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9~21일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는 화려한 연설의 잔칫집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별(?)연설을 필두로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정치거물 '연설 천재'들이 좌중을 휘어잡는 모습은 명불허전이었다. 언론에서 AOC로 불리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의 당찬 전당대회 데뷔 연설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8년 선거에서 28세의 나이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녀는 민주당의 미래를 책임질 기대주다운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 전당대회의 백미는 미셸 오바마 여사의 연설이었다. 이번 전당대회 키워드 격인 "두 썸씽(Do something)"을 청중과 함께 반복해서 외치며 혼연일체를 만들어 내는 탁월한 능력은 부러울 지경이다. "뭐라도 하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라. 투표장에 나가라. 다른 사람들의 투표를 독려하라. '해리스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메시지였다. 요즘 우리 국민이 정치인을 향해 외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것이다. 제발 뭐라도 하라고.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책임은 한 표로 그친다. 반면 정치인은 국민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국정에 대하여 어떤 사태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은 더 꼴불견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는 무엇일까. 무엇을 첫손에 꼽든 의료문제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의료대란, 의정갈등, 의료개혁, 의대 증원. 각각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지만 어떤 용어를 쓴다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아무 대책 없이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 의료가 파국으로 치닫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결론이기도 하다. 추석 명절에 응급실 비상 정도의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도 다 알고 있다. 명절을 무사히 넘긴다고 해결책이 나올 리 없다는 것도 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뭐라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은 그런 면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이른바 용산 눈치
"피소추자는 검찰청 민원실 바닥에 설사 형태의 대변을 싸고…." 더불어민주당의 박상용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 첫머리다. 글로 쓰기도, 입에 담기도 싫은 이런 발언을 한 사람은 이성윤이다. 민주당 전북 전주을 지역구 의원.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정권 편에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맞서다 좌천됐던 검사. 아니면 말고 식의 이 발언은 그 자체가 인분보다 추하다. 전체 검사의 명예를 훼손한다. 자신도 검사였으니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의원이 되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같은 당 서영교도 아무렇지도 않게 실명을 공개했다. 설령 사실이라 해도 인권과 관련된 문제다. 박 검사는 두 사람을 고소했다. 이성윤, 서영교가 믿는 것은 면책특권이다. 그러나 이 사안은 면책특권과 무관해 보인다. 사실이 아니라면 탄핵은 중지되어야 하고 두 의원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 무책임한 허위 낭설을 퍼뜨린 민주당 인사는 더 있다. 이른바 '청담동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전 의원. 윤석열, 한동훈, 변호사 30명이 강남의 바에서 술판을 벌였다는 주장이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첼리스트가 거짓이라고 자백했다. 김 전 의원도 그때는 면책특권의 시혜를 입고 있었다. 이제는 수사를 받는 피의자 신분이 됐다. 선거에서 져서다. 민주당과 이성윤의 박 검사 탄핵 시도는 김의겸보다 더 비겁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연루된 쌍방울의 불법 대북송금 사건 수사검사인 박 검사를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의원들에게 탄핵이라는 공격권과 면책특권이라는 방어권을 부여한 목적은 행정부와 사법부 견제다. 탄핵 조건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다. 제왕적이라는 대통령제에서 탄핵은 권력의 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막는, 삼권분립의 균형자 역할을 한다. 문제는 다수 의석으로 의회 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이 탄핵을 정치 도구로서 전가의 보도처럼 남용하고 있어서다. 헌정사상 첫 국무위원 탄핵, 첫 법관 탄핵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벌써 장관급만 8명이
