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진 칼럼
초귀족노조의 본색삼성전자 노조가 권력적 노조의 본색을 보여주고 있다. "회사를 없애 버려야 한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는다. 노조가 기업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비뚤어진 시각이다. 초기업노조가 말 그대로 기업 위의 노조라는 뜻인지, 잠시 헷갈린다. 기업 위에서 군림하는 한국 노조의 그릇된 실상을 삼성이라는 일류 기업 노조에서 확인한 것은 씁쓸하다. 노동조합은 19세기 산업혁명과 더불어 태동하여 합법화됐다. 그러나 완전한 법제화를 통한 노동권 보장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지연된 시간, 즉 노조의 비활성화 기간에 근대 유럽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물론 노동자의 희생이 따랐다. 역으로 노동권의 완전한 확립이 앞당겨졌다면 발전은 그보다 더뎠을 수 있다. 1·2차 세계대전으로 철저히 파괴된 독일 경제가 단기간에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노조 활동이 미약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분석이 있다. 이는 한국의 경우에도 부합된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룬 한강의 기적에는 노조의 비활성화가 작용했다. 물론 노동자의 권리와 권익은 마땅히 보장받고 신장되어야 한다. 희생을 자양분으로 삼은 성장과 발전의 의미는 반감되고 퇴색된다. 삼성의 선대 경영주들은 이런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수십년 전의 시점에서 먼 미래를 위해 잠시 노조 활동을 억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연유에서 삼성그룹의 노조 활동은 그동안 미미했다. 사측의 억제책이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온당치 않음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노조 결성과 활동을 막으려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오늘날의 삼성이 존재하는 데 '약한 노조'가 기여한 바가 적지는 않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 반열에 진입한 뒤 노조 활동도 비로소 수면으로 노출될 수 있었다. 삼성그룹 최초의 노조는 겨우 15년 전인 2011년 설립된 금속노조 삼성지회라고 한다. 그만큼 늦었다. 노조원의 권익은 당연히 보장돼야 하며, 어떤 국가나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노조는 철저히 법적 보장과 지원을
노동일 칼럼
부동산 시장과 규제의 역설2020년 2월 독일 베를린 주의회는 '월세상한제' 규제를 도입하였다. 천정부지인 베를린시의 임대료를 잡아 서민들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었다. 베를린 시내 약 150만가구의 월세를 2019년 6월 18일 수준으로 5년간 동결하고, 2022년부터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연 최대 1.3%까지만 인상을 허용하는 조치도 따랐다. 주변 시세보다 20% 이상 높은 월세는 법정 상한선에 맞춰 강제로 낮추도록 하는 임대료 강제 인하도 포함되었다. 베를린 임대 시장에서는 임대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였고, 그 결과 신규 임대주택 공급량이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베를린 인근 포츠담 등의 월세가 10% 이상 폭등하는 풍선효과도 생겼다. 법정 상한액만 적은 계약서와 위헌 판결 시 차액을 지불한다는 별도 합의가 포함된 이중계약이 만연해져 세입자의 불안이 더 커졌다. 2021년 4월 독일 헌법재판소는 이 법을 "무효"라고 결정했다. 임대료 규제 입법은 주정부가 아닌 연방정부의 고유 권한이라는 내용이었다. 여파는 컸다. 법이 처음부터 효력이 없었던 것이 되어 세입자들은 그동안의 월세 차액을 한꺼번에 소급 지불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되었다. 서민 주거권 보호라는 정책이 오히려 서민들에게 타격을 가한 것이다. 선의의 역설, 규제의 역설, 시장의 습격 등 여러 용어로 불리는 현상이다. 사회적 약자 보호 등 선의로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대상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한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흔하다. 시장개입의 실패를 상징하는 프랑스 혁명기 로베스피에르의 우유, 인센티브의 역설을 보여주는 식민지 시절 인도의 코브라, 무리한 환경 개입으로 재앙을 초래한 중국 마오쩌둥의 참새 등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고용의 질을 더 악화시킨 비정규직보호법, 강사의 대량해고를 초래한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 단순 노무직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게 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의 실례가 있다. 시장의 경제적 유인(incentives)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 의도와는 정반대로 약자
구본영 칼럼
