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포퓰리즘 선거전과 중우정치인터넷이 일군 디지털 생태계가 유토피아는 아니다. 1989년 월드와이드웹(WWW)을 창안한 팀 버너스리의 지적이다. 그는 '팀 버너스리, 이것은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란 책에서 "현재 디지털 세계는 우리의 '의도'가 아니라 터무니없는 헤드라인이나 재미있는 밈처럼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실제로 웹사이트나 소셜미디어에서 자극적 제목과 선정적 섬네일이 판친 지 오래다. 6·3 지방선거 본투표날이 박두했다. 선거전 초반 거대여당의 압승이 점쳐지던 판세였다. 이후 경합지역이 늘어나는 여론의 추이도 감지됐다. 다만 민심을 뒤흔든 건 정책 경쟁이 아니었다. 후보자들이 방송 토론을 기피하고 유튜브 홍보전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인기몰이를 하느라 진실 규명은 뒷전으로 밀려난 꼴이었다. 버너스리가 경계했던 '디지털 디스토피아'의 한 단면도처럼. 부자 몸조심이라고 해야 할까. 선거전 초반 지지율이 앞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토론에 부정적이었다. 이로 인해 부산을 제외한 주요 격전지에서 TV토론회는 1회 토론이 전부였다. 공직선거법 규정을 가까스로 지킨 셈이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 TV토론회는 많게는 5차례 열렸지만, 이번엔 단 한 번이었다. 그것도 내심 낮은 시청률을 바라는 양 심야시간대인 28일 밤 11시부터 2시간 동안 열렸다. 그 대신 장외 공방과 유튜브 쇼츠(3분 이내 짧은 동영상) 홍보전은 불을 뿜었다. 특히 민주당 정원오 후보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간 서울시장 선거전이 그랬다. GTX-A 삼성역 구간 '철근 누락' 공방이 단적인 사례다. 이재명 대통령이 엄호사격하듯 안전점검을 지시하는 등 여권과 정 후보 측은 서울시의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오 후보 측은 지난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철근 누락과 관련한 51개 내용을 국토교통부 산하 국가철도공단에 전달했다고 반박했다. 애초 외곽에서 서로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공개토론으로 유권자들의 판단을 구하는 게 정도였다. 물론 후보 입장에선
손성진 칼럼
초귀족노조의 본색삼성전자 노조가 권력적 노조의 본색을 보여주고 있다. "회사를 없애 버려야 한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는다. 노조가 기업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비뚤어진 시각이다. 초기업노조가 말 그대로 기업 위의 노조라는 뜻인지, 잠시 헷갈린다. 기업 위에서 군림하는 한국 노조의 그릇된 실상을 삼성이라는 일류 기업 노조에서 확인한 것은 씁쓸하다. 노동조합은 19세기 산업혁명과 더불어 태동하여 합법화됐다. 그러나 완전한 법제화를 통한 노동권 보장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지연된 시간, 즉 노조의 비활성화 기간에 근대 유럽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물론 노동자의 희생이 따랐다. 역으로 노동권의 완전한 확립이 앞당겨졌다면 발전은 그보다 더뎠을 수 있다. 1·2차 세계대전으로 철저히 파괴된 독일 경제가 단기간에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노조 활동이 미약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분석이 있다. 이는 한국의 경우에도 부합된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룬 한강의 기적에는 노조의 비활성화가 작용했다. 물론 노동자의 권리와 권익은 마땅히 보장받고 신장되어야 한다. 희생을 자양분으로 삼은 성장과 발전의 의미는 반감되고 퇴색된다. 삼성의 선대 경영주들은 이런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수십년 전의 시점에서 먼 미래를 위해 잠시 노조 활동을 억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연유에서 삼성그룹의 노조 활동은 그동안 미미했다. 사측의 억제책이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온당치 않음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노조 결성과 활동을 막으려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오늘날의 삼성이 존재하는 데 '약한 노조'가 기여한 바가 적지는 않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 반열에 진입한 뒤 노조 활동도 비로소 수면으로 노출될 수 있었다. 삼성그룹 최초의 노조는 겨우 15년 전인 2011년 설립된 금속노조 삼성지회라고 한다. 그만큼 늦었다. 노조원의 권익은 당연히 보장돼야 하며, 어떤 국가나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노조는 철저히 법적 보장과 지원을
노동일 칼럼
지방선거의 교훈은 '정쟁'이 아닌 '민생'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지역 일꾼을 뽑는다는 지방선거의 본질은 중앙 정치권의 개입으로 퇴색한 지 오래다. 특히 이번에는 전현직 대통령까지 참전하는 '정치과잉'이 두드러진 선거였다. 오세훈 서울시장, 추경호 대구시장 당선으로 야당이 전패는 면했지만 전체적으로 여당 승리, 야당 패배로 귀결되었다. 선거가 끝난 지금 대한민국에 시급한 것은 선거 과정에서 분출된 정치과잉의 에너지를 가라앉히는 일이다. 여야 모두 국민의 삶을 먼저 돌보는 '안정된 국정운영'의 정상 궤도로 속히 복귀해야 한다. 문제는 선거 과정의 격랑이 계속되거나 오히려 증폭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다. 선거 당일 서울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사상 초유의 오점을 남겼다. 준비된 용지가 소진되면서, 많은 유권자가 발길을 돌리거나 밤늦게까지 대기해야 했다. 국민의 가장 신성한 권리마저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부실한 선거 관리는 그 자체로 정치권 갈등의 기폭제가 되었다. 