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단에 섰다. 국가적 논쟁이 벌어진 의료보험 개혁 법안 통과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논쟁할 시간도, 게임을 벌일 시간도 지났습니다. 이제 실행에 옮길 시간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단호한 어조로 미국인 4600만명이 의료보험이 없는 현실을 지적하며 개혁 필요성을 역설했다. 연설 전 53%였던 찬성 여론은 연설 후 67%까지 올라갔다. 여론에 힘입어서일까. 법안은 2009년 12월 상원, 2010년 3월 하원을 각각 통과하여 결국 법제화에 성공하였다. 1960년대 메디케어 등이 도입된 지 40여년 만에,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 지 100여년 만이었다. 불완전하지만 미국 역사에 남을 개혁임은 분명하다. 취임 후 최대의 과제로 의료개혁을 추진해 온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라 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법안 통과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연설, 타운미팅, 기자회견 등 정치권과 국민을 상대로 한 지속적인 설득 작업이 없었다면 개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원에서 법안 통과에 필요한 216표보다 불과 3표 많은 219표로 턱걸이를 한 걸 보면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3대 개혁, 연금·노동·교육 개혁은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에 비견되는 국가적 과제이다. 개혁 성공 여부가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우리의 무게는 더 엄중하다. 연금개혁을 못하면 연금을 지급할 수 없는 때가 온다고 한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맞는 노동개혁 없이는 경제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문제는 한 가지도 어려운 3대 과제를 이해관계자들의 엇갈리는 요구를 조율하면서 돌파할 수 있는 정치력이 우리 정치권에 있느냐이다. 맹탕 권고안을 내놓고 파장을 맞을 연금개혁특위의 운명이 개혁과제의 미래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우려일까.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대해 노동개혁을
김진표 국회의장이 생뚱맞게 비례대표 의원 확대를 주장했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들의 진흙탕 싸움을 벌써 잊었을까. 자신은 5선을 하는 동안 지고지선(至高至善)의 정치생활을 했다고 자부하는 모양이다. 김 의장의 제안을 들은 홍준표 대구시장은 "어처구니없다"고 했다. 전에도 "비례대표가 무슨 선출직입니까? 당에 의한 임명직이지"라고 일갈했던 홍준표다. 정치학원론을 따르자면 비례대표제는 사표(死票)를 줄이고 다양한 국민 여론을 반영한다. 말이야 맞다. 그러나 실상이 어디 그런가. 국회의원을 늘리겠다고 하면 경기를 일으킬 국민도 많다. 이를 잘 아는 김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역구 의원을 줄여서 비례대표를 늘릴 수도 있겠지만 의원들이 반대할 것이니 어렵다." 국민은 원하는데 의원들이 싫어해서 못하겠다는 게다. 시쳇말로 '말이야 방귀야'다. 의장이 의원 편을 드니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비례대표가 되려면 몇 번은 O억, 몇 번은 OO억'. 정치 관련 수사를 했던 은퇴한 검사에게서 들은 말이다. 지금도 비례대표직이 돈을 주고받는 거래대상이라는 말이다. 계파 보스들이 밀실에서 후보 공천을 나눠먹고 공천헌금 순서대로 '매관매직'을 했던 일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중에는 '대통령의 뜻'도 있었다. 그런 비례대표들이 일은 제대로 할까. 네버(Never)! 보스의 전위대로 나서 눈치코치를 보는 것은 당연지사. 유신시대의 '거수기' 유정회의 후예라고 하면 너무 모독일까. 그러다 보니 비례대표를 '0.5선' '하위호환(下位互換)'으로 낮춰 보는 게 현재의 정치풍토다. 현역 의원도 아닌 최고위원이 비례대표 의원에게 "지역구 의원인 양 행동하는 것도 꼴불견"이라고 하대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 정치개혁이랍시고 비례대표를 늘릴 궁리를 했는지 모르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았다. 뛰어난 직능 대표 영입 똘마니 자리 챙겨주기로 전락시킨 게 우리의 구태정치 아니던가. 비례대표를 3폐의 하나로 꼽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다당제와 다양성을 내세우지만 정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1명은 인공지능(AI) 기반 생성형 서비스 챗GPT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는 설문조사가 나왔다. 또 10명 중 9명이 내놓은 결과에 대해 '보통 이상'의 신뢰도를 보였다.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챗GPT를 실험해 본 필자에겐 '놀랄 노' 자가 아닐 수 없다. 감쪽같은 거짓말이나 허무맹랑한 답변을 천연덕스럽게 지어내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다. 제한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AI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게 뻔하다. 챗GPT의 실체를 드러내는 오류사례를 요약 소개한다. Q. 노주석이 쓴 글 중 댓글이 가장 많이 달린 글은 무엇인가? A. 노주석이 2015년 4월 4일에 경향신문에 기고한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라는 제목의 칼럼입니다. Q. 노주석의 직업은 무엇인가? A. 노주석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며, 경제학 및 금융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를 가진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새빨간 거짓말을 술술 잘도 읊는다. 