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동지입니다. 내부에서 싸우다가 망할까 봐 결심했습니다. 이러다가 다 죽습니다.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다 뭉쳐도 버겁고, 무도한 상대가 있습니다." 지난 6월 2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원희룡 후보가 돌린 명함에 적힌 글이다. 당 대표가 되면 동지들과 함께 뭉쳐 버겁고 무도한 상대와 싸울 것을 다짐하는 출사표라 해석하고 싶다. 내부 싸움은 망하는 길이고, 다 죽는 길이라는 비장함도 엿보인다. 출마한 네 후보 모두 같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을 걸로 믿었다. 무기력한 여당에 이번 전대는 당 쇄신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누가 대표가 되는지는 그다음 문제일 것이다. 난장판, 진흙탕, 자해극, 막장드라마.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보도한 신문 제목이다. 언론이 나쁜 단어만 골라 쓸 리는 없다. 실제로 그런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나는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이번 전당대회에 나오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을 밝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른 후보를 지지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선거패배 책임론'이 쟁점이 되는 과거형 전대가 될 것을 우려해서였다. 정치경험 부족 등 한 후보에 대한 다른 지적은 부차적일 수 있다. '선거 패장' '자숙할 때' 등의 공세는 그래서 예상문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여당 내에서 벌이는 치졸한 싸움은 상상 이상이다. 다 죽는 길로, 마지막 기회마저 걷어차 버리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 '배신'의 정치. 익숙한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서 한 일갈이다. 결과가 어땠나. 배신은 심판했지만 집권당이 무너지고, 대통령이 탄핵되고, 보수세력이 자멸하는 방아쇠가 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기시감이 든다. '읽씹' 논란. 문자를 읽고 씹었다, 답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생경하고 욕설처럼 들려서 민망하기까지 한 논란은 일파만파 진행형이다. 명품백 관련 사과 뜻을 밝힌 김건희 여사의 문자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답하지 않아서 사과할 기회를 놓쳤
"피소추자는 검찰청 민원실 바닥에 설사 형태의 대변을 싸고…." 더불어민주당의 박상용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 첫머리다. 글로 쓰기도, 입에 담기도 싫은 이런 발언을 한 사람은 이성윤이다. 민주당 전북 전주을 지역구 의원.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정권 편에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맞서다 좌천됐던 검사. 아니면 말고 식의 이 발언은 그 자체가 인분보다 추하다. 전체 검사의 명예를 훼손한다. 자신도 검사였으니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의원이 되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같은 당 서영교도 아무렇지도 않게 실명을 공개했다. 설령 사실이라 해도 인권과 관련된 문제다. 박 검사는 두 사람을 고소했다. 이성윤, 서영교가 믿는 것은 면책특권이다. 그러나 이 사안은 면책특권과 무관해 보인다. 사실이 아니라면 탄핵은 중지되어야 하고 두 의원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 무책임한 허위 낭설을 퍼뜨린 민주당 인사는 더 있다. 이른바 '청담동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전 의원. 윤석열, 한동훈, 변호사 30명이 강남의 바에서 술판을 벌였다는 주장이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첼리스트가 거짓이라고 자백했다. 김 전 의원도 그때는 면책특권의 시혜를 입고 있었다. 이제는 수사를 받는 피의자 신분이 됐다. 선거에서 져서다. 민주당과 이성윤의 박 검사 탄핵 시도는 김의겸보다 더 비겁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연루된 쌍방울의 불법 대북송금 사건 수사검사인 박 검사를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의원들에게 탄핵이라는 공격권과 면책특권이라는 방어권을 부여한 목적은 행정부와 사법부 견제다. 탄핵 조건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다. 제왕적이라는 대통령제에서 탄핵은 권력의 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막는, 삼권분립의 균형자 역할을 한다. 문제는 다수 의석으로 의회 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이 탄핵을 정치 도구로서 전가의 보도처럼 남용하고 있어서다. 헌정사상 첫 국무위원 탄핵, 첫 법관 탄핵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벌써 장관급만 8명이
