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사·투자자 가감요인 세분화
DLF때보다 평균비율 낮을 듯
은행·증권사 자율배상 논의 속도
합의 불발땐 집단소송 가능성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감원에서 열린 홍콩 H지수 연계 ELS 대규모 손실 관련 분쟁조정기준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80대 초반 남성 A씨는 2021년 1월 예적금 가입 목적으로 은행 지점을 방문했다. A씨는 은행 직원으로부터 ELS 상품 가입을 권유받아 2500만원을 가입했고, 올해 1월 손실이 확정됐다. 이 은행은 A씨에게 상품을 설명하면서 투자위험 가능성을 일부 누락하거나 왜곡된 내용을 전달하는 등 설명의무 위반 및 내부통제 부실 소지가 발견됐다. 또한 적합성 원칙 위반, 부당권유 금지 위반, 고령자 보호기준 미준수 등도 확인됐다. 금융감독원은 A씨에 대해 판매자 요인 50%, 투자자별 고려요소 25%를 인정해 75% 안팎의 배상비율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 과거 ELS에 62회 가입한 경험이 있는 50대 중반의 남성 B씨는 2021년 1월 은행에서 홍콩H지수 ELS에 가입했다. B씨는 은행원의 권유로 1억원을 투자했고, 올해 1월 손실이 확정됐다. B씨는 그동안 ELS 투자로 얻은 누적수익이 이번 H지수 ELS 손실을 초과했다. B씨의 경우 판매사 요인 배상비율은 35%로 책정됐다. 그러나 가입 경험 62회(-10%p), 손실 경험 1회(-15%p), 가입금액 5000만~1억원 이하(-5%p), 누적이익이 손실규모 초과(-10%p) 등으로 투자자 고려요소가 40%p 차감됐다. 이에 B씨는 한 푼도 배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감원이 11일 발표한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분쟁조정기준안은 판매자·투자자별 가감요인을 세분화해 배상비율을 0~100%까지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사례별 배상비율의 차이는 판매사 요인보다 투자자별 고려요소가 더 크게 적용되도록 설계됐다. 금감원이 이처럼 세부적 분쟁조정기준안을 제시한 만큼 은행과 증권사 등 판매사들의 자율배상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은행권의 사기 판매'를 주장하며 이 같은 기준안에 반발하는 투자자도 나오면서 대규모 집단소송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판매사·투자자 특성 반영해 세분화
이날 금감원이 발표한 기준안은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별 특성을 세밀하게 따져 배상비율을 차등화했다. 파생결합펀드(DLF) 등 과거 분쟁조정 사례에서는 40~80% 범위에서 배상비율이 제시됐지만 이번 ELS 배상안에서는 상한 및 하한을 따로 두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 '판매사 일방의 책임'(배상비율 100%)이나 '투자자 일방의 책임'(0%)이 인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브리핑에서 "당사자 일방의 책임만 인정되는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 "다만 그런 사례가 있느냐까지는 아직 확인된 부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준안에 따르면 판매사 요인에 따른 배상비율은 23~50%로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등 판매원칙 위반 정도와 소비자 보호체계 미흡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여기에 투자자 요인에 따라 ±45%p가 가산 혹은 차감된다.
판매사 최대 배상비율인 50%가 적용되더라도 투자자의 투자 경험 여부나 수익 규모 등에 따라 배상비율은 5%(45%p 차감)부터 95%(45%p 가산)까지 최대 90%p 차이가 날 수 있다.
기준안에 따르면 ELS 가입횟수가 20회를 초과하는 경우(-2%p)부터는 배상비율이 낮아진다. 지연상환(-5%p)이나 녹인(knock-in·손실발생 구간) 경험(-10%p), 손실 경험(-15%p)이 있어도 배상비율이 깎인다.
■배상비율 범위 DLF 때보다 낮을 듯
금감원은 현시점에서 배상비율 범위나 분포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H지수 기초 ELS 투자계좌가 40만건에 달하는 데다 판매기간도 장기간이고, 금융소비자보호법 이전과 이후에 적용되는 배상비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 DLF 때보다 평균 배상비율은 대체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DLF는 비정형적이고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상품구조였던 반면, ELS는 장기간 판매됐고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 부원장은 "평균 배상비율이 40∼80%였던 DLF 사태 당시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현장조사 사례들을 봤을 때 20~60% 범위에 대부분 상당수의 케이스가 분포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판매시스템 차원의 불완전판매가 확인된 데다 이에 따른 구체적 기준안까지 제시된 만큼 은행·증권사들도 자율배상 논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율배상이나 금감원의 분쟁조정 절차는 모두 강제성이 없는 것인 만큼 판매사나 투자자 간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법적 소송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은행들이 불완전판매 부분을 수용하지 않거나 투자자들이 전액 배상을 요구하고 나선다면 조정이 어려워진다.
실제로 H지수 기초 ELS 투자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불완전판매에 대한 판매사 책임이 적게 반영됐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투자자는 "판매자에 비해 투자자의 차감비율이 더 높게 설정됐고, 특히 고액 가입자는 배상비율 차감이 손실난 ELS 총가입금액인지, 개별 ELS 기준인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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