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에버빌이 위생용 종이 납품업체인 아름다운사람들을 품에 안았다. 1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아름다운사람들의 매각 주간사인 삼일회계법인과 수원지방회생법원은 우선협상대상자인 현진에버빌과 인수와 관련한 투자계약서(SPA)를 체결했다. 거래금액은 34억원 규모다. 이번 딜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아름다운사람들 공개경쟁 입찰에 두 곳의 업체가 인수의향서(LOI)를 냈고 이 중 현진에버빌이 단독 입찰해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며 "법원과 주관사 매도자측은 회생계획안을 작성중이며 관계인 집회 등 일정이 잡히면 채권자 동의에 주력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앞서 삼일회계법인은 지난해 11월부터 아름다운사람들의 공개매각을 진행해왔다. 2011년 10월에 설립된 아름다운사람들은 위생용 종이제품 제조업을 주요사업으로 영위중이다. 본사는 서울시 서초구에 있다. 아름다운사람들은 그간 온, 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회사 브랜드 제품 및 다양한 브랜드의 롤티슈, 키친타올, 미용티슈 등 PB 종이용 상품을 납품했다. 그러나 원자재 값 급등과 저가 수주로 인한 손익 구조 악화로 2020년 12월 말 수원지방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고 2021년 초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받았다. 아름다운사람들의 새주인이 될 현진에버빌은 주력 사업인 건설업과 시너지를 낼 계획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 입장에선 답례품이나 입주선물로 휴지가 선호되는만큼 본업과 기대효과가 예상된다"며 "특히 벽지 등 사업 연계성도 높다. 현진에버빌 측도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이번 딜 인수를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편 현진에버빌은 지난 2017년 디에이건설이 아파트 브랜드 '에버빌'(EVERVILL)로 유명한 옛 현진종합건설을 인수한 이후 사명을 교체한 중소형 건설 kakim@fnnews.com 김경아 기자
2022-01-13 18:09:34[파이낸셜뉴스] 현진에버빌이 위생용 종이 납품업체인 아름다운사람들을 품에 안았다. 1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아름다운사람들의 매각 주간사인 삼일회계법인과 수원지방회생법원은 우선협상대상자인 현진에버빌과 인수와 관련한 투자계약서(SPA)를 체결했다. 거래금액은 34억원 규모다. 이번 딜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아름다운사람들 공개경쟁 입찰에 두 곳의 업체가 인수의향서(LOI)를 냈고 이 중 현진에버빌이 단독 입찰해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며 “법원과 주관사 매도자측은 회생계획안을 작성중이며 관계인 집회 등 일정이 잡히면 채권자 동의에 주력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앞서 삼일회계법인은 지난해 11월부터 아름다운사람들의 공개매각을 진행해왔다. 2011년 10월에 설립된 아름다운사람들은 위생용 종이제품 제조업을 주요사업으로 영위중이다. 본사는 서울시 서초구에 있다. 아름다운사람들은 그간 온, 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회사 브랜드 제품 및 다양한 브랜드의 롤티슈, 키친타올, 미용티슈 등 PB 종이용 상품을 납품했다. 그러나 원자재 값 급등과 저가 수주로 인한 손익 구조 악화로 2020년 12월 말 수원지방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고 2021년 초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받았다. 아름다운사람들의 새주인이 될 현진에버빌은 주력 사업인 건설업과 시너지를 낼 계획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 입장에선 답례품이나 입주선물로 휴지가 선호되는만큼 본업과 기대효과가 예상된다”며 “특히 벽지 등 사업 연계성도 높다. 현진에버빌 측도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이번 딜 인수를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편 현진에버빌은 지난 2017년 디에이건설이 아파트 브랜드 ‘에버빌’(EVERVILL)로 유명한 옛 현진종합건설을 인수한 이후 사명을 교체한 중소형 건설사다. kakim@fnnews.com 김경아 기자
