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프랑스 영화계의 대표 배우이자 한국에서도 ‘세기의 미남’으로 유명했던 배우 알랭 들롱( 사진)이 향년 88세로 자택에서 타계했다. AFP통신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들롱의 가족들은 18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들롱이 “프랑스 두시의 자택에서 세 자녀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그는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으며 이후 요양중이라고 알려졌다. 그의 아들 앙토니는 2022년 프랑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들롱의 건강이 더 나빠질 경우 안락사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들롱은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에서 신분 상승의 욕구에 사로잡힌 가난한 청년 역할로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오른 배우다. 1957년 영화계에 발을 들인 후 약 50년 동안 평단과 대중의 환호 속에 약 90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이 중 약 80편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는 세기의 미남이란 별명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태양은 가득히 외 대표작으로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년)’, ‘태양은 외로워(1962년)’, ‘볼사리노(1970년)’, ‘조로(1975년)’ 등이 있다. 들롱은 1990년대 들어 영화에 거의 출연하지 않았으나 연예인 칼럼 등으로 존재를 알렸고, 요양을 시작한 이후에는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4-08-18 16:03:43'세기의 미남'으로 불렸던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8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8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세 자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아버지 들롱이 나빠진 건강과 사투를 벌이다 사망했다"고 전했다. 지난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그는 자택에서 요양 생활을 해왔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들롱은 웨이터, 짐꾼, 비서, 점원 등 갖은 잡일을 했다. 우연히 여배우 브리지트 오버와 친분을 쌓으면서 영화계와 인연이 닿았고, 1957년 이브 알레그레 감독의 영화 ‘여자가 다가올 때’로 데뷔했다.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에서 신분 상승 욕구에 사로잡힌 가난한 청년 '톰 리플리' 역할로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수없이 리메이크된 이 공전의 히트작에서 그는 다부진 몸과 매혹적인 눈빛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 '태양은 외로워'(1962), '볼사리노'(1970), '조로'(1975) 등 50여년간 9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이 중 80여 편에서 주연을 맡았다. 앞서 그의 아들 앙토니는 2022년 프랑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들롱이 향후 건강이 더 나빠질 경우 안락사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4-08-18 16:02:13【실리콘밸리=홍창기 특파원】 미국 반도체 챔피언 인텔이 가라앉고 있다. 지난 2021년 취임 당시 실적개선을 일성으로 내세운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의 성공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보인다.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서 인텔 주가는 전장 대비 26.06% 폭락한 21.4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같은 주가 급락은 지난 1975년 이후 최악의 수준이었다. 지난 1974년 7월에 주가가 31% 하락한 것이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주가가 최악으로 폭락했다. 이날 인텔 시총 300억 달러 이상이 증발했다. 인텔의 시가총액은 1000억 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인텔 주가가 폭락한 것은 올해 2·4분기 실적이 급락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도 시장에 어필하기 못해서다. 인텔은 올 2·4분기 128억3000만 달러의 매출과 1억6000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모두 시장 컨센서스를 하회했다. 인텔의 실적부진은 다각적인 면이 작용했다. 우선 코로나19 팬데믹 후 재택 근무가 사라지면서 인텔의 핵심 사업 부문인 PC와 데이터 센터에 사용되는 칩의 매출이 감소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학습에 엔비디아의 AI 칩 사용이 표준이 되면서 인텔의 칩에 대한 수요는 더 줄었다. 인텔은 AI 경쟁에서 경쟁사에 뒤처진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기 위해 코어 울트라 PC 칩 카드를 내밀었지만 이는 실패했다. 그렇지만 겔싱어 CEO는 담담하게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을 다짐했다. 