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으로 시작된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무대 데뷔전이 끝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조기귀국 등 해프닝이 있었지만 이 대통령은 다자 정상회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주요국 정상들과 안면을 익힌 정도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한미 정상 대면이 무산된 게 아쉬운 건 사실이다. 가장 기대하던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를 외교참사라고 규정하는 건 성급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급거 귀국한 사정이 밝혀지면 알게 될 일이다. 워싱턴DC 소재 한국경제연구소(KEI) 스콧 스나이더 소장은 최근 유튜브를 통해 한미 관계 등에 관한 대담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 정치의 약점과 강점을 언급했다. 비상계엄이 우리 정치의 취약성을 드러냈지만 국회의 계엄해제와 탄핵소추, 헌재의 탄핵 인용, 대선까지 불상사 없이 진행된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G7 정상회의 리셉션 등에서도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대한민국의 공고한 민주주의는 국제사회에서도 주시하고 있는 주제임이 분명하다. 다른 날 출연한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연구위원은 이 대통령이 관세 문제 등 쉽지 않은 도전을 앞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칩스 앤 십스(chips and ships)"라는 말로 영어식 운율을 맞추면서 반도체와 조선 분야에서 양국 협력이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 우리가 동북아 정세안정에 미국과 함께 "부담을 나누어 지는(burden sharing)" 역할을 해야 한다는 대목은 특히 주목된다. 좌충우돌처럼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도 결국 미국이 대외적으로 과도한 재정적 부담을 지고 있다는 불만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요구를 방어하기에 급급한 소극적 자세보다 세계 10위권 위상에 걸맞은 적극적 외교가 필요한 시기라는 말이다. 이제 관심은 24~26일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쏠리게 되었다. 한미 정상회담
'경제 대통령'을 기치로 내건 대통령은 많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랬고, 이명박 대통령도 그랬다. 임기 전이나 임기 중에 경제위기를 겪은 대통령들이다. 그때보다 지금의 경제 상황은 나을 것이 없다. 외환위기 때보다 사정이 더 나쁘다는 하소연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신임 대통령이야말로 경제 대통령이 돼야 한다. 국민에게 잘 먹고 잘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대통령은 국민을 잘살게 해줄 의무가 있다. 경제 대통령이 되려면 경제 전문가가 되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경제 석학이 대통령을 한다고 잘할 수도 없다. 대통령이 할 일은 경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에 박식하면 더 좋겠지만, 진정한 경제 대통령이 되려면 이해 조정자 역할을 잘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 이해관계자가 많으면 일이 잘 굴러가지 않는다. 그 일로 인해서 이익을 내거나 손실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내세우며 일의 진척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갈등은 발전을 가로막는다. 갈등은 합리적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부정적 효과가 더 많다. 노사 갈등이 격심한 기업이 잘될 리 없다. 나라 전체로도 마찬가지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생산 기반이 파괴된 독일과 일본이 승전국보다 더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룬 배경에는 정치적 이해집단의 와해가 있었다고 한다. 김태유 교수의 설명이다. 전쟁에 짐으로써 노동조합과 생산자 집단의 저항이 해소되어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반대로 승전국인 영국은 노조가 여전히 존재해 독일과 일본에 뒤졌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도 연관성이 있다. 전후 저임금이 형성됐고 노조가 큰 힘을 쓰지 못할 때라 경영에 걸림돌이 없었다. 1980년대 말 이후 노조운동이 격화됨으로써 한편으로는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됐지만, 경영권의 제약을 불렀다. 기업 활동은 위축되고 결과적으로 경제발전이 더뎌졌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노조는 수많은 정치적 이해집단 중 하나의 예일 뿐이다. 이해집단, 이해관계자들은 조직을
