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칼럼
이혜훈 장관 후보와 '모두의 대통령'모두가 놀랐다. 이혜훈 전 의원을 이재명 정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결정을 접하고서다. 처음 기획재정부에서 예산기능을 분리하여 대통령 혹은 총리 직속의 예산처 신설 소식을 접했을 때 많은 우려가 나왔다. 예산 기능을 따로 떼내는 조직개편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정통관료들 탓에 정책을 마음대로 펼치지 못했다는 앙금이 있다. 경기지사 시절 재난지원금, 지역화폐 등을 놓고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와 설전을 벌였다. 경제부총리 출신 김동연 경기지사도 2021년 대선후보 시절 "기본소득 철학도 모르는 듯하다"며 이 대통령의 대표 브랜드를 공격한 바 있다. 예산처 신설은 이 대통령의 숙원사업이라 할 수 있다. 정통관료 아닌 정치인 장관을 임명할 것이라는 관측도 그 연장선이다. 이른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는' 여당 정치인은 확대재정에 관한 대통령 뜻을 반영할 게 분명하다. 여당 내 후보군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후보자 지명에 애초 강성 지지층 등 여권의 충격이 더 컸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이 내포한 정치적 의도는 분명하다. 보수진영에 균열을 내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시장 선거용이라는 해석도 들린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이 장관'이 편성한 예산이라면 야당이 '이재명 표' 예산이라고 시비하는 게 멋쩍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이 후보자 지명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는 중이다. 이 후보자는 이른바 '윤 어게인' '탄핵반대' '부정선거론'의 주도적 인물이었다. 그가 이 대통령 한마디에 공개적인 반성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동안 금기시했던 '계엄은 내란'이라고 분명히 지칭했다. 막말, 갑질 등에 이어 결혼한 아들의 혼인신고를 미루는 '위장미혼'(위장이혼이 아니다)을 통해 아파트에 당첨된 사실도 공개되었다. 이 후보자에 대한 폭로가 이어질수록 역풍이 야당을 향해 부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런 사람을 다섯번이나 공천한 게 국민의힘 아니냐는 반문이 나온다. 1
구본영 칼럼
AI시대의 젊은 그대, 희망 잃지 말길다시 새해가 밝았다. 김종길 시인은 고달픈 처지일망정 꿈을 갖고 한 해를 맞이하라고 했다. 명시 '설날 아침에'에서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고운 이빨을 보듯…"이라고 읊었다. 하지만 최근까지 통계로 접한, 열악한 청년층 고용지표로 인한 잔상 탓일까. 주위에서 마주치는 2030세대의 어깨는 왠지 처져 보인다. 청춘들이 미래를 향한 희망마저 잃고 있지 않은지 걱정이 앞선다. 지난해 동남아·남미·아프리카 등 지구촌 곳곳에서 불공정한 현실과 생활고에 절망한 청년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난해 8월 인도네시아 청년 시위가 기폭제였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스페인·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Z세대(2030)의 크고 작은 시위가 꼬리를 물었다. 나라별로 다소 다르지만, 공통의 불만요인은 '청년 일자리 부족'이었다. 게다가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 혁명'이라는 문명사적 전환기다. AI 기술이 일자리를 위축시킨다는 가설은 이미 실증됐다. 청년층에는 설상가상이다. 아마존은 이미 사무직 3만명을 감원키로 했다. 국내도 AI발 고용한파의 영향권이다. 지난해 공인회계사시험 합격자 중 600명이 실무 수습기관을 배정받지 못했을 정도다. 그러니 2030세대가 처한 현실이 여간 안쓰럽지 않다. 국가데이터처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월 비경제활동인구 중 20대 '쉬었음' 인구가 40만5000명이었다. 30대 '쉬었음' 인구는 31만4000명으로,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11월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비경제활동의 사유로 '쉬었음'을 꼽는 청년 비율이 늘고 있다면 국가적으로 암울한 징후다. 질병 등 특별한 사유도 없이 구직 의욕조차 잃고 '그냥 쉬는' 상태로 빠지는 미래세대가 늘고 있다는 뜻에서다. 더욱이 지난해 6월부터 청년층과 60세 이상 고령층 경제활동참가율이 역전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그러니 요즘 SNS에 '전업 자녀'란 자조 섞인 유행어까지 오르내리고 있을 법하다. 이는 본래 코로나 팬데믹 시기 중국에서 등장한 신조어다. 취업시장이 얼어붙자 고향집
손성진 칼럼
맹목과 극단의 위험사랑에 눈이 멀면 어떤 허물도 허물로 보이지 않는다. 바로 맹목적 사랑이다. 실체를 감춘 상대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은 줄 안다. 결론은 파국이다. 철학자 칸트는 맹목을 '개념 없는 직관'이라고 했다. 직관은 감정으로, 개념은 이성으로 치환할 수 있다. 맹목에 빠지면 이성과 판단력을 잃고 정의와 불의를 분간할 줄 모르게 된다. 국가와 사회에서 맹목적 행동은 집단적 광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권력이라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정치의 선동 때문이다. 맹목은 지지자가 만들고, 정치는 맹목을 자양분으로 자란다. 아이돌그룹은 팬덤의 맹목적 사랑으로 부귀를 얻는 데 그치지만, 정치는 다르다. 세상을 권력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탓이다. 맹목은 괴물정치를 탄생시켜 나라를 혼란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키르케고르는 감정에 휩쓸려 무분별하게 맹신하는 태도의 위험성을 '맹목적 환호'라고 했다. 