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경기 양주 옥정신도시의 한 고깃집에서 이른바 '환불 행패'를 부렸던 모녀에게 각각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의정부지법 형사5단독(박수완 판사)은 6일 공갈미수·업무방해·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목사 A씨와 그의 딸 B씨에게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A씨 모녀는 지난해 5월 양주시 옥정동 고깃집에서 3만2000원어치 음식을 먹은 뒤 "옆 테이블에 노인들이 앉아 불쾌했다"며 항의했다. 이에 음식점 주인이 사과했지만 5분 뒤 가게로 전화를 걸어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나 안되겠으니 고깃값을 환불해달라"고 말한 뒤 주인이 이를 거절하자 "이 식당은 방역 수칙을 위반했다. 신고하면 벌금 300만원"이라고 말하는 등 식당 주인에게 협박·폭언을 했다. 이후 이들은 해당 음식점이 '감염병 관리법을 위반했다'며 양주시에 신고한 뒤 이 사건이 인터넷을 통해 화제가 되자 '식당 주인들이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손님을 응대한다'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과 시 당국의 조사 결과 해당 식당은 칸막이를 모두 설치했고 식당 주인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계산하는 등 방역 수칙을 준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방역 수칙을 위반한 사실이 없음에도 환불을 요구하며 해당 관청에 신고한다고 협박한 점 등 죄가 인정된다"면서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한 점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죄질이 좋지 않고 피해자에게 아직 용서받지 못한 점, 피고 중 한 명이 폭력 범죄 등으로 여러 차례 처벌받은 전력 등이 있음에도 또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을 고려해 판결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2022-07-07 07:05:44[파이낸셜뉴스] 옆 테이블에 다른 손님을 앉혔다는 이유로 식당에서 행패를 부린 뒤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지속적인 폭언을 퍼부은 목사 모녀가 경찰에 소환했다. 경기 양주경찰서는 지난달 경기도 양주시의 한 식당 주인에서 식사를 한 뒤, 식당 주인에게 지속적으로 욕설을 한 사건 가해자모녀를 최근 불러 조사했다고 28일 밝혔다. 모욕 등의 혐의로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이들 모녀는 CCTV 영상에 포착된 행동과 녹취록의 발언 등을 인정하면서도 "갑질 의도로 폭언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보강 조사한 뒤 모녀를 검찰에 송치할지 결정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 사건은 자동차 전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올라온 글을 통해 밝혀진 뒤 논란이 됐다. 이 글을 살펴보면 모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바로 옆 테이블에 다른 손님이 앉아 불쾌했다는 취지로 식당 주인에게 항의했다. 모녀는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계속 욕을 하고 큰소리를 내고 나갔다는 게 식당주인의 주장이다. 이어 식당에서 나간 모녀는 식당주인에 욕설과 함께 폭언을 쏟아냈다. 해당 식당은 지난달 31일 잠정 휴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사건은 이른바 '목사 모녀 갑질 사건'으로 알려졌고 시민들은 해당 식당에 음식, 생필품 등을 보내며 응원을 보냈다. 식당 사장은 지난 26일 또 다른 글을 올리고 "일면식도 없는 저희에게 힘내시라고 돈을 보내주신 분들이 계신다"며 시민들로 받은 후원금을 양주시 장애인복지관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식당 사장은 목사 모녀 사건과 관련, "아직 경찰 조사 중이다"면서 "수사관님이 가해자에게 어떤 죄명을 적용해야 하는지 고심 중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 가해자는 저희를 고소했다"면서 "좀 귀찮게 된 거 같은데 편하게 이 상황을 대처해나가겠다"면서 "지친다고 중간에 좋게 끝내는 일은 없다"고 덧붙였다. ck7024@fnnews.com 홍창기 기자
2021-06-28 08:08:56[파이낸셜뉴스] 고깃집을 운영하는 부부를 상대로 이른바 ‘환불 갑질 행패’를 부렸던 모녀가 민사소송에서도 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들은 1400만원을 배상하게 됐다. 앞선 제판에서는 모녀에게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경기도 양주시 옥정신도시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업주는 전날(13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길었던 지난 소송 결과에 대해 전했다. 그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두 모녀는 1심 판결에서 각 500만원씩 벌금이 선고된 후 항소장을 제출했다. 2심에서 항소가 기각 당했고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지만 기각당해 벌금 500만원이 확정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민사소송은 두 모녀에 각 700만원씩 총 1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 확정되었다”고 덧붙였다. 업주는 이들 갑질 모녀에게 받은 배상금을 “좋은 일에 전액 사용하겠다”고 알렸다. 