이를 통해 인텔은 100억 달러 규모의 이상의 비용을 절감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CNBC에 "이번 구조조정은 인텔의 가장 실질적인 구조조정이다"면서 "우리는 회사를 재건하기 위한 대담한 여정을 계획했고 이를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은 겔싱어 CEO가 취임시 약속했던 인텔의 고비용 사업 구조 개편이 가능한지 의문을 품고 있다. 인텔이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반도체법을 통해 85억 달러를 지원받고 있지만 향후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아리엘인베스트먼트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미키 자기다르는 "인텔의 향후 전망을 재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theveryfirst@fnnews.com 홍창기 기자
2024-08-03 08:40:22장정일 시인의 '삼중당 문고'라는 시가 있다.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먹은 삼중당 문고/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당 문고/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 문고." 이런 글귀들이 들어 있는, 문고본(文庫本) 도서를 소재로 한 시다. '용숙이'는 나중에 장 시인의 아내가 된다. 문고본은 가지고 다니기에 편하도록 작게 만든 책이다. 값도 싸다. 오락물이 넘쳐나는 요즘, 독서 인구는 점점 줄고 있다. 종이책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80년대까지는 문고본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읽는 중고생들이나 문학청년들이 많았다. 책을 읽고 싶어도 비싸서 못 읽던 시절에 짜장면 한 그릇 값보다 저렴했던 문고본은 복음과도 같은 존재였다. 일본의 경우 1927년에 창간된 이와나미 문고가 문고본을 정착시킨 효시라고 한다. 일본은 독일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레클람 문고나 카셀 문고가 유명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페이퍼백 또는 포켓북이라고 불리는 문고와 비슷한 작고 저렴한 책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복 후 정음문고에 이어 한국 출판계의 대부 정진숙(1912~2008) 회장이 창립한 을유문화사가 을유문고를 펴냄으로써 본격적인 문고본 시대를 열었다. 학문과 예술의 편협한 특권화를 물리치고 대중의 계몽과 지식 향상이라는 출판사의 목표에 을유문고는 딱 들어맞았다. 최초에 52권으로 기획됐지만 6·25가 터져 절반만 펴냈고, 1969년 정치·법률·경제·철학·역사 등 모든 영역을 다룬 새로운 을유문고가 탄생했다. '한국의 문화(문일평)'를 제1권으로, 을유문고(사진)는 1989년까지 300권이 간행됐다. 1966년 윤형두 회장(1935~2023)이 설립한 범우문고는 사상, 문학, 에세이 등의 분야에서 문고본을 발행해 인기를 얻었다. '범우에세이문고' '범우소설문고' '범우사르비아문고' '범우오뚜기문고' 등이 잇따라 나왔다. 1985년에 선보인 범우문고의 1권은 피천득의 '수필'이었고 2권은 법정스님의 '무소유'였다. 윤 회장은 "경부고속도로가 뚫린 덕에 더 많이 팔렸다"고 했다. 장거리 여행을 하는 승객들이 문고본을 사서 읽었다는 말이다. 어떤 이가 시인 서정주를 키운 것은 '8할의 바람'이었다면, 문청(文靑)들을 키운 것은 삼중당문고였다고 썼다. 삼중당문고는 문고본 중에서도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삼중당은 1931년 서재수 선생(1907~1978)이 창업한 1세대 출판사다. 삼중당문고는 1972년에 1권이 나온 이후 1975년에 100권을 돌파하고 1990년까지 500권이 출간됐다. 많을 때는 매월 평균 10권씩 발행했을 만큼 엄청난 출판 기록이었고 한 해 250만부가 팔릴 정도의 베스트셀러였다. 그 밖에도 여러 문고본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줄을 이어 출간됐다. 민중문고, 신세계문고, 사상문고, 양문문고, 신양문고, 탐구신서, 현대과학신서, 박영문고, 서문문고, 삼성문고, 동화문고, 세종문고, 신구문고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문고본들이 나왔다가 사라졌다. 1980년대 들어 출판 기술의 고급화로 문고본은 급격한 침체기를 맞는다. 이마트 등 유통업체들이 '핸디북'을 판매하는 등 새로운 시도가 있었지만, 문고본의 쇠퇴를 막지 못했다. 유명했던 문고본들이 이젠 전설로 남았지만, 지금도 적잖은 판매량을 올리고 있는 문고본들은 있다. 범우문고(295권)는 가장 오래된 브랜드로서 여전히 건재하다. 무소유는 법정스님의 입적과 절판 유언이 내려진 2010년까지 300만부가 팔렸다. 범우문고의 총 판매량은 5000만부에 육박한다고 한다. 2000년대 전후에 나온 빛깔 있는 책들(281권), 시공 디스커버리총서(141권), 책세상문고(약 300권) 등도 수백만부씩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2024-07-18 18:27:21그룹 트와이스의 나연(NAYEON)과 뉴진스(NewJeans)가 글로벌 무대에서 저력을 발휘했다. '세계 유일의 실시간 음악차트' 한터차트는 5일 오전, 6월 4주 차(집계 기간 24일~30일) 미국, 일본, 중국 국가별 차트 TOP 30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나연과 뉴진스가 각 부문에서 1위에 자리했다. 국가별 차트 미국 부문 1위는 나연의 'NA'(종합 지수 1만1975.66점)다. 특히 나연의 1위는 앨범 발매 약 3주가 지나 달성한 것이기에 관심이 쏠린다. 이는 나연이 유튜브,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에서 꾸준히 활약했을 뿐 아니라, 북·남미 영향력이 큰 트와이스의 인기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 뒤를 이어 에이티즈의 'GOLDEN HOUR : Part.1'이 종합지수 8512.60점으로 2위, 지난 6월 24일 발매된 레드벨벳의 'Cosmic'이 4617.97점으로 3위에 올랐다. 