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검토 3년, 최근 시민여론이라며 선호도 조사 발표
시민들 "철새를 사육장에 가두고 관광상품으로 팔자는 발상"
환경운동가들 반환경적, 동물학대 지적
'생태관광'에 대한 개념 왜곡 가능성 제기
울산연구원 3년 전 '학' 복원, 방사 어렵다고 연구 보고
3년 뒤 사육장 지어 관광콘텐츠 삼아야 한다고 강조
학 사육장 조성 강요 외부압력 여부도 논란
우리나라 대표적 겨울 철새인 두루미 (원주지방환경청 제공 2021.12.8)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강과 숲, 습지 등을 보존해 멸종위기에 처한 철새를 보호하고 자연생태계 그대로를 관찰하는 철새 탐조는 대표적 생태관광이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국제적 철새보호단체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East Asia Australasian Flyway Partnership)’이다. 주요 철새들의 이동경로에 포함된 울산시는 지난해 EAAFP를 통해 우리나라 동해안 최초로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네트워크 사이트(EAAFP ·East Asian-Australasian Flyway Network Sites)’에 등재됐다.
그런데 울산시가 이 같은 철새를 사육장에 가두고 관광상품화 하려는 반환경적인 움직임이 구체와 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울산시가 최근 울산철새공원에 설치한 국제철새도시 홍보판 뒷면의 모습. 울산시가 국제철새도시로 등재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겨울철새 까마귀와 여름철새 백로 대신 엉뚱하게도 '학' 5마리가 디자인 돼 있다. /사진=울산시 제공
■ 국제철새도시 홍보판 뒷면에 뜬금없는 ‘학’
울산시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네트워크 사이트 등재를 기념하고 철새도시 울산을 홍보하기 위해 최근 높이 3.3m의 대형 홍보판을 울산 태화강철새공원에 세웠다.
지난 2020년~2021년 울산은 찾은 겨울철새는 모두 90종 14만 3500여 마리에 이른다. 겨울철새 중 가장 많은 것은 떼까마귀와 갈까마귀이다. 매년 13만여 마리가 태화강을 찾아와 겨울을 보낸다. 매년 여름철에는 8000여 마리의 백로(왜가리, 중대백로, 중백로 등)가 번식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국제철새도시 등재에 핵심역할을 했다.
그런데 홍보판에 뒷면에는 국제철새 사이트 지정에 기여한 까마귀와 백로 등의 울산지역 대표 철새가 아닌 엉뚱하게도 5마리의 학(鶴·두루미)이 디자인 되어있다.
학은 100년 넘게 울산을 찾지 않은 철새다. 현재 주로 강원도, 경기도, 인천 지역을 오가는 철새이다 보니 갑작스런 학의 등장에 울산시민들은 어리둥절하다. 이에 대해 울산시 측은 "100여 년 전 자취를 감춘 학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바람을 담아 학 5마리가 힘차게 날아가는 모습이 표현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아무리 염원을 담았다고 하더라도 현재 지역 조류 생태계와 거리가 먼 ‘학’을 새긴 점은 의아하다.
일각에서는 ‘학’을 관광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학 사육장(생태원)을 조성하려는 울산시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해마다 울산을 찾고 있는 13만여 마리의 떼까마귀들은 낮 시간 도시 외곽 농촌지역에서 먹이 활동 후 밤에는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에서 잠을 잔다. 사진은 해 질 무렵 울산 도심 하늘을 가득 덮은 떼까마귀.
■ 울산시 "생태관광 매체개'로 학 사육장 검토
울산시는 지난 2021년 ‘울산 학 생태원 도입 사전 분석’ 및 ‘울산 학의 상징성과 생태관광 매개체로의 가능성 제시‘라는 내용으로 울산연구원에 연구를 의뢰했다.
연구 명칭은 ‘울산 학의 상징성과 생태관광 콘텐츠 개발 용역’이다. 이는 앞서 2020년에 울산시가 울산연구원에 의뢰한 ‘울산 생태관광 활성화 기본 계획 수립’ 용역에 따른 후속이다.
울산연구원은 이 용역의 결과로 울산시민 42.8%가 생태관광 아이콘으로 ‘학’을 선택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최근 울산도시환경브리프 105호를 통해 발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생태관광 대상으로 과연 ‘학’이 합당한 지 설문조사 결론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한다.
울산 태화강 철새공원. 매년 여름이면 8000여 마리의 백로가 날아와 번식을 한다. 백로는 울산시가 국제적 철새도시로 인증을 받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사진=울산시
‘생태관광(生態觀光·ecotourism)’은 다양한 생물상, 회귀 동식물, 원시림 등을 소유한 지역을 본래 생태특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지속적인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UN 차원의 개념이다.
우리나라 환경부도 이를 반영해 겨울 철새인 학(두루미)을 아이콘으로 삼은 강원도 철원 DMZ와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 또 세계적인 철새도래지인 충남 서산의 천수만 등 전국 29곳을 생태관광지로 선정해 운영하고 있다. 겨울철 13만 마리 떼까마귀와 8000마리의 여름 백로가 찾는 울산 태화강도 포함돼 있다.
생태관광은 환경단체로부터 동물학대 지적을 받고 있는 울산의 돌고래 수족관이나 호랑이와 곰 등이 갇혀 지내는 동물원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울산에서 철새인 ‘학’을 관광 상품화 하려면 학을 사로잡거나 복원해 사육장에 가두는 수밖에 없다.