패소한 모녀는 지난 2021년 5월 26일 식사를 마친 뒤 카운터에 찾아와 불만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막말 등으로 업주에게 정신적 피해를 입혔다. 코로나19 상황에 자신의 옆 테이블에 다른 손님이 앉았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모녀는 식사 중에 자리변경 요청도 하지 않았지만 사장은 “일단 죄송하다”고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주는 이어 “저희가 그 자리에 앉힌 것이 아니라, 단골손님이라 알아서 익숙한 자리에 앉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 모녀는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선 후에도 전화를 걸어 “아무리 생각해도 열 딱지가 나서 안 되겠다”며 “고깃 값을 환불해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했다. 식당 사장이 공개한 녹취록에서 모녀 중 어머니인 A씨는 “옆에 늙은것들이 와서 밥 먹는 데 훼방한 것밖에 더 됐냐”, “터진 XXX로 그게 말이야?”, “다음에 가서 가만히 안 놔둔다” 등의 막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기분 나빴으면 돈 깎아준다고 해야지”, “고깃값 빨리 부쳐”라며 고깃값을 환불해달라는 요구와 방역 수칙 위반으로 신고해 과태료 300만원을 물게 하겠다고도 말했다. 방역수칙 위반했다고 폭언…CCTV 확인 결과 사실무근 모녀는 또 “니네 방역수칙 어겼다고 찌르면 300만 원이야”라며 방역 당국에 신고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매장 내 테이블 간 간격을 두지 않았고 사장이 카운터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가게는 모든 테이블 사이에 가림막을 설치한 상태로 방역 수칙 위반에 해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장이 공개한 폐쇄회로(CC)TV 화면에 따르면 오히려 A씨가 항의하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해 의정부지법 형사1부는 지난 6월 15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공갈미수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목사 A씨와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딸 B씨에게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항소심 판결에 앞서 모녀는 최후변론을 통해 ‘언론이 우리를 악마화했다’, ‘우리가 피해자다’라는 주장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3-11-14 10:59:31[파이낸셜뉴스] 여신도 성폭행 혐의로 구속기소 된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총재 정명석이 수감 시절 'JMS 2세' 신도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됐다. JMS 전 부총재였던 김경천 목사가 탈퇴 후 만든 온라인 카페 가나안(JMS를 떠나 예수님의 품으로)에는 지난 24일 '저는 PD수첩에 출연한 섭리 2세이자, 자녀의 성 피해를 묵인한 엄마의 딸입니다'란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 A씨는 앞서 MBC PD수첩 'JMS, 교주와 공범자들' 편에 출연해 정명석이 출소한 후 성폭행 당했던 일과 그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던 자신의 엄마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은 바 있다. A씨는 정명석이 감옥에서 A씨의 엄마와 A씨에게 보낸 편지 일부를 공개했다. A씨는 "저는 키가 큰 편이었다”라며 “중학교 2학년 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 상태에서도 ‘스타 시켜 달라’는 편지를 정명석에게 썼다”라고 했다. ‘스타’는 특별관리된 미모의 여성 신도들을 칭한다. A씨는 “100통을 써도 안 온다던 기적 같은 답장이 왔다”라며 “그 당시 최연소 신앙스타가 됐다”라고 했다. A씨가 공개한 편지에서 정명석은 A씨 모녀에게 노골적이고 변태적인 말들을 늘어놨다. 정명석은 A씨의 모친에게 "00이(A씨)가 자기 엄마 닮았다고 함. 허리 닮고 과일도 닮고 히프도 닮고", "00이(A씨)가 자기 엄마 닮아서 허벅지 크다고 좋아해. 내가 허벅지 큰 거 좋아한다니까 당장 편지 옴. 뇌를 꽉 심어줘" 등의 말을 하며 딸을 잘 관리하라고 했다. A씨에게는 "엄마도 예쁘니 너도 예뻐. 잘 커. 사랑해. 뽀뽀. 선생과 사랑해”, “너 19살 때 나 만나게 된다. 안고 사랑해야지. 킥”이라며 출소 후 자신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A씨의 이성 관계를 단속하기도 했다. 정명석은 “남자와 같이 다니는 학교라 남자 말 걸지 마. 전도도 남자에겐 하지 마”, “남자는 하체 보면 미쳐서 기어이 사냥한다. 강간한다”, “이성은 아주 금물이고 독약 먹는 것” 등의 표현을 했다. 편지를 공개한 이유에 대해 A씨는 "여전히 진실을 모른 채 JMS에 빠져있는 교인들이 안타까워서 목소리를 낸다"라며 "저를 포함한 JMS의 모든 피해자들이 아주 잠시만 추락하고 방황하다 다시 환하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2023-04-27 14:37:38[파이낸셜뉴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나, 올 가을은 다큐의 계절이라 할만하다. 주목할만한 다큐가 10월 잇따라 개봉한다. 칸영화제 초청작이자 홍콩민주화 시위를 다룬 ‘시대혁명’과 ‘가족의 나라’ 양영희 감독의 신작 ‘수프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美이민사와 정치사를 바꾼 5명의 한인의 이야기를 그린 ‘초선 CHOSEN’이다. 