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지 않았다. 의원들이 서로 '존경하는 OOO 의원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역겹다고 비난한 적이 있는데,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대로다. 다시 부탁하지만 제발 '존경하는'은 생략해 주기 바란다. 식탁에 앉아 밥 먹던 국민이 토가 나올 지경이다. 차라리 '김기현씨' '이재명씨'가 듣기에 낫다. '윤석열씨' '이동관씨'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역사상 최악의 정치를 목도하고 있다. 국회가 아니라 '양아치 집합소' '시정잡배 양성소'다. 양아치라고 무시하지 말라.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잇던 성실한 생활인이자 재활용의 선구자들이다. 이런 국회, 이런 의원이라면 차라리 조선시대 당파싸움을 보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겠다. 1960년대 정치인의 현란한 권모술수라면 드라마틱한 구경거리라도 될 것이다. 그때는 그래도 아귀다툼을 벌이면서 금도(襟度·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는 있었다. 존경받는 정치원로도 있었고, 바른 소리 잘하는 신인도 있었다. 참 '돈 안 되는 짓'만 골라 한다. 땟거리가 걱정인데 무슨 이념 타령인가. '민생, 민생' 하며 국민을 들러리 삼지 말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왜 단식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념 전쟁, 폭력 정권에 대한 국민 항쟁'이라고 갖다 붙였다. 수식어 붙이는 거야 자유다. 설마 6월 항쟁, 민주 항쟁급으로 본단 말인가. 단식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의 단식은 전두환에게 저항하던 김영삼 정도 되는, 존경받는 거물급이 하는 것이다. '깜방' 가기 싫어서 하는 줄 알 사람은 다 안다. 단식에 대한 모독이다. 언론장악이야 역대 좌파 정권들도 똑같이 했다. 비난해 봐야 들을 소리는 '내로남불'밖에 없다. 지금 정부는 도리어 좀 늦었다. 지켜보다 참다 못해 법대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렇게 물고 뜯고 싸우는 건 곰곰이 따져 보면 인간의 탐욕 탓이다. 정치인들이 이념을 사리사욕을 위해 악용하는 것이다. 이념이 뭔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투쟁,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싸움, 그 이론적 배경이다. 좌익과 우익은
올 정기국회도 불협화음만 요란하다. 얼마 전 대정부질문이 그랬다. 상대 당 의원을 조롱하거나, 국무위원과 저열한 말다툼을 벌인 게 다였다. 탈북민인 태영호 의원이 북한 인권에 대해 질문하자 한 야당 의원은 "북한 쓰레기"라고 야유했다. 이른바 '비토크라시(Vetocracy·상대 정파의 모든 정책을 거부하는 파당정치)'가 극에 이른 꼴이다. 불과 0.73%p 표차로 끝난 대선 이후 비토크라시는 갈수록 태산이다. 거대야당은 예산이나 정부·여당이 낸 법안을 무조건 비토(veto)하고,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 일방 처리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상례화할 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북한인권법도 7년째 사문화 상태다. 거야가 이 법안에 따른 북한인권재단 출범에 어깃장을 놓으면서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통일부의 재단 이사 추천 요청에 대해 "내부논의 중"이라며 다시 거부했다. 2016년 여야 합의로 만든 법안을 민주당이 계속 깔아뭉개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비토크라시를 어느 한쪽 탓으론 돌리기 어렵다. 여권의 협치 노력 부족에 거야의 국정 발목잡기가 맞물린 결과여서다. 다만 북한인권법 공회전에 관한 한 100% 민주당에 책임이 있다. 초당적 합의를 일방적으로 저버린 채 최악의 비토크라시를 시전 중인 셈이어서다. 문재인 정부의 여당으로서 북한 노동당 김여정 부부장의 '하명'을 받들 듯 대북전단금지법을 6개월 만에 단독 입법한 민주당이었으니 말이다. 민주당 측은 북한인권재단 가동을 미뤄 온 배경을 이렇게 해명한다. 즉 "대북 인도적 지원, 북한 민주화라는 성격이 다른 업무가 한 재단에 묶여 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낱 핑계다. 분단 이후 북의 세습독재 체제는 줄곧 강화됐지만, 역대 우리 정부가 이를 빌미로 대북 인도적 지원마저 거부를 선언한 적은 없었다. 결국 민주당은 북 세습정권이 싫어하는 북한 민주화란 어젠다를 다루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북한 주민 아닌 '최고 존엄'만 바라보는 행태는 문 정부 시절 극대화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야당 지도자의 단식은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 비폭력 저항의 상징이자 최후의 보루로 인식됐다. 