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호 산업부
최근 호랑이에게 쫓기는 꿈을 꿨다. 사람이 아닌 사슴의 형상에서다. 이리저리 피하다 큰 호수를 맞닥뜨렸다.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깊이였다. 눈을 질끈 감았다. 물리기 직전 잠에서 깼다. 목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진퇴양난(進退兩難). 요즘 국내 자동차 업계가 처한 상황이다. 경기침체 지속으로 내수시장은 위축되고, 나라 밖에서는 보호무역주의가 펼쳐진다. 미국은 '자동차 관세' 부과를 예고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고, 중국은 빠른 기술발전으로 점유율을 높인다. 그나마 현대자동차그룹이 3년 연속 전 세계 판매량 3위를 기록하며 선전했지만, 불확실성이 많은 올해 좋은 실적을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중견·중소 자동차 업계의 어려움은 더욱 심각하다. '줄도산 위기'가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 세계 자동차 환경규제는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올해 신차 판매 평균 이산화탄소(CO2) 배출량 상한선을 2021년 대비 15% 낮췄고, 미국은 환경보호청(EPA)을 중심으로 2032년까지 배출가스를 단계적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단순 경고가 아니다. EU는 규제를 발표하면서 '목표 미달성 시 최대 150억유로(약 22조원) 벌금 납부' 조항을 달았다. 물론 자동차 업계의 반발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 등으로 어느 정도 완화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지만, 방향성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문제는 모호한 정부 정책에 있다. 글로벌 자동차 환경규제는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국가 차원의 탄소배출량 측정·취합 기준 및 방법, 데이터 수집 및 활용 계획은 부족하다. 지난해 말 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동으로 개최한 '제3차 산업부문 탄소중립 정책협의회'에서도 '국가 차원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호소가 터져 나왔다. 이들은 특히 자동차 부품 수가 많다는 점을 들어 탄소배출량 측정과 취합이 복잡하다고 했다. 실제로 차 한 대당 부품 수는 내연기관차 기준 3만여개, 전기차 기준 1만8000여개로 알려졌다.
이미 늦었지만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민관이 협력해 하루빨리 국가 차원의 탄소배출 데이터 플랫폼을 만들고 환경규제에 대비해야 한다. 지난해 세운 '2027년 탄소 데이터 플랫폼 마련' 계획 단축이 시급하다. 위기상황에 놓인 사슴이 호랑이를 이기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다 못해 사냥꾼을 유인해서라도 목숨은 살려야 한다.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다. 시기를 놓치면 호랑이에게 잡아 먹힐 수도 있다.
kjh0109@fnnews.com 권준호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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