먼저 오는 13일 개봉하는 ‘시대혁명’은 중국의 범죄인인도법안 일명 송환법에 맞선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를 생생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이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 된 ‘범죄인 인도법’은 중국 정부가 부당한 정치적 판단을 바탕으로 홍콩의 반중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해당 법안을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거세게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700만 홍콩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 국제적으로 커다란 화제와 지지를 얻어냈고 그 과정이 한편의 다큐멘터리로 완성됐지만 중국의 상영 불허로 홍콩에서는 상영금지되고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돼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가족의 나라’를 선보인 양영희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와 남편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재일조선인 부모는 평소 딸에게 결혼 상대로 미국인과 일본인은 절대 안된다고 했으나,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엄마는 예비 사위를 위해 닭 수프(삼계탕)를 끓인다. 더불어 건강이 약해진 엄마는 평생 숨겨왔던 비밀을 터놓는다. 모녀와 한 가족의 사적인 대화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하며,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한국의 근현대사의 고찰로 드라마가 확장된다. 제주4.3과 한국전쟁은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크고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남북이 분단된 지금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인 흰기러기상, 제47회 서울 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오래도록 곱씹어야 할 생각거리를 제공한다”(박찬욱 감독), “바로 옆에 살면서 나와는 다른 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 사이 그어진 선은 가늘고 얇아진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 영화계 인사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美 이민사와 정치사를 바꾼 5명의 한인의 이야기를 그린 ‘초선 CHOSEN’은 11월 3일 개봉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초선’은 2020년, 미국 정치 역사상 최초로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동시에 도전한 5명의 한인 동포를 통해 이들이 이민자로서 어떻게 성장하고 미국 정치계에 왜 뛰어들었는지, 1992년 LA 폭동이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그린다. 특히 후보들 중 데이비드 김은 기업체의 도움 없이 시민들의 응원을 이끌어 내어 세력을 키워가는 과정과 성 정체성으로 인한 목사 아버지와의 갈등, 기성 세대에게 호소하는 노력 등의 성장기를 통해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더불어 5인의 한인 정치인은 LA폭동 이후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지도자의 부재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각종 아시안 혐오범죄 등으로부터 한인 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 지도자의 탄생을 기대하게 한다. ‘초선’을 연출한 전후석 감독은 재외동포 변호사 출신으로, 전작 ‘헤로니모’에 이어 두 번째로 재외동포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았다. 전후석 감독은 “다름 속에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무슨 뜻일까”를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었다며 “다큐를 통해서 세대간, 인종적, 이념적, 성소수자들의 갈등을 다방면에서 묵묵히 들여다보고, 중립적으로 모든 후보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자 했다”고 말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2-10-12 09:47:12[파이낸셜뉴스] 방역당국이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 국내 첫 확진자인 인천 목사 부부에 대해 고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 목사 부부는 역학조사에서 "방역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고 진술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2일 인천시 등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에서 귀국해 확진 판정을 받은 40대 목사 부부는 지난달 25일 초기 역학조사 때 "방역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고 진술했으나 실제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30대 지인이 운전한 차량을 타고 자택으로 이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방역 당국과 인천시는 추가적인 사실관계 확인을 거쳐 해당 부부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설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앞선 확진자들 중에서도 동선을 속이거나 자가격리 수칙을 위반해 재판에 넘겨진 사례가 있다. 