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사이여도 ‘이것’ 있다면 한순간에 없던 정도 생긴다. ‘이것’을 마시면 하기 어려운 말을 꺼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이것’이 있는 자리에서는 흥이 넘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술이 부리는 마법은 실로 위대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술은 ‘정’으로 통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유난히 술에 관대하다. 유연한 마음은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하나의 정서로 자리 잡기도 해 하나의 딜레마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방송가에서 이 딜레마는 ‘좋은 기회’로 다가선 듯하다.
◇ 연예인과 대중에게 ‘술’이란
대중은 늘 연예인의 사생활에 눈과 귀가 열려있다. 연예인이 더이상 신비로운 인물이 아닌 친근한 존재로 자리 잡은 요즘, 틀에 박힌 이미지는 이미 물 건너 간지 오래다. 사람들은 연예인이 평소에 어떤 행동과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사석에서는 무엇을 하고 노는지 궁금해한다.
여기에는 술이 빠질 수 없다. 술만큼 연예인과 일반인의 사이를 좁혀놓는 매개체는 없다. 연예인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목격하거나 온라인상 등에서 발견한 순간, 이들 사이의 벽은 허물어진다.
연예인이 술 관련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이 사람들도 우리와 별 다를 바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예인이 자신의 주량과 주사, 술자리 에피소드를 털어놓으면 왠지 털털하고 친근해 보인다. 조신하고 차분한 이미지의 연예인이라면 이미지 반전의 효과는 더욱 크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네이버 V앱 등을 통해 ‘술방’을 펼친다. SNS에서는 가수들이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슬 라이브’가 인기를 얻고 있다. 모바일 플랫폼을 우선으로 한 ‘신서유기’에서는 회식을 연상케 하는 술자리 모습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SBS 모비딕은 예능 ‘3차 가는 길’을 선보였다.
시청자들은 술을 마시고 불그스름 달아오른 연예인의 얼굴과 높아진 목소리를 정겹게 여긴다. 노래를 부르다 음이탈이 나면, 젓가락을 떨어뜨리거나 웃음이 과하게 많아지면 ‘저 연예인 진짜 취한 거야?’라며 묘한 즐거움을 느낀다. 우리네 술자리처럼 소박하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에 동질감을 얻기 시작한다.
브라운관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술을 활용하고 있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는 박나래의 ‘나래바’를 중점적으로 다뤘고, KBS2 ‘배틀트립’에서는 술을 주제로 여행을 떠난다.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도 김건모는 술 기행을 보여주고 소주병으로 트리를 만든다.
이 외에도 술을 언급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MBC ‘라디오스타’에서는 박나래·양세형 등의 배꼽 빠질만한 술 에피소드를 내보냈다. 최근 JTBC ‘아는 형님’에서는 김희선이 ‘토마토(토하고 마시고 토하고)’라는 별명과 주사를 밝히며 털털함을 과시했다.
◇ 술의 정서, ‘술방’으로 이어질 수 있던 이유
과거에도 방송에서 술 에피소드나 술자리 토크 등을 다루는 것은 자유로웠다. 위의 사례들처럼 담배와 달리 술은 하나의 문화이자 정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은 대중과 거리감을 좁혀서 좋고, 대중은 한 꺼풀 벗겨진 연예인의 모습을 반기는데 방송가에서 ‘술방’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한편 ‘술 권하는 TV’에 대한 문제는 2000년대 중반부터 계속 제기되고 있다.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고, 음주문화를 미화시키고 과도하게 조성한다는 이유다. 실제로 술이 나오는 방송을 보고 음주 욕구가 들었다는 시청자들도 많다. ‘혼술’이 유행하는 요즘, 이 욕구는 실현되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에 대한 우리나라 방송심의규정은 두루뭉술하다. 규정은 ‘방송이 음주, 흡연, 사행행위, 사치 및 낭비 등의 내용을 다룰 때에는 이를 미화하거나 조장하지 않도록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28조)거나 ‘어린이와 청소년이 흡연 음주하는 장면을 묘사해서는 안 되고 내용전개상 불가피한 경우에도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45조 4항) 정도다.
결국 제작진이 알아서 수위를 조절해야 하는 형편이다. 최근 tvN 예능 ‘인생술집’은 청소년시청불가로 등급을 높였다. 본방송과 재방송은 ‘청소년 보호 시간대’에 방송된다. 그 밖에 예능에서도 과도한 음주에 대한 경고 문구를 새겼다. ‘아는 형님’에서도 김희선에게 술과 관련된 질문을 하기 전 음주의 나쁜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며 거듭 강조한다.
더욱이 온라인 콘텐츠 시대가 도래한 요즘, ‘술방시대’라고 불릴 만큼 수위와 접근성은 매우 높아졌다. 온라인상에서는 법을 어기지 않는 한 규제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콘텐츠 경로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 온라인 콘텐츠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요소는 브라운관으로 흘러들어올 수밖에 없다.
술과 엮여있는 연예인의 모습은 이미 자연스러워졌고,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여전히 술이 주는 긍정적인 정서는 대중에게 효율적으로 소구되고 있다.
[기획|술방시대①] 브라운관 속 ‘술방’이 등장하기까지[기획|술방시대②] 현대인의 정서 담긴 술, 방송도 마신다
/fnstar@fnnews.com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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