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7살에 실종된 이동가씨
지인 집에 맡겼다가 잃어버려
아동권리보장원 제공
"금쪽같은 내 아들 동가, 제가 죽기 전에 꼭 만나고 죽어야죠. 살아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동네에서 영리하기로 소문났던 집안의 자랑, 첫째 아들 이동가군(당시 만 7세)이 사라졌다.
어머니는 그날부터 불면증, 우울증 등을 앓으며 백방으로 아들을 찾아봤지만, 지금까지 동가군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동가군은 급격하게 기운 가세로 지난 1990년 5세가 되던 해에 여동생과 함께 경남 창원에서 옷 수선을 하던 어머니 지인 집에 맡겨졌다. 어머니는 홀몸으로 아이 셋을 키워내기 위한 기반이 필요해 이들 부부에게 아이들을 맡겼다. 어머니는 동가군에게 "어머니 믿고 기다리면 우리 살림이 나아질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생계 때문에 1년 조금 넘게 떨어져 지냈다.
어머니는 이후 아이들을 찾으러 부부의 집을 찾았으나, 동가군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남아있던 여동생도 이들 부부의 무관심 등 가혹한 보육환경 탓에 다리에 큰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어머니는 "아이를 찾으러 갔는데 동가 여동생 상태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고, 동가 행방에 대해 부부에게 묻자 '모르겠다. 없어졌다'며 태연하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하더라"며 "당시에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는데, 지금까지도 생각하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고 토로했다.
여동생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이들 부부는 옷 수선 일을 그만두고 산속에 암자를 지었다. 이후 동가군과 여동생은 부처상을 닦거나 암자 청소 등 여러 노역을 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는 설명이다. 어머니는 "당시 암자를 다니면서 우리 동가를 예뻐하던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면서 "여동생 말로는 오빠가 사라진 이후 그 여성도 암자에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믿고 아이를 맡겼지만 무책임하게 아이를 잃어버린 부부와 동가군을 데려간 여성의 인상착의조차 알 수 없어 그저 빈 가슴만 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 동가를 찾아보겠다고 사례금을 300만원, 500만원 올려도 봤지만, 늘 잘못된 제보 전화만 올 뿐 소용이 없었다"며 울먹였다.
어머니에게 동가군은 큰 자랑이었다. 어렸지만 또래에 비해 의젓하고 배려심이 깊어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들을 잘 돌봤다. 네 살이 되던 해에는 수학 방정식을 풀었고, 동생들에게 한글도 가르쳤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사생대회에 나가면 상을 받을 정도로 그림을 잘 그렸고 피아노도 곧잘 치는 등 재능이 많은 아이였다고 어머니는 설명했다.
동가군은 1986년 5월 7일에 태어났다.
오똑한 콧대에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어머니와 헤어지기 전까지 몸에 상처나 흉터 하나 없었다. 양쪽 어금니를 도금했지만, 유치가 빠지면서 이마저도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머니는 "올해도 동가 생일이 다가온다"며 "올해는 꼭 주인이 있는 케이크로 촛불을 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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