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결이 유력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의 경제 성적표를 꺼내들며 정면 공격에 나섰다. 바이든의 지지율은 올해 들어 전반적으로 트럼프에 앞섰으나 최근 그 차이가 근소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미 NBC방송에 따르면 바이든은 4일(현지시간) 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트럼프에 대해 직접 실명을 부르지 않았지만 자신의 "전임자"라고 언급했다. 바이든은 "미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를 가지고 있고, 주요 경제국 중 가장 낮은 물가상승률과 135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며 자신의 성과를 자랑했다. 그는 "내 전임자는 미국 역사상 일자리를 더 줄인 2명의 대통령 중 1명"이라며 "그는 당선됐을 때보다 더 적은 일자리를 남기고 퇴임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은 "나머지 1명은 누군지 아느냐"라며 "허버트 후버"를 언급했다. 후버는 미국의 제 31대 대통령으로 세계 대공황이 한창이던 1929~1933년 사이 임기를 맡았다. 그는 미국의 대통령 인기 조사에서 대부분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든은 "전임자가 자리에 있었을 때 당신들은 중국으로 일자리를 내보내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중국에서 일자리를 가져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부동산 업자로 유명한 트럼프와 미 뉴욕 맨해튼에 있는 트럼프 타워를 암시하면서 "전임자는 파크 애비뉴에서 세상을 바라봤지만 나는 펜실베이니아주의 스크랜턴, 델라웨어주의 클레이몬트에서 세상을 본다"고 강조했다. 또한 바이든은 "위대한 부동산 개발업자인 그 전임자는 무엇 하나 짓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자신이 미국의 사회기반시설 건설에 기여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는 바이든이 트럼프를 무시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4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선 지지율은 양자 대결시 각각 46%로 동률이었다. 유권자의 58%는 바이든이 집권한 지난 2년 동안 경제가 더 나빠졌다고 응답했으며 좋아졌다고 밝힌 응답자는 28%에 불과했다. 특히 유권자의 73%는 올해 80세인 바이든이 내년 대선에 다시 출마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3-09-05 18:23:46[파이낸셜뉴스] 내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결이 유력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의 경제 성적표를 꺼내들며 정면 공격에 나섰다. 바이든의 지지율은 올해 들어 전반적으로 트럼프에 앞섰으나 최근 그 차이가 근소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미 NBC방송에 따르면 바이든은 4일(현지시간) 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트럼프에 대해 직접 실명을 부르지 않았지만 자신의 “전임자”라고 언급했다. 바이든은 "미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를 가지고 있고, 주요 경제국 중 가장 낮은 물가상승률과 135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며 자신의 성과를 자랑했다. 그는 "내 전임자는 미국 역사상 일자리를 더 줄인 2명의 대통령 중 1명"이라며 "그는 당선됐을 때보다 더 적은 일자리를 남기고 퇴임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은 "나머지 1명은 누군지 아느냐"라며 “허버트 후버”를 언급했다. 후버는 미국의 제 31대 대통령으로 세계 대공황이 한창이던 1929~1933년 사이 임기를 맡았다. 그는 미국의 대통령 인기 조사에서 대부분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든은 "전임자가 자리에 있었을 때 당신들은 중국으로 일자리를 내보내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중국에서 일자리를 가져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부동산 업자로 유명한 트럼프와 미 뉴욕 맨해튼에 있는 트럼프 타워를 암시하면서 “전임자는 파크 애비뉴에서 세상을 바라봤지만 나는 펜실베이니아주의 스크랜턴, 델라웨어주의 클레이몬트에서 세상을 본다”고 강조했다. 또한 바이든은 "위대한 부동산 개발업자인 그 전임자는 무엇 하나 짓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자신이 미국의 사회기반시설 건설에 기여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지난해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올해 들어 4건의 형사 기소를 당한 상황에서 트럼프를 직접 공격하는 언사를 피했다. 