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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금융사 영어 못해선 국제화 어려워”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22일 "국내 금융사들의 국제화는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 보다도 못하다"며 "국내 은행들이 스페인의 '산탄테르'은행을 국제화의 모델로 들고 있지만 이 모델로 성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어 회장은 또 "국내 은행들은 외화부족으로 외화를 늘 차입해야 하는 상태"라며 "돈을 빌리는 처지에 해외 금융시장에 나가서 큰소리 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날 국제금융센터 주최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최고경영자(CEO)국제금융포럼에 강연자로 나선 어 회장은 '국내 금융회사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전략'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국제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금융 전문인력 보유는 세계 48위로 9위 말레이시아와 8위 필리핀보다도 크게 낮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국내 금융사들의 국제화가 부진한 가장 큰 이유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꼽았다. 어 회장은 "영어를 비롯, 현지 언어가 안 되는데 무슨 수로 그들과 영업이 될 만큼 의사소통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어 회장은 KB금융이 지난 2008년 인수했다가 4000억여원의 투자 손실을 입었던 카자흐스탄 BCC은행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서로 같은 말을 쓰고 감정이 통해도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데 통역을 쓰면 관리가 제대로 되겠느냐"며 "국내 금융회사들은 해외에 진출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어 회장은 "지난 1970년대 세계 10대 은행 중 6개를 차지했던 일본 은행들이 국제화에 실패한 이유에 대해 한 일본 금융계 인사는 '일본인들이 영어를 못해서 실패했다'고 하더라"며 "한국이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보다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도 결국 영어가 안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산탄테르 은행이 국제화에 성공한 이유에 대해서도 "산탄테르가 아르헨티나 칠레 등 중남미 진출에 성공한 것도 이들 국가가 스페인어에 익숙하고 스페인 문화를 동경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아시아권 국가 중 한국 금융기관이 나가서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나라가 과연 있느냐"고 반문했다.

어 회장은 "국내 지점 규모에 불과한 해외은행 하나 인수해 놓고 '글로벌화했다'고 외쳐선 안된다"며 "결국 국내 은행들은 외국 은행들과 전략적인 제휴관계를 통해 비즈니스를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 금융시장의 가장 빠른 국제화 방안으로 '국내 대기업들의 해외 은행 인수'를 제시했다.
어 회장은 "때마침 현재 유럽계 은행들이 바젤Ⅲ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현지 은행들을 매각하고 있다"며 "이미 글로벌화돼 있고 자본조달비용도 저렴한 국내 대기업들이 매물로 나오는 이들 은행을 인수하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KB금융의 인수 가능성에 대해선 "아직 유럽계 은행을 사서 관리할 능력이 없다"고 답했다.

어 회장은 또 "해외시장에서 은행이 제 기능을 하려면 외화부족 현상을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정부의 외환보유액 중 일정 부분을 은행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dskang@fnnews.com강두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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