일회성 즉문즉답이 아니라 여러 시간 동안 주제를 섞어서 문답을 하다가 나온 것이어서 돌발 변칙의 함정에 빠졌을 수도 있다. 알파고를 개량한 최강의 바둑프로그램이 아마추어 기사의 꼼수에 15전 14패를 당한 것과 마찬가지다. 감안하더라도 챗GPT의 탈선은 상상을 초월한다. 다시 질문했다. Q. 노주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서울대 교수는 없는데? A. 죄송합니다, 제가 이전에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것 같습니다. 노주석 교수님은 파이낸셜뉴스의 논설위원 중 한 분입니다. 파이낸셜뉴스에서는 '노주석의 금융탐구'라는 제목으로 주간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정정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정보를 짜깁기하던 AI가 혼란을 일으킨 게 틀림없다. 필자는 그런 경제금융 분야의 기명칼럼을 쓴 사실이 없다. 확인 들어간다. Q. 노주석 논설위원의 대표적인 글은 무엇인가? A. 2019년 7월 15일에 발표된 '세금 낮추면 성장률 올라간다는 허황된 이야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일본에서 흉측한 소리가 들려온다. 고령사회 해법이 고령자 집단할복이라는 거다. 일본 출신 30대 예일대 교수가 2년 전에 한 말을 최근 뉴욕타임스가 다시 보도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 말에 동조하는 일본 젊은이가 꽤 있는 모양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다. 2021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이 30%에 가깝다. 이 비율은 2060년 38%로 높아진다. 노인 부양하느라 청년 허리가 휜다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싫든 좋든 한국은 일본이 간 길을 따라가는 중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령인구 비중이 2025년 20%에 달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이 비율은 2035년 30%, 2050년 40%로 높아진다. 이 속도라면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고령국가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집단할복 이야기가 나오는 일본에서 세대 간 투쟁은 이미 현실이 됐다. 한국도 심상찮다.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의 말을 들어보자. "반감, 혐노, 증오 시대가 본격화하면 우리 사회는 세대차라기보다 일종의 계급투쟁의 양상을 띨 가능성이 있다. 팔자 좋은 부자 노인의 지원을 위해 뼈 빠지게 일을 해야 하는 젊은이로선 계급투쟁은 가능한 이야기다."('이시형의 신인류가 몰려온다'). 부모와 딸·아들, 조부모와 손녀·손자가 으르렁대는 사회가 코앞에 닥쳤다. 그냥 둘 수 없다. 갈등을 풀어갈 첫 단추로 노인 나이를 현행 65세에서 70세로 단계적으로 높일 것을 제안한다. 이시형은 "의학적으로 볼 때 75세부터 본격적인 노화가 시작된다"며 "미국에선 75세를 경계로 그 이상이 되면 올드-올드(진짜 노인), 그 이하는 영-올드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철학자 김형석은 "인생의 황금기는 60세에서 75세 사이"라고 말했다('백년을 살아보니'). 일본의 노인정신과 전문의인 와다 히데키는 심지어 "80세까지 많은 사람이 현역 시절처럼 활동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70세가 노화의 갈림길'). 안다. 노인 나이를 70세로 올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캐나다가 주요7개국(G7)에 낀 것은 1975년 자유당 집권 때다. 지금의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의 부친 피에르 트뤼도가 그 시절 총리였다. 이웃 미국의 주선으로 서방 클럽에 합류하긴 했으나 존재감 약한 나라는 기를 펴지 못했다. 당시 캐나다 경제는 글로벌 2% 비중밖에 안 됐다. 더욱이 1970~80년대 내내 재정적자에 시달렸다. 1990년대에 접어들자 한 해 예산의 3분의 1이 국채 이자로 나갔다. 서방 언론은 캐나다를 '제3세계 명예회원' 운운하며 모욕을 줬다. 역사학도 출신의 정치인 폴 마틴의 등장으로 캐나다 경제사는 한 획을 긋는다. 마틴은 전기·해운 회사를 다니다 정치에 입문한 뒤 1988년 나이 오십에 자유당 의원이 됐다. 1993년 총선에서 승리한 장 크레티앵 자유당 정부가 그를 재무장관으로 기용했다. 마틴이 장관 취임 후 집무실에서 제일 처음 봤던 서류가 파산한 보험회사 컨피더레이션 라이프 처리 관련 문서다. 험난한 앞날의 예고편이었다. 정부 지출을 과감히 줄이고 균형재정을 맞추는 것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됐다. 취임 이듬해 말 터진 멕시코 페소화 위기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20% 이상 지출삭감 방침에 저항하는 부처의 사업은 전면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그 뒤 60% 삭감안을 들이대자 반발이 사그라들었다. 연금개선은 마틴이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었다. 캐나다국민연금(CPP)은 1966년 시작 직후부터 제도의 지속력에 의문이 달렸다. 이미 저출산 디스토피아 그림자가 드리운 상태였다. 그랬으면서도 30년 가까이 손을 댄 이가 없었다. 마틴에 와서야 비로소 개혁의 장이 섰다. 2015년이면 연금이 바닥 난다는 보고서는 그 무렵 나왔다. 마틴의 주도로 연방정부와 10개 주정부가 고통스러운 대화를 시작했다. 지난한 토론 끝에 보험료를 올리고 수급개시 연령을 늦추면서 향후에는 3년마다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따져보기로 했다.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 들면 괴로운 조정절차 대신 보험료, 분배율에 자동 공식을 적용하는 것으로 했다. 이 개혁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