2022-01-13 10:37:52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중인 위생용 종이제품 제조업체인 아름다운사람들이 새주인을 찾는다. 1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아름다운사람들의 매각주간사인 삼일회계법인은 매각 공고를 내고 오는 30일까지 원매자들을 대상으로 인수의향서(LOI)를 접수 받는다. 이번 매각은 공개 경쟁입찰방식이다. 제3자 유상 배정방식의 유상증자 및 영업 양수도 등을 병행한다. 지난 2011년 10월 설립된 아름다운사람들은 위생용 종이제품 제조업을 주요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롤티슈, 키친타올, 미용티슈 등 PB 종이용 상품을 납품하던 아름다운사람들은 2020년 12월 말 수원지방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고 올 초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받았다. 원자재 값 급등과 저가수주 영향으로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후 아름다운사람들은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법원으로부터 인가 전 M&A를 신청했으며 삼일회계법인을 매각 주간사로 선정해 새주인 찾기에 나선 것이다. kakim@fnnews.com 김경아 기자
2021-11-17 18:04:50[파이낸셜뉴스]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중인 위생용 종이제품 제조업체인 아름다운사람들이 새주인을 찾는다. 1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아름다운사람들의 매각주간사인 삼일회계법인은 매각 공고를 내고 오는 30일까지 원매자들을 대상으로 인수의향서(LOI)를 접수 받는다. 이번 매각은 공개 경쟁입찰방식이다. 제3자 유상 배정방식의 유상증자 및 영업 양수도 등을 병행한다. 지난 2011년 10월 설립된 아름다운사람들은 위생용 종이제품 제조업을 주요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롤티슈, 키친타올, 미용티슈 등 PB 종이용 상품을 납품하던 아름다운사람들은 2020년 12월 말 수원지방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고 올 초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받았다. 원자재 값 급등과 저가수주 영향으로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후 아름다운사람들은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법원으로부터 인가 전 M&A를 신청했으며 삼일회계법인을 매각 주간사로 선정해 새주인 찾기에 나선 것이다. IB업계에선 아름다운사람들 강점으로 ISO9001, ISO14001 등 인증을 받은 공장 설비를 갖추고 있는 점을 꼽았다. 업계 관계자는 “엄격한 품질관리 하에 회사 브랜드 제품 및 다양한 브랜드의 PB 상품을 납품 중”이라며 “공장 등으로 이용되는 자산의 토지 면적은 약 5022㎡이며, 2020년 9월 기준 토지 및 건물의 감정평가금액은 약 40억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kakim@fnnews.com 김경아 기자
2021-11-17 15:03:49[파이낸셜뉴스] 오늘날 LG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기틀을 마련한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향년 94세로 14일 영면했다. 구 명예회장은 부친인 고(故) 구인회 창업주 도와 회장 취임 전까지 20년간 생산현장 지킨 데 이어 지난 1970년 LG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 이래 재임 25년간 매출액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약 1150배 성장을 이뤄냈다. ■LG 비약적 성장 이끈 '참 경영인' 구 명예회장은 고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남으로, 지난 1925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구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 초기이던 1950년 스물 다섯의 나이에 모기업인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해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은퇴할 때까지 45년간 기업 경영에 전념하며 원칙 중심의 합리적 경영으로 LG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고 명예롭게 은퇴한 '참 경영인'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지난 1970년 LG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 후,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나라 안팎의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면서 화학·전자산업 성장을 이끈 것은 물론 선진 기업 경영을 실천한 기업인으로 평가 받는다. 그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경영 혁신을 추진해 자율경영체제 확립, 고객가치 경영 도입, 민간기업 최초의 기업공개, 한국기업 최초의 해외 현지공장 설립 등 기업 경영의 선진화를 주도한 혁신가로도 꼽힌다. 구 명예회장이 25년 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그룹은 매출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약 1150배 성장했다. 