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통일 대신 분단 고착화 택할 텐가남북관계가 초겨울 날씨만큼 썰렁하다. 지난달 정부는 남북 군사회담을 제안했다. 소통채널이 끊긴 상황이라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북한은 3주째 묵묵부답이다. 지난 2일 제22기 민주평통 출범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남북 연락채널 복구를 직접 제안했다. "북한이 자꾸 피하면 쫓아가서라도 말을 붙여야 한다"는 지론대로였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스토커 대하듯 이를 무시하는 모양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말이 있다. 다만 남북관계를 속담처럼 낙관하긴 어렵다. 물밑에서 관계를 개선하려는 밀당조차 안 보이니…. 이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조정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문을 두드렸지만, 김정은이 북한 체제 특유의 폐쇄회로에서 빠져나올 기미는 없다. 그 대신 최근 반체제 인사를 색출하는 국가보위성을 공개리에 찾았다. 외부와 접촉하는 당정 간부들에 대한 감시·통제의 고삐를 더 죄려는 신호다. 김정은은 2023년 처음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걸었다. 남조선을 한국으로 호명하고, 상종 못할 외국으로 치부하면서…. 그 연장선에서 지난 7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은 없으며, 어떤 것도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김정은식 '두 국가론'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즉 "통일을 포기하고 남한을 별개의 적대 국가로 규정해 '민족 공동체' 논리를 버리고 '두 국가 현실론'을 제도화하려 한다"(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지적이 적확하다. 남북 분단 고착화라는 불길한 그림자는 그 부산물이다. 체제 경쟁에서 완패한 김정은 정권으로선 현실적 선택이다. 자유롭고 풍요한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가 세습독재 체제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어서다. 북한은 이미 경제는 거덜 나고 핵무장의 대가로 '국제 왕따' 신세다. 남북 교류로 한류가 유입되고, 남한의 실상이 전해지면 북한은 체제가 흔들릴 판이다. 종전처럼 연방제 통일 운운하며 허세를 부릴 계제도 아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해외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대북방송을 "쓸데없는 일"로 간주했다
노동일 칼럼
'국론 분열' 진원지 된 국회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10일 취임 후 두번째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공포했다. 이른바 내란특검법, 김건희특검법, 채해병특검법이 그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 구 여권 인사들을 겨냥한 대대적인 수사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세 특검에 파견되는 검사만 지난 2016년 국정농단 특검(20명)의 6배 수준인 120명. 과잉수사 논란이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시기적으로도 정권 초기 공을 세워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법. 조은석(내란특검), 민중기(김건희특검), 이명현(채해병특검) 등 특검의 면면도 그런 의구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내란특검'은 이름부터 과잉이다. 시대착오적인 12·3 비상계엄은 당연히 법률적인 단죄 대상이다. 불법계엄의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는 의미가 있다. 문제는 계엄을 '내란'으로 단정한 점이다. 한덕수 전 총리 등 국무위원, 군 지휘부의 계엄 관여 여부 수사는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대해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행태는 이해할 수 없다. 계엄 후 2분5초간 통화로 윤 전 대통령과 공모한 추 의원이, 국회의원들의 계엄해제 표결 참여를 방해했다는 특검의 주장은 무리한 논리 구성이다. '국민의힘 해산' 운운한 더불어민주당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과잉수사의 표본이다. 내란특검의 오산공군기지 압수수색도 과잉수사의 단면이다. 외교마찰까지 부를 수 있는 민감한 일을 감행한 '내수용' 특검의 한계를 보여준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담임목사와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에 대한 채해병특검의 압수수색은 참고인인 종교지도자에 대한 강제수사로 선을 넘은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김건희특검은 국민의힘 당원명부 압수수색, 양평군 공무원의 극단적 선택을 부른 강압수사 의혹, 민중기 특검 본인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 여러 물의를 일으켰다. 통일교 관련, 야당 인사만 겨냥한 선택적 수사도 비판의 대상이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왜곡죄가 신설될 경우 첫 번째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한다. 야권보다 여
손성진 칼럼