국가별 차트 일본 부문은 뉴진스의 'Supernatural'(종합 지수 9338.96점)이 1위로 올라섰다. 이어 2위는 아일릿의 'SUPER REAL ME'(종합 지수 9225.27점), 3위는 투어스의 'SUMMER BEAT!'(종합 지수 7440.76점)가 자리했다. 일본 부문에서는 24일 발매한 'SUMMER BEAT!'로 3위에 차트인 한 투어스의 인기가 주목할 만하다. 투어스는 일본 매거진 커버 모델에 발탁되는 등 현지 데뷔 전부터 높은 인기를 누려왔다. 또 국가별 차트 일본 부문에도 진입해 한층 높아진 일본 내 영향력을 과시했다. 국가별 차트 중국 부문은 1위와 2위 모두 뉴진스가 차지했다. 뉴진스의 'Supernatural'이 종합 지수 1만9163.06점으로 1위를 수성한 것에 이어서 'How Sweet'가 종합 지수 1만7094.24점으로 2위에 올랐다. 뒤이어 베이비몬스터의 'SHEESH'가 종합 지수 1만2426.85점으로 3위를 달성했다. 한편, 국가별 차트는 한터차트의 빅데이터 수집 기술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케이팝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하여 발표되는 차트로, 각 국가별 음반, 음원, 소셜 포털 데이터 등 케이팝 아티스트의 글로벌 데이터를 바탕으로 집계된 종합 차트다. 국가별 차트는 매주 금요일 발표된다. 각 앨범 차트 성적 및 판매량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모바일 '후즈팬(Whosfan)'앱과 한터차트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nterjin@fnnews.com 한아진 기자 (사진=한터차트)
2024-07-05 11:01:341961년 KBS TV에 이어 1964년 TBC TV, 1969년 MBC TV가 개국함으로써 TV 3국 시대가 시작됐다. 금성사가 1966년 흑백TV 수상기를 최초로 개발했지만 TV는 한 동네에 한 대밖에 없을 정도로 귀했다. 프로권투 경기를 중계할 때면 다방이나 동네 전파사, 만화방으로 사람들은 몰려들었다. 옛날 TV는 뒷부분이 튀어나온 '브라운관'을 사용했다. 브라운관은 발명자인 독일의 물리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자바라 방식으로 문을 좌우로 열고 닫을 수 있는 궤짝에 넣은 제품도 있었다. 국산화 후에도 TV는 여전히 값비싼 물건이었다. 부품은 외국산에 의존했고, 높은 '물품세'가 부과돼 사치품으로 인식됐다. 1969년 출시된 금성사의 최신형 모델 VC-195는 8만1000원대, VS-196은 8만9000원대였다. 당시 기사를 보면 5년차 공무원의 월급이 1만560원, 서울 시내 가구당 한달 생계비가 2만7270원으로 나와 있다. TV 한 대 값이 공무원 월급의 8배, 생계비의 3배였던 셈이다. 할부 판매가 보통이었고 은행에 가서 계약서를 쓰고 선착순으로 TV를 인수했다. 더뎠지만 TV는 점차 늘어났다. 1973년 100만대를 넘어섰고 1976년엔 260여만대로 증가해 2.4가구에 한 대꼴로 보급됐다. TV를 생산하는 기업도 여럿 생겼다. RCA, 내셔널, 도시바 등 외국산 TV들도 쏟아져 들어왔다. 가전과 TV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대한전선이다. 대한전선은 창업주 설경동(1901~1974)이 1955년 세운 기업이다. 평북 철산 출신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와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제강점기에 운송업과 해산물 판매업을 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어선 70척을 소유하고 비행기로 물고기를 탐지할 정도의 재벌급 기업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광복 후 악덕 지주로 몰려 재산을 다 잃고 월남했다. 남한에서 설 창업주는 무역업과 부동산업, 성냥 제조업으로 곧 재기했다. '인천의 성냥공장'이라는 노래도 있지만 그의 수원 성냥공장이 시장 점유율 1위였다. 전쟁으로 또 한번 시련을 겪었으나 대한방직에 이어 적산기업 조선전선을 불하받아 대한전선을 설립했다. 케이블 제조업에서 더 나아가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 생산에 뛰어들었다(동아일보 1978년 10월 11일자·사진). 한때 가전업계 2위로 올라설 만큼 성공을 거뒀고 대한전선그룹은 재계 서열 5위권에 랭크되기도 했다. 1978년에는 경북 구미에 국내 최대 규모의 텔레비전 공장을 준공하고 즉석사진기인 폴라로이드 카메라 판권을 인수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금성과 삼성에 밀려 1983년 가전 부문을 대우그룹에 넘겨주기에 이른다. 현 위니아전자의 뿌리가 대한전선이다. 대한전선은 공중분해된 국제그룹과 연관이 있다. 창업 2세인 설원량 회장의 부인이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의 동생 양귀애씨다. 그후 전선업에 몰두하며 사업을 키워갔지만 금융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설씨 가문도 경영권을 내놓는 기구한 운명을 맞았다. 지금은 호반그룹이 인수해 매출 3조원을 바라보는 계열사로 키워가고 있다. 1980년대에 컬러 방송이 시작돼 본격적인 '안방극장'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일본과 가까운 남쪽 해안지역에서는 그전부터 일본 TV 방송을 컬러로 볼 수 있었다. 부산이나 울산 등지에서는 위성안테나를 설치하고 일본 방송을 단속을 피해가며 시청했다. 더욱이 일본은 밤에만 방송을 하던 우리와는 달리 종일 방송을 했다. 외국산 컬러TV가 밀수로 들어왔고 1970년대 중반 부산지역에 컬러TV가 2만여대나 보급돼 있었다고 한다(조선일보 1975년 1월 23일자). 해운대나 송도 등 바닷가에서는 일본 방송이 더 선명하게 나왔다. 극동호텔 등 유명 호텔에는 고객들의 요구로 컬러TV를 비치해 두고 있었다. 