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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계절의 응원받으며… 혼자가 아니기에, 다시 한번 일어선다 [작가와의 대화]

신달자 시인의 고통이여 나의 친구여 !
■ 살아야 할 것을 살게 하소서 ■

푸르른 계절의 응원받으며… 혼자가 아니기에, 다시 한번 일어선다 [작가와의 대화]
일러스트=정기현 기자
저 녹음을 비추는 6월의 하늘을 보라. 어쩌면 하늘 녹음 나무 햇빛이야말로 우리가 일어서려는 의지의 응원가인지 모른다. 구름도 노을도 짙푸른 초록과 바람까지 모두 응원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자주 기분 나빴고, 스스로에게 실망했고, 신뢰가 무너졌으며, 의욕을 잃었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한 적은 없다. 숨을 쉬는 일 그 자체가 희망이니까….

어린 날 방문턱을 밟는 순간을 할아버지께 들키면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너무 화를 내시며 나무랐다.

"문턱을 밟으면 안 되는 기여!"

물론 그 순간은 온몸이 오그라들어 묻지 못했지만 할아버지가 기분 좋으실 때 물은 적이 있다. 그땐 웃으시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문턱은 집의 목이다. 목을 밟으면 니는 어찌 되겠노. 숨을 못 실거 아이가."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말이지만 지금 턱을 넘을 때마다 그 말씀이 떠올라 내 발에 밟혀 숨을 못 쉬는 집을 생각하게 된다. 남을 배려하는 말이 되기도 하고, 더 나가면 복을 부르는 일과 관계가 있었다.

집 숨을 잘 쉬게 하여 순환이 잘되면 집이 건강해지고, 집에 복이 온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해가 간다. 그때는 그런 금기가 많았다. 장독대에 들어가서 남을 욕하면 안 되고, 밥을 푸면서 팔자타령을 해도 안 되며, 거지에게 밥을 줄 때 던지듯 주면 안 된다고 했다.

외상은 하되 사흘을 지나면 안 되는 것도 천 번도 들은 이야기다. 특히 어머니는 누구라도 우리 집 문고리만 잡아도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해야 한다는 철칙을 지키셨다. 어쩌다 대문에서 멀어지면 저만치 따라가서 설탕물 한 그릇을 마시게 하던 모습을 자주 봤다.

마음을 풍족하게 쓰라 하셨다. 남에게 손이 오그라지면 내 복을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복을 많이 받았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지지리도 복과 인연이 없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게 복이 왔다고 생각될 때 어머니가 덥석 받지 않고 내게로 미루어 보낸 복이라고 생각할 때가 참 많다. 어머니의 복을 내가 대신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목이 메고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복은 대를 이어 가지 않겠는가. 그런 금기가 가장 되살아나는 시기가 바로 5월 내 생일이 있는 달이다. 생의 아름다운 매듭이며 다시 말하면 계절의 화려한 문턱이기도 하다.

5월은 바로 개인적으로 새로운 생명의 문턱 앞에 서는 일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꽃샘추위가 더 멀어진 안정감 있는 달 5월 새로운 생의 백지가 펼쳐지고, 미루어 덮어둔 할 일들을 새롭게 꺼내고, 그래서 마음다짐을 하는 마음의 대공사를 하는 시기가 나의 탄생, 5월이다.

반성도 하고 새 다짐도 하고 밑줄도 긋는 시기. 조금은 자신을 잃기도 하지만 새 시간을 부여받는 축복도 5월이라 생각한다. 생각해 보자. 지난해는 정말 내가 살아야 할 것을 살았는지 그것이 가장 나를 혼돈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나에게 다시 묻는다.

"너는 네가 살아야 할 것을 살았는가?"

"네네, 나는 아직 내가 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몰라요."

"네네, 나는 살아는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요."

"네네, 나는 죽어라 노력했는데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는데도 결과가 없어요."

아마도 나는 이렇게 대답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확한 대답은 없는 것 같다. 그냥 울컥한다. 목이 메는 일이 자주 있다. 평범한 장면들이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도 그렇고, 아버지가 아이 손을 잡고 가는 장면에도 그렇다. 모란이 작약이 장미가 서둘러 피고 "덥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는 6월은 청춘의 달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집 앞에는 고등학교가 있다. 희뿌연 새벽길에 늦은 저녁길에서 학생들이 오고 가는 것을 보면 그것이 이 나라의 희망인데도 왠지 안쓰럽고 측은하다 울컥 목이 멘다.

나는 자꾸 묻는다. 우리가 지금 정말 살아야 할 것들을 살고 있는지, 진정으로 살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각자 그것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가지고 있는지…. 나는 다시 묻는다. "우리가" 아니라 "나"의 살아야 할 것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에 충실하기 위해 이 화려한 계절에 무엇을 약속하는지…. 그렇다. 개인의 헌법 같은 것이다. 남은 시간은 청천벽력 같은 것이다. 후회보다 남은 시간의 미래를 빛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만든 헌법이지만 내가 받아야 할 대가를 치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엄격한 자기판단이 가능한지 물어야 할 것 같다. 아무도 모르니 슬쩍 지나가도 되리라고 아마 누구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나를 거울처럼 보고 있는 것은 '나'니까….

그러므로 그런 자기헌법에서 걸린 대가를 충분히 받았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주 기분 나빴고, 스스로에게 실망했고, 신뢰가 무너졌으며, 의욕을 잃었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한 적은 없다. 숨을 쉬는 일 그 자체가 희망이니까…. 이제 나는 따뜻한 손을 발견하거나 그래도 그 손을 찾지 못한다면 그러므로 오래 우리가 가져야 할 살아야 할 첫 번째 덕목은 홀로의 작은 힘을 섞어 더불어 일어서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견디고 참아야 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러니 결코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러니 저 녹음을 비추는 6월의 하늘을 보라. 어쩌면 하늘 녹음 나무 햇빛이야말로 우리가 일어서려는 의지의 응원가인지 모른다. 그렇다. 구름도 노을도 짙푸른 초록과 바람까지 모두 응원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신달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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