거대 야당의 기세가 거침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압승의 여세를 몰아 22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소여를 밀어붙였다. 압도적 의석수(171석)로 '1당 국회'도 불사하겠다는 듯이 '채 상병 특검법' 등 각종 당론 입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친명횡재·비명횡사' 공천 덕택일까. 민주당은 연임을 위해 24일 사퇴한 이재명 전 대표 1인 체제다. 동년배 최고위원이 그를 "민주당의 아버지"라고 아첨할 정도로 주변엔 '애완견'들로 넘쳐난다. 그런 그가 국회 개원에 앞서 '몽골 기병론' 깃발을 들었다. "개원 즉시 몽골 기병 같은 자세로 민생·개혁 입법 속도전에 나서겠다"면서다. 원 구성을 속전속결로 끝내고 자신이 호명하는 입법에 총대를 메라는 주문이었다. 민주당은 이미 단독 개원한 본회의에서 몽골 기병대식 속도전을 벌일 판을 깔았다. 제1당이 국회의장, 제2당이 법사위원장, 여당이 운영위원장을 맡는 게 김대중 정부 때를 포함해 여소야대 국회의 관행이었다. 이 불문율을 깨고 민주당이 이번에 셋을 죄다 차지했다. 채 상병·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 108석 소여가 거북해하는 법안도 단 3∼4일 만에도 처리할 수 있는 발판을 놓은 것이다. 13세기 '몽골 기병'은 놀라운 기동력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했었다. 당시 칭기즈칸의 이 기마군단은 불과 10만명의 병력으로 연전연승했다. 사거리가 길고 연발 속사가 가능한 단궁이라는 신무기로 무장한 속도전이 그 비결이었다. 몽골 기병론은 본래 정동영 의원이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 내건 슬로건이었다. 빠른 당 정비와 개혁 행보의 필요성을 강조한 정치 수사였다. 2007년 정 의원의 팬카페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대표였던 이 전 대표가 이를 다시 끄집어낸 격이다. 하지만 몽골 기병론은 국내 정치에 원용하기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상대의 실체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굴종을 요구하는 게 문제다. 몽골 기병은 과거 우리와 싸울 때도 잔혹함의 진수를 보여줬다. 신라의 국보 황룡사를 불사르고, 저항하던 고려
"라면의 탄생은 수천년 동안 이어진 허기를 달래준, 식량사의 전환으로 꼽힌다('라면을 끓이며')"고 말한 이는 소설가 김훈이다. 라면이 우리나라에 처음 나온 것이 1963년이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됐던 시대다. 시장 상인들은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잔반과 음식물 쓰레기로 꿀꿀이죽을 끓여 5원에 팔았다. 간혹 씹다 뱉은 껌이나 담배 꽁초까지 섞여있기도 했으나 그마저도 못 먹어 굶는 사람이 많던 시절이었다. 라면은 이 배고픈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인스턴트 라면의 창시자는 대만 출신의 일본 귀화인 안도 모모후쿠다. 종전 후 암시장의 굶주린 사람들을 보고 사업 구상을 한 게 시작이었다. 건조한 면에 양념을 입힌 세계 첫 라면을 1958년 출시했다. 이 업체가 일본 최대 식품 기업으로 성장하는 닛신식품이다. 하지만 수프를 라면에서 분리해 지금의 라면 구성품을 완성한 이는 따로 있었다. 은행원 출신으로 묘조식품을 창업한 뒤 '자동 건조 장치'를 발명해 일본 건면 업계 정상에 올랐던 인물, 오쿠이 기요스미다. 1962년 면의 산패를 막겠다며 수프 별첨 라면을 출시했는데 이 방식이 그 후 대세가 됐다. 오쿠이는 어느날 재계 관계자의 요청으로 한국에서 온 기업인을 만난다. 그가 훗날 한국 라면사의 첫 페이지를 여는 삼양식품 창업주 전중윤 회장이다. 이북 출신의 전중윤은 한국전쟁 피난길에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다. 동방생명 창업에 참여해 부사장까지 지냈지만 남대문시장에서 꿀꿀이죽의 실체를 보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때 일본에서 봤던 라면에 평생을 걸겠다는 다짐을 했다. 전중윤은 일본으로 넘어가 제면 기계 수입과 라인 조립, 공정 기술 협상을 시작했다. 손에 쥔 돈은 정부가 융통해준 5만달러가 전부였다. 여러 곳을 전전했지만 돌아온 건 턱없이 비싼 가격과 멸시였다. 마지막으로 연이 닿은 상대가 오쿠이였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서로에게 강렬했다('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무라야마 도시오'). 벚꽃 풍경에서 대
