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칼럼
미리 보는 '검찰 없는 세상'"열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말라." 18세기 영국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이 체계화한 법언(Blackstone's ratio)이다. 현대 형사법의 기본 원칙인 죄형법정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 신중한 수사와 재판을 강조한다. 범죄자의 인권만 중시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덕분에 고문 등 전근대적인 형사사법 절차가 바뀌었다. 검사(국가)의 입증이 불충분하여 실제 범인을 처벌하지 못해도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원칙이 확립되었다. 물론 최선은 아니다. 범인도 모두 잡고 억울한 사람도 없게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범인도 놓치고 억울한 사람도 만들어 내는 경우는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검찰·공수처 수사권 갈등에…감사원 공무원 '13억 뇌물 혐의' 불기소"라는 보도가 있었다. 감사원 간부 A씨는 2013년부터 15억8000여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의혹으로 수사를 받았다. 공수처는 2023년 11월 A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직접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공수처는 보완수사 없이 사건을 검찰로 송부했다. 검찰은 공수처에 보완수사를 요구했지만 공수처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거부했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공수처 사건에 대한 검사의 추가 수사 권한이 명확하지 않다며 기각했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임박한 뇌물 2억9000만원 수수 혐의만 지난해 6월 재판에 넘겼다. 12억9000만원의 뇌물 혐의는 기소하지 못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억울한 사람을 방지하기 위해 놓친 범인이 아니다. 검찰 수사권 박탈, 검찰 해체로 이어진 이른바 '검찰개혁'의 후폭풍이다. 공수처와 검찰의 관계이지만 경찰과 검찰의 관계에서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검사의 보완수사요구권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고 검찰의 보완수사권도 없는 경우 현실화될 결과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2012년부터 서울중앙지검 아동학대·성폭력피해자 국선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정수경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법사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
구본영 칼럼
AI시대에도 강군은 필수다이란 사태는 '강 건너 불'이 아님을 실감했다. 미국과 이란 간 종전협상이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우리에게 계속 불똥이 튀면서다. 호르무즈해협이 가로막히면서 중동산 원유와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다시피 했다. 심지어 석유 부산물인 나프타 공급 애로로 종량제 쓰레기봉투 품귀를 걱정해야 했으니…. 이란전쟁은 한반도 안보지형도 뒤흔들었다. 북한은 지난 6일부터 사흘간 단거리탄도미사일 '화성-11가'(KN-23)를 쏘아댔다. 전자기펄스(EMP)탄·집속탄을 탑재해 한미의 방공망을 겨냥한 시험발사였다. 이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란 사태에서 두 갈래 오도된 결론을 내린 정황으로 보인다. 하나는 핵 무장에 더 박차를 가하겠다는 속셈이다. 핵 보유 전 단계인 우라늄 농축능력만 확보한 이란이 미국의 공격을 받는 걸 보면서다. 다른 하나는 한국을 '볼모' 삼아 이를 피하겠다는 계산이다. 호르무즈해협 인근 산유국들을 인질로 잡은 이란의 전략이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정부가 첨단 과학화 시스템을 도입, 최전방 경계병력을 대폭 줄여나간다는 방침을 내놨다. 일반전초(GOP) 병력(현재 2만2000명)을 장기적으로 4분의 1 수준으로 감축한다는 것이다. 안규백 국방장관은 7일 기자간담회에서 "인공지능(AI)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구축해 6000명 정도가 GOP 선상에서 경계병을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1만6000명의 병력은 첨단 시스템으로 대체한다는 구상이다. AI 기반 과학화 경계시스템 도입 확대는 이론상 가야 할 방향인 건 맞다. 저출생과 병력자원 감소 추세를 감안하면 불가피한 고육책일 수도 있다. 그러나 AI나 로봇으로 경계병력을 대체한다고 하지만, 그 한계도 뚜렷하다. 이란 사태의 전개 과정을 보라. 미국과 이스라엘은 미사일과 공군력 그리고 방공망과 첨단 요격시스템으로 공수 양면에서 이란을 압도했다. 그럼에도 이란의 항복은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이 영토를 점령해 승리의 깃발을 꽂을 지상군을 들여보내지 못했기 때
손성진 칼럼