북한이 월례행사처럼 오물풍선을 날려 보내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이달까지 총 11차례다. 지난달 24일에는 대통령실 청사에까지 쓰레기 더미가 떨어졌다. 다만 이달 11일엔 10여개 빼곤 대부분 북한 지역에 투하됐다고 한다. 풍향조차 제대로 감안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풍선을 띄운 결과다. 그만큼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 정부의 맞대응에 따른 북한 정권의 조급함을 반영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물풍선은 분단 이후 70여년간 저지른 북한의 도발 중 가장 저열한 행태다. 풍선에는 비닐과 폐종이를 비롯해 북한의 곤궁한 경제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내용물로 가득했다. 몇 번씩 기워 신은 양말과 자투리 천 따위에다 우리 사회에선 거의 자취를 감춘 각종 기생충도 검출됐다. 구충제가 태부족한 북한에서는 아직도 화학비료 대신에 인분을 쓴다는 뜻이다. 남북 간 풍선을 이용한 체제 선전전은 1950년 6·25전쟁 때 시작됐다. 북한은 2016년 초에도 전단지 풍선을 내려 보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인신공격하는 조악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삐라 뭉치가 공중에서 살포되지 않고 통째로 떨어졌다. 가뜩이나 전력난으로 풍선을 띄울 수소가스를 어렵사리 조달한 북한 정권으로선 속이 쓰렸을 법하다. 기대했던 대남 선동효과를 거두진 못했기에. 올해 오물풍선도 타이머 등 장치가 어설픈 탓인지 뭉치로 떨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보건규칙을 어긴 김정은 정권의 엽기적 행태는 국제적 망신만 샀다. 오죽하면 탈북한 리일규 전 쿠바주재 북한대사관 참사가 최근 인터뷰에서 "북한 출신이란 점에 대해 유일하게 수치감을 느끼는 게 '쓰레기풍선'"이라고 했겠나. 결국 오물풍선이 북한 스스로 심리전의 한계를 자인한 격이다. "오물밖에 그 어떤 정보를 담아도 남한 국민을 설득할 수 없음을 인정한 꼴"(이민복 대북풍선단장)이란 지적이 그럴싸하다. 그런데도 오물풍선에 매달리는 까닭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과 정부의 확성기 방송의 효과가 위력적임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최근 북한이 전단 속
미국의 제프 베이조스가 세상의 모든 물건을 인터넷에서 팔겠다는 포부로 아마존 문을 연 때가 1994년이다. 온라인 경매업체 이베이도 그해 사이트를 오픈했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신시장이 우리에게 온 것은 그로부터 2년 뒤다. 데이콤의 사내벤처 인터파크와 롯데인터넷백화점에서 K이커머스는 시작된다. 그때 직원들은 이메일로 주문을 받고 계좌에서 입금을 확인한 뒤 직접 상품을 상자에 담아 송장에 주소를 써서 발송했다. 이 정도 프로세스가 당시로선 유통혁명에 해당됐다. 유통의 진화는 통신환경의 기술적 진보와 궤를 같이한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곳곳에 깔리면서 이베이 경매 사이트를 모방한 옥션이 돌풍을 일으켰다. 그후 옥션 천하를 흔들고 새 길을 낸 곳이 국내 첫 오픈마켓인 G마켓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제품을 사고팔 수 있도록 중개인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 출현한 것인데 당시엔 생경한 개념이었다. 이를 개척한 이가 다름 아닌 지금의 큐텐 대표 구영배다. 그의 G마켓 기적은 한국 유통사에 길이 남는다. 서울대 자원공학과 85학번으로 미국계 석유개발 기술회사 슐럼버거에서 일하다 2000년 인터파크에 인연이 닿은 것이 시작이다. 3년 후 인터파크 자회사 G마켓을 출범시키고 이듬해 매월 200% 매출 성장 기록을 냈다. 폭발적인 성장은 2006년 나스닥 상장으로 이어진다. 구 대표 신화의 정점이 여기였다. 그는 구 대리로 불렸을 만큼 몸을 사리지 않는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로부터 G마켓을 사들인 이베이가 10년 한국영업 금지 조건을 내걸자 싱가포르에서 동남아 시장을 겨냥해 설립한 회사가 큐텐이다. 국내는 바야흐로 소셜커머스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고객들은 백화점식 상품이 모여 있는 오픈마켓보다 정말 필요한 상품을 흥미롭게 파는 소셜커머스에 더 끌렸다.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고 일정 수준 이상 구매자가 모이면 파격적인 할인을 해주는 곳이 소셜커머스였다. 