이는 기소가 정치적 박해라고 주장하는 트럼프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뿐만 아니라 공화당 지지자들이 결집할 구실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바이든 역시 차남인 헌터 바이든을 둘러싼 여러 법적 의혹 때문에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여론 조사 결과는 바이든이 트럼프를 무시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4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선 지지율은 양자 대결시 각각 46%로 동률이었다. 유권자의 58%는 바이든이 집권한 지난 2년 동안 경제가 더 나빠졌다고 응답했으며 좋아졌다고 밝힌 응답자는 28%에 불과했다. 특히 유권자의 73%는 올해 80세인 바이든이 내년 대선에 다시 출마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3-09-05 14:26:30[파이낸셜뉴스] 미국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운명의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사상 초유의 팬데믹과 미중 갈등 국면 속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패할 경우 21세기 들어 재선에 실패한 첫번째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20세기 선거를 통해 뽑힌 대통령 중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은 3명 뿐이다. 허버트 후버(31대·1929~1933), 지미 카터(39대·1977~1981)와 조지 H.W. 부시(41대·1989~1993) 전 대통령이 그렇다. 세명의 전 대통령은 '현직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연임에 실패했다. 다른 요인들도 작용했지만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 실패가 낙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 '대공황' 직면한 허버트 후버 우선 후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미국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로 꼽히는 대공황에 직면했다. 최악의 불경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부의 제한적 개입을 주장, 개별적인 자선활동을 추진했다. 후버 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 또한 균형 예산과 보호 관세 기조를 유지하며 경제 대응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례로 뉴욕 증권거래소의 주식 가치는 대공황 전과 비교해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1932년 당시 미국인 4분의 1이 실직자였다는 통계도 있다. 워싱턴 정치가에서의 갈등도 낙선에 일조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그는 적극적 일자리 창출 정책 '뉴딜' 사업을 추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밀려났다. ■ 오일 쇼크 대응 실패.. 지미 카터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사임과 그의 궐위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제럴드 포드 이후 39대 대통령으로 지미 카터가 당선됐다. 조지아주 주지사였던 카터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오일 쇼크라는 위기를 맞았다. 오일 쇼크로 물가가 상승하고 산업 경쟁력은 떨어졌다. 특히 1979년 이란인들이 테헤란의 미국대사관을 급습, 미국인들을 인질로 잡은 사건이 발생했다. 여론이 악화됐지만 카터 전 대통령은 자국민에게 '비관론'을 내세웠다. 반면 로널드 레이건 당시 공화당 후보는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며 미국 시민들에게 경제회복을 약속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경제정책 실패라는 비판을 받으며 재선에도 실패했다. ■ 증세에 걸프전 참전으로 여론 악화.. 조지 H.W. 부시 '아버지 부시'로 알려진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은 1989년 큰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직에 올랐다. 하지만 심각한 경기후퇴 국면을 맞았다. 실업률은 올라가고 국민 불만은 커졌다. 특히 부시는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세수 부족에 직면하자 증세를 단행했다. 1차 걸프전 참전을 결정하면서 대통령 지지율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LA파동 등을 겪으면서 여론은 더 나빠졌다. 경쟁자인 빌 클린턴 전 민주당 후보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슬로건을 내세우며 민심을 공략했다. 이에 부시 전 대통령은 클린턴 후보에게 뒤지면서 연임하지 못했다. 현지시간으로 3일 0시(한국시간 3일 오후 2시), 미국의 향후 4년을 결정할 대통령 선거가 시작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버, 카터와 부시 전 대통령의 길을 갈지,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지 미국 유권자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유권자 9329만명은 이미 우편투표와 사전 현장투표를 마친 것으로 조사됐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인턴기자