지난해 이태원발 유행 당시 거짓 진술을 했던 인천 미추홀구 학원 강사 A씨는 지난해 5월 서울 이태원을 방문했다가 9일 코로나19에 확진됐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무직'이라고 거짓 신고했고, 3차례 역학조사에서 20여차례 허위 진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통한 연쇄 감염으로 전국에서 80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다. 결국 A씨는 '감염병예방법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7월 광주지법은 감염병예방법을 위반해 재판에 넘겨진 60대 B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월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지만 가족과 함께 사찰과 음식점 등을 방문했다. 확진 판정 이후 역학조사에서는 집에 머물렀고 접촉자는 가족뿐이라고 거짓 진술을 했다. 자가격리 수칙을 위반해 재판에 넘겨진 사례도 있다. 지난해 4월 의정부지법은 자가격리 통지를 어기고 휴대전화를 꺼놓은 채 방역당국의 추적을 피해 경기 의정부, 양주, 서울 노원구 일대를 돌아다닌 C씨에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 이외에도 정부는 방역지침을 어긴 자에 대해 구상권 청구를 천명하기도 했다. JTBC보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정부가 구상권을 청구한 건 전국에 18건, 1083억여원이다. 18건 중 재판 일정도 잡히지 않은 게 7건, 형사 사건의 추이를 보겠다며 도중에 멈춘 게 5건으로 전체 사건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증상을 숨기고 여행을 한 뒤에 확진이 됐다'며 제주도가 서울에서 온 모녀에게 1억3천여만 원을 청구한 사건이 이번달 선고가 예정되어 있다. 법조계에선 이 사건이 앞으로의 관련 재판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르면 역학조사 과정에서 거짓으로 진술하거나 고의로 사실을 누락·은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수습기자
2021-12-03 09:30:35스물일곱 살이던 나는 줄곧 원하던 삶을 살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원한다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청년부 목사와 결혼했다. 우리에게는 두 딸이 있었고 나는 셋째 딸을 임신 중이었다. 남편 대니얼은 교회에서 바빴고 우리 가족은 신도들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는 내가 자라면서 우러러보던 청년부 가족과 비슷했다. 가사에 전념하는 엄마와 밝은 아이들이 있고 교회 일에 참여했다. 친정은 정반대였다. 아빠는 엄마가 날 임신했을 때 집을 나갔다. 엄마는 장시간 일했지만 필수품 외에 많은 걸 살 여유가 없었다. 나는 자칭 '예수 그리스도 마니아'로 일요일마다 혼자 교회에 출석했다. 중학교 친구들과 함께 신도석에 앉았는데, 내 주변의 어느 한 가족에 속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오랫동안 지금 내게 있는 그런 가족을 주십사 기도드렸다. 그런데 어째서 불행하지? 세번째 임신으로 감정적으로 힘들다거나 최근에 임신성 당뇨 진단을 받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스스로 목사의 아내와 전업주부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어렸을 때 청년부에서 기억하는 느긋하면서도 의욕적인 엄마들의 모습은 고사하고, 아이들과 집에서 보내는 나날은 소셜미디어에서 본 활기차고 상상력 넘치는 가족과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 남편의 목회 활동을 돕고 싶었지만, 나는 그가 하는 일이 시간이 많이 든다는 데 점점 더 골을 내고 있었다. 남편이 따로 시간을 내어 신학 석사 공부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남편의 일은 대부분 오후, 저녁, 주말에 있었는데, 바로 그때가 내 기력이 달려서 남편의 도움과 동료애를 간절히 바라는 때였다. 나는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는데,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 직업적 글쓰기를 이렇게나 그리워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양육의 의무가 커질수록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남편의 얼마 되지 않는 수입을 보충할 수 있기를 더욱더 바라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왜 나는 감사하지 못할까? 내 문제가 무엇일까? 당뇨 진단을 받았을 때 모든 것이 곪아서 터질 지경에 이르렀다. 정례적인 혈액 검사가 정상보다 높은 당 수치를 보였다. 의사는 당장 검사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대니얼은 교회에서 청년부 행사를 감독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얘기하려고 전화를 걸었으나, 지켜보는 사람 없이 행사장에 아이들을 남겨두고 남편이 자리를 뜰 수는 없었다. 네 살 페니와 두 살 조지아가 자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딸들과 있어 줄 친구 하나를 구했고 또 다른 친구인 로렌이 날 병원에 데려갔다. "이럴 때 남편이 여기 있으면 좋겠어." 내 말에 친구가 손을 꽉 잡아 주었다. 그날 밤늦게 돌아왔을 때도 남편은 여전히 집에 없었다.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왜 최소한 병원으로도 오지 않았어요? 이런 건 내가 우리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에요." 남편이 왔을 때 쏘아붙였다. 대니얼은 나를 안고 미안하다고 했다. 