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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칼럼] 최중경 장관의 경우/곽인찬 논설실장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만든 게 130여년 전인 1879년의 일이다. 에디슨은 밀폐된 전구 안에 탄소 필라멘트를 넣어 발광(發光)시키는 데 성공했다. 정전 사태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요즘 지식경제부 최중경 장관은 현대 전기문명의 불을 밝힌 에디슨이 원망스러울지도 모른다.

사면초가에 몰린 최 장관을 보고 있자니 '열 명의 친구보다 한 명의 적을 만들지 말라'는 격언이 떠오른다. 최 장관은 주변에 적을 너무 많이 만든 것 같다. '최틀러'라는 별명은 그를 잘 모르는 사람조차 인상을 찡그리게 만든다. 최 장관의 선배 관료인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별명은 '따거(大哥)'다. 큰형이란 뜻이다. 그 속엔 후배들이 믿고 따를 만한 보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대책반장'이다. '대책반장'은 긍정과 부정이 교차한다. 화끈한 추진력과 함께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는 인상을 동시에 주지만 부정 일색의 '최틀러'보다는 낫다.

별명은 주변사람들이 짓는다. 자기가 짓는 호(號)와는 다르다. 그런 점에서 최 장관은 '최틀러'라는 별명이 붙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거'는 못 돼도 가치중립적인 '대책반장'이라도 됐다면 지금보다는 동정표가 더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기름값 대소동은 적을 양산하는 계기가 됐다. 최 장관이 정유사들의 팔을 비틀어 기름값을 ℓ당 100원씩 석달 간 억지춘향식으로 인하한 것은 그야말로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소극(笑劇)의 1막은 인하 석달 뒤 최 장관이 정유사들에 재차 '아름다운 마음'을 보여달라고 강요한 데서 절정에 이르렀다.

2막이 오르자 최 장관은 조준점을 정유사에서 주유소로 옮겼다. 그는 "서울 기름값이 오르는 속도가 유독 빠르다"며 "주유소 샘플을 조사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이로써 최 장관은 정유·주유소 업계 관계자들을 죄다 적으로 만들었다. 정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 장관이 물러날 경우 쌤통이라고 고소해할 1순위는 이미 정해져 있다. 최 장관은 욕 먹을 걸 각오하고 기름값 투쟁의 선두에 섰지만 주위에서 그를 고맙게 여기는 소비자는 찾기 힘드니 이런 모순이 있을까.

국회에도 최 장관을 마뜩잖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올 1월 지식경제위는 야당의 반대로 최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했다. 4월엔 본회의장에 혼자 나와 의원들의 질문을 받았다. 국무위원 1인을 상대로 한 대정부 질문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는 의원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최 장관은 그의 멘토인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성장주의자로 분류된다. 서민을 중시한 노무현 정부에서 한직을 돌던 최중경은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1차관, 경제수석, 지경부 장관으로 잘 나갔다. 그는 차관 4개월 만에 고환율로 인한 물가급등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나 이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로 불러 곁에 두었다가 장관으로 기용했다.

그러나 세상은 최 장관이 바라는 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앞만 보고 달리는 성장만능주의에 경종을 울렸다. 한나라당 소장파를 대표하는 정두언 여의도연구소장은 지난주 '위기의 보수, 비상구는 있는가'라는 토론회에서 "성장보다는 안정 중심의 재정금융 정책, 기업보다 서민 위주의 환율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율을 낮춰 물가를 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순진한 발상"이라고 일축해온 최 장관은 '독불장관'이 될 판이다.

박정희·전두환 시대라면 최중경은 명장관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는 온 나라가 목숨 걸고 성장에 몰입했다. 정부의 물가 개입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환율은 수출친화적으로 조율됐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부터 공생발전을 주창하는 세상이다.
안철수 신드롬에 가위 눌린 정치권은 서민 추스르기 경쟁를 펼치고 있다. 정전 사태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마침맞은 핑곗거리다. 아무래도 성장파 관료 최중경의 역할은 여기가 끝인 모양이다.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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