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국정농단의 약발이 4년으로 끝나려는 모양이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대통령을 파면했다. 5월 치러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홍준표 후보를 가볍게 눌렀다. 촛불혁명이 가져온 손쉬운 승리였다. 약발은 2020년 4월 총선에서 절정에 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과반을 훌쩍 웃도는 의석을 장악했다. 이후 민주당은 국회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했다. 부동산 관련 법안,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 빛의 속도로 처리됐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론이 확 달라졌다. 총선 끝나고 아직 1년도 안 됐는데 말이다. 이재명 경기 지사는 지지율은 바람과 같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바람이 순풍일 땐 신이 나고 역풍일 땐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 민주당의 처지가 그렇다. 그러니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 등 지도부가 줄줄이 머리를 숙이는 거 아니겠는가. 바람 방향이 바뀐 이유가 뭘까. 부동산 실책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특히 청년들은 조국, 윤미향, 박원순, 김상조, 박주민 등의 위선에 질린 듯하다. 미국까지 한국 인권과 부패를 문제 삼을 정도니 말 다했다.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은 지난주 "내로남불 자세도 혁파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어느새 민주당은 '내로남불당'이 됐다. 한국 정치를 보면 늘 떠오르는 책이 있다. 원로 진덕규 전 교수가 쓴 '한국정치의 역사적 기원'이란 책이다. 2002년 초판이 나왔는데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분석은 우울하다. 진 전 교수는 한국 정치에 '집요한 저류'가 있다고 본다. 그중 하나가 통치 과정에서 피지배층을 배제하는 것이다. 그 결과 "통치는 단순히 지배세력들 사이의 권력 점유를 위한 극심한 권력투쟁"으로 변질됐다고 본다. 요컨대 한국 정치는 민생 경쟁이 아니라 권력 쟁취를 향한 '그들만의 리그'라는 것이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20년 집권론을 편다. 그는 주간 '시사인'과 인터뷰에서 "독일이나 영국이나 또는 북유럽 국가들에서 자리 잡은
임기 말 문재인정부의 국정 마이웨이 기조가 뚜렷하다. 온갖 불협화음에도 답이 정해진 길인 양 내닫고 있다. 최근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 파동이 이를 보여주는 단면도다. 여권이 검찰개혁(이라고 쓰지만, 야권은 검찰장악이라고 읽는다)을 내부 이견조차 배제한 채 '무소의 뿔'처럼 밀어붙일 징후라는 점에서다. 문제는 국정 전 분야에서 일로매진한 결과가 신통찮다는 사실이다. 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전부터 각종 명목의 현금 수당을 늘리면서 줄기차게 소득주도성장론을 실험했다. 하지만 마차가 말을 끄는 식의 '족보 없는' 정책을 고집한 대가는 자못 심각하다. 지난달 말 통계청의 '2020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자. 재정을 풀면 가계소득이 늘어 소비가 살아나고, 경제가 성장하리라는 기대는 신기루였음이 드러났다. 소득 하위 1분위(-13.2%)와 2분위(-5.6%) 가구의 근로소득은 현저히 감소했다. 반면 코로나19 여파에도 최상위 20%를 점하는 5분위의 근로소득은 1.8% 늘었다. 결국 취약계층을 돕는다면서 돈을 풀었지만 소득 격차만 되레 벌렸다는 뜻이다. 더욱이 평균소비성향(69.6%)도 지난해 같은 분기 대비 1.7%포인트 떨어졌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으로 이전소득이 늘어난 상위 소득층도 이를 함께 늘어난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는 데 충당하면서 경기 진작 효과도 없어진 셈이다. 가톨릭 교단에선 일부러 쓴소리를 전담하는 '악마의 변호인'을 둔다. 그릇된 집단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사퇴한 이후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이 역할을 하는 계보는 사실상 끊어졌다. 당·정·청 내부에 직언을 하는 이가 없으니, 정책 헛발질도 멈추지 못하는 형국이다. 임기 말 정부의 제동장치가 또 고장 난 건가. 사표를 냈던 신현수 민정수석이 엉거주춤 복귀한 이후 여권의 검찰 힘빼기는 더욱 탄력이 붙었다. 지난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설치하느라 폭주했던 거대 여당이었다. 