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서부 종단 하이커들의 '햄버거 헬퍼'
스티브 스카라노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4184㎞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맹금을 닮은 바위 '이글록' 앞으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람들이 몰려온다
발에 물집이 잡힌 이에게는 붕대를
허기에 지친 이에게는 간식을 내민다
종단길에 오른 친구를 위해 시작한 일
이제는 남을 위해 몸과 마음을 쓴다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스티브 스카라노는 종주자들 사이에서 '트레일 천사' '햄버거 헬퍼'로 불린다. 싸구려 천사 날개를 등에 걸치고 다니는 그는 종주자들을 위해 햄버거, 초코바, 아이스티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무료로 제공한다. 그는 타인을 위한 이런 행동은 "기도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한다.
단단히 굳은 사막 모래 위에 밝은 주황색 방수천이 펼쳐지고 딸기, 체리, 컵케이크, 핫소스, 땅콩버터와 잼을 넣고 집에서 만든 브리토가 가득 차려진다. 얼음처럼 차가운 레모네이드와 아이스티 몇 리터도 따를 준비가 됐고, 비타민 I도 충분하다. 비타민 I는 이부프로펜(소염진통제)으로 본격적인 하이킹에 따르게 마련인 통증에 대비한 것이다. 우리는 멕시코 국경에서 북쪽으로 160㎞ 올라간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길) 도중에 있다. 트레일을 완주하는 사람이라면 대개 6일째에 해당하는 곳이다.
아침 9시30분이면 사람들이 부츠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오기 시작한다. 나는 천사 날개 염가 판매점에서 구한 것으로 큼직하고 깃털이 달린 부착물을 걸치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우리 간판에는 분홍색 덕트 테이프로 '매직'이라고 쓰여 있다. 하이커들은 여행길에 나타난 예기치 못한 행운이라며 '트레일 매직'이라고 부른다. 해마다 이 일을 해온 것은 내 인생 여정에도 행운이었다. 하지만 기도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나는 오션사이드라는 바닷가 마을의 경찰이었고, 그 전에는 해병대였다. 은퇴 후에도 봉사활동을 하면서 분주하게 지냈다. 아이들에게 야생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고,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학대받는 청소년과 응급의료 요원을 짝지어서 로프 코스(지면, 나무, 전신주 등에 로프를 묶고 이를 활용해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야외스포츠)를 하면서 팀워크와 리더십을 가르쳤다.
"당신은 은퇴해서 꽤 행복해 보여요." 아내 에미의 평이었다.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의 좋은 친구인 마티와 노마가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해 캐나다가 있는 북쪽으로 올라가며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완주하기로 했다. 5개월에 걸친 대단한 야외활동인 동시에 그 기간 악천후와 맞서야 했다. 나도 배낭여행이나 휘트니산 정상에 오르고 그랜드캐니언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정도는 해보았지만,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하이킹하는 일, 4184㎞에 이르는 길고 고된 길은 내 수준 밖의 얘기였다. 마티와 노마는 우리를 초대했고 남쪽 기점에서 그들을 배웅할 수 있게 해주었다.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이번 일에 쏟는 모든 노력과 계획은 대단해요."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트레일을 종단하려는 하이커에게 적당한 시기는 매우 짧다. 어떤 해에는 시에라산맥의 눈 때문에 4월 말 이전에는 출발할 수가 없는데, 한편으로 캐스케이드산맥의 눈 때문에 5월 중순보다 늦어지면 안 된다. 4월 마지막 주말에 우리는 트레일 시작점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두 친구가 안자 보레고 사막으로 떠나기 전이었다. 모임은 거의 파티 같았다. 부스를 세우고 노점상들이 장비를 팔았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사랑하는 둘을 응원했다.
에미, 마티, 노마, 나는 아침 일찍 남쪽 기점에 모여서 손을 잡고 기도했다. 우리는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했고 배낭을 멘 친구들은 좁고 거친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둘을 위해 기도할게." 내 약속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다. 경이로운 풍경, 별이 빛나는 하늘, 야생 동식물, 꽃들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극심한 피로, 의욕상실, 통증, 물집, 작열하는 태양, 매서운 바람도 그려졌다. 지도를 보고 마티와 노마가 160㎞를 지나면 어디쯤 있을지 찾아냈다. 맹금을 닮은 웅장한 바위가 있어서 이글록이라고 부르는 지점이었다. 거기서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쉬울 터였다. 워너 스프링스까지 차를 몰고 간 다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좀 챙겨서 6.4㎞를 걸어가면 된다. 반갑고도 놀라운 일이기를 기대했다.
