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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판결에 '노란봉투법' 쏠린 '눈'...국론은 분열

핵심 조항 '책임 개별화'...대법 "사실상 효력" 해석
입법 탄력 받을지 주목

대법 판결에 '노란봉투법' 쏠린 '눈'...국론은 분열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상근부회장(왼쪽 네 번째)을 비롯한 경제 6단체를 대표하는 참석자들이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법원의 불법쟁의회의 손해배상 판결 규탄 경제계 기자회견'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대법원이 최근 '노동조합의 불법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조합원 개인에게 물을 경우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의 입법 여부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권과 노동계는 이번 판결이 노란봉투법과 일맥상통한다며 입법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반면 정부·여당과 경영계는 민법의 기본 원칙을 부정하는 등 판결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다.

"노조-조합원 동일 손배책임, 단체행동권 위축 우려"

21일 노동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이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의 핵심 중 하나는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과 관련해 3조2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이는 법원이 단체교섭, 쟁의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각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파업에 사측이 낸 47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를 계기로 입법 논의가 도마에 올랐다.

야권과 노동계는 노동자가 단체행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것이 헌법상 노동3권을 위축한다며 입법을 추진했다.

반면 정부·여당과 경영계는 '불법 파업이 급증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야당은 올해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란봉투법을 사실상 단독 처리했다. 지난달에는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건의까지 언급했다.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사실상 노란봉투법의 쟁점을 정면으로 다룬 판례를 내놓자 갈등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대법원은 지난 15일 현대자동차가 2010년 발생한 파업과 관련해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쟁의행위를 결정하고 주도한 노동조합과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책임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노동조합 내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에 참여한 경위와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현실적인 임금 수준과 손해배상 청구 금액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판단했다.

같은날 대법원은 파업에 가담한 노동자가 손해배상 책임을 덜 수 있는 근거가 되는 판결을 연달아 내놨다. 현대차가 제기한 다른 손해배상 청구 사건의 경우 불법 쟁의행위에 따라 생산량이 줄었더라도 매출 감소로 연결되지 않았다면 손해액 산정시 제외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 판결에 '노란봉투법' 쏠린 '눈'...국론은 분열
(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 정의당 의원들이 19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노란봉투법 처리 촉구 피케팅을 하고 있다.

"꼼수판결 vs 노란봉투법과 일맥상통"

대법원 판결에 정치권과 재계·노동계의 갈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민법의 기본 원칙을 부정하고 산업현장의 법치주의 근간을 무너트렸다"고 주장했다.

경영계는 공동불법행위의 경우 행위자들이 부담하는 손해에 대해 책임 비율을 개별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책임 제한의 사유에 있어서 이제까지 대부분 판례가 피해자의 과실 등을 참작해왔으나 이번 판결은 조합원의 가담 정도와 임금수준까지 고려하도록 했다"며 "대법원은 새로운 판례법을 창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 판결이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를 사실상 제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영계는 "복면을 쓰거나 폐쇄회로(CCTV)를 가리고 기물을 손괴하는 현실 속에서 조합원 개개인의 손해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산업현장은 무법천지가 될 것이 자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노동계는 대법원 판결에 힘입어 노란봉투법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이번 판결이 노란봉투법과 무관하다며 선 긋기에 나서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18일 "현행 민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다수의 노조 조합원이 불법파업을 한 경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은 다수의 노조 조합원이 공동으로 연대해서 져야 한다"며 "노조법 개정안은 이같은 공동불법행위에 대한 민법상 손해배상 원칙(부진정 연대책임)을 부정하고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만 특별히 손해액을 개별적으로 일일이 산정하라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반면 이번에 나온 판결은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 자는 여전히 공동으로 연대 책임을 지고 공동불법행위자의 손해배상액을 경감해주는 책임 제한 비율, 즉 공동불법행위자(가해자)와 사용자(피해자) 사이의 불법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액에 대한 분담 비율을 공동불법행위자 간 달리 정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대법원 판결은 부진정 연대책임의 예외를 규정한 노조법 개정안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는 결론이다.

대법원, 판결 비판에 "독립 훼손" 이례적 대응도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정재계의 비판이 이어지자 "사법권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며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대법원이 이같은 입장문을 낸 건 매우 이례적이다.

대법원은 19일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명의로 낸 입장문에서 "판결 선고 이후 해당 판결과 주심 대법관에 대해 과도한 비난이 이어지는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판결에 대해 다양한 평가와 비판이 있을 수 있고 법원 또한 이를 귀담아들어야 함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판결 취지가 오해될 수 있게 성급하게 주장하거나 특정 법관에 대해 과도한 인신공격성 비난을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재계의 비판에 대해 과거 사용자와 근로자, 회사 대표이사와 다른 이사들 사이에 공동 불법행위에 따른 책임을 다르게 인정한 판례를 제시하며 "이번 판결은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에도 위 기존 판결들에서 인정한 '책임 제한 비율 개별화' 법리를 적용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