2020-11-03 06:29:32세계 대공황 초기인 1930년 5월 3일 경제학자 1028명이 연서명으로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보호무역주의를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후버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악명 높은 스무트·홀리법을 제정, 25.9%인 수입품 평균 관세율을 59.1%로 높였다. 뉴욕증시 대폭락으로 야기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관세장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결과는 대재앙이었다.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주요 교역 상대국들은 즉각 고율의 보복관세로 맞섰다. 관세전쟁은 세계경제를 대공황의 긴 터널 속으로 몰아넣었다. 세계무역은 5년 동안 66%나 격감했다. 세계 국내총생산(GDP)도 3년간 15%나 줄었다.그로부터 88년 뒤인 2018년 5월 3일 미국 경제학자 1040명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또 편지를 썼다. 이번에도 내용은 보호무역 정책을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로저 마이어슨(2007년), 앨빈 로스(2012년), 로버트 실러(2013년), 올리버 하트(2016년), 리처드 세일러(2017년)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15명도 함께했다. 이들은 "관세 인상이 상품가격 상승을 유발해 최종적으로 다수의 미국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은 관세전쟁을 강행했다. 대미무역에서 흑자를 올리고 있는 한국과 중국이 타깃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한국이 덤핑으로 한때 좋은 일자리를 제공했던 우리 산업을 파괴했다"고 주장하며 한국산 세탁기에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했다. 쿼터 초과물량에 최고 50%의 관세폭탄을 투하했다. 시카고대와 연방준비제도(Fed) 연구팀이 지난 1년간 세탁기 관세가 미국 산업과 소비자에게 미친 영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관세수입이 8200만달러(934억8000만원) 늘어난 반면 소비자들은 15억달러(1조7100억원)를 추가로 지불했다. 세탁기와 건조기 가격이 평균 11.5% 올랐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의 경고가 고스란히 현실이 됐다. 트럼프발 세탁기 관세는 결국 미국 소비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관세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부를 뿐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2019-04-23 17:02:29올 스토브리그의 최대 관심은 브라이스 하퍼(26)다. 그가 정말 3억 5000만 달러(약 4000억 원) 혹은 그 이상의 초대형 계약을 성사시킬 것인가? 이 금액이 적힌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그는 역대 최고 몸값 선수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현재 최고는 지안카를로스 스탠튼(뉴욕 양키스)으로 3억2500만 달러다. 하퍼는 최근 원 소속 구단인 워싱턴으로부터 3억 달러 플러스라는 금액을 제시받았으나 거절했다. 하퍼의 최종 사인 금액은 얼마일까? 이와 함께 4000억 원이라는 선수 몸값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런 논쟁은 1930년대부터 있어 왔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뉴욕 양키스)의 연봉은 8만 달러(오늘 날 금액으로 환산하면 120만 달러)였다. 허버트 후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연봉보다 5000달러가 많았다. 현재 미국 대통령의 연봉은 40만 달러 정도다(트럼프 대통령은 공약에 따라 연봉을 받지 않고 있다). 연봉 100만 달러 시대를 처음 연 선수는 놀란 라이언이었다. 생애 통산 5714개의 탈삼진을 기록한 라이언은 1979년 최초로 연봉 100만 달러 선수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이 기록은 매년 새롭게 경신됐다. 이듬해 데이브 윈필드는 10년 2500만 달러에 양키스와 계약했다. 1년 만에 100만 달러에서 250만 달러로 껑충 뛰었다. 1000만 달러 시대가 열리기까진 17년 걸렸다. 알버트 벨은 1996년 가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5년 5500만 달러에 합의했다. 