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태풍이 지나가고 기상청은 22일부터 폭염 주의보를 발령했다. 비가 많이 와도 걱정이지만 너무 안내려도 걱정이다. 사람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탁 트인 바다와 시원한 계곡으로 휴가를 계획하고 있으리라. 그중에서도 계곡의 매력은 등줄기와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 때 쯤이면 산골짜기에서 시원하게 물줄기가 떨어지는 폭포를 볼 수 있는 점이다. 그런데 비가 내려야 살고 비가 오지 않으면 죽는 폭포가 있다. 바로 강원도 설악산에 있는 토왕성 폭포다. 토왕성 폭포는 외설악에 위치하고 있으며, 노적봉 남쪽 토왕골에 있다. 이 폭포는 무려 320m의 높이에 3단으로 이어진 우리나라 최대의 폭포다. 폭포 상류의 유역면적이 0.54 ㎢에 불과해 평소에는 폭포의 물줄기를 전혀 볼 수 없지만 비가 온 뒤 며칠간은 하얗게 포말을 이루며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년 중 이 폭포 물줄기를 볼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 왜 토왕성 폭포의 물줄기는 비온 뒤 며칠 동안만 볼 수 있을까? 비가 얼마나 많이 내려야 폭포를 볼 수 있을까? 또 언제 가야 폭포의 물줄기를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강우에 의해 발생하는 모든 과정을 탐구하는 수문학(水文學, Hydrology)이라는 과학을 이용해 찾을 수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수문모델개발연구팀은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지원으로 물리적 기반의 '수문모형 CAT3.0'을 독자 개발해 국내외에 보급하고 있다. 이 모형을 이용해 강우시 토왕성 폭포의 유출량을 분석하고 강우량에 따른 유출이 지속되는 기간을 산정할 수 있다. 강우의 누적량과 지속기간에 따라서 폭포의 물줄기를 볼 수 있는 기간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산 속에 위치한 폭포의 유출량을 측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건설기술연구원의 김현준 선임연구위원이 2015년 토왕성 전망대가 만들어진 이후의 TV방송, 신문기사와 SNS 등에서 비온 뒤 폭포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확인해 자료를 만들었다. 김현준 선임연구위원은 인터넷에 올라온 촬영일자를 확인하고, 촬영일 전후의 속초기상대에서 관측한 일강우량을 같이 비교했다. 김현준 연구위원은 "최소한 하루에 50mm 이상의 비가 와야 제대로 된 폭포의 물줄기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토왕성 폭포의 유출량을 분석하기 위해 2000년부터 2018년까지 19년간 속초기상대에서 관측한 강우와 기상자료를 이용했다. 토양의 깊이는 암반으로 이뤄진 산 정상 지역을 감안해 20cm로 가정했다. 토양은 비를 저장할 수 있는 자연의 저수지로써 유출분석에 중요한 요소다. 비를 저장할 수 있는 유역면적은 대략 0.54㎢로 나타났다. 그는 유출량을 산정하기 위해 하루 단위의 자료를 사용했으며, 강우 지속일수 및 누적 강우량에 따른 유출량을 산정하고 폭포의 물줄기가 확연히 보일 수 있는 한계유출량을 추정했다. SNS 등에서 확인된 정보를 참고해 0.01㎥/sec이면 약하나마 물줄기가 보이는 유량으로 가정하고 시원한 물줄기를 보려면 최소한 0.1㎥/sec 이상의 유량이 돼야 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김 연구위원은 2000년부터 2018년까지 일단위로 강우에 의한 토왕성 폭포의 일유량을 계산해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를 볼 수 있는 날을 연간 8일 정도로 추정했다. 7월부터 9월까지는 한 달에 적어도 두 번은 볼 수 있다. 강우량으로 보면, 일강우량이 100mm는 넘어야 장쾌한 모습의 물줄기를 볼 수 있고 비온 뒤 하루 정도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폭포의 약한 물줄기는 일강우량 30mm 이면 볼 수 있는데 연간 55일 정도 볼 수 있다. 토왕성 폭포의 물줄기를 볼 수 있는 날이 이정도라면 설악산 정상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날보다 더 적은 것은 아닐까.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2019-07-22 22:51:33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한국과학창의재단(KOFAC)은 KISTI가 자체개발한 계산과학플랫폼 기반 창의적 인재육성 생태계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날 KISTI 대전 본원에서 열린 협약식에는 KISTI 최희윤 원장, 국가슈퍼컴퓨팅본부 황순욱 본부장, 계산과학플랫폼센터 이종숙 센터장, KOFAC 안성진 이사장, 창의융합교육단 허경호 단장, 미래혁신인재단 유정수 단장 등 양 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양 기관은 앞으로 계산과학플랫폼 기반 창의적 인재육성 생태계 조성을 위해 ▲계산과학플랫폼을 활용한 KOFAC사업운영 ▲KOFAC 운영프로그램(계산과학플랫폼 교육·운영·기술) 지원 ▲관련 공동사업 발굴·기획 등을 협력, 추진할 계획이다. 