엄혹하던 시절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1983년 정치범 석방과 정치 복원을 내걸고 23일간 죽음을 무릅쓴 단식투쟁을 벌여 정치활로를 열었다.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도 1990년 13일간 단식농성을 벌여 결국 지방자치제를 쟁취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로 12일째 단식농성 중이다. 그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6년 지방재정개혁의 부당함을 알리겠다며 서울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치고 11일간 단식농성을 한 이력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성공적 중앙무대 데뷔작으로 평가됐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바 아니다. 168석의 압도적 의석수로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제1 야당 당수의 무기한 단식농성이다. 지난 9일 검찰에 출두해 8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던 그의 얼굴은 초췌했지만 기색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열이틀 굶은 당뇨환자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꼿꼿했다. 그런데 검찰에 다녀온 이 대표가 드러누운 모습이 공개됐다. 그 전까지는 행사에 다니거나, 앉아서 손님을 맞거나, 기자회견을 하면서 발언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젠 힘든 모양이다. 그도 사람이다. 이 대표의 단식 행태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얼굴을 비치느라 농성장을 자주 비웠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만 농성하고, 밤에는 경호상 이유를 내세워 국회 당대표실에 머물렀다. 말로만 '단식투쟁'일 뿐 '출퇴근 단식' '웰빙 단식'이라는 비아냥마저 나왔다. 단식 돌입 시기와 목적을 놓고도 논란이 일었다. 명분도, 실리도, 공감도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야당 지도자로서 정국을 돌파하고 전환하기 위한 결단이라기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를 회피하고, 지지자를 결집시키겠다는 의도가 다분하게 엿보였기 때문이다. 검찰에 핍박받는 모습을 통해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단식에 여론은 대체로 냉랭했다. '방탄 단식'이라는 비판이 '사즉생' 단식의 진정성을 가린 게 뼈아팠을 것
'그로테스크'라는 단어가 정치권에서 유행 중이다.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한 것,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을 의미한다. 상대 공격에 주로 쓰이지만 현재의 한국 정치를 묘사하는 말로 더 적합한 게 있을까 싶다. '야당 대표의 식사 문제'가 40년을 건너뛰어 2023년 대한민국 정치의 최대 화두로 부상한 것부터 그로테스크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은 1983년 김영삼(YS) 전 대통령 단식을 소환했다. 모든 분야가 상전벽해로 바뀌는 세월 동안 정치만 거꾸로 갔음을 보여준다. '괴기'하다. 당시 YS의 동정은 언론 통제로 인해 '재야인사의 식사 문제'라는 암호 기사로밖에 알릴 수가 없었다. 야당의 정치활동을 완전히 금지한 군부독재의 얼음장에 금이 가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빛나는 이정표로 기록될 일이다. 1990년 DJ의 단식 역시 기억할 만한 정치행위였다. 헌법 조문에만 있던 지방자치제 실시를 관철해 낸 것이다. YS는 엄혹한 상황 속에서, DJ는 소수파로서 극한투쟁밖에 선택할 수단이 없었다. 절대다수 의석의 원내 제1당 대표의 뜬금없는 단식은 '극도로 부자연하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과거 "21세기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라며 삭발, 단식, 의원직 사퇴를 꼽았다. 박 전 원장은 그러나 이 대표가 "단식을 선택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며 "이재명의 단식에서 김대중의 단식을 본다"고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영원한 DJ 비서실장'을 자처하는 박 전 원장이다. 이재명의 단식에서 김대중의 단식을 본다니. 아무리 공천이 급해도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다름 아니다. 극한의 굶주림 속에서도 이 대표는 동조단식자 명단과 방문자 명단을 잘 관리하라고 지시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공천에서 탈락시킬 이른바 '수박'들을 골라내겠다는 의도를 스스로 밝힌 것이다. 의원들은 병풍처럼 이 대표 주위를 둘러싸고, 얼굴도장 찍으려 발걸음을 재촉하고, '체포동의안 부결'을 다투어 공개적으로 인증하기 바쁘다.