선거소송 등으로 후유증이 얼마나 오래갈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투표 못한 유권자 숫자, 동일한 시점에서 유권자의 의사가 집약되어야 한다는 원칙의 훼손, 출구조사 결과를 접한 유권자 표심의 왜곡 등 따져야 할 일이 많다. 오 시장 당선 여부나, 선거법을 들먹이며 일축할 사건이 아니다. 선거 이후 정국의 뜨거운 감자는 단연 이재명 대통령의 공소취소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이다. 법치주의 원칙과 정치적 거래의 정면충돌 양상은 사법적 영역마저 진영 논리의 전장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공소취소를 위한 특검 논란은 향후 국정 현안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공산이 크다. 고스란히 국정운영 동력의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공소취소 특검법안이 선거정국의 분수령이 되었고, 국정운영의 성공이 미래 안전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돌아보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의 권력지형 변화 역시 격랑을 예고한다. 선거 결과에 따른 책임론 및 정국 주도권 향배와 맞물려 당 내부에서는 정청래 대표 교체 여부를 둘러싼 파열음
최진숙 칼럼
문제는 젊은이 일자리변방의 비주류 리서치기관이 일요일 저녁 이메일 뉴스레터에 쓴 미래 시나리오가 미국 증시를 발칵 뒤집을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을 것이다. 설립 3년차 신생 리서치회사 시트리니가 최근 자사 플랫폼을 통해 구독자에게 공개한 '2028 글로벌 지능위기' 보고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글 작성을 주도한 시트리니 창립자 33세 제임스 반 겔런의 이력은 독특하다. 생물학, 심리학을 전공한 병원 구급대원 출신으로 각종 매체와 채널에서 금융투자 칼럼을 썼던 인물이다. 보고서는 정교한 분석 리포트라기보다 장문의 메모에 가깝다. 인공지능(AI)이 사무보조로 활용된 지 3년이 흐른 2028년에 쓰인 회상형 에세이다. 인간의 지능을 AI가 어느 정도 대체한 시점으로 상정된 시간이 2028년이다. 'AI 멸망 소설'인 건 아니라고 밝혔지만 글 대부분은 'AI 디스토피아'에 맞춰졌다. 컴퓨팅 자산을 가진 자본가는 부가 폭증할 수밖에 없는데 노동비용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령 GDP' 개념이 나온다. AI로 생산성이 올라가 이익은 크게 늘지만 소득은 사람에게 가지 않고 소비는 돌지 않는다. 숫자는 성장하지만 체감경제는 죽었다는 의미로 유령 같은 국내총생산(GDP)을 언급한 것이다. 그리하여 2028년 6월 미국 실업률은 10%까지 뛰어오르고 주가는 고점 대비 40% 추락한다. 죽은 소비는 다시 산 기업을 잡는데, 이로 인해 회사는 줄도산하고 중산층은 몰락의 길을 간다는 것이 시트리니 시나리오다. '이게 가능한가'라는 냉정한 분석도 하기 전에 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메모가 유포된 다음 날 월요일 아침 보고서에 언급된 관련 종목이 줄줄이 폭격을 맞았다. 위기 전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화 '빅쇼트' 주인공 마이클 버리가 글을 공유했다는 사실도 공포에 힘을 보탰다. 보다 못한 백악관이 보고서는 공상과학일 뿐이라고 정리하는 사태까지 이른다. 소형 리서치회사의 메모에 백악관까지 참전한 사건이 됐다. 과도한 설정이며 극한의 상황 전에
조창원 칼럼
마스가, K조선 '판도라 상자' 되나2000년대 후반 한국 조선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두 가지 빅 이벤트가 있었다. STX그룹은 중국 다롄에,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비크에 초대형 조선소를 세웠다. 한국 내 조선소 부지가 워낙 작아 아예 해외에 매머드급 도크를 짓자는 전략이었다. 목표는 원대했다. 해외의 저임금 노동력과 대규모 설비를 바탕으로 글로벌 발주를 싹쓸이하겠다는 야심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STX 다롄 조선소는 조 단위의 자금을 쏟아부어 해양플랜트 단지를 완성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와 해운 불황이 덮쳐 발주가 끊겼다. 현지의 숙련인력 부족과 품질불량 및 중국 당국의 지원조건 불일치 등도 발목을 잡았다. 한진 수비크 조선소 역시 금융위기발 발주 가뭄에다 품질 문제, 노사 분규, 부품조달 차질로 홍역을 치렀다. 해외 직접투자는 결국 모기업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한국 조선업의 대표적인 해외 직접투자 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이제 한국 조선업은 미국과 협력하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통해 해외 직접투자에 또 나선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업 발전의 모멘텀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생길이 훤히 열렸다. 우선, 투자 불확실성이다. 2000년대 STX와 한진의 해외 투자는 현지에 처음부터 새로 시설을 짓는 그린필드 방식이다. 마스가의 경우 미국 필리 조선소를 인수해 추가 투자하는 브라운필드 방식이다. 언뜻 보면 브라운필드 방식이 리스크가 낮아 보이지만 꼭 그렇진 않다. 배를 만드는 시설 구조가 낡았다면 아무리 리모델링해 봤자 건조역량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미국 조선소 투자는 브라운필드와 그린필드가 혼합된 방식으로 추진될 것이다. 돈이 더 들어갈 것이란 얘기다. 미국이 한국을 조선업 협력의 단독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각서도 없다. 우리가 막대한 투자를 했다고 독점과 같은 수준의 사업권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것이란 낙관은 순진한 생각이다. 미국은 해양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국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