임직원 수도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증가했다. 주력사업인 화학과 전자 부문은 부품소재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해 원천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를 이루며 지금과 같은 LG그룹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기술 강조...화학·전자산업 강국 기틀 마련 구자경 명예회장은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의 신념으로 기술 연구개발에 승부를 걸어 우리나라 화학·전자 산업의 중흥을 이끈 경영자였다. 구 명예회장은 생전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하여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명예회장에 재임하던 25년 동안에도 '연구개발의 해', '기술선진', '연구개발 체제 강화', '선진 수준 기술개발' 등 표현은 달라도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기술'을 경영 지표로 내세웠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 럭키 울산 공장과 여천 공장에는 공장이 채 가동되기도 전에 연구실부터 만들어졌다. 특히 지난 1976년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금성사에 전사적 차원의 중앙연구소를 설립토록 했다. 1979년에는 대덕연구단지 내 민간연구소 1호인 럭키중앙연구소를 출범시켰다. 1985년에는 금성정밀, 금성전기, 금성통신 등 7개사가 입주한 안양연구단지를 조성하는 등 회장 재임기간 동안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같은해 우리나라 최초의 제품시험연구소도 개설했다. 이처럼 강력하게 추진한 기술 연구개발의 결과로 금성사는 19인치 컬러TV, 공냉식 에어컨, 전자식 VCR, 슬림형 냉장고 등 국내 최초제품 잇달아 선보이며 산업 성장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구 명예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생산기업을 시작하면서 항상 마음에 품어온 생각은 우리 국민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제품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라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선진 경영 개척, 고객중심 경영 효시 구 명예회장은 기업의 외형적 성장뿐만 아니라 선진 기업으로 도약하 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과감하게 실천에 옮긴 재계의 혁신가였다. 구 명예회장은 1970년대에 잇따른 기업공개로 우리나라 초기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고, 민간 기업의 투명경영을 선도했다. 당시 기업공개를 기업을 팔아 넘기는 것으로 오해해 이를 우려하는 분위기였고, 일부 임원들은 기업공개를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구 명예회장은 기업공개가 앞으로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이 될 것이며, 선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꺾지 않았다. 이에 지난 1970년 2월 그룹의 모체 기업인 락희화학이 민간 기업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곧 이어 전자 업계 최초로 금성사가 기업공개를 하면서 주력 기업을 모두 공개한 한국 최초의 그룹이 됐다. 이후 금성통신(1974), 반도상사·금성전기(1976), 금성계전(1978), 럭키콘티넨탈카본 (1979) 등 10년간 10개 계열사의 기업공개를 단행해 안정적인 자금 조달을 통한 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구 명예회장은 기업의 활동 지평을 세계로 확장시켜, 재임하는 동안에만 50여 개의 해외법인을 설립했다. 특히 지난 1982년 미국 알라바마주의 헌츠빌에 컬러TV 생산공장을 세웠다. 이 공장은 국내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설립된 해외 생산기지였다. 이처럼 해외 투자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독일의 지멘스, 일본 히타치·후지전기·알프스전기, 미국 AT&T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합작 경영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이를 통해 빠른 속도로 선진 기술과 경영 시스템을 습득할 수 있었고, LG는 세계의 중앙으로 활동 무대를 과감하게 확장시켰다. 또 구 명예회장은 전문경영인 중심의 자율과 책임경영 체제 도입하고, 고객중심 경영이념 발표 등 혁신을 통해 경영 선진화를 주도했다. 