'고려장'은 나이 든 부모를 외지에 버려두고 오던 고려시대 풍습이다. 물론 정설은 아니다. 이 풍습은 빈곤에 짐이 되는 부모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낳았다. 그래서인지 고려장보다 동방예의지국이 귀에 더 솔깃하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깍듯이 모시는 풍습이 반영된 표현이다. 그러나 노인 폄하와 세대 갈등이 비화되면서 동방예의지국이란 의미도 무색해졌다. 모든 논쟁은 개념에서부터 시작된다. 시대 에 따라 노인에 대한 관념도 달라졌다. 아니, 더 모호해졌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라는 생물학적 접근에 머물러 있다. 과거의 낡은 기준으로 불리는 것에 거부감이 크다. 노인들조차 스스로 이런 개념을 싫어한다. 공공기관이나 편의시설에서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애써 예의를 갖춰 불러도 싫어한다. 노인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노인이라는 표현으로 현대 사회의 노인들을 규정하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시대에 어울리는 노인 대체용어를 찾으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어른, 어르신, 시니어, 실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노인을 대체할 표준용어로 정해진 건 없다.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존재감을 얻는다. 노인에 대한 기피현상과 대체용어가 부재한 상황을 따져본다면, 우리나라에 노인은 없다. 정체성이 없는 존재는 위태롭다. 노인을 둘러싼 막말 논란이나 기피현상이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지는 이유다. 우리나라 시대 정황상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생물학적으로 미약하고 돌봄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화석처럼 굳어졌기 때문이다. 노인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닌데 말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심리적 프리즘을 통해 고령의 어부 내면을 통찰하고 있다. 인생의 말로에 선 노인과 거대한 상어와의 사투 속에서 희망과 열정 그리고 고독을 그려낸다. 삶의 의욕이 넘치는 동시에 소통을 갈망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사일로(Silo)에 갇혀 있다. 노인 수난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태어나는 사람은 줄고 늙은 사람
아침에는 전설의 경영자 잭 웰치였다가 점심, 저녁에는 발명왕 에디슨이 되는 사람. 중국 전기차 비야디(比亞迪·BYD) 회장 왕촨푸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를 웰치와 에디슨의 합체라고 한 이는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 2인자 찰리 멍거였다. 멍거의 주선으로 버핏은 2008년 왕을 만났다. 기껏해야 중국에서나 알아주던 5년차 전기차 로컬기업의 왕은 버핏이 제안한 거액 투자를 거절한다. 고심 끝에 버핏의 20% 지분투자에만 동의했다. 당황한 쪽은 버핏이다. 그러다 이내 안도했다. "그는 회사를 팔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좋은 징조였다." 버핏이 미국 언론에 털어놓은 이야기다. 배터리 제조사 BYD가 망해가던 시안친촨자동차를 인수한 때가 2003년이었다. 그로부터 20년도 안 돼 글로벌 전기차(PHEV 포함) 시장 최강자가 된 것은 분명 진기한 기록이다. 미국 테슬라를 2위로 밀어낸 BYD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지난해보다 올 들어(1~7월) 더 높아졌다. 중국 시장을 제외하면 테슬라의 벽은 여전히 높지만 세계 차업계가 BYD 폭풍성장세를 느긋하게 지켜만 볼 형편은 아닐 것이다. 왕은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의 요란함이나 알리바바 회장 마윈의 쇼맨십과 거리가 멀다. 공식행사 외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비슷한 나이의 중국 테크기업 창업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워라밸 기질도 전혀 없다. 많은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항상 일만 한다." 안후이성 빈한한 집안의 8남매 중 일곱째. 가난에 대한 기억은 세계의 거부가 된 지금도 강렬하다. "가난은 내게 독립심, 사고력, 실천력을 주었다."(신둥팡그룹 위민훙 회장 대담)BYD의 시작은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사촌에게서 250만위안(4억5000만원)을 빌려 선전의 어느 허름한 창고에서 배터리 회사를 차렸다. 그때가 휴대폰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1995년이다. 대학에서 화학과 재료공학을 전공하고, 베이징 주요 연구기관에서 탁월함을 인정받은 뒤였다.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던 일본산 배터리를 사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