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지시·장소 제약 받으면 ‘근로자’
아나운서·그래픽 프리랜서 사례도
고(故)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지난해 9월 세상을 등진 고(故)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의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근로자성’ 인정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방송국 계약직 근로자의 프리랜서 계약이 일반적이지만, 최근 법원은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받은 경우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 4일 오씨의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직장 내 괴롭힘 보호법의 적용을 받으려면 피해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근로자성 판단에 있어서는 실질적으로 업무 지시를 받는 등 ‘종속 관계’에 놓였는지가 쟁점이 된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판단 기준으로 ‘사용종속’ 관계를 제시했다. △업무 내용이 사용자에 의해 정해지고, 업무 과정이 구체적으로 지휘감독 받는지 △근로자가 사용자의 업무수행 명령·지휘감독에 거부할 수 있는지 △취업규칙·복무규정 등의 적용을 받고, 사용자의 직접적인 지휘·감독 받는지 △업무 시작과 마치는 시간이 정해지는지 등을 확인한다.
최근 법원에서는 방송국 프리랜서들도 근로자로 인정한 사례가 나왔다. 공통점은 방송사가 프리랜서 직군의 업무 수행 방식, 일정, 근태 등을 실질적으로 통제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본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2023년 12월 대법원 판례가 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4년간 프리랜서로 일한 아나운서 이모씨가 KBS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이씨는 지난 2015년 KBS 강릉방송국에서 기상캐스터로 일하기 시작해 2018년부터는 주말마다 KBS 춘천방송국 뉴스 진행을 맡았다. KBS 춘천방송국이 신입사원을 채용하면서 계약 종료를 통보하자, 이씨는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계약에 업무상 지휘·감독에 관한 규정이 없고, 원고가 뉴스 등 방송을 진행함에 있어 피고의 지휘, 감독을 받았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씨가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었고, 취업규칙과 복무규정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이 주요 근거였다.
그러나 2심에서 판단이 뒤집혔다. 이씨가 정규직 아나운서들과 동일하게 KBS 방송편성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고,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통해 방송 일정, 원고, 휴가 계획 등을 공유받았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또한 다른 아나운서가 근무할 수 없을 때 대체 투입된 점도 고려해 재판부는 “원고는 실질적으로 피고에게 전속돼 있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해당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지난 2023년 1월 서울고법 민사15부(윤강열 부장판사)도 방송사 보도그래픽팀 소속 프리랜서 12명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며 이들을 ‘무기계약직’으로 판단했다. 이들은 정규직과 4개 조로 나뉘어 교대근무를 했는데, 조퇴·휴가는 부서장의 승인 절차를 거쳤고, 단체 대화방을 통해 업무 공지를 받았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피고(방송사)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으며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무했다"며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원고들은 도급계약 또는 용역계약이라는 이름의 계약을 체결했으나 실제로는 근무시간과 근무장소에 관해 원칙적으로 구속을 받았다"며 "상시적이고 반복적으로 피고의 팀장 등 상급자의 구체적인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유사하게 지난 2022년 1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강우찬 부장판사)도 UBC울산방송 소속 기상캐스터 겸 아나운서 등으로 일한 A씨를 근로자로 인정했다.
A씨는 지난 2015년부터 기상캐스터, 앵커, 취재기자, 라디오 진행자로 활동했으나, 별도 계약서 없이 구두계약만 체결한 상태였다. 방송사는 "A씨가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프리랜서"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 역시 다른 아나운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업무를 수행하고, 취재팀장에게 단체 대화방을 통해 업무 지시를 받은 점이 고려됐다.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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