6·3 대선이 이재명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막을 내렸다. 선거전은 극단적 진영 대결 양상이었다. '심리적 내전'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래서인지 관전자의 귀에 쏙 들어오는 수사가 있었다. 즉 "편 가르는 '반통령'이 아닌,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다짐이 그랬다. 이 대통령 득표수는 역대 최다 기록을 넘어섰다. 하지만 득표율은 절반에 못 미치는 49.42%였다. 유권자 절반 가까이가 보수 진영인 김문수·이준석 후보(합산 득표율 49.49%)를 지지했다. 보수·진보가 '5대 5'로 팽팽히 맞선 갈등구도가 반영된 셈이다. 영호남 대치도 그대로였다. 지역별 득표율 그래픽을 보라.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동서 분할 구도가 뚜렷했지 않나. 선거 민심은 이 대통령 측근 말마따나 "참 절묘하다"(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고 해야겠다. 탄핵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했지만, 동시에 이 대통령을 향한 보수와 중도층 일부의 견제심리도 작동했다는 점에서다. 제3자인 외신의 시각도 비슷했다. 며칠 전 미국 NBC방송은 "한국 유권자들은 이 대통령에 대한 친밀감보다는 윤 정부에 대한 분노로 투표를 했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정부는 선거전 시작 전에 김건희 여사의 온갖 구설과 '계엄 자폭'으로 정치적으로 초토화됐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과반 득표를 하지 못했다. 그에 대한 국민 다수의 비호감, 심지어 일각의 '이재명 포비아'도 여전하다는 얘기다. 이는 국민이 승자인 이 대통령에게 '대통합하라'는 역설적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그가 취임하기 전부터 "모두의 대통령"을 자임한 것도 이를 예견한 결과이기를 바란다. 그런 맥락에서 이 대통령의 취임사는 일견 다행스럽다. 관통하는 키워드가 '실용'과 '통합'이어서다. 여야 대표들과의 오찬에서 "모든 것을 혼자 100% 취할 수는 없다"며 타협과 절충을 강조한 대목도 고무적이다. 압도적 국회 권력에다 행정권까지 거머쥔 이 대통령의 일방 독주를 우려하는 측에
"하룻밤 사이 인간 노동력이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될 것이다." 최근 이런 섬뜩한 경고문을 날린 이는 미국 오픈AI 대항마 앤스로픽의 최고경영자(CEO)인 다리오 아모데이다. 정확히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으나 머지않은 일이라고 장담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AI 투입 하루 만에 사무직 일자리 절반이 사라진다. 믿거나 말거나일 수 있겠으나 아모데이의 예상이 국내에서 현실이 된다고 가정해 보자. 머지 않은 어느 날 아침 AI 로봇들이 회사로 들이닥치는 순간 폭망하는 쪽은 현직 정규 근로자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천하의 AI라고 한들 노조의 우산을 받쳐든 기존 인력을 단번에 위협할 초법적 힘은 없다. 아직 시장에 당도하지 못한 미래 근로자, 청춘들에게 돌아갈 자리가 AI 진입 로드맵에 따라 봉쇄됐을 공산이 크다. 대학 졸업장만 쥐고 있으면 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차를 끌고 와 직접 모셔가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후반 '한강의 기적'이 취업전선에도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던 때다. 인사 담당자들은 입사권유 특강 경쟁까지 벌였다. 상경대생이 섭외 1순위였다. 1명당 5~6개 업체가 달라붙었다. 고도성장기 1980년대를 지나며 대규모 대졸 정기공채 시대가 막을 올린다. 기업들이 주로 원하는 인재상은 협력, 인화, 성실 세가지였다. 기업에는 범용 청년인재가 넘쳐났다. '학생들의 선택을 기다립니다'류의 기업 PR광고는 1990년대 전반기까지 계속됐다. "노래방 점수가 몇점이었느냐"가 면접 첫 질문이었다는 인간미 넘치는 회사 이야기가 광고로도 나왔다. 이 훈훈한 풍경이 자취를 감춘 것은 아시다시피 외환위기(일명 IMF)를 겪으면서다. 대졸 신입 채용문이 바늘구멍이 됐고, 청년실업이 뜨거운 이슈가 된 것도 이때부터다. 청년들의 기나긴 고통의 터널은 고학력 출신이 거듭 쏟아져나온 것과도 관련이 없을 수 없다. 풍요의 시기 직장을 골라잡았던 세대의 자녀들은 너나없이 대학에 갔다. 청년실업의 골이 깊어지던 2000년 초반 직장 내 대졸자 비율은 30%, 2
