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조진웅 과거보다 진영 갈등이 더 큰일배우 조진웅의 소년범 전력이 일으킨 파장이 일파만파다. 한 매체가 지난 5일 그가 고교 재학 중 강도·강간 혐의로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는 의혹을 보도하면서 처음 파문이 번졌다. 6일 그는 은퇴를 선언했지만, 여진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사건 초기에는 소년범죄 이력 공개 여부 등 소년범 재사회화를 둘러싼 논쟁이 그 핵심이었다. 여기까지는 우리 사회의 공론장이 그런대로 작동 중인 느낌이었다. 한때 촉법소년이었다 하더라도 새 삶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에 토를 달긴 어렵다. 충분한 반성과 속죄를 했다면 말이다. 더욱이 그는 수많은 필모그래피와 적잖은 흥행작을 남긴 중견 영화배우다. '명량' '암살' '퍼펙트 게임' 등을 보며 그의 연기력을 접했던 필자도 개인적으로 그의 하차를 애석하게 여기는 편이다. 그러나 논쟁은 정치권에서 스파크를 일으키며 궤도를 이탈하는 양상이다. 범여권 인사 여럿이 조씨를 무조건 두둔하면서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 시절 기관장 자리를 꿰찼던 한 교수는 그에 대한 비판에 이렇게 맞불을 놨다. 즉 "독립운동가의 약점을 잡아 대의를 비틀고 생매장시키는 책략(과 같다)"이라고. 하지만 논리의 비약을 넘어선 궤변으로 들렸다. 조씨가 문재인·이재명 정부에서 열린 이벤트성 광복 행사에 여러 번 참여했지만, 독립(1945년) 후 수십년이 지나 태어난 인물이어서다. 친여 성향 유튜버 김어준은 별다른 근거 없이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나는 조진웅이 친문 시절에 해온 활동 때문에 선수들이 작업을 친 것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이라면서. 하지만 조씨의 전력을 어디 야권이 폭로했나. 공교롭게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과 여당 원내부대표가 '현지 누나'를 거명하며 인사청탁 문자를 주고받을 시점에 불거졌을 뿐이다. 조씨는 문 정부 시절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때 국민특사였지만, 올해 다큐멘터리 영화 '독립군: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이재명 대통령 내외와 같이 관람했다. 설마 현 여권이 김현지 부속실장을 보호하려 그를 버리려 했겠나. "조두순도 더불어
노동일 칼럼
'국론 분열' 진원지 된 국회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10일 취임 후 두번째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공포했다. 이른바 내란특검법, 김건희특검법, 채해병특검법이 그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 구 여권 인사들을 겨냥한 대대적인 수사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세 특검에 파견되는 검사만 지난 2016년 국정농단 특검(20명)의 6배 수준인 120명. 과잉수사 논란이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시기적으로도 정권 초기 공을 세워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법. 조은석(내란특검), 민중기(김건희특검), 이명현(채해병특검) 등 특검의 면면도 그런 의구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내란특검'은 이름부터 과잉이다. 시대착오적인 12·3 비상계엄은 당연히 법률적인 단죄 대상이다. 불법계엄의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는 의미가 있다. 문제는 계엄을 '내란'으로 단정한 점이다. 한덕수 전 총리 등 국무위원, 군 지휘부의 계엄 관여 여부 수사는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대해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행태는 이해할 수 없다. 계엄 후 2분5초간 통화로 윤 전 대통령과 공모한 추 의원이, 국회의원들의 계엄해제 표결 참여를 방해했다는 특검의 주장은 무리한 논리 구성이다. '국민의힘 해산' 운운한 더불어민주당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과잉수사의 표본이다. 내란특검의 오산공군기지 압수수색도 과잉수사의 단면이다. 외교마찰까지 부를 수 있는 민감한 일을 감행한 '내수용' 특검의 한계를 보여준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담임목사와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에 대한 채해병특검의 압수수색은 참고인인 종교지도자에 대한 강제수사로 선을 넘은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김건희특검은 국민의힘 당원명부 압수수색, 양평군 공무원의 극단적 선택을 부른 강압수사 의혹, 민중기 특검 본인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 여러 물의를 일으켰다. 통일교 관련, 야당 인사만 겨냥한 선택적 수사도 비판의 대상이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왜곡죄가 신설될 경우 첫 번째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한다. 야권보다 여
손성진 칼럼
맹목과 극단의 위험사랑에 눈이 멀면 어떤 허물도 허물로 보이지 않는다. 바로 맹목적 사랑이다. 실체를 감춘 상대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은 줄 안다. 결론은 파국이다. 철학자 칸트는 맹목을 '개념 없는 직관'이라고 했다. 직관은 감정으로, 개념은 이성으로 치환할 수 있다. 맹목에 빠지면 이성과 판단력을 잃고 정의와 불의를 분간할 줄 모르게 된다. 국가와 사회에서 맹목적 행동은 집단적 광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권력이라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정치의 선동 때문이다. 맹목은 지지자가 만들고, 정치는 맹목을 자양분으로 자란다. 아이돌그룹은 팬덤의 맹목적 사랑으로 부귀를 얻는 데 그치지만, 정치는 다르다. 세상을 권력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탓이다. 맹목은 괴물정치를 탄생시켜 나라를 혼란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키르케고르는 감정에 휩쓸려 무분별하게 맹신하는 태도의 위험성을 '맹목적 환호'라고 했다. 