계산과학플랫폼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으로 2011년부터 KISTI가 주축이 되어 추진된 EDISON(EDucation-research Integration through Simulation On the Net) 사업의 대표성과인 EDISON 플랫폼의 다른 이름이다. EDISON 플랫폼은 슈퍼컴퓨터 연동 웹기반 플랫폼에 이공계 전문분야별 시뮬레이션 SW들을 탑재, 언제 어디서나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으며, 2011년부터 현재까지 전산열유체, 나노물리, 계산화학, 구조동역학, 전산설계, 전산의학, 도시환경 등 7개 전문분야 50여개 대학 연구팀에서 개발한 약 1200여종의 계산과학공학 시뮬레이션 SW 및 콘텐츠를 탑재, 연간 1만 여명이 꾸준히 활용되고 있다. KOFAC은 과학기술문화 창달 및 창의적 인재육성 전담기관으로서 과학문화 확산, 초・중등 과학・수학 교육, SW교육, 과학영재교육 등 청소년, 국민 대상의 여러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과학, 수학, SW교육의 융합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데 힘쓰고 있다. KOFAC 안성진 이사장은 “제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정부 뿐 아니라, 대학, 출연연 등 다양한 주체들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한데, 때 마침 이번에 양 기관 이 업무협력을 통해 함께 변화의 첫걸음을 딛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KISTI 최희윤 원장은 “KISTI가 자체개발한 계산과학플랫폼을 통해 과학기술과 교육이 협력하는 융합의 장을 마련하고 이를 기반으로 창의적 융합인재 육성에 이바지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seokjang@fnnews.com 조석장 기자
2019-06-12 13:58:39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브라운대 김경석 교수, 서울대 임지순 교수와 함께 하이브리드 계산과학 공동 연구를 위한 연구실을 설치, 운영한다고 25일 밝혔다. KIST 계산과학센터 내에 설치되는 계산과학 연구실에서는 폴리머 재료와 비정질 탄소재료의 표면적을 극대화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수소저장, 촉매 담지체, 친환경 필터, 이산화탄소 흡착체 등에 응용하기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KIST 연구진은 전산모사 및 실험연구를 통해 신개념의 표면개질 공정 기술을 김경석 교수팀은 신개념의 멀티스케일 표면 모델링을, 임지순 교수팀은 에너지 환경소재의 양자 역학적 최적설계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talk@fnnews.com조성진기자
2009-03-25 15:27:02고등과학원은 27일부터 4일간 계산과학부 국제평가를 실시한다고 23일 밝혔다. 이번 평가는 2006년 수학부, 물리학부 국제평가에 이어 3번째로 실시되는 것으로 세계적인 석학 4명을 초청해 지난 8년간의 연구를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기회다. 평가위원들은 고등과학원 원장을 2차례 면담하는 것을 비롯, 계산과학부 교수진, 연구원들과도 각각 2번, 1번씩의 면담을 진행한다. 평가위원은 자국에서 계산과학분야를 최초로 설립하거나 그 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석학들로 인도의 젊은과학자상과 헤르딜리아상을 수상한 인도기술원의 아슈토시 샤르마 교수와 단백질 접힘연구의 권위자이며 코넬 대학의 토드 명예교수인 해롤드 쉐라가 교수가 등이 참여한다. 고등과학원은 “이번 국제평가를 계기로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을 받아 이를 토대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economist@fnnews.com 이재원기자
2007-11-23 16:56:21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12일부터 5일간 서울 하월곡동 KIST에서 제4회 계산재료과학 아시아 컨소시움 학술대회(ACCMS-4)를 개최한다고 11일 밝혔다. ACCMS-4는 지난 2000년 유시유키 가와조에 도호쿠대학 교수, 빙링구 칭화대학교 현 총장, 구어 다스 인도 IACS 교수에 의해 발족돼 2001년부터 격년으로 인도, 러시아, 중국에서 학회가 개최됐다. 이번 서울 대회는 학회의장인 서울대 임지순 교수와 사무총장을 맡은 KIST 이광렬 박사를 주축으로 표준연, 화학연, 과기원, 포항공대, 연세대, 이화여대, 단국대, 서울대, 삼성종기원, 인실리코텍 등 국내 산학연 연구자들이 협력해 개최한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는 아시아 및 구미 16개국에서 약 200명의 연구자가 참석해 계산방법론, 재료 구조 모사, 차세대 전자소자용 산화물 등 9개 주제로 총 1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economist@fnnews.com이재원기자
