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웅 중기벤처부장
글로벌 제약업계가 미국 약가정책에 주목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약가 인하를 강조한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의약품에도 관세부과 방침을 예고하고 있어서다. 미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은 약가를 유지하며 신약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정책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 이는 단순한 비용절감이 아니라 자국 제약산업 육성과 보호, 신약에 대한 접근성 보장으로 국민건강 증진이란 복합적인 문제와 직결돼 있어서다.
미국 약가정책 변화는 글로벌 제약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신약 가치를 인정하고 가격을 보장하는 정책을 유지하는 한 글로벌 제약사들은 연구개발(R&D) 투자를 지속할 동기를 부여받는다. 반면 약가규제가 강화될 경우 제약업계 R&D 투자는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IRA 시행 이후 신약 개발비용 회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자 일부 다국적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 전략을 재조정했다.
국내 제약사들도 신약 개발 후에 지속적인 약가 인하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총 38개의 국내 개발 신약이 품목허가를 받았으나, 약가 이슈로 인해 출시를 포기하거나 해외 진출 시 국내 약가가 걸림돌이 돼 결국 5개 내외 품목만 시장에 안착했다. 국내에서 신약 개발과 상업화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신약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과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신약이 시장에 출시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급격한 약가 인하가 이뤄지면서 투자비 회수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그 때문에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보다는 복제약이나 개량신약 개발에 집중한다. 결과적으로 신약 개발 위축이란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신약 개발의 지속성과 국민보건 기여도를 고려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약가 인하보단 신약 개발의 혁신성을 인정하고 일정 기간 충분한 가격을 보장하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국내에서는 혁신신약과 복제약 간의 약가 논쟁이 치열하다. 혁신신약은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투입해 개발된다. 반면 복제약은 기존 신약의 성분과 효능을 기반으로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통과하면 출시될 수 있어 상대적으로 개발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든다. 그러나 국내 약가정책은 이런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법원과 감독당국에서는 대상 의약품의 성분과 효능을 면밀히 검토해 약가분쟁을 판단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복제약이 혁신신약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도록 허가 과정에서 특정 적응증을 제외하는 방식을 적극 허용하고 있다. 특허침해 소지를 줄여 신약 개발의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국민보건에도 긍정적이어서다.
제약업계에서는 특허 보호를 위한 허가 제도적 지원을 환영하면서도, 단순한 약가 인하가 아닌 국민건강과 제약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종합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약가정책이 신약 개발을 저해하는 방향으로만 작용한다면 장기적으로 국민들의 혁신적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업계가 협력해 신약과 복제약 의약품 간의 명확한 가격 차별화 기준을 마련하고, 신약의 혁신성과 치료적 가치를 반영한 약가 책정방안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약가협상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약가정책은 단순히 약값을 낮추는 문제가 아니다.
신약 개발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면서 국민건강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인 문제이다. 국민건강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단순한 비용절감이 아니라 혁신적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고, 제약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 업계, 의료계가 협력해 균형 잡힌 약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kjw@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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