맥도날드에 가서 친구들 그리고 누구든지 또 나타날 사람을 위해 햄버거, 감자튀김, 음료를 샀다. 배낭에 음식을 넣고 이글록까지 하이킹했다. 이글록에 도착하기 전인 아침나절에 마티와 노마를 만났다. 우리는 가지가 삐죽삐죽 튀어나온 딱총나무 아래에 같이 앉았다. 친구들은 우리를 만나서 정말 반가운 눈치였다. 다른 하이커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수다를 떨었고, 그들은 게걸스럽게 먹었다. 채식주의자라던 한 여성은 거리낌 없이 햄버거를 받았다. 그 사람이 내게 '햄버거 헬퍼'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고, 그 이름이 그대로 굳어졌다.
"당신은 트레일 천사예요." 다른 누군가가 말해 주었고, 그랬기에 염가 판매점에서 날개를 샀다.
마티와 노마를 만난 일은 멋졌다. 하지만 다른 많은 이가 내 도움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는 게 훨씬 더 즐거웠다. 그때부터 줄곧 이 일을 해오고 있다.
어떤 물품들은 아주 인기 있다는 것도 알았다. 예를 들어 작게 포장한 타바스코 소스나 보랭주머니에 담아 간 작은 스니커즈 초코바가 그랬다. 어떤 하이커들은 심각하게 준비가 미흡해서 붕대나 새 신발 끈을 반가워했다. 트레일 옆에서 양말과 부츠를 벗은 채 울면서 발에 있는 물집을 문지르던 여성 하이커를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됐어요. 나는 경험 많은 하이커라고요."
우리는 붕대를 주고 정서적으로도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일을 처음 시작한 4월 그 주말에 친구 몇 명을 데리고 갔다. 우리는 35명에서 40명에 이르는 하이커를 충분히 먹일 트레일 매직을 가져갔다. 선댄스, 레이븐, 파이어캡틴 같은 우리만의 트레일 별명도 지었다. 그리고 스위트 투스, 댄스파티, 가이 온 어 버펄로처럼 비슷한 별명을 지닌 하이커를 만나기도 했다. 아마 내가 가장 좋아한 사람은 '프리 리필'이었을 텐데, 그는 우리 음료를 아주 적절하게 칭찬했다.
나는 트레일 가장자리에 있는 바위의 으깨기 구멍을 가리켜서 보여주는 일을 좋아한다. 미국 원주민이 도토리를 가루로 빻던 곳이다. 한번은 어떤 하이커에게 그가 언덕 위에서 본 '하얀 골프공'이 실은 팔로마산 꼭대기의 천문대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어야 했다. 그래도 어떤 질문은 다른 것에 비해 대답하기 수월했다.
"이글록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죠?"
어떤 이가 하소연하듯 물었다. 바로 당신 뒤에 있다고 얘기해 주자 그는 거의 마술처럼 공중에 떠올랐다. 이런 경우가 잦을까. 긴 여정의 목적지까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우리가 언제나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전직 경찰과 해병대였다는 점에서 눈치 챘겠지만 내게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오후 3시쯤이면 돌아오기 시작하며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모든 이는 내가 가져간 일지에 서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며, 현금 기부는 받지 않는다. 일지에 담긴 짧은 글들이 집에서 큰 기쁨이 된다.
"자신감을 북돋워 주셔서 고마워요."
"인간애에 관한 제 믿음을 되찾아 주셨어요."
"주님처럼 우리를 환대해 주셔서 고마워요."
마지막 글이 재미있다. 꼭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하는 일을 정확히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다. 새로운 신발 안창이 절실히 필요한 하이커에 관한 e메일을 받았던 때가 기억났다. 일부러 가게까지 가서 그를 위해 안창을 샀고, 압도적인 감사를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건 "얼마를 드려야 하죠"가 전부였다.
좀 불쾌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누구를 위해 이걸 하고 있지? 나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그들을 위해서인가?'를 떠올렸다. 도울 기회를 준 하이커들에게 내가 감사해야 했다.
그게 내가 발견한 은퇴의 핵심이다. 바로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집 근처에서 다른 봉사활동도 하는데, 샌 디에귀토 리버 파크의 코스트 투 크레스트 트레일을 유지·보수하는 일 등이다. 하이커들에게 트레일 마법을 전해준다고도 알려져 있다. 배낭에 든 것 때문에 소떼가 나를 무리 중 한 녀석으로 착각했던 일은 묻지 말아달라.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이글록에서 만나는 종주 도보여행자를 위해 몸과 마음을 쓴다. 그들 덕분에 '햄버거 헬퍼'가 천사 날개를 찾았기 때문이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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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가이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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