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칼럼
미래예측 능력 무시한 정책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 등은 저서 '호모 프로스펙투스(Homo Prospectus)'에서 인간의 본질적 특성으로 '미래 예측 능력'을 꼽았다. 인간은 과거의 기억에만 얽매이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가올 미래를 시뮬레이션하고 그에 맞춰 현재의 행동을 조정하는 지구상 유일한 종(種)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인간이 만든 사회적 제도와 법률, 경제 정책 등은 인류가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고도화된 미래 예측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 모습은 이런 인류의 진화적 자산과 배치된다. 여권이 강행한 이른바 '노란봉투법'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법의 모호성이 가져올 산업 현장의 마비였다. '실질적 지배력'은 원·하청 관계의 무한 확대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은 노동쟁의의 무한 확장을 부를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올해 1~5월 노사분쟁은 총 1만6797건으로 전년 동기(1만1936건) 대비 40.7% 폭증했지만, 정부는 호남 반도체 등에 차질 가능성이 생기자 비로소 움직였다. 지난 7월 삼성전자 노조는 호남 공장이 조합원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2027년 단체교섭 의제로 다루겠다고 선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호남 반도체는 노동쟁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쟁의범위 명문화를 지시했다. 하지만 명백한 법규정을 시행령이나 지침으로 변경하는 건 "정부의 월권행위"라는 노조의 반발과 위헌 논란을 자초하는 것이다. 노사 문제에서 노·정 대결로의 확대는 노조 편향적 입법 강행 당시 예견된 사태이다. 최근 여당이 축배를 든 형사소송법 개정은 여권에서조차 2028년 총선·2030년 대선 패배 트리거로 작용할 것이라 말하는 폭거이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의 즉각적인 부작용은 '수사 지연'과 '사법 공백'이다. 경찰과 검찰의 핑퐁식 공방으로 사건 처리기간은 급격히 늘어났다. 성범죄, 전세사기, 보이스피싱 등 민생범죄 피해자들은 수사 지연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피해자들이 경찰 수사를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변호사를
구본영 칼럼
軍 기강 이대로는 평화도 통일도 허사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예전 같지 않지만, 미군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다. 1조달러가 넘는 국방예산으로 최첨단 무기와 군수 역량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쌓고 있는 실전 경험도 족탈불급의 경지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 기갑부대가 우크라이나 드론 부대와의 모의훈련에서 완패했다. 5년째 러시아와 드론전을 치른 우크라이나군이 공중에서 헬기·드론, 지상에서 전파교란 지원을 받은 미군 부대를 손쉽게 무력화했다는 것이다. 이런 충격적 훈련 결과는 미국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반면교사다. 평상시 군 내부 기강 확립과 훈련으로 실전 대비태세를 갖춰야 함을 일깨웠다는 점에서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이 외려 공세적이다.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메울 핵무장과 함께 드론전에 힘을 쏟고 있어서다. 심지어 우크라이나전에 파병한 병사들의 피를 담보로 러시아의 기술 지원을 받은 신형 미사일과 드론을 실전 테스트 중이다. 반면 우리의 미래전 대비는 말뿐인 느낌이다. 총 대신 삼단봉으로 위병소 근무를 서게 할 정도라면. 기강이 무너진 군대를 흔히 '당나라 군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당 말기의 군대가 오합지졸이었다는 속설은 정작 중국에선 통용되지 않는다. 시진핑의 '중국몽'의 지향점을 보라. 중국사에서 한족이 세운 강력한 왕조였던 한과 당의 '강한·성당(强漢盛唐)' 시대를 재현하자는 의지다. 그래서 국공 내전 당시 장제스의 국민당군이 '당군', 즉 '당나라 군대'로 변형됐다는 설도 회자된다. 마오쩌둥의 홍군에 비해 병력과 장비가 월등했음에도 부패한 데다 군기도 빠져 타이완으로 쫓겨나면서 생긴 추론이다. 숱한 어원의 진실이 뭔지는 부차적 사안이다. 살얼음판 같은 작금의 한반도 안보환경에서 우리 군이 진짜 '당나라 군대'화하고 있다면 심각한 노릇이다. 실제로 이미 조짐은 보이고 있다. 최근 전방 지역에서 실탄을 뺀 채 경계근무를 서는 황당한 일이 불거지지 않았나. 미군 정찰기 오인 요격 위기, 해병 간부의 무단 총기반출 등 군 기강이 해이
손성진 칼럼
가벼운 입, 어설픈 정책"버스에서 사는 게 어떠냐." 황희 의원의 가벼운 혀가 신경이 곤두서 있는 청년들을 건드렸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속된 표현이 있다. 일본어인 가오(얼굴)는 자존심으로 의역할 수 있다. 아이디어 차원이라는 말은 통할 수 없다. 황희는 정책을 입안하는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 3포, 5포라는 말이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청년들의 암울한 사정은 바뀌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자존심마저 포기하지는 않은 그들이다. 기성세대는 고도성장기의 특혜를 누린 세대다. 추천 서류만으로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고, 단칸방으로 시작해도 10년 안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청년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다. 절망적 현실에 대한 책임은 정치에 있다. 정치인 황희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 그 이전에 누릴 만큼 누린 기성세대로서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마음에 상처를 준 잘못은 크다.