실패에도 박수를전임 윤석열 정부의 실책 중 하나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었다. 척박한 연구환경에서 그나마 과학자들이 버틸 수 있었던 기반을 무너뜨린 것이다. 정부 정책에 실망한 과학자들이 한국을 떠나기도 했다. 당시 정부에서 삭감 이유로 꼽은 것이 R&D예산 나눠먹기 풍토였는데, 맞는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다.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해서 한국의 R&D투자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이스라엘에 이어 두번째다. 매우 높은 편이다. 각종 지표를 보면 한국의 과학기술력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높다. 과학기술 혁신역량은 2022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 중 5위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올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27위를 기록했지만, 과학인프라 순위는 2위다. 지난해에는 1위였다. 피인용 상위 1% 논문 점유율은 14위로 6년째 정체돼 있지만, 낮지는 않다. 수치상으로 볼 때 R&D예산 순위에 필적할 만큼 한국 과학은 실질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단 한명도 없는 사실이 보여주는 대로 결정적 성과는 미진하다. R&D예산 나눠먹기에 대한 비판은 선택과 집중의 논리를 적용하면 온당치 않다. 성과 중심으로 집행해야 효율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연구를 더 많이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하면 R&D가 위축된다. 모든 연구와 개발이 성공할 수는 없다. 원래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지원을 중단하거나 줄인다면 선뜻 연구에 나서기가 꺼려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보다 앞서가는 미국이나 중국의 경우를 보라. 미국에서는 스타트업의 실패가 흔히 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의 R&D사업 성공률은 82%이다. 과학 선진국 미국에서도 열에 둘은 실패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업화 성공률은 20%에 그친다. 한국의 R&D 과제 성공률은 95%가 넘고 99%에 이른다고 한다. 도전 성공률이 100%에 가까운 것이 꼭
최진숙 칼럼
예고된 석유화학 위기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폭소를 터뜨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로테스크했다. 빈 살만이 자국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배후자로 지목되면서 서방의 비난이 들끓던 시기 둘은 만났다. 지난 2018년 1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홀로 덩그러니 있던 빈 살만에게 푸틴이 팔을 흔들며 걸어간다. 서슴없이 빈 살만의 손을 잡고 고개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웃었다. 서방의 눈엔 무척이나 기이했을 것이다. 빈 살만에게 세계와 대화의 물꼬를 터준 이가 푸틴이라면 그의 체제를 공고히 해준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시진핑은 푸틴의 요란한 제스처가 연출됐던 G20 회의에 같이 있었지만 내내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교감은 이전부터 있었고, 그때도 있었고, 이후엔 더 강해진다. 둘의 관계가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은 지난 2022년 12월이다. 사우디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의 전용기는 빈 살만이 보낸 4대의 전투기 편대의 호위를 받으며 착륙했다. 6대의 곡예비행기들이 녹색 연기를 뿜으며 폭격 퍼레이드를 펼쳤다. 웅장한 세리머니에 세계는 둘을 다시 봤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당시 이들이 체결한 사업 내용이다. 양측의 계약 규모는 500억달러가 넘었다. 그중 대부분이 에너지·석유화학 분야였다. 석유만으론 미래가 없다는 사우디의 절박함은 빈 살만이 실권을 잡기 전부터 있었다. 사우디가 '석유에서 화학으로' 기치를 공식화한 건 2000년대 중반부터다. 사우디 국영 아람코와 사빅이 원유에서 나프타 없이 바로 화학제품을 뽑아내는 기술(CTC) 연구를 그 무렵 시작했고, 기술이 완성된 때가 2020년대 들어서다. 프랑스의 토탈, 미국의 엑손모빌 등 세계 유수 기업들이 이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했다. 숱한 정치적 논란에도 빈 살만의 공로는 이 기술을 상업화하고, 석유화학을 사우디 핵심 전략산업으로 끌어올렸다는 데 있다. CTC 기술의 파괴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원
조창원 칼럼
마스가, K조선 '판도라 상자' 되나2000년대 후반 한국 조선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두 가지 빅 이벤트가 있었다. STX그룹은 중국 다롄에,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비크에 초대형 조선소를 세웠다. 한국 내 조선소 부지가 워낙 작아 아예 해외에 매머드급 도크를 짓자는 전략이었다. 목표는 원대했다. 해외의 저임금 노동력과 대규모 설비를 바탕으로 글로벌 발주를 싹쓸이하겠다는 야심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STX 다롄 조선소는 조 단위의 자금을 쏟아부어 해양플랜트 단지를 완성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와 해운 불황이 덮쳐 발주가 끊겼다. 현지의 숙련인력 부족과 품질불량 및 중국 당국의 지원조건 불일치 등도 발목을 잡았다. 한진 수비크 조선소 역시 금융위기발 발주 가뭄에다 품질 문제, 노사 분규, 부품조달 차질로 홍역을 치렀다. 해외 직접투자는 결국 모기업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한국 조선업의 대표적인 해외 직접투자 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이제 한국 조선업은 미국과 협력하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통해 해외 직접투자에 또 나선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업 발전의 모멘텀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생길이 훤히 열렸다. 우선, 투자 불확실성이다. 2000년대 STX와 한진의 해외 투자는 현지에 처음부터 새로 시설을 짓는 그린필드 방식이다. 마스가의 경우 미국 필리 조선소를 인수해 추가 투자하는 브라운필드 방식이다. 언뜻 보면 브라운필드 방식이 리스크가 낮아 보이지만 꼭 그렇진 않다. 배를 만드는 시설 구조가 낡았다면 아무리 리모델링해 봤자 건조역량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미국 조선소 투자는 브라운필드와 그린필드가 혼합된 방식으로 추진될 것이다. 돈이 더 들어갈 것이란 얘기다. 미국이 한국을 조선업 협력의 단독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각서도 없다. 우리가 막대한 투자를 했다고 독점과 같은 수준의 사업권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것이란 낙관은 순진한 생각이다. 미국은 해양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국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