회장 1인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관행화 된 경영체제를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선진화된 경영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자율과 책임경영을 절대절명의 원칙으로 내세웠다. 1990년 2월에는 '고객가치 경영'을 기업 활동의 핵심으로 삼은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인간존중의 경영'을 선포했다. ■경영이 인생 모범 보여준 재계 큰 어른 구 명예회장은 LG를 이끈 경영인으로서 보여준 성과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는 처음으로 스스로 회장직을 후진에게 물려주어 대한민국 기업사에 성숙한 후계 승계의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 또 인재양성을 위한 사회 공익활동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스스로는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대신 자연을 벗삼아 간소한 여생을 보내며 은퇴한 경영인으로서의 삶으로도 재계에 귀감이 되며, 사회의 존경을 받았다. 구 명예회장은 지난 1995년 2월,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는 국내 최초의 대기업 '무고(無故) 승계'로 기록되며 재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글로벌화를 이끌고 미래 유망사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젊고 도전적인 사람들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이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었다. 구 명예회장이 퇴임 후 2000년대 들어 3대 57년간 이어온 구·허 양가의 동업도 '아름다운 이별'로 마무리했다. 57년간 사소한 불협화음 하나 없이 일궈온 구씨, 허씨 양가의 동업관계는 재계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사업매각이나 합작, 국내 대기업 최초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 모든 위기 극복과 그룹 차원의 주요 경영 사안은 양가 합의를 통해 잡음 없이 이뤄졌다. 구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철저하게 평범한 자연인으로서 살았다. 구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구인회 창업회장이 생전에 강조한 '한번 믿으면 모두 맡겨라'라는 말에 따라 은퇴한 이상 후진들의 영역을 확실히 지켜주는 것이었고, 어려울 때일수록 그 결심을 철저히 지켰다. 구 명예회장은 슬하에 장남 고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해 구훤미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고문, 구미정씨, 구본식 LT그룹 회장 등 4남 2녀를 두었다. 부인인 고 하정임 여사는 지난 2008년 타계했다. #구자경 #LG #별세 #참 경영인 #화학·전자 산업 강국 이끈 gmin@fnnews.com 조지민 기자
2019-12-14 13:36:54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매각 결정을 발표한 15일 아시아나항공 임직원들에 편지를 보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키로 했다"며 심정을 전했다. 이어 "그룹을 이끌어왔던 저로서는 참으로 면목 없고 민망한 마음"이라며 "고생한 시간을 보내게 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박삼구 전 회장 "피 토하는 심정…면목 없다" 16일 아시아나항공 관계자에 따르면 박삼구 전 회장은 '사랑하는 아시아나항공 임직원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원고지 10매 분량의 편지를 보냈다. 이를 박 전 회장은 "오늘(15일) 그룹 비상경영위원회와 금호산업 이사회는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며 "지난번 회계 사태 이후 모든 책임을 지고 제가 대표이사에서 물러났고 회사의 자구안이 채권단에 제출됐습니다만,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에 그룹 비상경영위원회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키로 했다"며 "이 결정으로 인해 아시아나항공 임직원 여러분께서 받을 충격과 혼란을 생각하면, 그 간 그룹을 이끌어왔던 저로서는 참으로 면목 없고 민망한 마음"이라고 했다. 다만 박 전 회장은 "이 결정이 지금 회사가 처한 어려움을 현명하게 타개해 나가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에 대해 임직원 여러분의 동의와 혜량을 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31년의 세월…IMF·9.11·사스와 메르스 "고생시켜 미안하다" 이어 박 전 회장은 지난 1988년 2월 17일 아시아나항공 창립 이후 31년간의 세월을 함께 했던 임직원에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는 "IMF를 비롯해 9.11테러, 사스와 메르스,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외부적 시련에 맞서야 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여러분들과 땀 흘렸던 빛나는 순간과 고독한 결정을 해야 했던 불면의 밤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며 "특히 IMF 때 고생시켰던 임직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고백했다. 