집단의 환호에 매몰되면 어떤 충고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은 예로 설명했다. "한 극장에서 멋진 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지배인이 나타나 관객들에게 외쳤다. '극장에 불이 났습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관객들은 멋진 쇼가 곧 공연된다는 것에만 마음이 쏠려 무시했다. 지배인은 거듭 대피하라고 했으나 더 큰 박수가 쏟아졌다. 마침내 거센 불길이 극장을 삼켜버렸다." 맹목은 정치의 극단화를 부르고, 극단은 또 다른 극단을 부른다. 한국의 정치는 그런 악순환의 고리 속에 있다. 비상계엄은 극단적 선택이었지만 그 전에 이미 우리 정치는 맹목과 극단으로 심하게 얼룩져 있었다. 계엄의 혼란은 끝난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맹목과 극단은 더욱더 확신범이 되었다. 혼란이 잦아들기 어려운 상태다. 극단의 범람으로 중간층은 무시당하고 있다. 목소리 큰 사람들만 득세한다. 진실은 왜곡되고 힘없는 다수의 이익이 침해당한다. 자신만을 선으로 단정하고 상대를 악으로 몰아친다. 대중은 이성적으로 행동하기가 어렵다. 집단적이고
최진숙 칼럼
예고된 석유화학 위기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폭소를 터뜨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로테스크했다. 빈 살만이 자국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배후자로 지목되면서 서방의 비난이 들끓던 시기 둘은 만났다. 지난 2018년 1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홀로 덩그러니 있던 빈 살만에게 푸틴이 팔을 흔들며 걸어간다. 서슴없이 빈 살만의 손을 잡고 고개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웃었다. 서방의 눈엔 무척이나 기이했을 것이다. 빈 살만에게 세계와 대화의 물꼬를 터준 이가 푸틴이라면 그의 체제를 공고히 해준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시진핑은 푸틴의 요란한 제스처가 연출됐던 G20 회의에 같이 있었지만 내내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교감은 이전부터 있었고, 그때도 있었고, 이후엔 더 강해진다. 둘의 관계가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은 지난 2022년 12월이다. 사우디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의 전용기는 빈 살만이 보낸 4대의 전투기 편대의 호위를 받으며 착륙했다. 6대의 곡예비행기들이 녹색 연기를 뿜으며 폭격 퍼레이드를 펼쳤다. 웅장한 세리머니에 세계는 둘을 다시 봤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당시 이들이 체결한 사업 내용이다. 양측의 계약 규모는 500억달러가 넘었다. 그중 대부분이 에너지·석유화학 분야였다. 석유만으론 미래가 없다는 사우디의 절박함은 빈 살만이 실권을 잡기 전부터 있었다. 사우디가 '석유에서 화학으로' 기치를 공식화한 건 2000년대 중반부터다. 사우디 국영 아람코와 사빅이 원유에서 나프타 없이 바로 화학제품을 뽑아내는 기술(CTC) 연구를 그 무렵 시작했고, 기술이 완성된 때가 2020년대 들어서다. 프랑스의 토탈, 미국의 엑손모빌 등 세계 유수 기업들이 이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했다. 숱한 정치적 논란에도 빈 살만의 공로는 이 기술을 상업화하고, 석유화학을 사우디 핵심 전략산업으로 끌어올렸다는 데 있다. CTC 기술의 파괴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원
조창원 칼럼
마스가, K조선 '판도라 상자' 되나2000년대 후반 한국 조선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두 가지 빅 이벤트가 있었다. STX그룹은 중국 다롄에,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비크에 초대형 조선소를 세웠다. 한국 내 조선소 부지가 워낙 작아 아예 해외에 매머드급 도크를 짓자는 전략이었다. 목표는 원대했다. 해외의 저임금 노동력과 대규모 설비를 바탕으로 글로벌 발주를 싹쓸이하겠다는 야심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STX 다롄 조선소는 조 단위의 자금을 쏟아부어 해양플랜트 단지를 완성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와 해운 불황이 덮쳐 발주가 끊겼다. 현지의 숙련인력 부족과 품질불량 및 중국 당국의 지원조건 불일치 등도 발목을 잡았다. 한진 수비크 조선소 역시 금융위기발 발주 가뭄에다 품질 문제, 노사 분규, 부품조달 차질로 홍역을 치렀다. 해외 직접투자는 결국 모기업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한국 조선업의 대표적인 해외 직접투자 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이제 한국 조선업은 미국과 협력하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통해 해외 직접투자에 또 나선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업 발전의 모멘텀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생길이 훤히 열렸다. 우선, 투자 불확실성이다. 2000년대 STX와 한진의 해외 투자는 현지에 처음부터 새로 시설을 짓는 그린필드 방식이다. 마스가의 경우 미국 필리 조선소를 인수해 추가 투자하는 브라운필드 방식이다. 언뜻 보면 브라운필드 방식이 리스크가 낮아 보이지만 꼭 그렇진 않다. 배를 만드는 시설 구조가 낡았다면 아무리 리모델링해 봤자 건조역량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미국 조선소 투자는 브라운필드와 그린필드가 혼합된 방식으로 추진될 것이다. 돈이 더 들어갈 것이란 얘기다. 미국이 한국을 조선업 협력의 단독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각서도 없다. 우리가 막대한 투자를 했다고 독점과 같은 수준의 사업권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것이란 낙관은 순진한 생각이다. 미국은 해양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국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