사실 울산연구원 보다 먼저 학 사육장을 검토한 지자체는 현재 돌고래 사육장을 운영하고 있는 울산 남구다. 지난 2017년 남구청장이 일본 '오카야마 자연보호센터', '고라쿠엔' 학 사육장을 방문하고 고래관광에 학을 접목해 생태관광 도시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을 밝힌 바 있다.
철원 두루미. 두루미과에 속한 학은 러시아 시베리아, 중국 아무르 지역 등에서 지내다 겨울이면 남쪽인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남부로 날아와 겨울을 나고 봄이면 다시 돌아가는 철새이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202호이자 전 세계에 3000마리 가량만 남아 있어 세계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사진=뉴스1
두루미과에 속한 학은 러시아 시베리아, 중국 아무르 지역 등에서 지내다 겨울이면 남쪽인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남부로 날아와 겨울을 나고 봄이면 다시 돌아가는 철새이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202호이자 전 세계에 3000마리 가량만 남아 있어 세계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학계 한 관계자는 “학을 사육장에 가둬 관광상품화 하는 방식은 국제적 지탄의 대상이자 생태관광과는 거리가 멀다”며 “오히려 반환경적이고 동물학대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 제기 속에 울산시의 학 사육장(생태원) 조성 사업은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보인다. 사육장의 위치로는 당초 태화강 국가정원이 검토됐다가 대상에 제외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로서는 울산 중구 다운동 입화산 일원이 거론되고 있다.
울산시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태화강 국가정원에 학 생태원을 설치할 경우 학의 울음소리가 너무 커 민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다른 곳을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울산 중구 다운동 입화산 주변은 울산다운2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돼 조만간 1만3800여 세대의 아파트와 일반주택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철철원DMZ의 대표적인 겨울철새인 두루미(학)의 모습 /사진=사단법인 철원DMZ 생태관광협의체 홈페이지
■ 울산시 학 사육장 조성에 외부압력 있었나?
울산시에서 학 사육장 설치가 본격 대두된 것은 지난 2019년 울산의 한 민간단체가 의뢰한 ‘학의 복원 및 생태관광 자원화 타당성 및 추진방안 연구’에 대한 울산연구원(당시 울산발전연구원)의 최종 보고회에서다.
울산연구원은 8명의 자체 연구원과 외부 전문가가 도출한 최종보고서에서 울산 내 적합한 서식지가 없어 학의 복원은 어렵다고 분석했다.
특히 현행법과 제도상 정부로부터 학의 복원 허가를 얻는 것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복원사업의 대안으로 두루미의 소규모 전시 관람 사업을 권장하며, 이를 위한 생태적인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맺었다. 이 같은 결론을 울산시는 ‘생태원 조성’으로 해석한 셈이다.
하지만 학 생태원 조성을 추진하는 데 있어 울산시의 의지보다는 외부 압력이 더 많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울산에서는 지난 2017년 전후 민간단체 등을 중심으로 ‘학(鶴)’과 관련된 논의가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됐다. 예로부터 울산은 학의 고장이었다는 주장이 그 배경이었다.
당시 지역 한 단체가 주최한 한 포럼에서는 현 울산연구원 임진혁 원장이 당시 포스텍 특임교수와 유니스트 명예교수 자격으로 ‘학의 고장, 생태관광도시 울산’이라는 제목의 기조강연을 했다. 이어 2019년에는 이정학 울산과학대 교수가 ‘울산 학 생태관광 자원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에 나서기도 했다. 조류학 박사이자 울산 학춤 창시자 김성수 울산철새홍보관장은 이들 포럼에서 학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어진 대학교수와 전문가들이 참가한 토론회에서는 울산의 학 문화 연구소 설립과 학 마을 중심의 생태관광단지 조성 등이 다루어졌다. 당시 거론된 해외 사례로는 일본 오카야마 자연센터과 고라쿠엔 등의 학 사육장이 대표적이다.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학을 길러 관광객상품으로 팔고 있는 곳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민간단체와 학계를 중심으로 학 생태관광 논의가 거듭되면서 울산시로서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됐고 결국 학 생태관광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라며 외부압력이 존재했음을 인정했다.
경남 창원시 주남저수지를 찾아온 천연기념물 재두루미가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최종수 생태사진작가 제공 2021.11.1) /사진=뉴스1
■ “일본 다이지 마을 돌고래 학살과 같아”
이후 울산연구원을 최근 3년간 사실상 같은 명목으로 연구를 거듭했고, 최근 시민 대상 설문조사를 통해 전문가들이 아닌 울산시민들의 의견이라는 명목으로 '학'의 관광상품화 여론이 있음 강조했다.
연구원은 새를 멀리서 지켜만 보는 '탐조 관광'만으로는 (관광산업에)한계가 있다며 지역 내 대기업을 통한 ‘울산 두루미 복원 및 관광 아이콘 사업’을 발굴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결과를 놓고 보자면 울산연구원이 설문과정에서 ‘생태관광’에 대한 명확한 개념 설명이 배제됐거나 왜곡됐을 가능성에 의심이 든다.
지역의 한 환경운동가는 “울산시가 학 사육장 조성을 위해 3년에 걸쳐 연구용역을 진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추진의사가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어떠한 방법으로든 시민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울산연구원 측은 울산시를 통해 조만간 관련 설문조사와 연구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울산철새공원 인근의 한 주민은 "돈에 환장한 것도 아니고 철새를 잡아가두고 관광상품으로 만들어겠다는 울산시의 발상이 일본 다이지 주민들이 무참하게 돌고래를 학살하고 생포한 돌고래를 돌고래쇼 상품으로 팔고 있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비판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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