남편이 책무를 감당하느라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지 그의 목소리에서 알아들었다. 남편을 탓하는 게 부당하다는 걸 알았다. 내가 언제나 원하던 삶이 날 불행하게 하는 건 남편의 잘못이 아니니까. 나는 문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조차 몰랐고 내가 문제를 제기할 때 닥칠 일이 두려웠다. 대니얼이 아빠처럼 날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저 일하려고 가족의 균형을 뒤집는다면 남편이 화를 내지 않을까? 내가 가족보다 일을 우선한다면 하나님을 공경하는 걸까? 아빠는 한 번도 딱히 미더운 적이 없었다고 엄마가 말했다. 내가 태어났을 땐 엄마와 나뿐이었다. 내가 태어날 무렵 한동안 엄마는 외조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주말과 방과 후 시간을 자주 할머니 할아버지와 보냈다. 엄마는 기차역 역무원으로 종종 저녁과 주말에도 일했지만 돈은 빠듯했다. 모든 것이 불안정했다. 내가 갈망하던 안정감을 교회 청년부에서 찾았다. 엄마는 날 방학 성경 학교에 등록했고 나는 꾸준히 출석했다. 내 가족도 청년부 가족과 비슷하기를 바랐다. 부모 두 사람에 엄마는 집에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교회 일에 참석하는 모습. 하나님께 그런 가족을 주십사 기도했다. 대니얼의 가족과 비슷한 가족 말이다. 우리는 대학 재학 중에 만났다. 대니얼의 아버지는 사업체를 꾸렸고 어머니는 집에 있으면서 세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보살폈다. 대니얼과 친구들은 그 집에서 어울려 놀면서 냉장고를 비우고 소파에서 빈둥거리며 TV를 봤다. 남편의 유일한 반항은 기독교 신앙을 부모님보다 엄격하게 받아들인 거였다. 그에게 전통적인 가족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의 일부였다. 내게 가족은 언제나 원하던 안전한 항구였다. 결혼하고 넉 달 후에 페니를 임신했다는 걸 알았다. 우리의 완벽한 가족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 이상(理想)이 시들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입 목사로서 남편은 보수가 적고 밤낮으로 시간을 내야 했다. 우리는 지하 아파트에 살면서 간신히 식료품을 샀다. 혼자라는 기분이 들면서 끝없이 녹초가 되었다. 페니가 5개월이 되었을 때 강아지처럼 입혀서 교회 핼러윈 축제에 데려갔다. "대니얼은 어디 있어?" 친구가 물었다. 친구의 남편은 아기를 안고 있었다. "대니얼은 여기서 축제를 돕고 있어. 정확히 어딨는지는 모르겠고." 그날 늦은 저녁, 우리는 카시트에서 잠든 페니를 두고 여전히 교회에 있었다. 다른 가족들이 귀가해서 아이들을 침대에 눕히고 난 한참 후에도 나는 난장판을 치우는 걸 도왔다. 아기를 안고 있던 친구의 남편이 계속 떠올랐다. 남편이 다른 교회에서 청년부 목사 일을 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둘째딸 조지아가 태어났다. 남편의 새로운 일은 훨씬 더 고됐다. 청년부는 규모가 컸고 대니얼은 함께하는 학생들을 위해 높은 희망을 품었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섰고 때로는 밤이 늦도록 집에 오지 않았다. 내 안에 안달복달하는 마음이 쌓였다. 내가 갈망하던 가족의 핵심은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는 엄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는 양육 이상의 일을 하고 싶었다. 프리랜서 기자가 되고 싶었다. 소망을 현실로 이루려면 모두가 변해야 했다. 위험 부담이 커 보였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미 마련해 주신 바에서 등을 돌리고 도와달라고 기도드릴 수 있겠는가? 프란체스카라는 교회 사람과 친구가 되었다. 프란체스카는 두 아이를 둔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출산 휴가 후에 직장으로 복귀하지 말라고 친구를 설득하려 했다. 친구 없는 날들을 견딜 수 없었다. 프란체스카는 일하는 걸 즐긴다고 했고, 나는 친구의 두 아이가 보육 시설에서 잘 지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프란체스카의 일 얘기를 들으며 그녀가 가정에서 찾지 못하는 어떤 것을 직장에서 발견했음을 알았다. "우리는 왜 당신만 일할 수 있다고 정했을까요?" 어느 밤에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으며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도 당연히 일할 수 있어요. 그저 보육시설이 너무 비싸서 그렇지요." 남편의 대답이었다. 대니얼은 전에도 내게 글을 쓰라고 권했지만 이번에는 좀 더 직접적인 제안 같았다. 우리는 합의를 봤다. 아이들이 낮잠 자는 사이에 나는 글을 쓴다. 내가 돈을 벌면 보육비를 감당할 수 있을 거다. 기사 몇 편을 팔았고 일주일에 이틀씩 딸들을 보육시설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다가 엘로이즈를 임신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일을 그만두라고 말씀하시려는 걸까? 엄마를 떠올렸고 엄마가 일하는 동안 누가 날 돌볼지를 두고 엄마가 고심하던 게 기억났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스스로 챙기는 편이 더 편하다고 얘기했다. 우리 모녀는 가까웠지만, 관계는 복잡했다. 내가 '정상적인' 가족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 들을 때마다 엄마는 상처를 받았을 게 분명했다. 홀로 보내던 그 모든 오후를 떠올렸다. 어떻게든 상황은 굴러갔다. 나는 청년부를 찾았고 대학에 진학했으며 대니얼과 결혼했다. 나는 자라면서 빨리 회복하는 법을 배웠다. 하나님께서는 내 삶의 단계마다 계셨으며 내가 앞으로 나가게끔 도와주시고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날 사랑하셨다. 내가 나 자신에게 부여한 기대는 신앙보다는 공포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메시지는 "두려워하지 말라"임을 기억했어야 했다.