집단의 환호에 매몰되면 어떤 충고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은 예로 설명했다. "한 극장에서 멋진 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지배인이 나타나 관객들에게 외쳤다. '극장에 불이 났습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관객들은 멋진 쇼가 곧 공연된다는 것에만 마음이 쏠려 무시했다. 지배인은 거듭 대피하라고 했으나 더 큰 박수가 쏟아졌다. 마침내 거센 불길이 극장을 삼켜버렸다." 맹목은 정치의 극단화를 부르고, 극단은 또 다른 극단을 부른다. 한국의 정치는 그런 악순환의 고리 속에 있다. 비상계엄은 극단적 선택이었지만 그 전에 이미 우리 정치는 맹목과 극단으로 심하게 얼룩져 있었다. 계엄의 혼란은 끝난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맹목과 극단은 더욱더 확신범이 되었다. 혼란이 잦아들기 어려운 상태다. 극단의 범람으로 중간층은 무시당하고 있다. 목소리 큰 사람들만 득세한다. 진실은 왜곡되고 힘없는 다수의 이익이 침해당한다. 자신만을 선으로 단정하고 상대를 악으로 몰아친다. 대중은 이성적으로 행동하기가 어렵다. 집단적이고
최진숙 칼럼
예고된 석유화학 위기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폭소를 터뜨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로테스크했다. 빈 살만이 자국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배후자로 지목되면서 서방의 비난이 들끓던 시기 둘은 만났다. 지난 2018년 1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홀로 덩그러니 있던 빈 살만에게 푸틴이 팔을 흔들며 걸어간다. 서슴없이 빈 살만의 손을 잡고 고개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웃었다. 서방의 눈엔 무척이나 기이했을 것이다. 빈 살만에게 세계와 대화의 물꼬를 터준 이가 푸틴이라면 그의 체제를 공고히 해준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시진핑은 푸틴의 요란한 제스처가 연출됐던 G20 회의에 같이 있었지만 내내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교감은 이전부터 있었고, 그때도 있었고, 이후엔 더 강해진다. 둘의 관계가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은 지난 2022년 12월이다. 사우디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의 전용기는 빈 살만이 보낸 4대의 전투기 편대의 호위를 받으며 착륙했다. 6대의 곡예비행기들이 녹색 연기를 뿜으며 폭격 퍼레이드를 펼쳤다. 웅장한 세리머니에 세계는 둘을 다시 봤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당시 이들이 체결한 사업 내용이다. 양측의 계약 규모는 500억달러가 넘었다. 그중 대부분이 에너지·석유화학 분야였다. 석유만으론 미래가 없다는 사우디의 절박함은 빈 살만이 실권을 잡기 전부터 있었다. 사우디가 '석유에서 화학으로' 기치를 공식화한 건 2000년대 중반부터다. 사우디 국영 아람코와 사빅이 원유에서 나프타 없이 바로 화학제품을 뽑아내는 기술(CTC) 연구를 그 무렵 시작했고, 기술이 완성된 때가 2020년대 들어서다. 프랑스의 토탈, 미국의 엑손모빌 등 세계 유수 기업들이 이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했다. 숱한 정치적 논란에도 빈 살만의 공로는 이 기술을 상업화하고, 석유화학을 사우디 핵심 전략산업으로 끌어올렸다는 데 있다. CTC 기술의 파괴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원
조창원 칼럼
마스가, K조선 '판도라 상자' 되나2000년대 후반 한국 조선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두 가지 빅 이벤트가 있었다. STX그룹은 중국 다롄에,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비크에 초대형 조선소를 세웠다. 한국 내 조선소 부지가 워낙 작아 아예 해외에 매머드급 도크를 짓자는 전략이었다. 목표는 원대했다. 해외의 저임금 노동력과 대규모 설비를 바탕으로 글로벌 발주를 싹쓸이하겠다는 야심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STX 다롄 조선소는 조 단위의 자금을 쏟아부어 해양플랜트 단지를 완성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와 해운 불황이 덮쳐 발주가 끊겼다. 현지의 숙련인력 부족과 품질불량 및 중국 당국의 지원조건 불일치 등도 발목을 잡았다. 한진 수비크 조선소 역시 금융위기발 발주 가뭄에다 품질 문제, 노사 분규, 부품조달 차질로 홍역을 치렀다. 해외 직접투자는 결국 모기업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한국 조선업의 대표적인 해외 직접투자 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이제 한국 조선업은 미국과 협력하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통해 해외 직접투자에 또 나선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업 발전의 모멘텀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생길이 훤히 열렸다. 우선, 투자 불확실성이다. 2000년대 STX와 한진의 해외 투자는 현지에 처음부터 새로 시설을 짓는 그린필드 방식이다. 마스가의 경우 미국 필리 조선소를 인수해 추가 투자하는 브라운필드 방식이다. 언뜻 보면 브라운필드 방식이 리스크가 낮아 보이지만 꼭 그렇진 않다. 배를 만드는 시설 구조가 낡았다면 아무리 리모델링해 봤자 건조역량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미국 조선소 투자는 브라운필드와 그린필드가 혼합된 방식으로 추진될 것이다. 돈이 더 들어갈 것이란 얘기다. 미국이 한국을 조선업 협력의 단독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각서도 없다. 우리가 막대한 투자를 했다고 독점과 같은 수준의 사업권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것이란 낙관은 순진한 생각이다. 미국은 해양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국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