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는 시대정신광화문(光化門) 현판을 둘러싼 논란이 달아오를 참이다. 정부가 한글 현판 추가 설치안을 공론화하면서다. 지난 1월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후 전문가 토론회와 문체부 누리집 의견 게시판 등 공론장에서 찬반 논쟁이 팽팽했다. 국가 문화 상징물의 이름표를 고치려는 터에 어찌 진통이 없겠나. 김춘수 시인은 한 떨기 '꽃'을 호명하면서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심오한 뜻을 부여했으니…. 광화문은 조선왕조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이다. 조선 500년은 물론 근현대사의 영욕이 교차하면서 소실과 복원이 되풀이됐던 문화재다. 현판은 지난 반세기 사이에만도 세 차례 바뀌어 걸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8년 친필 한글 현판을 달았다. 일제가 훼손하고 6·25전쟁 때 목재 문루와 현판이 불탄 광화문을 이전해 개건하면서다. 당시 큰 흐름을 타던 '한글 전용화' 정책과 맥이 닿아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이 한글 현판 철거를 추진했다. 원형을 복원해야 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박정희 흔적 지우기' 성격도 다분했다. 결국 고종 때인 1865년 경복궁과 광화문 중건을 책임진 훈련대장 임태영이 썼던 한자 현판이 2010년 내걸렸다. 이 '임태영 글씨체' 현판도 목재 균열과 고증 오류 시비를 겪은 뒤 글꼴은 유지한 채 배색을 바꿔 2023년 현재의 현판으로 교체됐다. 이 과정에서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문화유산=원형 복원'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과 한글 현판으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보태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면서다. 이재명 정부가 공론화를 시작한 한글 현판 추가 설치는, 일종의 절충안인 셈이다. 최 장관이 "한글 현판을 추가하면 문화재 원형을 지키려는 정신에 더해 한글이라는 시대적 요구도 포용할 수 있다"고 한 그대로다. 그러나 이 '쌍현판' 설치안을 놓고도 찬반 논란이 여전하다. 지난 3월 31일 문체부 주최 토론회에서 전문가 사이에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 이건범
최진숙 칼럼
문제는 젊은이 일자리변방의 비주류 리서치기관이 일요일 저녁 이메일 뉴스레터에 쓴 미래 시나리오가 미국 증시를 발칵 뒤집을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을 것이다. 설립 3년차 신생 리서치회사 시트리니가 최근 자사 플랫폼을 통해 구독자에게 공개한 '2028 글로벌 지능위기' 보고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글 작성을 주도한 시트리니 창립자 33세 제임스 반 겔런의 이력은 독특하다. 생물학, 심리학을 전공한 병원 구급대원 출신으로 각종 매체와 채널에서 금융투자 칼럼을 썼던 인물이다. 보고서는 정교한 분석 리포트라기보다 장문의 메모에 가깝다. 인공지능(AI)이 사무보조로 활용된 지 3년이 흐른 2028년에 쓰인 회상형 에세이다. 인간의 지능을 AI가 어느 정도 대체한 시점으로 상정된 시간이 2028년이다. 'AI 멸망 소설'인 건 아니라고 밝혔지만 글 대부분은 'AI 디스토피아'에 맞춰졌다. 컴퓨팅 자산을 가진 자본가는 부가 폭증할 수밖에 없는데 노동비용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령 GDP' 개념이 나온다. AI로 생산성이 올라가 이익은 크게 늘지만 소득은 사람에게 가지 않고 소비는 돌지 않는다. 숫자는 성장하지만 체감경제는 죽었다는 의미로 유령 같은 국내총생산(GDP)을 언급한 것이다. 그리하여 2028년 6월 미국 실업률은 10%까지 뛰어오르고 주가는 고점 대비 40% 추락한다. 죽은 소비는 다시 산 기업을 잡는데, 이로 인해 회사는 줄도산하고 중산층은 몰락의 길을 간다는 것이 시트리니 시나리오다. '이게 가능한가'라는 냉정한 분석도 하기 전에 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메모가 유포된 다음 날 월요일 아침 보고서에 언급된 관련 종목이 줄줄이 폭격을 맞았다. 위기 전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화 '빅쇼트' 주인공 마이클 버리가 글을 공유했다는 사실도 공포에 힘을 보탰다. 보다 못한 백악관이 보고서는 공상과학일 뿐이라고 정리하는 사태까지 이른다. 소형 리서치회사의 메모에 백악관까지 참전한 사건이 됐다. 과도한 설정이며 극한의 상황 전에
조창원 칼럼
마스가, K조선 '판도라 상자' 되나2000년대 후반 한국 조선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두 가지 빅 이벤트가 있었다. STX그룹은 중국 다롄에,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비크에 초대형 조선소를 세웠다. 한국 내 조선소 부지가 워낙 작아 아예 해외에 매머드급 도크를 짓자는 전략이었다. 목표는 원대했다. 해외의 저임금 노동력과 대규모 설비를 바탕으로 글로벌 발주를 싹쓸이하겠다는 야심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STX 다롄 조선소는 조 단위의 자금을 쏟아부어 해양플랜트 단지를 완성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와 해운 불황이 덮쳐 발주가 끊겼다. 현지의 숙련인력 부족과 품질불량 및 중국 당국의 지원조건 불일치 등도 발목을 잡았다. 한진 수비크 조선소 역시 금융위기발 발주 가뭄에다 품질 문제, 노사 분규, 부품조달 차질로 홍역을 치렀다. 해외 직접투자는 결국 모기업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한국 조선업의 대표적인 해외 직접투자 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이제 한국 조선업은 미국과 협력하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통해 해외 직접투자에 또 나선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업 발전의 모멘텀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생길이 훤히 열렸다. 우선, 투자 불확실성이다. 2000년대 STX와 한진의 해외 투자는 현지에 처음부터 새로 시설을 짓는 그린필드 방식이다. 마스가의 경우 미국 필리 조선소를 인수해 추가 투자하는 브라운필드 방식이다. 언뜻 보면 브라운필드 방식이 리스크가 낮아 보이지만 꼭 그렇진 않다. 배를 만드는 시설 구조가 낡았다면 아무리 리모델링해 봤자 건조역량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미국 조선소 투자는 브라운필드와 그린필드가 혼합된 방식으로 추진될 것이다. 돈이 더 들어갈 것이란 얘기다. 미국이 한국을 조선업 협력의 단독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각서도 없다. 우리가 막대한 투자를 했다고 독점과 같은 수준의 사업권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것이란 낙관은 순진한 생각이다. 미국은 해양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국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