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엘로이즈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엘로이즈가 돌이 되자 반일 보육시설에 등록하고 매일 글을 썼다. 점차 프리랜서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잘 지냈고 내 삶은 친구 프란체스카와 비슷하게 분주하고 충만해 보이기 시작했다. 대니얼은 우리 교회의 다른 지부에서 주임 목사로 승진했다. 대니얼에게 그가 자랑스러우며 돕고 싶다고 얘기했다. 또한 "목사의 완벽한 아내가 되기 위해 압박감을 느끼고 싶지는 않아요"라고도 말했다. "당신한테 절대 그런 거 바라지 않아요." 남편이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성직자 가정으로서 일과 가족, 교회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 가는 중이다. 이제는 그 과업이 훨씬 더 수월해졌기에 두려움이 내 생각을 이끌게끔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건 내가 바란다고 줄곧 생각했던 삶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신 더 나은 삶이었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
2021-11-09 18:23:08몇 달간 상상해 온 순간이었다. 마침내 그때가 되었다. "아빠, 마음에 쏙 드실 거예요." 차고에서 떨어진 자리에 우리가 겨우내 지은 별채의 문을 휙 열어젖히며 말했다. "짜잔! 놀라지 마세요!" 남편 제프가 앉을 자리에 새 카펫을 깔아 두었다. 벽은 갓 칠한 페인트로 반짝였다. 대학생 딸 제스는 큼직한 실내용 화분 몇 개를 보탰다. 아빠가 글을 쓸 책상, 성경을 읽을 편안한 가죽 안락의자와 그에 어울리는 발받침도 있었다. 흠잡을 데 없군! 때는 2019년 3월이었고, 나는 플로리다까지 비행기를 타고 갔다. 아빠가 두 달간의 겨울휴가를 보내고 나서 인디애나에 있는 집으로 운전해서 돌아오는 걸 돕기 위해서였다. 93세인 아빠는 이제 장거리 운전이 편치 않았고, 나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어쨌든 차에 있는 내내 비밀을 간신히 지켰다. 비밀은 8개월 전, 돌아가시기 직전의 엄마와 했던 약속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괜찮을 거예요. 이제 제가 아빠를 돌볼게요." 내가 속삭였다. 엄마의 눈이 내 눈과 마주쳤고, 엄마도 이해했다는 걸 알았다. 하나님께서는 엄마가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게 도울 기회를 내게 주셨다. 어떤 면에서는 약속을 지키는 게 엄마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지킬 의무처럼 느껴졌다. 부모님은 우리집에서 북동쪽으로 2시간 거리인 인디애나주 프랭크퍼트에서 살았다. 아빠는 목사이자 교구 관리자였으며, 그곳에서 풍요로운 삶을 꾸렸다. 은퇴하고 나서도 성경공부 모임을 이끌고, 바깥 출입이 어려운 이들을 찾아다니며 아빠 땅에 심은 나무를 가꾸고 돌보았다. 하지만 엄마가 안 계신 삶이란 예전 그대로일 수는 없었다. 두 분은 근 70년 동안 결혼 생활을 이어왔다. 아빠가 모든 일을 혼자 해내려고 애쓰는 건 원치 않았다. 그게 별채로 아빠를 놀라게 하는 계획의 장점이었다. 일단 별채를 보면 설득될 터였다. "어때요?" 내가 물었다. 의자 위 벽에 내가 걸어둔 가족사진, 아빠의 옷을 기다리는 옷장, 책꽂이에 둔 엄마 사진 액자를 아빠는 구경했다. "아름답구나. 그렇지만 이 모든 걸 날 위해 하지는 않았겠지? 손님용 방으로도 괜찮단다." 아빠의 미소는 입가에만 머물렀다. 찌릿하게 밀려오는 의심을 밀어냈다. 늦은 시각이었고, 우리 둘 다 장거리 운전으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빠. 아침에 더 얘기해요." 아빠의 별채를 위해 남편이 자기 사무실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게 실수였을까? 지난가을 어느날 내가 찾아갔을 때 아빠는 살림 규모를 줄이는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아침 식사 중에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시리얼의 바나나를 조금씩 먹었다. 아빠답지 않았다. "침대는 편하셨어요?" "아주." "집에 갈 준비되셨죠, 그렇죠?" 나는 억지로 미소 지었다. "그럼! 옛집이 잘 버티고 있는지 봐야지." 대답하는 아빠에게 갑자기 활기가 넘쳤다. 여행가방을 닫는 아빠를 바라보는데, 완전히 이곳으로 이사하시라는 얘기를 꺼내기가 두려웠다. '곧 돌아오실 거야.' 혼잣말을 했다. 물론 아빠는 프랭크퍼트로 돌아가야 했다. 집도 매물로 내놓아야 하고,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도 해야 하니까. 아빠의 차까지 따라나섰다. "얼른 돌아오세요." "그러마. 사랑한다." 아빠가 내 볼에 입 맞추며 말했다. 며칠 뒤, 아빠의 안부 확인차 전화를 걸었다. "언제 다시 오실 수 있어요?" "수요일에는 성경공부가 있고 이번주 주일학교에서 가르치기로 했어. 화요일에는 친구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그러고 나면 성경공부가 있구나." 93세인 아빠는 나보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곧 돌아가마. 너희가 마련해 준 별채에서 쉬기를 고대하고 있단다." 아빠는 2주 후에 방문차 왔으나 고작 며칠이었다. 그리고 봉사활동, 정원 일, 성경공부로 몹시 돌아가고 싶어했다. 매달 그런 양상을 되풀이했다. 그해 여름 조카의 졸업을 축하하는 가족모임에서 내가 몇 달 동안 교묘히 피했던 질문을 남동생이 던졌다. "아빠, 집을 팔고 누나랑 매형 집으로 이사하는 게 어떠세요?" 아빠는 철컥 소리를 내며 접시에 포크를 내려놓고는 한 단어씩 힘주어 말했다. "아직 집을 팔 준비가 안됐어. 프랭크퍼트의 생활과 내게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어. 너희 엄마와 함께한 추억도 거기 있고."이게 아빠에게 얼마나 힘든지 이해했다. 내가 엄마를 보고 싶어하는 것보다 분명 천배는 더 엄마가 그리우실 거다. 