한국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스포츠 경기 등이 중계될 때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호텔을 점거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2024-07-04 18:43:58[파이낸셜뉴스] 지난해 10월부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조만간 북부의 레바논을 공격해 '양면 전쟁'을 벌이겠다고 예고하면서 이스라엘의 ‘3차 레바논 침공’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최소한 표면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했던 미국은 확전 계획에 강력히 반대하며 이란이 개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 확전으로 승부수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채널14 방송에 출연해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을 치를 필요가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도전 역시 맞이할 것이다. 우리는 다면전을 치를 수 있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18일 성명을 내고 "북부 사령관인 오리 고딘 소장과 작전참모인 오데드 바시우크 소장이 전황 평가 회의를 열고 레바논 공격을 위한 작전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가자지구 무장정파 하마스와 마찬가지로 이란의 지원을 받는 조직이다.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이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소탕 작전을 시작하자 레바논과 국경을 접한 이스라엘 북부를 향해 포격 및 무인기(드론) 도발을 감행했다. 그 결과 지난해 이스라엘 북부에서 약 8만명이 피란길에 올랐고 지금도 6만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그동안 헤즈볼라의 도발에 공중 폭격 등으로 맞서며 소모전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최근 하마스 소탕 작전이 소강상태에 빠지고, 인질 협상 역시 헛돌면서 헤즈볼라에 집중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11일 헤즈볼라의 고위 사령관 중 하나인 탈렙 압둘라를 제거했으며 헤즈볼라 역시 수백발의 로켓을 발사하며 보복했다. 레바논 베이루트에 위치한 아메리칸대학에서 선임 공공정책 연구원을 맡고 있는 라미 쿠리 교수는 24일 미 독립 매체 데모크라시나우에 출연, 네타냐후가 레바논으로 관심을 돌린 이유에 대해 분석했다. 그는 네타냐후가 "궁지에 몰렸다"며 "국제 사회에 내밀 새로운 정치적 틀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쿠리는 네타냐후가 가자지구의 상황을 정리하지 못하고 인명 피해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자신을 지지하던 미국과 국내 정치 세력의 이탈을 막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스라엘 내 좌파 세력과 군부 모두 8개월 가까이 끝나지 않는 하마스 소탕작전때문에 네타냐후를 의심하고 있다며 네타냐후가 이들의 불만을 동시에 잠재울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쿠리는 이스라엘이 불리할 때마다 반(反)유대주의나 과거 유태인 학살 등을 언급하며 유태인을 핍박하는 "나쁜 사람들"을 언급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스라엘이 또 다시 그러한 "나쁜 사람들을 계속 찾고 있다"고 지적했다. 만만치 않은 3차 침공1948년 유엔 합의를 깨고 영국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 지역에 독단적으로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은 수차례 중동 전쟁을 치르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으로 몰아넣었다. 이 과정에서 1964년 탄생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무장 투쟁을 전개했고, 1970년대는 레바논에 근거지를 마련했다. 가자지구를 지배했던 하마스는 PLO 산하 무장 조직이었다. PLO를 제거하려던 이스라엘은 1975년 레바논 내전 발발 이후 지속적으로 레바논 정세에 개입하다가 1982년에 본격적으로 레바논을 침공해 PLO 소탕에 나섰다. 이스라엘군은 2000년까지 레바논에 주둔하다 완전 철수했다. 긴 침략 기간을 겪은 레바논에서는 1985년 이란의 지원을 받아 아랍어로 ‘신의 당’이라는 의미의 이스라엘 저항 조직 헤즈볼라가 탄생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2006년에도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군인 2명을 납치하자,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또다시 레바논을 침공하여 34일 동안 헤즈볼라와 전쟁을 벌였다. 만약 이스라엘이 이번에 다시 레바논 국경을 넘는다면 3번째 침공이다. 헤즈볼라는 2018년 레바논 총선에서 승리했으며 2022년 총선에서 의회 과반에 실패했지만 여전히 레바논 정규군을 능가하는 군사력을 지니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유력 매체인 더내셔널은 25일 보도에서 이스라엘의 3차 침공이 2006년과 사뭇 다르다고 예상했다. 이스라엘 안보 싱크탱크 알마 연구·교육센터는 현재 헤즈볼라의 전투원이 최소 5만명이라고 추정했다. 또한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 덕분에 이스라엘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로켓 5000기를 포함해 6만5000기의 로켓을 보유중이라고 알려졌다. 