2007-09-11 13:09:53기초과학연구원(IBS) 수리및계산과학연구단 의생명수학그룹 김재경 연구책임자(CI·사진)가 응용수학 분야 최고 권위인 '산업응용수학회 리뷰(SIAM Review)' 편집위원으로 선정됐다. SIAM 리뷰가 1959년 창간한 이후 아시아 소속 연구자가 편집위원으로 선정된 것은 김재경 CI가 최초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2024-11-13 19:23:09[파이낸셜뉴스] 기초과학연구원(IBS) 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 의생명 수학 그룹 김재경 연구책임자(CI)가 응용수학 분야 최고 권위인 '산업응용수학회 리뷰(SIAM Review)'의 편집위원으로 선정됐다. SIAM Review가 1959년 창간 이후 아시아 소속 연구자가 편집위원으로 선정된 것은 김재경 CI가 최초다. 김 CI는 13일 "응용수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국내 우수 연구자들이 국제적으로 진출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김 CI는 2025년 7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SIAM 연례 학회에 한국인 최초 기조 강연자로 초청됐다. 이는 해당 분야에서 연구의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차후 전 세계 연구자들과 협력 기회를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 CI는 수학으로 의생명과학 분야 난제 해결을 위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대표적으로 미국식품의약국(FDA) 신약 승인 가이던스에서 발견된 오류를 해결하고, 생체시계 연구에서 60년간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해결한 성과가 있다. 최근엔 과 학교양서 '수학이 생명의 언어라면'을 집필하고, IBS 연구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과학문화 확산 및 후학 양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도 있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2024-11-13 10:48:57"도대체 오차가 이렇게 큰 이유가 뭡니까." 지난달 말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성장률 예측에 실패했다'는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정확한 숫자를 맞히지 못할 경우 시장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비판이다. 여야를 막론한 의원들의 추궁에 이창용 한은 총재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한은의 예상은 엇나가고 있다. 지난 4월 발표된 1·4분기 성장률 속보치(1.3%)는 당초 예상치(0.6%)를 두 배 넘게 웃돌았다. 지난달 공개된 3·4분기 성장률도 기존 예상(0.5%)과 비교하면 5분의 1 토막이 났다. 전망 모형의 정확도에 물음표가 달린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경제전망은 단순한 숫자 맞히기가 아닌, 일종의 스토리텔링이다. 한은이 경제전망과 그 전제, 이유 등을 상세하게 공유할수록 가계·기업 등 각 경제주체는 한은의 결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경제여건이 달라짐에 따라 통화정책이 어떻게 변화할지 체계적으로 예측하게 된다. 중앙은행이 많이 공유할수록 시장과 정책 간의 연결고리가 긴밀해지는 것이다. 핵심은 소통이다. 외부요인이 바뀌면 전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전망 오차가 확대됐다는 것은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오차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더 많이 소통하는 것이 전망의 '진짜' 목적이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예측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적극적인 전망에 나섰다. 지난 2007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경제전망 발표 횟수를 연 2회에서 4회로 늘리고, 경제전망요약(SEP)을 도입했다. 영란은행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물가상승률 등의 주요 경제지표에 대한 분기별 전망경로를 공개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 한은이 분기별 전망을 새롭게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단순히 전망이 '틀렸다'는 것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전망은 자연과학이 아니다. 1970년대 영국 재무장관 데니스 힐리는 경제전망을 '부분밖에 알려지지 않은 과거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현재를 통해, 알려야 알 수 없는 미래를 추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망을 위한 전망'을 한다면 분기 전망이 아니라 연간 전망만 하면 될 일이다. 다시 국감장이다. 이 총재는 "전망을 더 개선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답했다. 한은이 경제분석 프로세스를 더욱 고도화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한은이 단순한 '계산기'가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비판은 예측과 실제 데이터가 어긋났음에도 한은이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을 때 이뤄져야 한다. 숫자 맞히기에 지친 한은이 다시금 소극적인 전망에 나선다면 시장의 혼란은 오히려 더욱 커진다. eastcold@fnnews.com