평균 연봉 1100만 달러. 4년 후 놀라운 소식이 전 세계 스포츠팬들에게 전해졌다. 당시 25살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10년 2억 5200만 달러짜리 잭팟을 터트렸다. 10년으로 나누면 연봉 2520만 달러였다. 그 해 미네소타 트윈스 선수들의 전체 연봉(1580만 달러)보다 1000만 달러 가량 더 많았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7년 후 10년 2억 7500만 달러에 양키스와 재계약을 맺어 스스로 이 기록을 경신했다. 윌리 메이스, 베이브 루스 등의 홈런 기록을 깨트릴 때 마다 600만 달러의 추가 보너스를 받기로 했다. 올 겨울 메이저리그에는 두 개의 태풍이 북상 중이다. 브라이스 하퍼와 매니 마차도(26)다. 나란히 FA 자격을 얻은 두 선수는 서로를 지렛대 삼아 몸값을 올리고 있다. 이미 하퍼는 3억 달러 플러스를 걷어찼다. 그보다 조금 아래로 짐작되는 마차도의 몸값도 3억 달러 수준에 근접할 것이다. 이들의 협상을 대행하고 있는 스캇 보라스와 댄 로자노는 지연 전술로 구단들의 몸을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올 시즌 확정 최다 연봉 선수는 맥스 슈워즈(워싱턴)로 3740만 달러다. 2위는 3400만 달러의 잭 그레인키(애리조나). 추신수는 2100만 달러로 34위다. 베이브 루스는 "후버 대통령이 한 일이 무어 있나? 그보다 내가 더 많은 일을 했다"며 스스로를 두둔했다. 반면 랜디 존슨은 "솔직히 소방관보다 내가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나보다 더 위험한 일을 한다"고 말했다. 랜디 존슨은 통산 1억 7500만 달러를 벌었다. 누구의 생각이 옳을까. texan509@fnnews.com
2019-01-07 18:11:51연일 3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기승이다.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철, 에어컨이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다. 여름철 효자 상품 에어컨의 역사 담긴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를 살펴보자. 전기로 작동하는 최초의 현대식 에어컨은 미국의 발명가 윌리스 캐리어가 1902년 발명했다. 그는 191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에어컨 제조회사 '캐리어 주식회사'를 설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에어컨 발명 당시 에어컨의 용도는 냉방용이 아닌 제습용이었다. 출판사 종이 보관 창고의 습기 제거 용도로 처음 사용한 것. 국내에 처음 에어컨이 도입된 곳은 1960년대 초 석굴암이다. 당시 보수공사를 하면서 석굴암 내부의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처음으로 에어컨을 설치했다. 에어컨이 냉방용으로 사용된 것은 1913년 미국 미니애폴리스에 사는 상속인 찰스 게이츠가 자신의 집에 에어컨을 설치한 것이 처음이다. 불행히도 그는 에어컨 공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사망해 한 번도 에어컨 바람을 쐬어 보지 못했다. 일반 시민들이 에어컨의 효용성을 알게 된 것은 1930년대 극장에서였다. 여름철 극장들이 관객을 모으기 위해 극장에 에어컨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극장이 도심 피서지로 각광을 받게 된 계기가 됐다. 미국 백악관에 에어컨이 처음 설치된 것은 1929년 미국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 재임 당시였다. 당시 3만달러라는 거액의 예산으로 백악관 내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에어컨이 각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미국이었다. 당시 가정용 에어컨 한 대 가격은 300달러가량. 오늘날 가치로 3500달러(약 400만원) 정도에 해당한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수상은 에어컨을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칭송했다. 에어컨 같은 냉방장치가 없었다면 열대지역에 위치한 싱가포르의 경제 발전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onnews@fnnews.com 디지털뉴스부
2018-07-17 15:17:16'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영국 역사학자 아널드 조지프 토인비) 역사를 되돌아보면 무역전쟁의 끝은 항상 좋지 않았다. 무역전쟁에서는 오직 패자만 존재한다는 말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 무역전쟁 당사국들이 만신창이가 되는 동안 다른 국가들이 어부지리로 전쟁의 이득을 챙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세기 말 캐나다와 미국의 무역전쟁 결말은 양국의 수출 급감이었다. 1854년 체결된 캐나다·미국 상호이해 협정(Canada-America Reciprocity Treaty)이 1866년 파기된 뒤 캐나다는 관세인상 정책을 도입했다. 경제침체 속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존 맥도널드 캐나다 초대 총리가 1878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본격적인 보호무역정책이 추진된 것이다. 