그래도 나는 마음이 아팠다. 아빠를 위한 별채에 쏟은 그 모든 노고. 내 도움은 원치 않는다고 아빠가 말하는 것 같았다. 여름이 저물어 가을과 겨울이 되었고, 아빠는 몇 주마다 오셨다. 아빠가 더 낫고 편안하며 안전한 삶을 꾸리기 위해 딸에게 원하는 건 없었다. 별채도 당연히 아니었다. 아빠는 여느 때처럼 독립적이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아빠가 양보한 한 가지는 우리 집에 오실 때 내가 프랭크퍼트까지 가서 모셔올 수 있게 한 거였다. 2020년 2월, 동부와 서부 해안 지역에서 사람들이 바이러스로 병들어 간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노년층이 특히 그렇다고 했다. 인디애나 시골에서 한참 떨어진 세상 일 같았다. 매주 코로나19가 점점 더 가까이, 서서히 다가오는 걸 지켜보았다. 3월 말, 주지사는 인디애나주가 봉쇄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딸아이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게 불확실한 채 집중 공격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한자리에 얼마나 오래 피신해 있어야 하는지, 감염을 피할 수 있는지, 음식은 구할 수 있는지. 화장실 휴지마저도 그랬다. 아빠에게 전화해서 봉쇄령이 시행되기 전에 모시러 가겠다고 전했다. 아빠의 옷을 챙기고 냉장고를 비웠으며 집에 있던 모든 화장실 휴지를 가져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함께 사는 생활에 적응했다. 아빠의 여느 방문과는 달랐다. 아빠는 좀 더 느긋해졌고, 우리 가족이 반복하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나도 좀 더 편해졌다. 아빠가 어디서 지내야 하는지 같은 질문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별채는 아빠가 혼자 성경을 읽고 친구들에게 전화하는 공간인 동시에, 가족과 가까이 있으면서 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피난처였다. 오직 하나님만 예견하실 수 있는 소용이었다. 나는 아빠가 유년기의 추억을 풀어놓게 하면서 아빠의 기억을 기록했다. 딸아이는 넋을 놓고 귀담아들었다. 둘은 그들만의 유대를 쌓았다. 날이 풀리고 아빠는 마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잡초를 뽑고 내 도구들을 깨끗이 닦았으며 도구창고 주변에 자갈을 고르게 깔았다. 어느 날 오후 아빠가 문으로 머리를 디밀고 얘기했다. "다른 나무들과 줄이 맞지 않은 근사한 산사나무 묘목이 하나 있구나. 너희를 위해 옮겨 심어도 되겠니?" "물론이죠." 아빠는 아빠 나이의 절반밖에 안 되는 사람의 에너지가 있는 것처럼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기다리세요. 도와드릴게요." 내가 따라잡았을 때쯤, 아빠는 이미 나무 주변을 파고 있었다. "제 차례예요." 아빠는 내게 삽을 건네며 어디를 파야 하는지 일러주었다. "뿌리를 조심해." 다음 한 시간 동안 우리는 번갈아 땅을 파고 쉬었다. 마침내 뿌리를 느슨하게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 "어디에 심고 싶니?" 아빠가 한 손으로는 나무를, 다른 한 손으로는 삽을 들고 물었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창고에 기댔다. 예전 여름에 아빠가 주신 은행나무 두 그루 옆을 가리켰다. 30분 후 우리는 산사나무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기분 좋은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낑낑거리며 물통을 날랐다. 나무에 버팀목을 받치기 위해 아빠는 창고에서 철망과 장대를 찾았다. 엄마와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나는 요리와 빨래를 하면서 은퇴한 아빠에게 마땅한 휴식을 선사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여기서 아빠는 나를 위해 일하고 계셨다. 봉쇄로 함께 살면서 좀 더 심오한 걸 깨달았다. 하나님께서는 돌봄의 핵심이 마음이 통하는 것임을 보여주셨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해주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바를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 모녀는 서로를 위해 그 자리에 있었으며, 그건 아빠가 집으로 돌아가신 다음에도 이어지리라는 걸 알았다. 6주 후에 봉쇄가 끝났다. 아빠는 정원에 무얼 심었는지 얘기하면서 간절히 아빠의 마당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제스가 운전해서 할아버지를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다. 작별 인사는 시원섭섭했다. 아빠를 꼭 끌어안았다. "사랑해요." 내가 말하는데 아빠의 팔이 날 더 꼭 안았다. 아빠에게 가장 필요한 건 내 집에 없었다. 그건 내 마음 안에 있었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가이드포스트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어려움 속에서 꿈을 키워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감동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의 후원을 통해 군부대, 경찰, 교정시설, 복지시설, 대안학교 등 각계의 소외된 계층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을 통해 더 많은 이웃에게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