수백개 업체가 난립했고 살아남은 곳이 2010년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쿠팡, 티몬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제품, 바이오, 철강 등 산업 전반에서 중국산 제품의 글로벌 시장 공습이 거세다. 중국산 제품이 각국 시장을 장악하고 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린다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서방의 거센 비난을 중국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중국이 관영언론을 통해 내놓은 공식 반론은 크게 세 가지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은 과잉생산을 국내 수요를 초과하는 능력으로 정의하는데 이는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개방경제에서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국제 시장 수요도 고려하는 게 상식이라는 것이다. 중국산 제품 가격이 싼 것을 덤핑으로 볼 수 없다는 반론도 내놓는다. 중국 주요 수출산업들의 이익률이 정상적이라는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한다. 마지막으로 중국 정부의 산업보조금 조치는 서방국들도 이미 시행 중이기에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서방국들은 중국의 반론과 상관없이 공급과잉을 중국의 산업보조금 정책 탓이라고 합리적 의심을 한다. 중국의 산업보조금 지급 실태를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없어서다. 중국의 산업보조금 정책을 맹비난하는 것 역시 명분의 한계가 있다. 과거 국제분업이론은 국가의 보조금 지급을 시장왜곡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최근 이론들은 보조금 정책을 유연하게 해석한다. 특정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허용할 수 있다고 본다. 시장실패를 바로잡기 위한 수단으로도 산업보조금이 활용되며,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방편으로도 허용하는 분위기다. 그나마 산업보조금을 엄격하게 해석했던 국제무역기구(WTO)는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했다. 더구나 중국의 산업보조금 정책에 맞서 모든 국가가 산업보조금 정책을 도입하고 있으니 너 나 할 것 없이 도긴개긴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중국의 공급과잉 책임을 놓고 입씨름해 봐야 결론이 날 리 만무하다. 오히려 공급과잉 이후 재편될 시장 판세를 보는 게 현명하다. 이에 중국의 관점에서 공급과잉을 바라보는 두 가지
의료개혁이 난맥상이다. 8000여명의 전공의들이 사라졌다. 종합병원은 적자에 빠졌다. 시급히 돌아가야 할 응급실은 의사가 없어 난리다. 응급·필수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은 지쳤다. 지난 7개월 정부는 압박과 유화책을 쏟아냈다. 전공의 복귀 명령과 면허정지 철회, 수련 특례와 수당 지원, 의료수가 제도 합리화와 지역·필수의료 강화 대책 등등. 이렇게 투입하는 건강보험재정과 예산이 1조원을 넘는다. 하루 100억원꼴이란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억하심정 요지부동. 2025학년도 의대증원 백지화만 되풀이하고 있다. 의대 증원을 지지한 다수의 국민들은 불안하다. 전공의 이탈 205일째, 세 가지 질문을 해보자. 누구 책임인가. 정부와 의사집단은 물과 기름처럼 갈라섰다. 의사집단은 "근거도 없는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이지 않았나. 그래놓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를 악마화하고 있다"고 분노한다. 정부는 "수차례 증원 문제를 꺼냈으나 무대응한 것이 의료계다. 지난 27년간 증원 한 번 못했다"는 것이다. 응급·중증환자들도 병원을, 의사를 못 찾아 악전고투 중이다. 의대 증원 반대파들은 "의료비 부담이 폭증하고 의료 수준은 폭망한다" "봐라,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의료 붕괴는 지금부터"라는 투로 정부의 무능을 조롱한다. 공포와 불안을 부추긴다. 피해자는 침묵한 국민들이다. 타협이 가능한가. 한 치의 양보도 않겠다는 의사집단, 애초에 잘못된 2025학년도 1500명 증원부터 백지화하자는 게 그들의 요구다. 9일 의과대학을 포함해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일제히 시작됐다. 과정이 어떠했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의대 증원은 사회적 약속이다. 백지화 아니고는 '대화 불가'라는 행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부나 의사집단이나 소송전과 정책 불신, 어떠한 형태로 몰아칠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는가. 의사집단은 내후년 의대 증원을 원점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여야의 제안을 수용해야 한다. 그래도 얻은 것은 없나. 세계 최고라 하는 의료선진국 이면에 가려진 왜곡과 불합리를 속속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