장동혁의 파안대소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딱 그 모습이었다. 망국 직전에 파안대소하는 왕. 내일 국권이양 도장을 찍는데 왕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피눈물이 나는 백성들은 필시 왕이 정상적 정신상태인지 의심할 것이다. 아니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볼 것이다. 초읽기로 다가오는 보수 궤멸의 위기. 위기가 아니라 몰락이다. 보수의 심장까지 뚫릴 판에 열렬 지지자들은 넋이 나갔다. 만면에 웃음 짓는 모습에 애가 탄다. 밥이 넘어갈까 싶은데, 이해불가다. 제1야당의 폭망은 그 자체로 직무유기다. 그 정도가 아니라 정치의 건강성을 해치는 국력 손괴죄. 거대여당의 폭주에 대한 절반의 책임은 국민의힘에 있다. 정치적 견제력의 완전 상실 책임. 장 대표는 꿈같은 과거 속에 빠져 있다. 꿈이란 미래를 향해야 할진대 지나간 것을 좇으니 몽상에 불과하다. 현재의 광영은 보수의 공적임은 부인하지 못한다. 적화(赤化)의 위기에서 나라를 지켜냈고,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창조한 것도 보수다. 그러나 개발 독재라는 정치행태는 압축성장을 위한 적절한 도구였을지 모르나 희생을 강요했다. 희생은 노동자의 몫이었고, 민주화 수십년 동안 강력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작금의 현실처럼 노조가 나라를 좌우하는 정치적 역전에 이른 것은 일종의 업보다. 나라는 잘살게 됐으나 양극화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겉으론 번드르르해도 속으론 곪았다. 중산층은 무너졌고, 빈부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고속성장의 부작용이 물밑으로 내려오며 급기야 분출하고 있다. 진보 정파와 노조는 그 틈새를 파고들어 세력을 확장했다. 보수가 설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이렇게 된 책임의 3분의 2는 보수에 있다. 지금 보수, 국민의힘은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한다. 잘못을 인식조차 못하고 과거 타령만 하는 불감증. 일종의 확신증이기도 하다. 그러니 무슨 개혁을 논하겠나. 혁신과 탈각(脫却)을 거부하는데 어떻게 민심을 얻겠나. 일부 지지층, 기득권층도 과거의 환상에 젖어 있는 것은 다르지 않다. 기성세대가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일
최진숙 칼럼
문제는 젊은이 일자리변방의 비주류 리서치기관이 일요일 저녁 이메일 뉴스레터에 쓴 미래 시나리오가 미국 증시를 발칵 뒤집을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을 것이다. 설립 3년차 신생 리서치회사 시트리니가 최근 자사 플랫폼을 통해 구독자에게 공개한 '2028 글로벌 지능위기' 보고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글 작성을 주도한 시트리니 창립자 33세 제임스 반 겔런의 이력은 독특하다. 생물학, 심리학을 전공한 병원 구급대원 출신으로 각종 매체와 채널에서 금융투자 칼럼을 썼던 인물이다. 보고서는 정교한 분석 리포트라기보다 장문의 메모에 가깝다. 인공지능(AI)이 사무보조로 활용된 지 3년이 흐른 2028년에 쓰인 회상형 에세이다. 인간의 지능을 AI가 어느 정도 대체한 시점으로 상정된 시간이 2028년이다. 'AI 멸망 소설'인 건 아니라고 밝혔지만 글 대부분은 'AI 디스토피아'에 맞춰졌다. 컴퓨팅 자산을 가진 자본가는 부가 폭증할 수밖에 없는데 노동비용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령 GDP' 개념이 나온다. AI로 생산성이 올라가 이익은 크게 늘지만 소득은 사람에게 가지 않고 소비는 돌지 않는다. 숫자는 성장하지만 체감경제는 죽었다는 의미로 유령 같은 국내총생산(GDP)을 언급한 것이다. 그리하여 2028년 6월 미국 실업률은 10%까지 뛰어오르고 주가는 고점 대비 40% 추락한다. 죽은 소비는 다시 산 기업을 잡는데, 이로 인해 회사는 줄도산하고 중산층은 몰락의 길을 간다는 것이 시트리니 시나리오다. '이게 가능한가'라는 냉정한 분석도 하기 전에 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메모가 유포된 다음 날 월요일 아침 보고서에 언급된 관련 종목이 줄줄이 폭격을 맞았다. 위기 전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화 '빅쇼트' 주인공 마이클 버리가 글을 공유했다는 사실도 공포에 힘을 보탰다. 보다 못한 백악관이 보고서는 공상과학일 뿐이라고 정리하는 사태까지 이른다. 소형 리서치회사의 메모에 백악관까지 참전한 사건이 됐다. 과도한 설정이며 극한의 상황 전에
조창원 칼럼
마스가, K조선 '판도라 상자' 되나2000년대 후반 한국 조선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두 가지 빅 이벤트가 있었다. STX그룹은 중국 다롄에,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비크에 초대형 조선소를 세웠다. 한국 내 조선소 부지가 워낙 작아 아예 해외에 매머드급 도크를 짓자는 전략이었다. 목표는 원대했다. 해외의 저임금 노동력과 대규모 설비를 바탕으로 글로벌 발주를 싹쓸이하겠다는 야심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STX 다롄 조선소는 조 단위의 자금을 쏟아부어 해양플랜트 단지를 완성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와 해운 불황이 덮쳐 발주가 끊겼다. 현지의 숙련인력 부족과 품질불량 및 중국 당국의 지원조건 불일치 등도 발목을 잡았다. 한진 수비크 조선소 역시 금융위기발 발주 가뭄에다 품질 문제, 노사 분규, 부품조달 차질로 홍역을 치렀다. 해외 직접투자는 결국 모기업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한국 조선업의 대표적인 해외 직접투자 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이제 한국 조선업은 미국과 협력하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통해 해외 직접투자에 또 나선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업 발전의 모멘텀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생길이 훤히 열렸다. 우선, 투자 불확실성이다. 2000년대 STX와 한진의 해외 투자는 현지에 처음부터 새로 시설을 짓는 그린필드 방식이다. 마스가의 경우 미국 필리 조선소를 인수해 추가 투자하는 브라운필드 방식이다. 언뜻 보면 브라운필드 방식이 리스크가 낮아 보이지만 꼭 그렇진 않다. 배를 만드는 시설 구조가 낡았다면 아무리 리모델링해 봤자 건조역량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미국 조선소 투자는 브라운필드와 그린필드가 혼합된 방식으로 추진될 것이다. 돈이 더 들어갈 것이란 얘기다. 미국이 한국을 조선업 협력의 단독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각서도 없다. 우리가 막대한 투자를 했다고 독점과 같은 수준의 사업권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것이란 낙관은 순진한 생각이다. 미국은 해양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국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