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칼럼
돈풀기로는 출산 못늘려…'인구'아닌 '삶의 질' 주목할 때■콜먼 교수의 인구론: (근본적) 해법은 없다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의 강연을 들은 건 지난 2023년 5월이었다. 콜먼 교수는 한국을 '인구소멸 국가 1호'로 전망한 세계적 인구학자이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초청 강연에서 그는 저출산의 원인으로 특히 고학력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과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등을 지적했다. 한국은 2750년, 일본은 3000년에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한 그는 급속한 경제발전과 사회변화의 괴리, 가족중심주의 문화와 가부장적 사회 등을 양국의 공통적 어려움으로 꼽았다. 저출산에 따른 국가소멸 위기, 그 원인과 처방 등은 많이 논의되어 왔다. 비혼 출산 등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하고 사교육 지양, 고용안정화 등도 중요한 해법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때 주목하지 않았던 내용이 더 크게 다가온다. 저출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그의 발언이다. "그 방법을 알았다면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한 그는 "다만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해법이 될 수 없다. 일종의 폰지사기나 다름없다"는 말까지 했다. "다른 국가들도 해결하지 못했다. 같은 문제가 있어도 해결하지 못하고 관리되고 있는 수준이다." 콜먼 교수의 인구론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적 키워드는 바로 저출산 현상이 "해결이 아닌 관리 대상"이라는 생각이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국가소멸'이라는 단어가 주는 충격 속에 저출산 논의에서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을 놓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저출산과 인구감소: 진화의 결과? 최근 우리는 두 가지 모순된 걱정을 동시에 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인공지능(AI)과 휴머노이드 로봇이 가져올 일자리 소멸을 걱정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를 걱정한다. 최근 국내 4대 회계법인의 신입 회계사 채용규모가 2019년 1100여명에서 올해 700여명으로 30% 이상 줄어들었다고 한다. 물론 직업이 사라지는 게 아니고 AI가 작업을 대체할 뿐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회계사들
구본영 칼럼
‘풀뿌리 민주주의’가 썩고 있다6월 3일 지방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 모두 전열 정비가 절실하다. 거여인 더불어민주당은 조국혁신당과 합당 찬반 논란으로 시끌벅적하다. 범야권은 한동훈 전 대표 제명 후 국민의힘 내홍으로 후보 난립 조짐이다. 그 와중에 최근 서울시 의원 공천헌금 수수 의혹으로 강선우 의원과 김병기 원내대표가 민주당을 탈당했다. 가히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정치판 풍경이다. 지방자치의 맨살을 드러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건가. 민주당 소속 김경 서울시 의원이 얼마 전 사퇴했다. 강선우 의원에게 2022년 지방선거 공천 때 1억원을 줬다는 녹음이 공개된 지 28일 만이다. 강선우와의 대화 녹음 당사자 김병기도 구설에 올랐다. 그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인 동작구 구의원들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다가 돌려줬다는 의혹을 담은 탄원서가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으면서다. 이 같은 지방선거 공천 비위가 빙산의 일각일까. 요지경 속 주연급인 김경은 경찰에서 "나만 그랬던 게 아닌데 억울하다"고 진술했단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항간에 떠도는 공천헌금 가격표도 전혀 근거가 없진 않을 듯싶다. "구의원은 수천만원, 시의원은 1억원, 구청장·시장·군수는 수억원이 여야 공통 공천헌금 시가"라는 소문이 나돈 지 오래다. 물론 최근 주로 터져 나오고 있는 건 현 여권 쪽 인사들의 공천 비리다. 하지만 야당이라고 더 도덕적일 리가 있겠나. 어느 논객의 말처럼 의원 쪽수가 적은 데다 권력이 없어 공천 비리를 저지를 기회도 적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공천헌금 의혹'에 대해 "'시스템 에러'라기보다는 '휴먼 에러'에 가깝다"고 했다. 금품수수 의혹은 개인의 일탈일 뿐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다분히 강선우·김병기 선에서 꼬리를 자르려는 인상을 준다. 총선·지방선거 등 당 공천 시스템 전반의 문제로 번지는 걸 막으려는 수순으로 비친다는 얘기다. 야당이 제기한 공천헌금 특검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는 것과 같은
손성진 칼럼
검찰개혁보다 급한 정치개혁‘배지'는 왜 그토록 갈망의 대상이 될까. 물론 완장과 같은 권력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김경 서울시의원이 잘 보여줬다. 김경은 '뒷배'가 절실했다. 김경 가족은 전체가 사업을 하는 '사업 가족'이다. 가족회사 7곳이 김경이 속한 상임위원회 소관인 서울시 산하기관들과 수의계약을 통해 수백억원 규모의 용역을 수주했단다. 사실이라면 전형적인 권력형 비위다. 가족들에겐 공천헌금 1억원이 아니라 10억원도 아깝지 않았을 터. '권력자'의 뒤를 캐면 늘 고구마 줄기처럼 비리 의혹이 걸려 나온다. 김병기 의원도 다르지 않았다. 공천헌금을 뒤지니 '배우자 법카 유용', 수사 무마 청탁, 아들 대학 편입, 취업특혜 의혹이 물밑에 잠겨 있다 줄줄이 떠오른다. 배지의 특권으로 행사했을 권력의 갑질. 공천 비위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묻혔을 일이다. 