헤즈볼라는 이외에도 유도 기능을 갖추고 최대 사거리 200km에 달하는 미사일 5000기를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박격포탄을 비축했다. 영국 가디언은 23일 보도에서 이달 미국 정부의 분석을 인용해 지난해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막아냈던 이스라엘의 근거리 대공 방어 체계 '아이언돔'이 헤즈볼라와 교전시 압도당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싱크탱크 국제대테러연구소(ICT)의 미리 이신 선임 연구원은 헤즈볼라가 "2024년에는 하루 동안 박격포탄, 로켓, 미사일, 자폭 드론 등 말 그대로 1만개의 각기 다른 투사체를 쏘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이스라엘 공군이 극도로 효율적으로 헤즈볼라의 원거리 전력을 제거한다고 해도 이스라엘의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신은 "이스라엘이 공중에서 날아오는 헤즈볼라의 로켓을 90% 제거하고 10%만 남을 경우 그것만으로도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로켓 공격이나 2006년 헤즈볼라의 전력을 넘어설 것"이라고 추정했다. 알마 연구·교육센터의 아브라함 레빈 대변인은 지금 헤즈볼라와 전면전을 벌인다면 2006년보다 "10배 더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다고 내다봤다. 이스라엘은 2006년 2차 침공 당시 약 120명의 군인과 44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기록했다. 당시 레바논에서는 250명의 헤즈볼라 대원을 포함해 약 1200명이 숨졌다. 전쟁 말리는 美, 이란 개입 가능성오는 11월 대선을 앞 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만 하더라도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바이든은 하마스 소탕작전 장기화로 가자지구의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면서 아랍계 및 좌파 유권자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무척 초조한 상황이다. 바이든은 지난 5월 31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3단계 휴전안을 제시했으나 하마스에게 거부당했다. 이 와중에 이스라엘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 전역에서 군사 작전을 강행했지만 아직 하마스 지도부를 체포하지 못했다. 더불어 아직 남은 이스라엘 인질 역시 구출하지 못했다. 이스라엘군의 수석 대변인을 맡고 있는 다니엘 하가리 해군 소장은 19일 이스라엘 채널13 방송에 출연해 "하마스를 파괴하고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대중의 눈에 모래를 뿌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는 하마스 박멸을 약속한 네타냐후의 주장과 어긋나는 발언이다. 하가리는 "우리가 하마스를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든 틀렸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 보도에서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의 주요 전투 작전을 거의 끝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이스라엘군 병력 일부가 헤즈볼라와 갈등을 대비해 북부 국경으로 이동하고, 일부는 가자지구 주요 통로에 남아 저강도 하마스 소탕작전에 투입된다고 전했다. 하마스가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인 약 1200명을 살해하며 시작했던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가자지구 누적 사망자는 25일 기준 3만7658명이었다. 바이든 정부는 가자지구에서 추가적인 인명 피해가 줄어든다고 기대했으나, 이스라엘이 확전 가능성을 시사하자 즉시 반발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 장관은 25일 미 워싱턴DC에서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 장관과 만나 "레바논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북부에 대한 로켓 공격 증가와 긴장 고조에 대해서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스라엘 북부 국경에 지속적인 평온을 복구하고 이스라엘 및 레바논 국경 양쪽의 민간인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외교적 합의를 긴급히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찰스 브라운 합참의장은 23일 기자들과 만나 "이란이 헤즈볼라를 더 지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이란이 "헤즈볼라에 중대한 위협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그 동안 하마스에게 제공했던 것보다 더 많은 지원을 헤즈볼라에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브라운은 동시에 "헤즈볼라는 전반적인 역량 면에서 하마스보다 더 뛰어나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네타냐후는 이란이 끼어들 수 있다는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강경론을 펼치고 있다. 