제21대 대통령 선거로 출범한 새 정부의 공식 명칭은 '이재명 정부'다. '국민주권정부'는 별칭이다. 새 정부의 네이밍 숙제가 하나 더 남았다. 경제정책을 상징하는 '∼노믹스'다. 경제정책 브랜드는 비공식적 용어일 뿐이다. 언론에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쉽게 표현하기 위해 만든 게 기원이다. 미국의 '레이거노믹스'가 원조다. 라디오 방송자가 레이건(Reagan)과 이코노믹스(economics)를 합쳐 만든 용어라고 한다. 이후부터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등장할 때마다 관례적으로 등장했다. 한국도 역대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이런 유행을 따라 했다. 대통령 경제관을 가리키는 명칭에는 한 가지 굵직한 패턴이 있다. 대통령의 이름이나 영문 이니셜을 따와 '노믹스'와 결합하는 브랜딩이 주류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역대 정권의 경제 브랜드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DJ노믹스, 노(盧)노믹스, MB노믹스, 근혜노믹스 등 한글과 영문으로 조합한 브랜딩 방식이 대부분이다. 윤석열 정부 초기에는 Y노믹스, 윤노믹스, SY노믹스, 윤석열노믹스 등 여러 대안이 거론된 바 있다. 국가 최고통치자의 이름을 붙여놓으니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 있다. 어렵고 복잡하게만 여겨지는 경제정책이 '∼노믹스'라는 용어로 상품화된다. 그런데 일반 기업에서 상품이나 서비스에 활용하는 브랜딩 작업과 비교하면 단순하다는 느낌이 든다. 큰 고민 없이 대통령의 이름에 경제학이라는 용어를 기계적으로 붙여놓았다는 인상이다. 경제철학의 메시지를 녹여낸 브랜딩이 있긴 하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브랜드는 'J노믹스'다. 이 용어는 문 전 대통령의 이름 첫 자인 '재'의 영문 이니셜 'J'를 따와 만든 용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J커브 곡선'이 뜻하는 함의가 오버랩된다. 수익이나 성과가 초기엔 감소하거나 악화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을 찍고 회복되어 상승한다는 의미를 담는다. 'J'라는 글자 모양 자체가 하락에서 우상향하는 이미지라는 점에서 눈에 확 들어온다.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한 소득주
부동산은 자본과 심리의 용광로다. 시장의 향방을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다. 정책 또한 국민 각자의이해(利害)가 걸린 어려운 문제이다. 애초에 모든 국민이 수긍하는 정책은 불가능하다. 정부는 출범 23일 만에 부동산 돈줄을 전격적으로 눌러버렸다. 그것도 기습적으로 아주 세게. 수도권과 규제지역에 주택담보대출 6억원 이하 제한, 주담대 6개월 내 전입 의무 등이다. '6억 제한'은 대출자 상위 10%를 겨냥한 것으로, 올해 가계대출 연간 총량 증가폭(50조원)을 25% 줄이는 정책의 핵심이다. 서울 집값에 쏠리는 투기 광풍의 정곡을 제대로 짚은 첫 수라고 본다. 왜 그런가. 문재인 정부의 가장 센 부동산 안정대책 중 하나인 '다주택자 대출 전면 금지'(2018년 9월)는 정부 출범 1년4개월 후 단행됐다. 이에 비하면 이재명 정부는 첫 조치가 대출규제이고, 시점도 빨랐다(문 정부가 출범 39일 만에 내놓은 첫 대책은 조정대상지역 확대와 총부채상환비율 10%p 하향이었다). 물론 기습적 규제로 시장은 급랭했고 "현금부자만 집을 사라는 것이냐" "전세 놓고 잔금 치르려 했는데 날벼락"이라는 등의 후유증도 따랐다. 갭투자를 노리던 누군가는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을 것이고, 집값 과열이 진정되기를 바라는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문 정부는 초반에 집값을 잡지 못했다(임기 내 누적 상승률 77%). 정책 결정에 책임 있는 자들은 상황을 오판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책임자 중 한 명이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문 정부의 부동산 통계조작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11명 중 한 명이다. 이들의 잘잘못은 법원에서 판단할 것이다. 그는 부동산정책 실패의 후회와 변론 같은 책('부동산과 정치' 2023년)에서 "나는 문재인 정부가 적기에 더 강한 대출규제와 가계부채 관리에 나서지 못했던 것을 가장 중요한 부동산 실패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세 가지를 후회했는데, 현 정부가 직면한 상황과 매우 유사해 반면교사로 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