그러면서 공정과 청렴, 정의를 강조해온 김병기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사는 국민들로서는 가증스럽단 말로 부족할 게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경우는 다 열거하기에 지면이 모자랄 정도의 비위 덩어리다. 3번의 배지로는 채우지 못해 이혜훈은 장관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말 그대로 '비위 백화점'인데, 자진 사퇴는 영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장관직은 이혜훈으로서는 인생의 마지막 목적지일 것이다. 국회의원의 권좌, 부정적 수단으로 쌓아 올린 부(富), 그 한편에 비어 있는 명예의 빈자리를 위해선 나라 재상 자리가 여간 탐나지 않을 것이다. 수십년 전이라면 이 정도의 권력형 정치 비위도 유난해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수천억원을 착복한 사건도 있었으니. 세월이 흐르며 소득은 몇배 증가했고 국민의식도 발전했다. 세상은 점점 맑아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겉만 맑아진 것처럼 보이지 속은 그대로 썩어 있다.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즐기고 취해 있었다. 국민들만 모르고 속았다. 1원 단위까지 세금을 내고, 몇 ㎞의 속도위반으로 과태료를 내는 서민들 심정은 허탈 그 자체다. 생각해 봐야 할 점들이 몇
최진숙 칼럼
예고된 석유화학 위기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폭소를 터뜨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로테스크했다. 빈 살만이 자국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배후자로 지목되면서 서방의 비난이 들끓던 시기 둘은 만났다. 지난 2018년 1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홀로 덩그러니 있던 빈 살만에게 푸틴이 팔을 흔들며 걸어간다. 서슴없이 빈 살만의 손을 잡고 고개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웃었다. 서방의 눈엔 무척이나 기이했을 것이다. 빈 살만에게 세계와 대화의 물꼬를 터준 이가 푸틴이라면 그의 체제를 공고히 해준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시진핑은 푸틴의 요란한 제스처가 연출됐던 G20 회의에 같이 있었지만 내내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교감은 이전부터 있었고, 그때도 있었고, 이후엔 더 강해진다. 둘의 관계가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은 지난 2022년 12월이다. 사우디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의 전용기는 빈 살만이 보낸 4대의 전투기 편대의 호위를 받으며 착륙했다. 6대의 곡예비행기들이 녹색 연기를 뿜으며 폭격 퍼레이드를 펼쳤다. 웅장한 세리머니에 세계는 둘을 다시 봤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당시 이들이 체결한 사업 내용이다. 양측의 계약 규모는 500억달러가 넘었다. 그중 대부분이 에너지·석유화학 분야였다. 석유만으론 미래가 없다는 사우디의 절박함은 빈 살만이 실권을 잡기 전부터 있었다. 사우디가 '석유에서 화학으로' 기치를 공식화한 건 2000년대 중반부터다. 사우디 국영 아람코와 사빅이 원유에서 나프타 없이 바로 화학제품을 뽑아내는 기술(CTC) 연구를 그 무렵 시작했고, 기술이 완성된 때가 2020년대 들어서다. 프랑스의 토탈, 미국의 엑손모빌 등 세계 유수 기업들이 이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했다. 숱한 정치적 논란에도 빈 살만의 공로는 이 기술을 상업화하고, 석유화학을 사우디 핵심 전략산업으로 끌어올렸다는 데 있다. CTC 기술의 파괴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원
조창원 칼럼
마스가, K조선 '판도라 상자' 되나2000년대 후반 한국 조선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두 가지 빅 이벤트가 있었다. STX그룹은 중국 다롄에,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비크에 초대형 조선소를 세웠다. 한국 내 조선소 부지가 워낙 작아 아예 해외에 매머드급 도크를 짓자는 전략이었다. 목표는 원대했다. 해외의 저임금 노동력과 대규모 설비를 바탕으로 글로벌 발주를 싹쓸이하겠다는 야심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STX 다롄 조선소는 조 단위의 자금을 쏟아부어 해양플랜트 단지를 완성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와 해운 불황이 덮쳐 발주가 끊겼다. 현지의 숙련인력 부족과 품질불량 및 중국 당국의 지원조건 불일치 등도 발목을 잡았다. 한진 수비크 조선소 역시 금융위기발 발주 가뭄에다 품질 문제, 노사 분규, 부품조달 차질로 홍역을 치렀다. 해외 직접투자는 결국 모기업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한국 조선업의 대표적인 해외 직접투자 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이제 한국 조선업은 미국과 협력하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통해 해외 직접투자에 또 나선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업 발전의 모멘텀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생길이 훤히 열렸다. 우선, 투자 불확실성이다. 2000년대 STX와 한진의 해외 투자는 현지에 처음부터 새로 시설을 짓는 그린필드 방식이다. 마스가의 경우 미국 필리 조선소를 인수해 추가 투자하는 브라운필드 방식이다. 언뜻 보면 브라운필드 방식이 리스크가 낮아 보이지만 꼭 그렇진 않다. 배를 만드는 시설 구조가 낡았다면 아무리 리모델링해 봤자 건조역량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미국 조선소 투자는 브라운필드와 그린필드가 혼합된 방식으로 추진될 것이다. 돈이 더 들어갈 것이란 얘기다. 미국이 한국을 조선업 협력의 단독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각서도 없다. 우리가 막대한 투자를 했다고 독점과 같은 수준의 사업권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것이란 낙관은 순진한 생각이다. 미국은 해양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국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