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라. 한 번이라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청년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한 적이라도 있는가.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다 그러니 '너부터 살아보라'는 몰매를 맞는 것이다. 13평 규모 임대주택을 보고 4인 가족도 살 만하다고 한 전임 대통령 발언의 속편이다. '마음은 황하강처럼 깊게 하고 입은 곤륜산처럼 무겁게 하라'라는 한시 구절이 있다. 정치인들이 새겨들을 가르침이다. 입은 가볍기 그지없고 속도 얕으니, 현실은 반대다. 정치가의 말은 곧 정책이고, 정책은 민생과 연관돼 있다. 권한을 가졌기에 그들이 하는 말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심사숙고하여 가장 좋은 방안이 매듭지어졌을 때 입밖으로 나와야 한다. 옛 정치가들은 그렇게 입이 가볍지 않았다. 정제되고 절제되었고, 촌철살인의 맛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막말이 일상사처럼 난무하고 덩달아 인간의 품격도 사라졌다. SNS가 소통의 도구가 되면서 입과도 같은 글을 통해 마구 저지르고 본다.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는 말보다 지워지지 않는 글은 더욱 신중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어설픈 정책들이 시시각각 인터넷을
최진숙 칼럼
문제는 젊은이 일자리변방의 비주류 리서치기관이 일요일 저녁 이메일 뉴스레터에 쓴 미래 시나리오가 미국 증시를 발칵 뒤집을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을 것이다. 설립 3년차 신생 리서치회사 시트리니가 최근 자사 플랫폼을 통해 구독자에게 공개한 '2028 글로벌 지능위기' 보고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글 작성을 주도한 시트리니 창립자 33세 제임스 반 겔런의 이력은 독특하다. 생물학, 심리학을 전공한 병원 구급대원 출신으로 각종 매체와 채널에서 금융투자 칼럼을 썼던 인물이다. 보고서는 정교한 분석 리포트라기보다 장문의 메모에 가깝다. 인공지능(AI)이 사무보조로 활용된 지 3년이 흐른 2028년에 쓰인 회상형 에세이다. 인간의 지능을 AI가 어느 정도 대체한 시점으로 상정된 시간이 2028년이다. 'AI 멸망 소설'인 건 아니라고 밝혔지만 글 대부분은 'AI 디스토피아'에 맞춰졌다. 컴퓨팅 자산을 가진 자본가는 부가 폭증할 수밖에 없는데 노동비용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령 GDP' 개념이 나온다. AI로 생산성이 올라가 이익은 크게 늘지만 소득은 사람에게 가지 않고 소비는 돌지 않는다. 숫자는 성장하지만 체감경제는 죽었다는 의미로 유령 같은 국내총생산(GDP)을 언급한 것이다. 그리하여 2028년 6월 미국 실업률은 10%까지 뛰어오르고 주가는 고점 대비 40% 추락한다. 죽은 소비는 다시 산 기업을 잡는데, 이로 인해 회사는 줄도산하고 중산층은 몰락의 길을 간다는 것이 시트리니 시나리오다. '이게 가능한가'라는 냉정한 분석도 하기 전에 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메모가 유포된 다음 날 월요일 아침 보고서에 언급된 관련 종목이 줄줄이 폭격을 맞았다. 위기 전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화 '빅쇼트' 주인공 마이클 버리가 글을 공유했다는 사실도 공포에 힘을 보탰다. 보다 못한 백악관이 보고서는 공상과학일 뿐이라고 정리하는 사태까지 이른다. 소형 리서치회사의 메모에 백악관까지 참전한 사건이 됐다. 과도한 설정이며 극한의 상황 전에
조창원 칼럼
마스가, K조선 '판도라 상자' 되나2000년대 후반 한국 조선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두 가지 빅 이벤트가 있었다. STX그룹은 중국 다롄에,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비크에 초대형 조선소를 세웠다. 한국 내 조선소 부지가 워낙 작아 아예 해외에 매머드급 도크를 짓자는 전략이었다. 목표는 원대했다. 해외의 저임금 노동력과 대규모 설비를 바탕으로 글로벌 발주를 싹쓸이하겠다는 야심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STX 다롄 조선소는 조 단위의 자금을 쏟아부어 해양플랜트 단지를 완성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와 해운 불황이 덮쳐 발주가 끊겼다. 현지의 숙련인력 부족과 품질불량 및 중국 당국의 지원조건 불일치 등도 발목을 잡았다. 한진 수비크 조선소 역시 금융위기발 발주 가뭄에다 품질 문제, 노사 분규, 부품조달 차질로 홍역을 치렀다. 해외 직접투자는 결국 모기업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한국 조선업의 대표적인 해외 직접투자 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이제 한국 조선업은 미국과 협력하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통해 해외 직접투자에 또 나선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업 발전의 모멘텀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생길이 훤히 열렸다. 우선, 투자 불확실성이다. 2000년대 STX와 한진의 해외 투자는 현지에 처음부터 새로 시설을 짓는 그린필드 방식이다. 마스가의 경우 미국 필리 조선소를 인수해 추가 투자하는 브라운필드 방식이다. 언뜻 보면 브라운필드 방식이 리스크가 낮아 보이지만 꼭 그렇진 않다. 배를 만드는 시설 구조가 낡았다면 아무리 리모델링해 봤자 건조역량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미국 조선소 투자는 브라운필드와 그린필드가 혼합된 방식으로 추진될 것이다. 돈이 더 들어갈 것이란 얘기다. 미국이 한국을 조선업 협력의 단독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각서도 없다. 우리가 막대한 투자를 했다고 독점과 같은 수준의 사업권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것이란 낙관은 순진한 생각이다. 미국은 해양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국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