네타냐후는 24일 이스라엘 의회 연설에서 "이란과 이란의 대리 세력들은 이스라엘을 파괴할 목적으로 미사일 공격 및 영토 침범을 통해 계략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자지구 전투를 통해 이란의 계략이 드러났다며 "우리는 이러한 계획을 좌절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24일 이스라엘 매체 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네타냐후의 최대 정적으로 불리는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가통합당 대표 역시 외교적 타협보다는 확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간츠의 대변인에 의하면 그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헤즈볼라와 같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조직이 역내에 공포와 불안을 조장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북부 지역을 향한 헤즈볼라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군사적인 수단을 사용할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4-06-26 10:59:15[파이낸셜뉴스] 세계 주요국의 평균 합계출산율이 1960년 이후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60년 3.34명이었던 OECD 38개 회원국 평균 합계출산율은 2022년 절반 이하인 1.51명으로 떨어졌다. 2022년 합계출산율은 사상 최저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다. 보통 2.1명이 인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수준으로 여겨진다. 한국은 6명에서 0.78명으로 낮아져 거의 8분의 1로 급락했다. 2022년 기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이기도 하다. 국가별로는 2022년 기준 스페인(1.16명)과 이탈리아(1.24명), 폴란드(1.26명), 일본(1.26명), 그리스(1.32명), 캐나다(1.33명) 등의 합계출산률이 낮았으나 1명 이하인 곳은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했다. 이런 가운데 OECD 전반적으로 평균 출산 연령이 높아지고 평생 자녀를 갖지 않는 비율도 상승했다. 평균 출산 연령은 2000년 26.5세에서 2022년 30.9세로 높아졌다. 이 기간 한국은 29세에서 32.5세로, 이탈리아는 30.4세에서 32.4세로, 스페인은 30.7세에서 32.6세로 각각 올라갔다. 1975년생 여성의 무자녀 비율은 일본 28.3%, 스페인 23.9%, 이탈리아 22.5%로 한 세대 전인 1955년생 여성(각각 11.9%, 9.5%, 11.1%)의 배 이상이었다. 한국은 1955년생은 8.3%였고 1975년생은 12.9%로 집계됐다. 보고서는 "젊은 세대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인식의 변화를 겪고 있다"며 "젊은이들은 경제적 독립, 고용·주택시장에서의 정착에서 점점 더 어려움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또한 "상승하는 주거 비용도 출산율에 부정적 요인이며 코로나19와 기후 위기, 생활비 급등 등 연속적인 글로벌 위기로 젊은 세대의 경제적 불안이 커졌다"고 지적됐다. 또 보고서는 젊은 세대가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하고 실직 걱정에 시달리는 것을 현실적 어려움으로 꼽았다.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20대의 비율은 한국(81%), 이탈리아(80%), 그리스(78%)에서 높았다. 25∼54세 중 자신이나 직계가족이 단기간 내 실직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비율은 그리스(81%), 멕시코(78%)에서 높았고 한국은 64%였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4-06-21 21:58:20[파이낸셜뉴스] 오페라 애호가들 사이에서 ‘버킷리스트’로 꼽히는 공연이 있다. 이탈리아 베로나 역사지구에 있는 2000년 된 야외 원형 극장에서 열리는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가 그것이다.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베로나는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사랑의 도시’로 유명하다. ‘아레나 디 베로나’ 축제를 보기 위해 매년 세계 각국에서 50만여 명이 이 도시를 찾는다. ‘아레나 디 베로나’ 축제, 100년만의 첫 내한 지난 7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오페라’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하는 갈라콘서트를 시작으로 올해 101째를 맞은 ‘아레나 디 베로나’ 축제가 개막작 ‘투란도트’를 올리며 3개월의 여정을 시작했다. 우리에겐 올리비아 핫세 주연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감독으로 친숙한 프랑코 제피렐리 버전 ‘투란도트’로 이 작품은 오는 10월 오리지널 프로덕션 그대로 한국에 온다.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가 유럽을 벗어나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00년만의 외유”를 성사시킨 주인공은 지난 2005년 창단 공연 ‘춘희’를 시작으로 국내외를 종횡무진하며 대형 오페라를 꾸준히 선보여온 솔오페라단의 이소영 단장이다. 이 단장은 실기뿐 아니라 이론마저 강도 높게 교육시켜 ‘베로나 법대’로 불리는 베로나국립음악원에서 피아노·성악·오페라 코칭을 전공했다. 그가 유학시절 파리·빈과 함께 3대 오페라 하우스로 꼽히는 밀라노 스칼라극장에 출근도장을 찍으면서 매년 6~9월에 즐겼던 축제가 바로 ‘아레나 디 베로나’였다. 