2021-08-31 18:05:03경기도 양주시의 한 고깃집에서 옆 테이블에 다른 손님을 앉혔다는 이유로 사장에게 폭언을 퍼붓는 손님의 녹취록이 공개돼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 27일 자동차 전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게시된 "음식 다 먹고 나간 다음 환불해달라고 협박하는 목사 황당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에 따르면 지난 26일 글쓴이가 운영 중인 식당을 찾은 한 모녀가 식사를 마친 뒤 카운터에 찾아와 불만을 제기했다. 코로나 상황에 자신의 옆 테이블에 다른 손님이 앉아 불쾌했다는 것이다. 모녀는 식사 중에 자리변경 요청도 하지 않았지만 사장은 "일단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저희가 그 자리에 앉힌 것이 아니라 단골손님이라 알아서 익숙한 자리에 앉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모녀가 식당을 떠나고 5분 뒤 발생했다. 모녀 중 어머니인 A씨가 전화를 걸어 "화가 나니 고깃값을 환불해달라"는 요구와 함께 폭언을 쏟아낸 것이다. 고깃집 사장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A씨는 당시 사장 대신 카운터에 있던 아내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열 딱지가 나서 안 되겠다”, "옆에 늙은것들이 와서 밥 먹는 데 훼방놓았다"며 다짜고짜 불만을 제기했다. 이어 "기분 나빴으면 돈 깎아준다고 해야지", "고깃값 빨리 부쳐"라며 식사비를 환불해달라는 황당한 요구까지 했다. 그러면서 "니네 방역수칙 어겼다고 찌르면 300만 원이야"라며 방역 당국에 신고하겠다는 협박도 했다. 하지만 식당 내 모든 자리에 칸막이가 설치된 상태였으며 사장이 공개한 폐쇄회로(CC)TV 화면에 따르면 오히려 어머니 A씨가 항의하며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다. A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네 서방 바꿔, 너 과부야?", "다음에 가서 카운터에서 가만 안놔둔다"며 막말을 이어갔다. 또 같이 왔던 딸까지 전화를 걸어 "리뷰를 쓰겠다", "주말에 그러면 한 번 엎어봐?"라며 협박을 이어갔다. 사장은 28일 해당 커뮤니티에 다시 올린 글에서 "아내는 (사건 뒤) 이틀 동안 잠도 못 자고 손발이 너무 떨려 정신과에 가서 약까지 처방받았다"고 밝혔다.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듣는 내가 더 열 받는다", "빨리 진심으로 사과해라", "저 상황에도 침착하게 응대하는 사모님 인성이 대단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가게에는 보배드림 회원들이 보낸 각종 음식, 생필품, 화환 등이 쇄도했다. 이후 사장 아내는 29일 보배드림에 글을 남겨 "오늘 보배님들의 돈쭐에 많이 혼났다"면서 "신랑한테 보배드림 이야기를 수년간 말로만 들었지, 제가 당사자가 되고 저희 글이 이슈가 돼 수많은 여러분들께 도움을 받을 날이 오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다"고 밝히면서 감사를 표했다. 그는 "저는 선처, 합의 절대 안한다. 두 모녀의 더러운 돈 안 받는다"며 "사과? 필요없다. 가벼운 혓바닥으로 한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 준 것에 대한 죗값 꼭 받길 원한다"며 강경 대응 방침을 내놨다. 그러면서 "받은 돈쭐의 이익이 남는 부분은 좋은일에 쓰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2021-05-30 10:03:32[파이낸셜뉴스] "알몸으로 개처럼 기어다니며 사랑고백하라 하고….", "모녀끼리 유사 성행위를 하라 강요하기도…." 미성년 여성 등을 교회에 감금하고 성적으로 착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경기 안산의 '안산 Y교회' 목사부부의 충격적인 범죄행각이 지난 16일 방송된 SBS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드러났다. 17일 SBS 보도 등에 따르면 방송에 나온 20대 여성 3명은 지난해 12월 안산 Y교회 오 목사를 성폭행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이들은 초등학교때부터 교회에서 단체생활을 하면서 오 목사 가족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영적 에너지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영맥'이라 불리며 오 목사의 성적 시중을 들었다고 고백했다. 영매 역할을 했다는 한 여성은 "알몸으로 개처럼 기어다니며 (오 목사에게) 사랑고백을 하라고 하고, 여자끼리 유사 성행위를 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또 "모녀끼리 유사 성행위를 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오 목사는 이들이 거부하면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집요하게 강요했고 이를 동영상으로도 남겼다고 주장했다. 이 여성은 "항상 목사님은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하게 해주세요, 하고 싶습니다'라는 대답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이 여성들은 노동력도 착취당했다고 주장했다. 마스크팩 접기, 쇼핑백 접기 등 부업을 하면서 교회에 돈을 벌어다 줬다고 했다. 그런데도 최소한의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방송에서는 오 목사 부부가 교회의 헌금으로 많은 부를 축적해 고급차와 값비싼 시계 등도 진열돼 있는 모습을 조명했다. 이런 의혹에 대해 교회측은 오 목사가 류마티스 관절염 등을 오래전부터 앓고 있어 성착취 등을 할만한 건강상태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SBS는 경찰에 확인한 피해자가 10명도 넘으며 오 목사의 아내와 아들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입건해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onnews@fnnews.com 이슈픽팀
2021-01-17 14:0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