2024-11-12 18:29:00키오스크 대중화 시대다. 요즘엔 식당에서도 테이블에 설치된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계산한다. 디지털 사회가 실감 난다. 식당 주인은 인건비가 줄고 손님은 간편주문이 가능해졌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을 법하다. 이런 식당에 한 장애인이 방문했다. 그는 식당에 들어선 순간부터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전엔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식당에 들어서면 종업원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았지만, 키오스크 설치 이후엔 알아서 하라는 분위기다. 최근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세미나에 발표자로 참석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이연주 사무총장의 경험담이다. 디지털을 일상생활에 활용하는 것을 아우르는 개념은 '디지털 포용'이다. 한때 반짝 주목을 받았지만 요즘엔 그 열기가 식었다. 인공지능(AI) 이슈에 밀린 탓으로 돌리는 건 변명에 가깝다. 디지털 포용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담론이 협소했는지 되돌아보는 게 우선이다. 근시안적 시각으로 디지털 포용을 바라본 탓에 처음부터 꼬였다. 고령층·장애인·농어민·저소득층 등 4대 정보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개념으로 좁게 보려는 시각을 말한다. 이는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시혜적 접근에 불과하다. 디지털 변혁기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 누구든 디지털 정보에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고 주도적으로 삶을 영위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디지털 포용의 본질적 취지인데 말이다. 디지털 포용을 산업적 관점에서 진흥할 것이냐 규제할 것이냐로 접근하는 이분법 역시 후진적 발상이다. 이런 논쟁은 이미 국내에서 모바일 플랫폼법과 AI기본법을 둘러싸고 반복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디지털 포용법 제정을 둘러싼 논쟁도 예외가 아니다. 산업적 관점으로 접근하면 경제적 실익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거부감만 낳는다. 마찬가지로 시혜적 복지의 하나로 간주한다면 재정부담만 늘리는 포퓰리즘으로 낙인 찍힌다. 디지털 포용은 큰 틀에서 보면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포용도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공존 차원에서 접근할 일이다. 해외 선진국이 이런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미국의 디지털 형평성법은 지역·인종·계층과 상관없이 평등한 디지털 환경 조성을 목표로 한다. 영국의 평등법은 기존 평등임금법, 성차별금지법 등을 평등법으로 통합하면서 디지털 접근 개념으로 확장했다. 일본의 디지털 사회형성 기본법 역시 사람 중심의 디지털화를 주요 정책 지향점으로 제시한다. 이 가운데 유럽 접근성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법은 물리적 디지털 환경에서 장애인의 평등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내년까지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모두 이행해야 한다. 적용대상은 정보통신기술 제품 외에 금융 서비스와 출판 등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른다. 이 법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실용적으로 조합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는다. 특히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법이다. 디지털 접근성이 높은 제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이 법은 처벌과 같은 압박 대신 시정조치를 통해 유연하게 접근한다. EU 기업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수출하는 우리나라도 법 적용의 대상이 된다. 차별과 배제 없는 디지털 포용의 사회적 가치를 표방하는 동시에 경제적 이익도 창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우리의 현주소는 어떤가. 디지털 포용의 넓고 깊은 취지와 달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주요 기관을 맡고 있다. 국민의힘 고동진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박민규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해 새 길을 모색 중이다. 다만 디지털 관련 법안들은 기존 법들 간 중복과 충돌 문제 및 실행방안에 대한 보강작업이 더 이뤄져야 한다. 디지털 포용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기회를 얻고 싶은가. 우리가 올라타려는 게 혹시 소인의 어깨가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jjack3@fnnews.com