이 단장은 “한때 피와 살점이 흩어지던 검투장이 1913년 베르디 탄생 100주년 기념 ‘아이다’공연을 기점으로 세계적인 오페라 극장으로 재탄생했다”며 “밤 9시에 하는 공연을 좋은 자리에서 보기 위해 낮부터 줄을 선 행렬과 (지금은 사라졌지만) 공연 시작 전 관객들이 지휘자와 공연자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켠 촛불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고 돌이켰다. “한낮에 뜨겁게 달궈진 대리석 돌바닥이 엉덩이를 들썩이게 해도 별빛과 달빛, 솔솔 불던 바람 그리고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무대는 늘 놀라움과 감동,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다”고 부연했다. 이 단장은 파바로티, 도밍고, 칼라스 등 세계적 가수들의 공연을 보며 예술적 안목을 키웠고 자연스레 한국에서도 야외 오페라 축제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난 2010~2011년 부산 해운대·광안리 백사장에서 ‘아이다’ ‘투란도트’를 올리기도 했다. 이번에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프로덕션 공연을 유치하면서 오랜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공연은 오는 10월 12~19일 서울 잠실올림픽 체조경기장 KSPO돔에서 총 8일간 펼쳐진다. 이 단장은 “한국 오페라사의 역사적 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무엇보다 ‘아레나 디 베로나’ 축제의 브랜드 가치가 압도적이라는 점에서 이번 ‘투란도트’는 작품성·정통성을 겸비한 공연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역대 가장 화려한 ‘투란도트’ 예고 앞서 홍승찬 한국예술종합대 교수는 올해 최고의 오페라 기대작으로 ‘아레나 디 베로나’의 ‘투란도트’를 꼽았다. 이 단장은 “오페라 연출의 대가 프랑코 제피렐리의 무대를 볼 굉장한 기회”라며 “뛰어난 연출력 덕에 그의 작품만 골라 보는 팬덤이 있을 정도다. 제피렐리 재단과 별도 계약을 맺고 소품 하나까지 전부 다 그대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지휘를 맡은 세기의 마에스트로 다니엘 오렌도 기대감을 높이는 인물이다. 이스라엘 출신 오렌은 1975년 스무 살의 나이로 폰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세계적 지휘자다. 출연진은 국내에서 공연된 역대 ‘투란도트’ 중 가장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마리아 굴레기나와 마린스키극장의 아이콘 올가 마슬로바가 투란도트를 연기한다. 스타 성악가 아르투로 차콘 크루스와 마틴 뮐레가 칼라프 왕자 역을 맡았다. 또 ‘천상의 목소리’ 마리안젤라 시칠리아와 정상급 베이스 페루초 푸를라네토가 각각 류와 티무르 역으로 출연한다. 공연 규모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다. ‘투란도트’는 원래 대작인데 제피렐리 버전은 그 화려함과 섬세함이 독보적이다. 오케스트라를 제하고 무대에 오로는 성악가, 합창단, 무용수, 연기자만 500여명에 달한다. 이 단장은 “류가 노래하는 왕궁 앞 광장과 투란도트가 속한 황궁을 아래위로 대비시킨 대규모 세트는 넓이가 50미터 높이는 23미터에 달한다”며 “정교한 조명, 화려한 의상까지 이 모든 것을 다 실어 나르는 데 40피트 컨테이너 55개 필요할 정도”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규모 실내 공연장인 KSPO돔이 공연 장소로 낙점된 것도 이 때문. 이 단장은 “오리지널 프로덕션 그대로 구현하려면 KSPO 돔이 유일했다”며 “K팝 공연 등과 치열한 경합 끝에 한국체육산업개발(KSPO&CO) 기획공연에 선정됐다”고 말했다. “공연 11일 전인 10월 1일부터 무대 셋업에 들어가는데, 스태프와 출연진 포함해 1000여 명의 인력이 이번 공연을 위해 동원된다”며 “8일간 약 8만 명의 관객을 만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이탈리아인 음악감독을 둔 솔오페라단은 지난 2009년 ‘투란도트의 전설’ 니콜라 마루티누치와 조반나 카솔라를 초청하는 등 한국과 이탈리아의 문화 교류에 앞장서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이 단장은 이탈리아 내 공화국 산마리노의 명예영사로 임명됐다. 이 단장은 이번 공연 유치와 관련해 “지난 20년간 쌓은 신뢰와 한국의 문화적 성장과 서울의 매력 덕분에 가능했다”며 “이탈리아 대사관·문화원이 이번 공연에 단지 이름만 빌려준 게 아니고 직접 참여하면서 이탈리아 및 오페라 문화가 우리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요즘 하루 3~4시간도 못잘 정도로 바쁘다는 이소영 단장. 주위에서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하는데, 모든 것은 오페라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그는 “음악 애호가인 부모님 덕에 초중고 시절 집 마당에 텐트치고 밤새 음악을 듣곤 했는데, 지금도 베토벤, 슈베르트, 베르디, 푸치니 등의 음악을 들으면 새로운 기쁨과 힘을 얻는다”며 단단한 열정을 드러냈다. “‘아레나 디 베로나’ 축제는 예술 활동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승화된 표본이라는 점에서 오페라의 대중화를 꿈꾸는 제겐 꿈의 무대입니다. 민간 오페라단이 살아남기 힘든 국내 문화적 토양에서 20년간 한 우물을 팠더니 이렇게 꿈을 이루네요. 감회가 남다릅니다.” 한편 솔오페라단은 ‘아이다’, 투란도트’, ‘라트라비아타’, ‘나부코’, ‘사랑의 묘약’, ‘토스카’ ‘일 트리티코’ ‘루치아 디 람메르무어’ 등 24편의 각기 다른 오페라를 제작하며 국내 오페라의 다양성과 레퍼토리 확대에 기여해왔다. ‘춘향아, 춘향아’ ‘선덕여왕’ 등 한국 작품들을 세계무대에 소개했고, 로마오페라극장, 모데나 루치아노 파바로티 시립극장 등 유서 깊은 유럽 오페라극장들과 합작공연을 추진하며 우수공연을 국내에 소개했다. 가수들에게 출연료 대신에 티켓을 주던 관행을 깨고 오페라단장은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일꾼이라는 자세로 작품의 완성도를 집요하게 높여왔다. 