기업의 인재를 규정하는 두 가지 잣대가 있다.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와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다. 스페셜리스트는 흔히 말하는 전문가 집단을 가리킨다. 특정 분야에 깊은 이해와 전문지식을 갖췄다. 반면 전문분야를 벗어나면 시야가 좁다. 제너럴리스트는 이것저것 다 할 줄 아는 팔방미인이다. 다만 두루 잘한다는 건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말과 같다. 전문성이 취약하다는 얘기다. 두 유형은 몰입과 유연성을 대표한다. 스페셜리스트는 한 우물을 깊게 파는 특성상 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높지만, 협업 측면에선 유연성이 떨어진다. 제너럴리스트는 넓은 안목으로 업무를 연결 짓고 재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전문분야의 몰입도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요즘엔 T자형 인재가 유행이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넓은 지식과 소통능력을 발휘하는 인재가 T자형 인재다. 특히 관리자급에서 T자형 인재에 대한 갈증이 많다. 그런데 이런 T자형 인재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란다. T자형 인재가 되는 길은 크게 두 갈래가 있다. 전문성 있는 스페셜리스트가 다방면의 경영지식을 쌓아 T자형 인재가 되는 길이다. 요즘 IT 전문가들이 뛰어난 경영수완까지 갖춰 성공하는 사례들을 보면 이해가 간다. 반면 제너럴리스트가 뒤늦게 전문성을 갖춰 T자형 인재로 거듭나는 건 상대적으로 어렵다. 각자의 노력에 달렸지만. 어떤 유형이든 딱 부러진 정답은 없다. 분명한 사실은 선택된 인재가 기대한 성과를 만들어내느냐 여부다. 특히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할 때 고민이 커진다. 스페셜리스트를 선택하는 판단은 간단하다. 현 조직이 부족한 전문지식이나 기술을 보충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제너럴리스트를 영입할 때다. 제너럴리스트에 대한 기대는 크게 변화와 현상유지를 꼽을 수 있다. 기존 조직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주길 바란다면 제너럴리스트를 영입하면 될 일이다. 그는 혁신 혹은 융합을 통해 성과를 추구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현 조직이 문제가 있다면 제너럴리스트에게
국가통계포털(인구로 보는 대한민국)에는 막대그래프가 출렁인다. 1960년 이후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100년의 인구 증감 추세를 보여주는 숫자 막대들이다. 증감 패턴에서 읽히는 미래는 암울하다. '이렇게 될 텐데 가만히 있을 것이오, 정신들 차리시오'라는 경고 같다. 패턴의 속성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가속(加速)이다. 왜 그런지, 세 가지 불편한 '가속 이야기'를 해보겠다. ①미래세대 소멸=유엔은 최근 인구보고서에서 65년 안에 한국의 인구가 절반으로 쪼그라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인구 2850만명, 2024년 현재(5175만명)의 딱 절반이다. 앞서 5000만명 선이 깨지는 것은 2041년이다. 초·중·고, 대학을 다니는 학령인구(6~21세)는 현재 71만명. 건국 이래 가장 많았던 1980년 144만명의 학령인구가 반토막 난 게 바로 올해다. 44년 만이다. 다시 반으로 줄어드는 게 이보다 빠른 2063년(35만명)이다. 국력의 토대가 된 교육 인프라의 붕괴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것이다. 병력 감소 속도는 더 아찔하다. 2022년 말 우리나라 병력은 48만명이다. 이를 유지하려면 매년 현역병이 20만명 이상 입대해야 한다. 앞으론 불가능하다. 병력자원이 될 20세 남성은 현재 26만명. 14년 후인 2038년 20만명이 무너진다. 2042년엔 15만명에도 못 미친다. ②노인 부양=현재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19.2%다. 매년 가속하며 2066년 고령인구가 47%로 생산가능인구(46.6%)를 역전한다. 완전히 '늙은 국가'다. 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인구지표가 총부양비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당 부양하는 유소년(14세 이하)과 고령인구(65세 이상)를 합한 백분율을 뜻한다. 청·장년세대가 짊어질 국가 부양의무라 봐도 되겠다. 현재 총부양비는 42.5명. 이것이 2042년 76.7명, 2046년 85.7명으로 커진다. 브레이크가 없다. 올해 태어난 아이가 34세가 되는 2058년(101.2명)엔 총부양비가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