박 전 회장은 운항승무원, 캐빈승무원, 정비사, 영업직원, 화물직원, 일반직 직원들,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그 결과 아시아나는 전 세계를 누비는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할 수 있었고, 세계 최대 항공 동맹체인 스타얼라이언스에 가입할 수 있었으며, 세계 유수의 서비스 평가기관으로부터 '올해의 항공사 상'을 석권할 수 있었다"며 그 공로를 임직원들에게 돌렸다. 박 전 회장은 "아시아나는 늘 그룹의 자랑이었고 주력이었다. 여러분이 그렇듯이 제게도 아시아나는 '모든 것'이었다"고 말했다. 금호그룹은 지난 2004년에는 그룹 명칭을 금호그룹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변경한 바 있다. 그는 "이제 저는 아시아나를 떠나보낸다. 아시아나항공이 조속히 안정을 찾고 더 나아가 변함없이 세계 최고의 항공사로 발전해 나가길 돕고 응원하겠다"며 "아시아나항공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같은 날 한창수 아시아나항공 사장도 "이번 (매각)결정은 아시아나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우리 1만여 임직원 여러분들을 보호하고, 주주 여러분들과 금융기관, 기타 회사의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결정"이라며 "향후 경영환경이 한층 더 안정될 것인 바, 회사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더 많은 고객께 최고의 안전과 서비스로 만족을 드릴 수 있도록 본연의 업무에 더욱더 정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2019-04-16 09:29:15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지난해 7월 '크루즈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크루즈법)'을 발의했다. 크루즈 시장은 선박강국인 우리나라가 충분한 저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각종 규제에 묶여 경쟁력을 지켜 내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다. 3만t급 국적 크루즈선 1대를 띄우면 968명을 고용할 수 있어 대규모 사업장 하나를 유치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현재 연간 80만명 수준인 국내 크루즈 시장을 2020년까지 200만명으로 키울 경우 선박 건조 1만1000명, 운항 8400명, 관광 1만1300명 등 3만명 이상의 고용효과가 있고 5조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거둘 것으로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크루즈산업의 현실은 후진국 수준이다. 여러 항구를 순회하는 크루즈 관광객들에게 지나치게 까다로운 입국심사를 강요하거나, 항만 인접지역에 숙박, 쇼핑 시설을 짓지 못하게 하는 '손톱 밑 가시' 때문이다. 국내 선사들도 외국인 승무원 채용 규정이 까다롭고 서비스직 인원까지 선원 선발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등 지나친 규제가 힘들다고 호소한다. 이런 규제를 풀고 시장을 키워보자는 것이 크루즈법이다. 하지만 여야 간 의견차로 크루즈법은 해를 넘기고 올 2월 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했다. 국회에서 발목을 잡은 이유는 선상 카지노 허용 문제. 전체 크루즈 산업에서 보면 너무나 지엽적인 문제다. 야권은 크루즈 선상 카지노를 허용할 경우 크루즈법이 도박 육성법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반면 정부 여당은 카지노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크루즈선 수익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카지노를 허용하지 않을 경우 한국에서 크루즈 시장 자체가 열리지 않을 것이라며 야권과 대립하고 있다. 【 인천=특별취재팀】 지난 18일 오전 7시 인천항 제1부두. 안개가 짙게 내려앉은 새벽 바다를 뚫고 대형 크루즈선 한 대가 미끄러지듯 부두로 들어왔다. 이날 정박한 크루즈선은 프랑스 국적 4만t급 규모의 '세븐 시즈 보이저(Seven Seas Voyager)'호였다. 선박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면 4만t급이 어느 정도 큰 것인지 선뜻 가늠이 되지 않겠지만 이 배는 길이(전장) 204.2m, 너비(전폭) 28.8m에 이른다. 승객은 총 708명을 태울 수 있고 승무원까지 더하면 1100명이 넘는 사람이 탑승할 수 있다. 