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상 당사자 간 대화 녹음 음성권 침해로 보기도
전문가들 "과도한 입법"
윤 의원 "예외 규정 만들 수도"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7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당사자간 대화라도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하면 처벌 받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예상된다. 현행법은 당사자가 대화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녹음하면 불법이다. 대화에 참여하고 있으면 상대가 알아채지 못해도 합법이다. 발의된 개정안은 대화 당사자라도 상대방 동의를 구하도록 했다. 재판에서 음성 녹음 파일이 중요한 증거로 쓰이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민법상 '음성권 침해'…다수 해외 국가서도 쌍방 동의 없는 녹음은 불법
2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8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내놨다. 개정안은 대화에 참여한 당사자여도 상대방 동의를 받지 않으면 녹음할 수 없도록 했다.
윤 의원은 "통화 녹음이 약자의 방어 수단인 경우도 있지만 협박 수단 등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많다"라며 "개인 프라이버시권,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가 높은 통화 녹음을 무분별하게 허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은 당사자 간 대화 녹음에 대해 형사처벌하지 않는다. 다만, 민사소송에 의해 손해배상을 하게 될 수는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다룬 헌법 제10조에 의해 음성권이 보호받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는 지난 1월 17일 자신과의 통화 내용을 MBC에 건네 보도하도록 한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 등을 상대로 1억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김 여사는 "피고들의 불법적인 녹음 행위와 법원의 가처분 결정 취지를 무시한 방송으로 인격권과 명예권, 프라이버시권, 음성권을 중대하게 침해당했다"라고 주장했다.
해외에서는 미국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등 10여개주, 프랑스 등이 쌍방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을 형법상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영국, 일본 등에선 녹음은 가능하지만 제3자에게 공유하는 것은 불법이다.
■전문가들 "녹음이 유일한 증거일 때도 많아…우려"
국내에서 통화 녹취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성범죄와 뇌물죄 사건 등의 경우 다른 증거를 찾기 어려워 전화 통화 내용을 유일한 증거로 제출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발의된 개정안 때문에 범죄 증거 확보가 어려워지거나 민감한 소송에서 피해자 구제도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채다은 법무법인 시우 변호사는 "대화 참여자간 녹음은 형법상 합법이어서 증거로 많이 이용된다"면서 "당사자간 녹음을 불법으로 하면 소송 과정에서 쌍방간 증거를 찾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통화 녹음 아니면 잡을 수 없는 범죄자도 있다"며 "녹음이 없으면 안 되는 상황들도 분명히 있어 '과도한 입법이 아닌가' 생각한다"러고 말했다. 윤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단계에서 범죄적 상황의 경우 예외적인 경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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