결과는 나빴다. 캐나다의 대미 수출량이 오히려 급감한 것이다. 옆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대영제국과 소비에트가 이 전쟁의 승자가 됐다. 캐나다가 미국을 대신할 수출 활로를 찾게 되면서 대영제국과 1917년 러시아 혁명 및 사회주의 부상 이후 서방으로부터 외면받던 소비에트 연방이 무역에서 혜택을 보게 됐다. 19세기 말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관세전쟁도 마찬가지다. 통일 이탈리아가 국내 산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프랑스산 제품에 강력한 관세를 부과했고,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보복관세로 맞섰다. 그 결과는 먼저 싸움을 건 이탈리아의 패배였다. 이탈리아의 대프랑스 수출량은 급감했다. 이탈리아가 관세정책을 포기한 뒤에도 프랑스는 수년간 이탈리아에 고율관세를 계속 부과하며 고통을 안겼다. 20세기 가장 유명한 무역전쟁은 1930년 미국 스무트·홀리 관세법 제정으로 촉발된 글로벌 관세전쟁이다. 1929년 뉴욕 주식시장 폭락으로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실업자가 속출하자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은 불황 타개를 위해 농업부문에 대한 관세인상을 의회에 요청했다. 그러나 공화당 소속 리드 스무트 의원과 윌리스 홀리 의원은 이보다 더 공격적이고 전방위적 관세법안을 주도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알려진 이 법안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2만여개 수입품목에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23개 무역 상대국들이 보복관세로 대응하면서 세계적 무역전쟁이 벌어졌다. 결과는 참혹했다. 1929~1932년 세계 무역규모는 61% 줄었고,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15% 감소했다. 미국이 치른 대가는 더 컸다. 1929~1932년 수입과 수출이 각각 66%, 61% 급감했고 1930년 8%였던 실업률은 1932년 25%까지 치솟았다. 대공황이 악화되고 독일 나치 및 파시즘이 태동했다. 미국은 결국 1934년 법안을 폐기했다. 이 전쟁에 승자는 없었다. 1960년대 미국과 유럽의 '치킨전쟁'은 어땠을까. 유럽에 미국산 닭고기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유럽 농민들이 큰 타격을 입자 1962년 유럽경제공동체(ECC)는 서독에 수입되는 닭고기에 수입관세를 크게 올렸다. 이에 미국은 1963년 유럽산 브랜디, 경량트럭, 폭스바겐 버스 등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ECC가 물러서지 않으면서 미국이 패자가 됐다. 의도치 않게 미국 자동차 생산업체들이 큰 피해자가 됐다. 해외시장에서 가격경쟁력 약화, 현대화 및 비용절감 실패 등으로 수십년간 어려움을 겪었다.2018년 7월 6일 0시1분(미국 동부시간 기준)을 기해 미국은 중국을 향해 무역전쟁 방아쇠를 당겼다.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 500억달러 가운데 340억달러 규모의 818개 품목에 25% 관세를 부과한다. 나머지 160억달러어치, 284개 품목에 대해서도 2주 이내에 관세가 매겨질 예정이다. 중국도 동일한 규모와 강도로 반격하겠다는 입장이다. 벌써부터 이번 전쟁의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를 점치고 있지만 '승자 없는 치킨게임'이 벌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가장 높다. 어떤 무역전쟁에서도 가장 큰 피해자는 가격상승 부담을 떠안게 될 소비자, 특히 소득 수준이 낮은 빈곤층이라는 점이 가슴 아프다.sjmary@fnnews.com 서혜진 국제부 기자
2018-07-06 16:55:24'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조지프 토인비) 역사를 되돌아 보면 무역전쟁의 끝은 항상 좋지 않았다. 무역전쟁에서는 오직 패자만 존재한다는 말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 무역전쟁 당사국들이 만신창이가 되는 동안 다른 국가들이 어부지리로 전쟁의 이득을 챙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세기 말 캐나다와 미국간 무역전쟁의 결말은 양국의 수출 급감이었다. 1854년 체결된 캐나다-미국 상호이해 협정(Canada-America Reciprocity Treaty)이 1866년 파기된 뒤 캐나다는 관세인상 정책을 도입했다. 경제침체 속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존 맥도널드 캐나다 초대총리가 1878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본격적인 보호무역정책이 추진된 것이다. 결과는 나빴다. 캐나다의 대미 수출량이 오히려 급감한 것이다. 옆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대영제국과 소비에트가 이 전쟁의 승자가 됐다. 캐나다가 미국을 대신할 수출 활로를 찾게 되면서 대영제국과 1917년 러시아 혁명 및 사회주의 부상 이후 서방으로부터 외면받던 소비에트 연방이 무역수혜를 입게 됐다. 19세기 말 이탈리아와 프랑스간 관세전쟁도 마찬가지다. 