아름다운 내부시설 덕분에 '움직이는 6성급 호텔'이라고 불린다. ■크루즈 관광객은 늘지만… 최근 부산항과 인천항을 중심으로 크루즈선의 한국 기항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크루즈선을 타고 제주.부산.인천 등 국내 항만으로 들어온 관광객이 총 79만5603명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2년 28만2000명에 비해 2.8배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크루즈선 입항횟수도 414회에 달해 1년 전(226회)에 비해 2배가량 증가했다. 크루즈 관광객이 대부분 부유한 중장년층이어서 소비 규모도 큰 편이다. 지난해 크루즈선 관광객의 국내 소비액은 최소 44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으며 1명당 평균 55만원을 소비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한국으로 오는 주요 크루즈 관광객인 중국인의 경우 1명당 평균 105만원을 한국에서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루즈선이 정박하자 관광버스들이 부두에 즐비하게 늘어섰다. 이들을 맞이하러 나온 관광 가이드의 모습에서도 크루즈에 대한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침 8시 30분이 되자 세븐 시즈 보이저호에서 관광객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들에게는 특징이 있었다.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라는 것. 부두에서 만난 크루즈 관광 가이드는 "한번 크루즈 여행을 시작하면 짧게는 1주일, 길게는 한 달 넘게 여행을 하게 된다"며 "최고급 호텔과 같은 크루즈선에서 한 달 넘게 투숙하려면 엄청난 돈이 든다. 비용 문제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크루즈 여행을 하기 힘들고 부유한 중장년층이 관광객의 주류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크루즈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희망적이지만 아직 우리나라 항구들은 크루즈 관광객을 맞을 준비가 돼있지 않아 보였다. 인천항 앞에는 선원들과 직원들이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허름한 식당이 일부 있지만 크루즈 관광객들이 음식을 즐길 만한 식당이나 쇼핑을 할 수 있는 시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컨테이너를 옮기는 대형 트럭이 쉴 새 없이 지나 다녀 크루즈 여행의 낭만을 훼방 놓는 '어글리 항구'로 비칠까 걱정될 정도였다. 크루즈 관광 가이드는 "인천항으로 들어온 크루즈 관광객 가운데 항구 주변에서 관광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대부분 차를 타고 곧바로 서울로 이동해 반나절 정도 관광 및 쇼핑을 한다. 주요 관광지는 경복궁과 남대문시장, 광장시장 등"이라고 설명했다. 크루즈법에서 핵심으로 꼽고 있는 항구 배후단지 활성화와 입지 규제 완화가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날 세븐 시즈 보이저호를 맞이하러 나온 40인승 대형 버스는 총 23대였지만 이 가운데 인천을 관광하는 버스는 1대뿐이었다. 크루즈 관광객을 유치하는 입장에서 시간은 곧 돈이라고 할 수 있다. 대형 크루즈선이 정박해 항구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10시간 정도다. 관광과 쇼핑을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시내 관광과 쇼핑 공간을 가진 부산이나 서울에서 가까운 인천은 그나마 크루즈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만 동해나 목포 등 지방 중소도시는 크루즈법 통과를 통해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면 항구 인근에 크루즈 관광객을 위한 관광 및 쇼핑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실패한 국적 크루즈선 도전 한국을 방문하는 크루즈선은 늘어나고 있지만 90% 이상이 체류기간 하루 미만인 단순 기항이다. 부산과 인천 등 국내항을 모항으로 이용하는 크루즈선은 현재 전무한 상황이다. 모항에 3만t급 국적 크루즈 1척을 투입할 때 경제효과는 902억원, 고용효과는 968명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크루즈선 모항의 1인당 평균 지출액은 259달러인 반면 기항지는 126달러에 그친다. 크루즈 산업을 통해 경제효과를 보려면 기항지로는 한계가 있고 모항지가 돼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동안 국내항을 모항으로 하는 국적 크루즈에 대한 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부산항을 모항으로 지난해 출항한 2만6000t 규모의 하모니크루즈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기대한 것과 같은 성과를 올리지 못한 채 출항 1년 만에 운항 중단을 선언했다. 쌓여만 가는 적자가 400억원을 넘기자 두 손, 두 발 들고 포기한 것이다. 