추미애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의 핵심은 일부 일탈 직원의 땅 투기가 아니다. 공룡조직 LH가 안고 있는 비정상적 구조가 문제이다. 본질적으로는 LH가 주도하는 공공주도 개발의 모순이 임계점에 달하면서 터진 것이다. LH는 지난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합병해 탄생한 공기업이다. 직원 9500여명에 자산 규모만 184조원에 이른다. 합병 당시 정부는 LH에 3대 부동산 특권을 몰아줬다. 땅을 강제로 사들이는 토지수용권, 신도시 등 택지 개발을 좌지우지하는 독점개발권, 논밭이나 그린벨트 등 땅의 용도를 바꿀 수 있는 용도변경권이 그것이다.세계 어느 나라, 어떤 기관에도 없는 싹쓸이 특권을 쥐여주면서, 집 없는 서민을 위해 싸고 좋은 집을 지어 공급해달라고 주문했다. 무뇌아적 발상이다. 내부통제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졌다. 대한민국 부동산계의 '슈퍼 울트라 갑'으로 군림했다. 바야흐로 'LH 불신지옥'이다.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LH를 빗댄 각종 패러디가 나돌고 있다. 'LH'와 한글 '내'의 글자꼴이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한 조롱이다. 'LH로남불'(LH가 하면 노후준비 남이 하면 불법), 'LH땅 LH산'(LH 땅은 LH가 산다), 'LH부자들(내부정보를 활용한 부자들)' 같은 식이다. 시중에선 LH가 주도하는 공공개발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안 믿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과했지만, LH를 고쳐서 3기 신도시와 2·4 공급대책을 계속 밀고 나갈 요량이다. 정치권은 본질과 무관한 특검 타령이다. 국민들이 LH 주도 부동산정책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렸는데도 딴짓이다.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의가 수용된 식물장관이다. LH 사장도 공석이다. 4·7 보궐선거 이후 변 장관이 물러나게 되면 사실상 '변창흠표 공급대책'으로 불린 2·4 대책은 공중에 뜰 판이다. 어차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지 않겠나.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주무 장관과 사장의 리더십 공백 앞에서 갈대처럼
1984년생 제이디 밴스는 미국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전도유망한 변호사다. 이 반듯한 백인 청년은 오하이오 출신으로 그곳에서 평범한 공립학교를 나와 해병대를 거쳐 이라크 파병부대 전투원 생활까지 했다. 예일대 교수들은 이 이력에 입을 쩍 벌렸다. 해병대에서 번 돈을 밑천으로 입학한 오하이오주립대 시절 구직 면접을 위해 그가 고른 복장은 해병대 전투화와 군복 바지였다. 기겁한 면접관의 표정을 보고 나서야 자신의 의상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밴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엄마 배브를 알아야 한다. 아들 밴스가 익숙해질 만하면 같이 살던 남자를 전남편으로 만드는 사람이었다. 간호사로 있으면서 마약을 상습복용하다 어느 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중환자실을 휘젓고 다닌 뒤 병원에서 잘리고 만다. 배브의 부모, 그러니까 밴스의 외조부모는 애팔래치아 남부 산골 켄터키 잭슨 출신이다. 장전된 총을 끼고 살았다. 먼저 싸움을 걸진 않으나 모욕을 당했을 땐 전쟁이 시작되는 건 물론이다. 부부 사이도 예외가 아니다. 외할머니는 술주정을 부리다 쓰러져 자던 할아버지 몸에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붙였다. 할아버지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밴스의 외조부모는 1940~195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찾아 23번 국도를 따라 북동부 공업지대로 터전을 옮긴 첫 세대다. 이들 백인노동자 계층을 빗대어 부르는 명칭이 힐빌리(Hillbilly)다. 밴스는 강인한 정신력의 외할머니 손을 부여잡고 극적으로 엄마의 덫에서 빠져나온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힐빌리의 노래(2016년)'를 펴냈다. 힐빌리의 슬픔과 분노가 핵심 기반인 트럼피즘은 이번 대선에서 예상을 뒤집고 더 강고한 생명력을 보여줬다. 곳곳에서 펼쳐진 박빙의 접전은 미국의 심각한 분열상을 다시 각인시켰다. 23일(현지시간) 비로소 공식 확정된 조 바이든 당선인이 치유와 통합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은 운명이다. 지독한 말더듬이 7세 소년이 수녀 선생님에게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말한 이후 7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