통일 이탈리아가 국내 산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프랑스산 제품에 강력한 관세를 부과했고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보복관세로 맞섰다. 그 결과는 먼저 싸움을 건 이탈리아의 패배였다. 이탈리아의 대프랑스 수출량은 급감했다. 이탈리아가 관세정책을 포기한 뒤에도 프랑스는 수년간 이탈리아에 고율관세를 계속 부과하며 고통을 안겼다. 20세기 가장 유명한 무역전쟁은 1930년 미국 스무트-홀리 관세법 제정으로 촉발된 글로벌 관세전쟁이다. 1929년 뉴욕 주식시장 폭락으로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실업자가 속출하자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은 불황 타개를 위해 농업부문에 대한 관세인상을 의회에 요청했다. 그러나 공화당 소속 리드 스무트 의원과 윌리스 홀리 의원은 이보다 더 공격적이고 전방위적인 관세 법안을 주도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알려진 이 법안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2만여개 수입품목에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23개 무역 상대국들이 보복관세로 대응하면서 전세계적 무역전쟁이 벌어졌다. 결과는 참혹했다. 1929~1932년 세계 무역 규모는 61% 줄었고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이 15% 감소했다. 미국이 치룬 대가는 더 컸다. 1929~1932년 수입과 수출이 각각 66%, 61% 급감했고 1930년 8%였던 실업률은 1932년 25%까지 치솟았다. 대공황이 악화되고 독일 나치 및 파시즘이 태동했다. 미국은 결국 1934년 법안을 폐기했다. 이 전쟁에 승자는 없었다. 1960년대 미국과 유럽간 '치킨 전쟁'은 어땠을까. 유럽에 미국산 닭고기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유럽 농민들이 큰 타격을 입자 1962년 유럽경제공동체(ECC)는 서독에 수입되는 닭고기에 수입관세를 크게 올렸다. 이에 미국은 1963년 유럽산 브랜디, 경량트럭, 폭스바겐 버스 등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ECC가 물러서지 않으면서 미국이 패자가 됐다. 의도치 않게 미국 자동차 생산업체들이 큰 피해자가 됐다. 해외 시장에서 가격경쟁력 약화, 현대화 및 비용절감 실패 등으로 수십년간 어려움을 겪었다. 2018년 7월 6일 0시 1분(미 동부시간 기준)을 기해 미국은 중국을 향해 무역전쟁 방아쇠를 당겼다.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 500억달러 가운데 340억달러 규모의 818개 품목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한다. 나머지 160억달러어치, 284개 품목에 대해서도 2주 이내에 관세가 매겨질 예정이다. 중국도 동일한 규모와 강도로 반격하겠다는 입장이다. 벌써부터 이번 전쟁의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를 점치고 있지만 '승자 없는 치킨게임'이 벌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가장 높다. 어떤 무역전쟁에서도 가장 큰 피해자는 가격상승 부담을 떠안게 될 소비자, 특히 소득수준이 낮은 빈곤층이라는 점이 가슴 아프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2018-07-06 12:52:04미국 경제학자 1140명이 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호무역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들은 편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가 1930년대 세계 대공황과 같은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당시에도 미국발 관세인상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편지를 보내는 데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경제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관심을 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 교수(시카고대)를 비롯,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만 15명이나 참여했다. 역대 미국 행정부에서 경제참모를 지낸 인사들도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대공황 당시 보호무역 철회를 요청하는 편지를 받고도 묵살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뉴욕 증시 대폭락 이듬해인 1930년 후버 대통령은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했다. 공장과 상점들이 문을 닫고,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오자 후버 대통령이 꺼내든 카드는 보호무역이었다. 