2024-11-04 18:42:18우리나라 전력산업이 정치화했다는 우려가 많다. 재생에너지를 지지하는 진보 측과 원자력을 지지하는 보수 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서로 자기편 언론을 동원하여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 국회에서 재생에너지나 원자력을 지원하는 법안들도 경쟁적으로 발의하고 있다. 지난 9월 있었던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공청회에서는 원전 확대에 반대하는 환경단체 회원들이 단상을 점거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전원계획은 소수 관계자만의 관심사였다. 미래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대비하여 장기적인 발전소 건설계획을 세우는 일은 상이한 비용구조와 기술특성을 가진 원자력, 석탄, LNG 발전기들을 잘 조합하여 최소의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한다는 일종의 공학적 최적화의 시각에서 접근하였다. 정치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싸고 편리한 화석연료를 포기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막대한 투자비와 계통보강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재생에너지와 당장의 비용은 싸지만 대형사고 위험과 폐기물 처리라는 사회적 비용이 잠재해 있는 원전 사이에 선택의 문제가 닥친 것이다. 이 문제도 두 전원의 비용과 특성을 정확히 계산하여 과학적으로 최적해를 도출하면 되는데 왜 정치가 끼어드느냐고 물을 수 있다. 실제로 재생에너지나 원전 지지자들은 서로 자기들 주장은 과학이고, 상대방 주장은 정치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과학이 언제나 모든 답을 줄 수는 없다. 당장 높은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최우선적으로 보급할 것인지, 아니면 일단은 비용이 낮은 원전을 확대하고 사고나 폐기물 처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비용은 미래로 넘길 것인지의 선택은 개인적 가치판단을 반영한다. 게다가 원전사고의 사회적 비용 자체를 정확히 계산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중대사고 빈도가 너무 낮아 사고확률을 통계적으로 추정하기 어렵고, 반대로 사고 시 피해가 너무 광범위하여 그 피해액을 객관적으로 산정하기도 힘들다. 그러다 보니 원전피해를 전액 보상해 주는 보험도 없다. 결국 사고 위험에 대한 주관적 인식과 성향에 따라 개개인의 태도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구성원의 선호가 다른 상황에서 집단적 선택을 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전력산업의 정치화는 피할 수 없다. 관건은 우리나라가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정치적 역량이 있느냐이다. 국민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효율적으로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도록 정치적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데, 최근 양상을 보면 오히려 정치권이 에너지전환 문제를 상대방을 공격하는 정쟁의 도구로 삼으면서 갈등을 키우고 있다. 그 결과 정권에 따라 전원계획이 재생에너지와 원전 사이에서 널뛰기를 한다. 2021년(탄소중립위안)과 2023년(10차 전기본) 사이에 2030년 신재생에너지와 원전 발전비중 목표가 8%p 이상 뒤바뀌었다. 백년대계로 접근해야 할 전원계획을 수년 사이에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것이다. 당연히 비효율과 낭비가 따른다. 정치화한 전력산업이 정쟁의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의사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소수 관료와 외부전문가 중심으로 결정되는 구조는 정치적 압력에 취약하다. 에너지산업 전반에 대한 장기계획 수립과 규제를 전담하는 상시적 정부조직을 만들되 독립성 제고를 위해 합의제 행정기관, 즉 위원회 형태를 취하고 충분한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여 자체적인 연구와 정책개발 역량을 갖추게 해야 한다. 전기요금 규제도 이 위원회가 맡아 원칙에 충실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물론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사태를 보면 위원회 형태라고 정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의사결정의 전문성·연속성·투명성이라는 측면에서 차선책이 될 수 있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2024-10-31 18:2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