과거 하모니크루즈에서 일한 바 있는 해운업계 관계자는 "크루즈 사업의 핵심은 사람들이 배에서 즐길 수 있는 선상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확보"라며 "하모니크루즈는 스파 등 3~4가지 프로그램을 갖고 운항했지만 핵심 콘텐츠인 카지노가 법적으로 막히면서 수익을 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모니크루즈는 전용 크루즈선이었기 때문에 선상 카지노 시설을 갖추고는 있었지만 사용해보지도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퇴직한 하모니크루즈 직원에 따르면 현재 하모니크루즈를 운영하던 임직원들도 모두 퇴사했고 배는 목포항과 광양항을 오가며 매각만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구매를 타진하는 사람조차 없다는 전언이다. 그는 "하모니크루즈가 실패로 돌아갔지만 국내에는 여전히 크루즈 사업을 해보겠다는 해운업자들이 많이 있다"며 "크루즈법이 4월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지고 있어 해운업계 기대가 크다. 한국에서 크루즈 산업이 시작되려면 크루즈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03-25 16:47:39■글: 박병로 ■그림: 문재일 세 사람은 갱 입구를 대충 둘러보았다. 폐쇄된 갱도 안쪽에 웅크리고 있는 어둠을 바라보는 것이 답답해서였다. “됐습니다. 이쯤 하시지요.”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어둠 속 하이에나의 눈빛처럼 갱도의 어둠이 섬뜩했다. 죽음을 늘 생각해 왔지만 문득 그것이 세상으로부터의 격리라는 느낌이 들고 우울해졌다. 오 회장의 차에 오르면서 황인성이 물었다. “회장님. 말씀을 듣고 보면 왜 이걸 넘기시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유망한데 왜 그만두느냐?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오. 난 죽은 거나 다름없는 광업권을 샀고, 이익 실현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넘기는 것이오. 주식이라고 생각해 봐요. 고점에 팔겠다는 생각보다는 이게 안전하다오.” 오재삼 회장은 진심이었다. “나와 거래하면 누구든 이익을 본다. 이게 내가 기업을 하는 철학이오.” 좋은 철학이로군요, 빙고! 황인성은 속으로 그렇게 외쳐 보았다. 정리해 보면 상승 추세가 시작 될 무렵에 주식을 내다판다는 뜻이었다. 그래야 다음 사람이 차지할 몫이 크고, 자신은 한걸음 앞서 남이 보지 못한 종목에 투자할 수 있었다. 카지노 노숙자로 전전하면서 황인성은 실패한 사람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귀감이 될 만한 성공신화는 물론이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보이지 않는 함정과 화려한 독버섯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엘도라도를 꿈꾸는 얘기도 그랬다. 우리나라 광산만이 아니라 몽골, 호주, 칠레, 동남아 등에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성공하기 위해 가족과 나라까지 팽개치고 쫓아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온 경우를 그는 겪은 듯이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들 중에 사기꾼들에게 당한 얘기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오재삼 회장의 DS지오텍도 사기성이 짙어 보였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사업성이 확실하고 기업가로서 존경할 만하다는 사실이 특히 걸렸다. 아름다운 버섯에 독이 있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그것이 독버섯이 아니라면 카지노 초보자인 필립의 눈에 띌 때까지 무사할 리 없었다. 프로젝트의 포인트는 그것이었다. 오 회장이 진실한가. 은행 이자나 주식형 펀드보다 월등히 높은 투자수익률이나 매각 후의 기대감보다 진실성이 문제였다. 공황이나 불황기에 망해가는 기업을 인수해 휴업 처리하고 때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기는 했다. 5년이건 10년이건 공황의 시간을 쪼며 기다리다가 여건이 개선됐을 때 팔아치우는 것이었다. 그 경우라면 물론 눈 밝고 약삭빠른 사람들이 오히려 인수 제안을 미심쩍어 하기 때문에 필립에게 기회가 갈 가능성도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황인성은 차에 몸을 맡겼다. 대체 무엇일까. 렉서스350이라서일까. 굽이 길을 회전하는 느낌이 별다른 쏠림 없이 편안했다. 지잉. 휴대폰의 진동음이 들렸다. 필립의 전화였다. 총무팀장님. 저 아직 정선에 있습니다. 필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듣고 있더니 언성을 높였다. 아참. 그건 제가 알아서 한다지 않았습니까. 띠바, 나름 공부하고 있고 진도도 나가고 있다니까요. 네. 그래요! 그래봤자…. 아, 그렇습니까. 그런 줄은 몰랐습니다. 한숨을 내쉬며 필립이 휴대폰 폴더를 닫았다. “아, 죄송! 내 뒤를 봐주는 어르신이 안 좋은 모양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열심히 돈 버는 진도를 나가라는 겁니다.”