이 법에 따라 2만여개 수입품에 평균 59%, 최대 400%의 관세를 물렸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사실상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유럽 국가들의 관세보복 맞대응을 불러 세계교역이 급감하고 대공황이 심화됐다. 미국 산업이 보호받기는커녕 더 큰 피해를 입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무역확장법 232조를 동원해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부과를 밀어붙이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무시하고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이나 반덤핑 권한을 남용하는 등 자유무역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미 무역흑자국인 중국과 한국 등을 통상공세의 타깃으로 삼고 있다. 한국은 WTO 규정 위반 소지가 다분한 철강쿼터를 받아들였다.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미국산 자동차 수입제한도 풀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은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서야 겨우 매듭을 지었다. 미국은 그럼에도 한국산 철강제품 등에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물리는 등 통상압력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 열린 미.중 무역협상이 아무런 접점을 찾지 못했다. 무역전쟁 발발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1930년 세계 대공황 때도 미국 경제학자 1028명이 후버 대통령에게 보호무역주의 철회를 요구하는 편지를 썼다. 그러나 후버 대통령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세계경제는 대재앙을 겪었다. 그로부터 88년 후 트럼프 대통령도 경제학자들로부터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무역전쟁에는 승자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2018-05-06 17:20:091929년 가을 미국 뉴욕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대폭락한다. 상점마다 팔리지 않은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공장은 멈췄다. 기업들이 줄파산하고, 근로자들은 직장에서 내쫓겼다. 공업생산이 대폭 감소하고 실업률이 25%를 넘었다.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는 끝없이 추락했다.그래도 스무트-홀리법만 없었다면 대공황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공화당의 허버트 후버였다. 그는 길거리로 몰려 나온 실업자와 농민을 달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 칼을 꺼내 들었다. 1930년 6월 같은 당 소속 리드 스무트 상원 재정위원장과 윌리스 홀리 하원 세입위원장이 주도한 스무트-홀리법안에 서명한다. 2만여종의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에 달하는 초고율 관세를 물리는 것으로 사실상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후버와 공화당 정권은 이 법안이 미국 경제를 위기에서 구출해줄 것으로 굳게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세계를 보호주의 무역전쟁으로 몰고 갔다. 프랑스와 영국, 캐나다 등 20여개국이 앞다퉈 고율의 보복관세로 대응했다. 그 결과 글로벌 무역은 치명타를 입었다. 이후 5년간 세계 교역량은 66%나 줄었고, 미국의 국민총생산(GNP)도 거의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무역감소는 세계 대공황을 장기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버가 실패했던 그 길을 다시 가려고 한다. 이번에는 상대가 유럽이 아니라 중국이다. 그는 6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고율관세를 물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도 곧바로 맞대응에 나섰다. 미국산 철강과 돈육 등에 보복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미국이 중국에 무차별 살상무기인 집속탄을 투하했다"고 개전 소식을 알렸다.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중국인들이여 빨리 일어나라. 트럼프가 전쟁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세계 저명 경제학자들은 무역전쟁을 승자 없는 전쟁이라고 부른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모두가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88년 전 악명 높은 스무트-홀리법의 실패가 이를 입증한다. 트럼프는 끝내 판도라 상자를 열 것인가.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2018-03-25 16:5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