대)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기억이 있어 개인적으로 김 할머니와 친분이 있다"며 할머니와 인연을 설명했다. 김 할머니는 1947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지 8년 만이던 스물 두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40여년이 지난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공개했다. 이후 수차례 공개석상에 용기있게 나서며 피해사실을 알렸다. 장례는 김 할머니의 뜻대로 시민장으로 치뤄진다. 발인은 오는 2월 1일이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조은효 기자
2019-01-29 17:30:28나문희 주연의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년)는 가슴 아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다뤘다. 그러나 위안부 영화의 기념비적 작품인 '낮은 목소리'(1995년)처럼 역사를 직접적으로 다루거나, 극영화 '귀향'(2015년)처럼 역사를 재현하는 방식을 취하진 않았다. '아이 캔 스피크'의 영화적 성취는 심각한 역사 문제를 코미디라는 장르로 감싸안았다는 데 있다. 위안부 할머니가 미 의회 청문회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기 위해 '영어를 배운다'는 설정이 이 영화의 포인트다. 이 영화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밤 별세했다. 김 할머니는 영화 속 이야기처럼 지난 199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엔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를 직접 증언했다. 물론 영어로 말하지는 않았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만 14세이던 1940년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 끌려가 꽃다운 인생을 짓밟혔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위안부로서의 삶을 가슴 속에만 묻어두지 않았다. 유엔 세계인권대회 참석 이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본군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세상에 알렸다. 사실 김 할머니는 '아이 캔 스피크' 이전에 이미 '무비 스타'였다. 지난 1997년 변영주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2'가 김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김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접한 변 감독은 SNS를 통해 "김복동 할머니는 세상 모든 것을 수줍어하고, 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그런 분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세상에 스스로를 밝히고 전선의 맨 앞줄에 힘겹게 섰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김 할머니의 소원은 일본 아베 총리의 진심어린 사과를 직접 받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하얀 모시저고리 입고 꽃다운 열네 살 고향 언덕으로 돌아가셨지만, 저세상에서라도 이승의 고통 훌훌 털어버리고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명 남았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2019-01-29 16:54:11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전날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침통한 표정으로 서울 서대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 할머니의 빈소를 방문했다. 빈소에선 별다른 공개발언은 하지 않았으나 조문객 방명록에 '나비처럼 훨훨 날아 가십시오. 문재인'이란 글귀를 남겼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오께 페이스북에 김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역사 바로 세우기를 잊지 않겠다"며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자 스물 세분을 위해 도리를 다하겠다"는 내용의 추모글을 게재했다. 문 대통령은 "1993년 할머니의 유엔 인권위 위안부 피해 공개 증언으로 감춰진 역사가 우리 곁으로 왔다"며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용기를 갖게 됐다"고 적었다. 또 "할머니께서는 피해자로 머물지 않았고 일제 만행에 대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며 역사 바로잡기에 앞장섰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조선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다른 나라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연대했다"며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는 일에 여생을 다하셨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병실에서 뵈었을 때, 여전히 의지가 꺾이지 않았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할머니, 편히 쉬십시오"라고 글을 마쳤다. 앞서 문 대통령은 작년 1월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김 할머니를 문병해 쾌유를 기원하고 한일 정부 간 '12·28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문제 해결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한 바 있다. 김 할머니는 지난 28일 밤 향년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중 생존자는 23명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2019-01-29 1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