이 단장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일일이 체크해 몸은 비록 힘들지만, 작품이 올라갔을 때 보람과 감동이 크다”고 말했다. 수상 이력도 다채롭다. 2009년 제1회 대한민국오페라 대상에서 대상없는 금상을 수상했고,2016년 제2회 예술의전당 예술대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2017년 제3회 예술의전당 예술대상에서 공연 분야 최다 관객상, 대한민국음악대상 오페라 해외 부문 대상, 제18회 한국메세나대회 아츠&비즈니스상을 수상했다. 2023년 제2회 대한민국오페라어워즈 은상을 받았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4-06-17 08:38:21서울 종묘광장공원에서 남쪽으로 1㎞ 구간에 오래된 상가들이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다. 세운상가에서 시작해 삼풍상가, PJ호텔, 신성상가, 진양상가로 이어지는 곳이다. 서울시가 최근 이 지역을 녹지로 만들어 남산과 잇닿게 하고 주변을 재개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상가가 있는 1만1000㎡ 터에는 푸른 숲이 조성되고, 좌우에 고층빌딩들이 들어설 것이다. 세운상가를 비롯한 상가들은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잇달아 준공됐다. 이 지역은 원래 '종삼'으로 불리던 사창가였다. 문인들의 글을 보면 명동에서 취한 주당들이 비틀거리며 걸어서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나비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윤락녀들을 몰아내고 이곳을 건축가 김수근에게 설계를 맡겨 '스트리트몰'로 탈바꿈시켰다. 공사가 시작될 즈음 광고면에 조감도가 실렸다(조선일보 1967년 8월 20일자·사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개관식에 참석할 만큼 완공된 상가는 장안의 화제였다.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로서 서울 중심의 랜드마크 대접을 받았고, 아파트에는 부유층이 입주했다. 서울시는 "하와이 호놀룰루 알라모아나 쇼핑센터보다 더 크니 세계 제일"이라고 자랑했다. 그런데 막 완공된 세운상가 6~10층을 국회가 임차해 의원 전원이 입주하는 의원회관으로 쓰려다 호화 사무실이라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때는 국회가 현재의 태평로 서울시의회 자리에 있을 때였다. 이런 비난과 국회와의 거리 때문에 4년 만에 의원회관은 태평로 국회 옆 코리아나호텔로 옮겼다. 10월 유신으로 국회가 해산되는 바람에 짧은 기간에 그쳤지만 호텔 방을 의원 사무실로 쓴 것이다. 1975년 국회가 여의도로 옮겨간 뒤 의사당 앞 아파트를 매입, 설계를 바꿔 의원회관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의 의원회관이 준공된 것은 1989년 12월이다. 광고를 보면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가 시공 주체로 나오고 사장 박창원, 부사장 김수근이라고 씌어 있다. 세운상가를 설계하고 시공한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는 정부가 운영하던 엔지니어링 공기업이었다. 1963년 국제산업기술단으로 설립돼 1966년 8월 이 이름으로 바꿔 중요한 사업들을 시행했다. 올해 출범 61주년이 된다. 소양강댐도 이 업체가 설계했다. 1994년 민영화되어 한진건설이 되었다가 현재는 ㈜한국종합기술로 다시 바꾼 종업원 지주회사다. 세운상가를 설계했고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2대 사장을 지냈던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은 김중업과 함께 한국의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세계 현대 건축가 101인에 선정됐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한국의 로렌조'라고 칭했다. 로렌조는 미켈란젤로 등 예술가를 후원해 예술을 꽃피운 사람이다.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다가 전쟁이 터져 일본으로 밀항, 도쿄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김수근은 홍익대와 건국대, 국민대에서 교수로 일하기도 했다. 김수근의 자취는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세운상가 외에도 서울 불광동성당, 자유센터, 타워호텔, 잠실 올림픽경기장, 샘터 사옥, 공간 사옥, 동숭동 아르코 예술극장, KIST 본관, 문화방송 사옥,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서울지하철 경복궁역, 한계령 휴게소, 국립 부여·청주·진주박물관, 주미 한국대사관저, 경찰청 청사, 서울지법 청사, 워커힐 더글라스 호텔,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 등 주요 작품만 해도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현재 조선팰리스서울 강남 호텔로 재건축된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은 김수근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85년 병상에서 얼개를 그린 마지막 작품으로, 그의 유작인 셈이다. 김수근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했다고 해서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사장으로 공직을 맡기도 했고, 공공건축물을 많이 설계한 김수근으로서는 당국의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2024-05-16 18:1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