2008-11-04 18:29:11"이제는 사업도 기반이 잡혔고…나는 내 이름으로 남은 재산 일체를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는 데 쓰려고 한다." 동국제강의 창업자 장경호 회장이 1975년 사재 35억원(현재 시가 2000억원)을 조건 없이 사회에 헌납하면서 가족에게 남긴 말이다. 이 기금은 불교문화진흥에 쓰였다. 96년 동국제강은 주력 사업장을 부산에서 경북 포항으로 이전해야 했다. 창업 회장의 뒤를 이은 장상태 회장은 이전 당시 "부산을 떠나면서 이익을 환원합니다"며 부산제강소 부지 매각으로 생긴 특별이익금 중 100억원을 출연했다. 이를 기반으로 송원문화재단이 설립됐고 동국제강 그룹 사회공헌 활동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선대의 뜻은 장세주 회장에게 이어져 송원문화재단과 각 사업장을 통한 전국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동국제강은 철을 통해 사회와 문화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믿고 이를 기업 문화로 체질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동국제강은 '세상을 따뜻하게'라는 미션을 세우고 각 사업장의 자원봉사 동아리들을 봉사단으로 확대 조직하도록 지원했다. 포항의 'DK봉사단'은 매년 50회 이상의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다. 충남 태안 기름 유출 방제 자원봉사 등에 이르기까지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달려가고 있다. 인천의 '아름다운 사람들'은 2007년 인천지역 사회복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인천광역시장상을 수상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노동조합까지 동참해 사업장 지역 불우이웃에게 사랑의 쌀을 전달했고 이어 인근 섬마을의 환경보호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부산공장의 '후(厚) 봉사단'은 첫 봉사활동으로 동국제강이 수십년간 사업을 유지했던 부산 용호동 지역의 노인정을 찾아가 '사랑의 도배' 봉사활동을 벌였다. 동국제강 본사도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에 소재한 사회복지시설인 남산원을 찾아 사랑의 김장 담그기 등의 활동을 펼친 것을 계기로 올해부터 지속적인 지원과 봉사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한창 공장을 짓고 있는 충남 당진에서도 당진 후판공장 건설본부 임직원들이 당진군에서 벌이고 있는 '백만그루 나무심기' 운동에 동참하고 지역 환경정화 활동을 벌이는 등 지역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2002년부터 울릉도 남양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올해까지 지속적인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기업문화는 유니온스틸 등 계열사에도 확산됐다. /cha1046@fnnews.com 차석록기자 ■사진설명=지난 4월 동국제강 노사가 함께 지역 불우이웃에게 사랑의 쌀을 전달했다. 4월 15일 박상규 노조위원장이 인천제강소 인근의 '사랑의 국수집'에 쌀을 전달하고 있다.
2008-05-13 16:30:56“이제는 사업도 기반이 잡혔고…나는 내 이름으로 남은 재산 일체를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는 데 쓰려고 한다.” 동국제강의 창업자 장경호 회장이 1975년 사재 35억원(현재 시가 2000억원)을 조건 없이 사회에 헌납하면서 가족에게 남긴 말이다. 이 기금은 불교 문화 진흥에 쓰였다.뒤를 이은 장상태 2대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96년 동국제강은 주력 사업장을 부산에서 포항으로 이전해야 했다. 장상태 당시 회장은 “부산을 떠나면서 이익을 환원 합니다”며 부산제강소 부지 매각으로 생긴 특별이익금 중 100억원을 출연, 이를 기반으로 송원문화재단이 설립됐다. 동국제강 그룹 사회공헌 활동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이처럼 동국제강은 철을 통해 사회와 문화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믿고, 이를 기업문화로 체질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창업주에서부터 3대째 이어져 온 전통이라는 데 주목할 만 하다. 장세주회장도 ‘세상을 따뜻하게’ 라는 미션을 세우고,각 사업장의 자원봉사 동아리들을 봉사단으로 확대 조직했다. 이에 따라 포항제강소는 2005년부터 ‘DK봉사단’을 조직해 활동하고 있다. 인천제강소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봉사단을 결성했다. 계열사 유니온스틸은 지난 10월 부산공장에 ‘사랑의 봉사단’을 조직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특히,아름다운 사람들은 지난 9월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에서 인천지역 사회복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인천광역시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본사도 11월 사회복지시설인 남산원을 찾아 사랑의 김장 담그기 활동을 펼쳤다.동국제강은 2005년부터 매년 4월이면 나눔의 실천 운동인 아름다운 가게 후원을 시작한다. /cha1046@fnnews.com 차석록기자 ■사진설명=동국제강은 3대째 사회공헌활동을 경영 핵심 키워드로 하고 있다.동국제강이 메세나 활동 일환으로 정례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오페라 공연.
2007-12-17 22:3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